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이글스 유니폼이 3개 있습니다
빙그레 홈 장종훈 35
어웨이 구대성 15
한화 어웨이 송진우 21
나머지 한화 홈 유니폼을 한용덕 40 코치님으로 할까 고민중입니다
한용덕코치님 인성이나 커리어등등 대단하신분입니다
강속구 투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대 삼진 6위
이글스어려울때 중간계투로 자진 등판도 하셨고
코치시절 선수들에게 연습투구 던져주어야 한다며 수술까지 하셨지요 ㅠㅠ 용덕하우스 그립네요
한화투수 한용덕(47)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선 ‘신데렐라 스토리’의 대표적인 선수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과 별 볼일 없던 실력으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하류인생’ 출신. 그러나 맨주먹과 ‘해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만으로 90년대 한국 대표투수 중 하나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 대전에서 고난이 시작되다
한용덕의 고향은 대구다. 그러나 여덟 살되던 해 아버지가 다니던 주류회사에서 사고가 나면서 손에 쥔 것 없이 대전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그건 고난의 시작이었다. 여섯 살 위인 큰형을 교통사고로 잃어 원치 않는 장남이 됐고 집안 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갔다. 새 운동화를 신어본 기억이 없을 만큼 어린 시절의 삶은 가난과 고난과의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
▲ 뒷산 소주,그리고 새우깡
천동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지만 실력은 그저그랬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키가 작아 늘 홀대를 받았다. 동아대에 진학한 뒤 키는 부쩍 컸지만 중학교 때부터 속을 썩이던 왼무릎 관절염이 재발,제대로 뛰지 못했다. 결국 1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그의 일과는 4홉들이 소주 한 병과 새우깡을 들고 집 뒷산으로 향하는 폐인의 삶으로 채워졌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 저것 일을 해봤지만 모두 실패. 한용덕은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맘처럼 쉽지 않았다. 왼무릎 관절염에다 어린 시절 돌에 맞아 약해진 시력 탓에 신체검사를 통과하기도 힘들었다. 부상을 숨기고 시력검사표를 통채로 외운 덕에 16개월 방위 판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쓰레빠 한’을 아시나요
소집해제 뒤에는 다시 막막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임시 전화 설치,트럭 운전 보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을 숨기진 못했다. 대전구장을 기웃거리길 몇 차례. 그러던 어느날 막 빙그레(현 한화)에 부임한 고교시절 은사인 김영덕 감독 앞으로 달려가 눈 딱 감고 이렇게 외쳤다. “감독님 배팅볼이라도 던지게 해주십시오.” 얼마나 흘렀을까. 김감독의 어눌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오,구래 낼부터 나와.” 프로야구선수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87년 9월 어느날이었다.
▲ 내 인생의 유일한 스승-김영덕
김감독은 그 이후에도 한용덕에게 여러 차례 길을 열어줬다. 배팅볼 투수 3개월여 만에 입단테스트를 통해 그에게 정식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해줬고 한용덕이 구단이 제시한 첫 연봉(300만원)에 실망해 다시 포기하려 하자 구단을 윽박질러 600만원으로 올려주기도 했다. 또 대학 때까지 유격수만 해 던질 수 있는 구질이라고는 직구 하나밖에 없던 한용덕을 88년 7월 1군 공식무대에 데뷔시켜준 은인도 김감독이다.
▲ 영광과 좌절
한용덕은 90년 일본 시마바라 전지훈련에서 사토 인스트럭터를 만난 이후 백조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변화구와 좌타자 상대요령을 터득,본격적인 투수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90년 13승을 시작으로 91년 17승을 거두며 한·일 슈퍼게임 대표선수로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특히 4차전 선발투수로 나서 한국팀에 첫승을 안기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몇 년간은 거칠 것 없는 전성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호사다마일까. 94년 16승을 거두며 조계현(당시 해태)과 다승왕 경쟁을 벌이던 한용덕은 강병철 전 감독과의 불화로 시즌을 조기에 접는다. 그리고 9월 어느날. 아내 강순옥씨가 운전하던 차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자신의 재활은 물론 다리 절단 위기까지 몰리던 아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다른 생활은 거의 포기한 채 몇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 이제 은혜를 되돌려줄 때
2000년 재기에 성공한 한용덕은 이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다. 내년 시즌에는 ‘현역 최고령투수’라는 땀내 가득한 영광까지 안게 된다. 이제 선수생활을 정리해야 할 때.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동안 달려온 인생에 후회는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충분히 건졌기 때문이다. 1년 뒤 지도자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는 한용덕은 “후배들,특히 어렵게 운동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내가 김영덕 감독님 덕에 지금 여기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 한용덕 프로필
▲ 생년월일=1965년 6월2일
▲ 체격=183㎝ 84㎏
▲ 경력=대전 천동초등학교-충남중-천안북일고-동아대(2년 중퇴)-빙그레(현 한화·88∼)
▲ 프로성적=472경기,120승118패24세이브 방어율 3.52
▲ 수상경력=개인통상 1,000탈삼진(11번째) 통산 100승(14번째)
첫댓글 아
나의 중학교 선배님...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감동스럽더라구요.
그래도 새 유니폼은 현역이 어떤지요?? 김태균빼곤 코치님들 마킹이 선수들보다 많을듯요...
한화 선수단에 인생스토리 갖고 계신분이네요.
그것은 인생~~ 참 어떻게 될 지 모르는게 인생인거 같네요 고진감래 더 좋은 일로 ....좋은 날만 있기를 원하고 ...기다립니다....
반드시 자리로 돌아오셔야 할 그 분이네요.
인간극장 같네요
야구를 떠나서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오신분이네요~ 머지않아 이글스의 수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정말 인간극장을 본 느낌이네요..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본 먹먹한 느낌...존경합니다...ㅠ.ㅠ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데.. 진짜 한화가 인기 구단이었으면 영화화됐을 듯
이거 볼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네여....우리 이글스에는 이런 인생역경의 스토리가 많아서리...쉽게 포기를 못하겠네여...
감동적이네요
한용덕하니까 문득 이승엽이 방망이 들구 한용덕에게 뛰쳐올라갈려고 했던장면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