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무기와 미래전쟁 - 러시아의 전차지원전투차량 BMPT 터미네이터 <하>
탐색반경 광범위·광학조준 자동화
최대 4개 표적 동시 추적·공격 가능
화력 집중 시 5분 내 아파트 1동 초토화
1대 전투력, 장갑차 6대·보병 40명 수준
BMPT-14 터미네이터3는 지난 2015년 5월 처음 외부에 공개된, T-14 아르마타 전차의 차체를 활용하는 최신형 BMPT 계열 전투차량이다. 여기서 BMPT는 러시아어로 ‘전차지원 전투차량(Boyevaya Masina Podderzhki Tankov)’의 약자다. 미 육군은 BMPT 계열 전투차량을 가까운 미래에 미 육군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지상무기체계 중 하나로 평가한다. 다만 BMPT 계열 전투차량이 일당백의 전투력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전투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미래 전장은 무기체계의 성능 못지않게 다양한 무기체계의 유기적인 결합과 협업이 중요하지만 BMPT 계열 전투차량은 단독전투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식 사고방식이 만든 괴물
BMPT 계열 전투차량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력한 화력을, 짧은 시간 동안, 조밀한 지역에 집중할 수 있는 무기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공격 가능한 범위 역시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포탑 양쪽에 장착된 아타카(Ataka)-T 대전차 미사일로 최대 6㎞ 거리에서, 2A42 30㎜ 쌍열기관포의 경우 항공표적은 최대 2㎞, 장갑차량은 최대 1.5㎞, 사람과 같은 대인표적은 4㎞에서 공격할 수 있다.
차체 양옆에 장착된 AGS-17D 30㎜ 고속유탄발사기 역시 최대 1.7㎞ 거리의 대인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화력 역시 무시무시해서 초기형인 BMPT-72를 시작으로 BMPT-92와 가장 최신형인 BMPT-14까지 모든 화력을 집중할 경우 5분 이내에 현대식 15층 아파트 1동을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 미 육군 장교들은 BMPT 계열 전투차량을 러시아식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괴물로 평가한다. 현재 미 육군이 보유한 전투차량 중 일대일 전투를 통해 BMPT 계열 전투차량을 제압할 수 있는 전차나 장갑차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육군 M1A2 에이브럼스 전차의 경우 M256 120㎜ 44구경장 활강포로 최대 3.5㎞, M2A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IFV)의 경우 BGM-71 대전차 미사일로 최대 3.75㎞ 거리의 적과 교전할 수 있다.
하지만 다종다양한 무기체계의 유기적인 결합과 효율적인 운용을 추구하는 미 육군은 드론과 항공 및 포병 화력으로 전장에서 BMPT 계열 전투차량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전쟁은 무기체계의 성능을 단순히 비교하는 올림픽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가전의 끝판왕 BMPT-14 터미네이터3
BMPT 계열 전투차량에 대한 미 육군의 혹평에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은 미 육군이 고전한 2004년 4월, 팔루자 전투 등의 사례를 들며 시가전 전용 전투차량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미 육군이 보유하고 있는 M2A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IFV)는 절대 BMPT 계열 전투차량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러시아 국방부의 니콜라이 코바로브 장군은 “강력한 화력과 중장갑으로 무장한 BMPT 계열 전투차량의 전투능력은 ‘터미네이터’로 불리기에 손색없다”고 말한다. 또 그는 “BMPT 계열 전투차량의 도입을 통해 기계화부대의 전투능력이 30% 이상 강화될 것”이며 “러시아군이 시가전에서 고전하는 일은 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은 BMPT 계열 전투차량 1대의 전투력이 BMP 장갑차 6대와 완전무장한 보병 40명과 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강력한 화력 못지않게 자동화된 광학 및 레이저 화력통제장치의 성능 또한 BMPT 계열 전투차량의 특징 중 하나다. 일단 광학 및 열화상 카메라와 레이저 빔 미사일 제어 장치, 레이저 거리 측정기와 결합된 2A42 30㎜ 쌍열기관포는 한 번 포착한 표적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여기에 열화상 카메라와 레이저 거리 측정기가 조합된 지휘관용 광각조준경, 고속유탄발사기와 연동되는 외부감시 카메라 등 자동화된 사격 통제장치를 통해 최대 4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 공격할 수 있다.
