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이 동북면 이성계의 군막으로 찾아가서 이성계와 첫 대면하는 장면은 매우 유명하지요. 극중의 비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군막에서 서로가 첫 대면을 할때에 이성계는 정도전의 존재를 모르다가 처음만나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정도전도 정몽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나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전까지는 이성계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으로 나오고요.
근데, 사실은 두사람이 직접만난적은 없었어도 서로 간에 어느정도는 잘 알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정도전과 인연이 있던 정몽주가 이성계와 함께 조전원수로서 함께 일을 많이 했을뿐더러(애초에 대체로 정몽주가 정도전을 소개하지 않았을까 추측), 그리고 무엇보다 훨씬 이전에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이 삭방도존무사로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요.
지정 17년(1357, 공민왕6) 2월에 중대부(中大夫) 비서감 보문각 직학사(秘書監寶文閣直學士)가 더해지고, 4월에는 존무강릉 겸삭방도 채방사(存撫江陵兼朔方道採訪使)가 되었다. 삭방도 여러 고을이 오랫동안 여진(女眞)에게 함몰되어 국경이 분명히 나누어 있지 않아서 전투가 벌어지면 백성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선생이 강역을 정하고 백성의 살림을 보살피되 그 지방에 알맞게 하니, 백성들이 편하게 여겨 부로(父老)들 수백 인이 조정에 천장(薦狀)을 올렸고, 지금도 그 일이 칭송된다.
- 정운경 행장 -
삭방도는 현재 함흥일대로서 쌍성총관부 설치이후 지명이 없어졌다가 1356년에 쌍성총관부 탈환이후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행장에서 보면 정운경이 수복이후 1년만인 혼란한 상황속에서 부임해 그 지역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는 내용이 나오죠. 다음해 2월 형부사가 되어 개경으로 돌아갈때까지 약 1년간 활동을 하게 되는데, 아마 이때 이자춘 - 이성계 부자와 인연을 맺었을 겁니다.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 그 지역일대의 토호로서 세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자춘(이성계 아버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1356년 부터는 집과 관직을 주고 이자춘 부자가 개경에 거주했다고 합니다만, 그들 집안의 기반인 동북면을 지역을 왕래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정운경과 인연을 맺었을 겁니다. 애초에 행정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삭방도 지역을 안정시킨다는게 관리가 부임 공문 한장 달랑 들고가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테니 전적으로 이자춘 - 이성계 부자의 협력에 기대었을 겁니다. 이러한 관계였던 집안에서 과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까요? 특히나 당시 관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참고로 드라마에서 이인임이 정도전더러 "너네 향리나 부쳐먹다가 아버지대에 겨우 상경한 집안이잖아~"라고 해서 그런지 정도전 집안이 한미하다는 인식이 좀 퍼져있던데, 물론 집안이 한미하다는 인식은 있었을지 몰라도, 정운경이 말년에 종 2품인 "봉익대부(奉翊大夫)"까지 올랐기 때문에 적어도 당시 그렇게까지 만만히 볼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정도전이 과거합격 이후 20대 중반이었던 시절 한창 초반 관직생활을 해 나가던 중 정운경이 사망하여 가세가 조금은 기울어 가던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뒤이어 겹친 어머니의 3년 여묘살이를 마치고 난 뒤에 바로 성균 박사로 관직에 복귀한 거나(물론 이건 관직에 있던 이색계열 동문들이 그를 추천해서), 정도전이 목은 이색의 밑에서 수학 할 수 있었던 것도 정운경이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친분이 있어서 가능했던 점이었던 것 등, 이런 상황에서 볼때 정도전은 아빠찬스(?)를 정말 잘 활용한 셈이었죠^^;; 뭐 그래도 이후 정치 생활에 있어서 성장하게 된 건 전적으로 그의 능력이었지만요. (드라마에서의 묘사 처럼 스승과 동문들이 정도전에게 니가 사람 xx냐 어떻게 이럼??? 하는게 다 이유가 있었....)
"시생 정도전이라 합니다.
포은 선생으로 부터 이야기는 들었수다. 근데 선친께서 삭방도존무사를 지내신 정운경 선생이시라고? 내 일찍이 아버님과 같이 일하시던 정운경 선생으로부터 두 아드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비. 특히 큰 아드님이 성격이 너무 강해서 그렇지 매우 똑똑하다고 이야기 하시던 기억이 나오.
예. 제가 바로 그 큰 아들입니다. 저도 아버님으로부터 장군과 장군의 선친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정도전이 함흥 군막으로 찾아가 처음 대면했을때 아마 이와 같은 말이 오갔을 듯 합니다 ㅎㅎ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전혀 몰랐네요.
저도 개국이라는 드라마 보다가 알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