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린 아이에게 가장 잔인한 질문이랍니다. 우리에게는 늘 선택의 기회와 또한 선택해야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앞의 예가 그렇습니다. 어떤 대답을 기대하십니까? 어떤 기대를 하고 이 질문을 던졌을까요? 아마 질문한 본인도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조금 경험을 쌓으면 기대 이상의 대답을 합니다. ‘둘 다요.’ 어린 아이로서는 매우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처음 받은 아이라면 쉽게 나올 수 있는 대답이 아닙니다. 사실은 질문하는 어른이 어리석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때로 당혹하게 만드는 현실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돌파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고 경험이 매우 유용하게 작용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당하면 머리는 복잡해지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기도 하지요.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주어도 최종적인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령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다 해도 스스로 적응해갈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그러한 경험들을 가지고 우리 모두 성장해갑니다. 이렇게 되던 저렇게 되던 시간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고 갑니다.
유능한 의무관입니다. 부하들도 믿고 잘 따릅니다. 그만큼 실력과 사람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니 상관도 아낍니다. 늘 함께 근무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근무기간을 마치고 귀국합니다. 오랜 공백은 사랑하는 아들과 서먹한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프지요. 그 동안 아빠와 아빠의 새 여자와 함께 지냈습니다. 떨어져 있다 한들 어찌 잊고 살겠습니까? 그러나 어린 아들의 마음을 돌이키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성과 사랑으로 다시 아들의 사랑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 속에서 친절한 새 남자도 만나 교제합니다. 물론 그 사람과 아들 ‘폴’과의 사이도 좋습니다. 이래저래 행복한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다시 파병 통지가 날아옵니다. ‘매기’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제 겨우 아들과의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다시 헤어져야 하나? 모처럼 사귄 남자 친구도 헤어져야 합니다. 그야 기다릴 수도 있겠지요. 두 사람 모두 그래도 어른인데 그나마 참을 능력도 견뎌온 혼자를 조금 더 연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릅니다. 이제 조금 엄마를 이해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은 새롭게 새겨준 정을 마음에만 담고 멀리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그 길을 찾아봅니다. 있기는 하답니다. 근무지를 한국으로 바꾸면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답니다.
아빠가 받아줄까요? 최소 2년, 여태 길러주었는데 이제는 아예 데리고 간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양육권 소송도 불사할 태세입니다. 하기야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닙니다. 아빠라고 아들과 그 오랜 시간 떨어진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때마다 그 먼 곳으로 아들을 보러 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다행히 한국으로 근무지 변경이 허락되기는 하였습니다. 물론 직속상관의 눈총과 분노를 받아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겨내기 힘든 것은 부하들이 느끼는 배신감입니다. 여태 자식처럼 돌봐주던 상관과 맺은 인연은 ‘언제까지 함께’로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매기 자리에 있을 만한 동료를 추천하였지만 매기를 대신할 그릇은 아닙니다.
국가가 부릅니다.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하였던 동료들이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 폴과 헤어질 수 없습니다. 아들을 택해야 합니까, 사명을 택해야 합니까? 어머니가 먼저입니까, 내가 지켜야 할 사회적 직무가 먼저입니까? 그것도 일반적인 업무가 아닌 국가적 사명이기도 합니다. 전 남편은 극구 반대합니다. 결코 데려갈 수 없다, 이제 그만 그 사명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가? 하기야 제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대하며 기다리는 상관과 부하장병들의 비난과 눈총을 어찌 그냥 눈감아버릴 수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지켜왔던 가치관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자기를 부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한국은 근무환경도 좋습니다. 아마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입니다. 이미 동료들의 죽음을 곁에서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위험해서 피하겠다고요? 부하장병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비열한 선택입니다. 변명과 방법을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다가오지요.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전 남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은 좀 더 자라겠지요. 그리고 이번에 다져진 정은 쉽게 잊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희망을 품고 안아줍니다. 그리고 동료들의 환호에 힘을 얻습니다. 영화 ‘포트 블리스(Fort Bliss)’를 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했더니 그냥 부대 이름이네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을 빕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복된 날들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