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은 왜 높은 곳에만?
작은 문제의식이 생명 구조 장치로
재난 현장에서 중력과 전기에 의존하는 수액 주입방법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해 훨씬 실용적인 형태의 솔루션을 제시했다.
환자 몸에 스트랩으로 고정할 수도 있고 의료진의 수고를 덜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을 때 수액 팩을 걸어두는 거치대는 필수다.
수액 팩은 중력의 원리로 높이차를 확보해 수액을 주입하기 떄문에 거치대가 아니더라도 수액을 높이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특수한 상황에서 수액 주입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전기도 필요하다.
환자가 있는 곳이 병원이 아닌 재난지역이라면?
2023년 발생한 튀르키에.시리아 대지진 발생 후 구호 현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거치대도, 전기도, 구호 인력도 부족한 구호현장에서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수액을 사수하기 위해
구호 인력들은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다.
그 장면을 지나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나선 이들이 있다.
응급용 무동력 수액 주입장치 '골든 캡슐'을 발명한 홍익대 산업디자인과.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재학생 4명
(채유진. 백원. 김대연. 신영환 씨)이다.
이들은 재난 현장에서도 쉽게 주사할 수 있게 만든 '골든 캡슐'로 국제학생 엔지니어링.디자인 공모전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2023'에서 한국 팀 최초로 국제전 최종 우승팀에 선정됐다.
제12회 '2023 공학페스티벌' 창의적 종합설계 경진대회 부문에서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타이슨은 골든 캡슐에 대해 '재난 햔장에서 중력과 전기에 의존하는 수액 주입 방법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해 훨씬 실용적인 형태의 솔루션을 제시했다.
환자 몸에 스트랩으로 고정할 수도 있고 의료진의 수고를 덜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높이 들지 않아도, 전기가 없어도 OK
골든 캡슐은 기존 수액 팩과 다르게 중력 대신 탄성력, 가압차를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기준 수액은 중력을 적용할 수 있는 높이차를 확보해야 하는 반면 골든 캡슐은 높이차와 관계없이 수액 투여가 가능하다.
전력 공급이 안 되는 재난 현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채유진(24) 씨는 '중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많았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결국 전기로 작동시켜야 하거나 너무 무거워서 이동이 어려운 제품이었다.
우리는 유체에 압력을 가해서 유동시킬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골든 캡슐은 투명한 플라스틱 셸 안에 풍선과 유사한 형태의 의료용 탄성체를 넣어 내부 기압에 따라 수액이 이동하도록 한다.
반대로 쉘 안에 공기가 들어가면 탄성체는 수액을 분출한다.
쉘 안으로 유입되는 공기량에 따라 수액이 주입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쉘 내부를 밀폐시켜 저기압 상태가 되면 탄성체는 압력 평행을 맞추기 위해 부풀어 오르고 수액을 머금게 된다.
홍익대 엔지니어링.디자인융합 수업을 함꼐 들은 이들은 괴제물로 골든 켑슐을 발명했다.
뉴스에 보도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구조 현장을 보고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이 골든 캡슐의 시작이었다.
생사를 가르는 구조 현장은 분초를 다룬다.
한 명의 구호 인력도 아쉽다.
그러나 뉴스 속 구조 현장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수액을 완전히 열어 둔 채 투여하는 것을 '풀 드랩'이라고 한다.
응급 상황 중엔 풀 드랩보다 더 빠른 속도의 주입이 필요할 떄가 있다.
그때마다 의료진이 수액 팩을 손으로 쥐어짜며 속도를 내야 한다.
골든 타임'이 관건인 구조 현장에서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일이다.
또 환자 한 명을 이동시키기 위해선 들 것을 드는 두명, 수액 팩을 드는 한 명, 환자 징후를 살펴야 하는 한 명까지
최소 4명이 필요하다.
비좁은 건물 틈새를 통과하거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야 할 때라면 더욱 난감하다.
'지진 현장은 여진 떄문에 그냥 걷기도 힘들다고 들었다.
비까지 내리면 진흙탕이 된다.
부동력 수액 장치가 있으면 한 명의 인력이라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채유진 씨의 말이다.
그는 '골든 캡슐과 기존 수액의 주입 속도를 그래프로 비교했을 때 거의 비슷하다.