BMPT 계열 전투차량의 광범위한 탐색 반경과 자동화된 광학조준장치의 성능은 전차와 기존 전투차량의 사각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참고로 가까운 미래에 러시아군은 야전 전투 상황에서는 전차 2대당 BMPT 계열 전투차량 1대를, 시가전 상황에서는 전차 1대당 BMPT 계열 전투차량 2대를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BMPT 계열 전투차량의 파생형
BMPT 계열 전투차량은 크게 초기형인 BMPT-72와 러시아 육군을 위한 BMPT-92 그리고 가장 최신형인 BMPT-14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초기형인 BMPT-72의 경우 카자흐스탄 육군의 요청으로 탄생했으며 T-72 전차의 차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렴한 획득 가격을 원하는 카자흐스탄 육군을 위해 차체에 고속유탄발사기를 제거한 파생형이 수출됐으며 승무원 숫자가 5명에서 3명으로 감소했다. 또한, 저렴한 금액의 광학 탐지 장비와 화력 통제 장비가 장착돼 단 하나의 표적만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육군의 경우 2013년까지 10대가, 알제리 육군의 경우 2019년 말까지 300대가 수출됐다.
한편 BMPT-72의 도입을 검토했던 국가 중 이스라엘도 있다. 이스라엘은 시가전에서 자국의 메르카바 계열 전차를 지원할 목적으로 BMPT-72의 도입을 검토했지만, 최종 결정 과정에서 국내 생산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BMPT-92의 경우 러시아 육군을 위한 파생형으로 T-90 계열 전차의 차체를 활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포탑의 경우 일부 광학 및 조준장비를 제외하면 수출형 BMPT-72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가장 최신형이라 할 수 있는 BMPT-14는 러시아 육군의 차세대 전차로 평가받는 T-14 전차의 차체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러시아-프랑스 공동 연구개발계획의 하나로 완성된 AU-220M 자동 전투 모듈로 포탑을 강화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AU-220M 자동 전투 모듈의 가장 큰 특징은 57㎜ 기관포로 분당 300발의 속도로 최대 16㎞(수직 고도 4000m) 거리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최초 고속전투함의 함포로 개발됐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아톰(ATOM) 차세대 중보병 전투차량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57㎜ 기관포는 평균 4㎞ 이상의 거리에서 100㎜ 이상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평가 엇갈리는 BMPT의 미래
BMPT 계열 전투차량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BMPT 계열 전투차량의 반짝 활약에도 불구하고 적은 숫자와 비정규전 형태의 운용방식은 객관적 평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미래 전쟁의 추세가 무기체계의 성능 못지않게 다양한 무기체계의 유기적인 결합과 협업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홀로 적진에 난입해 화력을 토해내고 철수하는 BMPT 계열 전투차량의 전투방식 역시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시가전에서 BMPT 계열 전투차량과 같은 시가전 전문 무기체계의 존재는 승패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전차는 물론 대전차 무기의 장점이 상쇄되는 대도시 전장 환경에서 BMPT 계열 전투차량은 기존 대공무기로는 대응 불가능한 드론과 고층건물에 매복한 적군을 공격할 수 있다. 아군 보호는 물론 운동장 하나 정도의 면적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BMPT 계열 전투차량의 가치를 배가하고 있다.
BMPT 계열 전투차량을 제대로만 운영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벌어졌던 뼈아픈 손실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수한 지휘관과 병사들이 없다면 아무리 치명적인 무기체계라고 하더라도 결국 고철덩어리일 뿐이다. BMPT 계열 전투차량의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