골든캡슐은 (속도가) 초반에 살짝 스파이크를 보인 후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마무리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응급구조사.의료진 만나 자문 구해
이들은 골든 캡슐을 발명하기까지 12명이 넘는 의료진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그중 2022년 9월 중국쓰쵠성 지진 구조에 동참했던 응급구조사를 통해 '수액 용량'에 관한아이디어를 얻었다.
김대연(27) 씨는 '재난 현장에서 임시치료소 혹은 시설까진 30분~1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약 500ml의 수액이 필요하다.
만약 그 양이 부족하다면 수액 튜브 중간에 Y자 포트를 서맃해 새 수액을 이어서 주입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쉘 외부에는 실시간 주입 상호아을 차악할 수 있는 눈금 그래픽과 속도 조절 장치(레귤레이터)가 달렸다.
속도 조절 장치는 골든 캡슐 개발 중 어려움을 겪은 부분이다.
의료진이 시연해 본 결과 속도 조절 장치를 어느 방향에 부착하느냐에 따라 편의성이 달라졌다.
김 씨는 '의료진이 사용해오던 방법과 크게 달라지면 긴급한 상황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의료진에게 친숙하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발명품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주변의 반응을 듣고 확신이 생겼다.
골든 캡슐이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걸 보고 싶다.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의료진의 의견을 바탕으로 개선한 또 다른 점은 '탄성체 색상이다.
포도당이나 생리식염수, 수액 종류에 따라 틴성체 색상을 구분 지었다.
의료계에서 혈액은 붉은색, 포도당은 주황색 혹은 노란색, 생리식염수는 파란색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생리식염수를 넣은 붉은색 탄성체를 파란색으로 바꿨고 수액 종류를 뜻하는 용어를
타이포그래피로 새겨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가령 5% DW'는 포도당 농도가 5%인 수액을 가리킨다.
수액 주사가 끝날 때 즈음 피가 역류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장치도 있다.
백원(27) 씨는 '풍선(탄성체)이 빨간 지점으로 들어오면 수액 팩을 바꿔야 한다.
조치할 준비를 해달라는 뜻'이라며 '현재 프로토타입용 탄성체는 일반 풍선으로 제작됐지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반투명 재질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상용화를 목표로
디자인 전공자와 공학도의 협업은 골든 캡슐의 강점이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에게 잇숙한 디자인도 중요하다.
체유진 씨는 '골든 캡슐은 엔지니어만 있어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이 닞선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면 사용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색상으로 시각적 정보를 준다거나, 재품ㅇㄹ 실용적으로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ㅇ들은 골든 캡슐의 상용화를 목표로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동 우너리에 대한 기술적 검증을 완료했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사용성 검증도 마쳤다.
이를 토대로 추가 연구와 임상시험을 이어가려 한다.
사람을 대사응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기관 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 절차를 밟는 중이다.
정맥 혈압과 유사한 조건을 가진 모델로 실험을 마쳤고 추후 IRB 승인에 따라 임상시험을 할 예정이다.
채 씨는 '우선 작동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하고 ㅡㄱ것이 고도와 온도의 영향을 받는지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체크한 뒤
임상을 하고 의료기기 인증도 받아야 하는 등 상용화까지 남은 단계가 많다'고말했다.
이밖에 소재, 단가 등 고민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플라스틱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닐 소재의 수액 팩보다 생산단가가 높아질 수 있다.
채 씨는 '골든 캡슐은 이름처럼 가운데를 중심으로 반이 가랄지는 형태로 플라스틱 소재다.
환자와 직접 접촉한 풍선이나 튜브는 바로 폐기하지만 플라스틱 부분은 소독한 뒤 재사용할 수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막연한꿈'에 불고했던 상용화에 속도를 낸 데는 2023년 11월 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프로토타입 포 휴머니티 2023(Prototypes for Humanity 2023)'전시회의 영향이 컸다.
세상을 변화시킬 '글로벌 해결책'을 꼽는 이 대회에서 골든 캡슐은 또 한 번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들은 이 전시회에서 만난 튀르키예인들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신여오한(26) 씨는 '2023년 발생한 퀴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사진에 골든 캡슐을 합성해 전시했는데
한 관람객이 '튀르키예 사진 맞지? 지진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런 제품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응급용 수액의 목적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채유진 씨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발명품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주변의 반응을 듣고 확신이 생겼다.
골든 캡슐이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걸 보고 싳다.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