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입니다 ]
장기려 박사님을 실제로 뵌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그분은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괜스레 선해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분이었다. 그분께서 세운 청십자병원과 거기서 출발한 청십자 의료보험이 바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효시가 되었다.
내가 인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시절 어느 날 박사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박 교수, 내가 몇 년간 박 교수를 지켜봤어요. 참 착하고, 욕심이 없어요. 내가 세운 청십자병원을 이어갈 사람으로 보입니다.
내가 일본으로 1년 유학 보내줄 테니 다녀와서 청십자병원 원장을 맡아주세요. 월급은 많지 않지만 교수 월급 정도는 드릴 수 있어요.”
그 순간 감사하고 영광스러웠지만 선생님 같은 분의 길을 감당할 그릇이 못 된다고 정중히 사양드렸다. 하지만 그 말씀이 내 평생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
건강검진 이야기를 해보자. 한때 우리나라의 정밀 검진 비용은 2-30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700만 원을 넘는 곳도 많다. 이건 미국과 비교해 프로그램을 만든 덕이다.
한국의 부유층이 미국에 가서 10만 달러씩 내고 검진을 받고 오는데 검사항목을 들여다보니 국내에서 1/20도 안 되는 가격에 더 나은 검진을 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2일간 재워주고 먹여주고 이것저것을 더해 미국보다 더 좋은 검진을 700만 원짜리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오래전 SK를 비롯해 한국 병원들이 중국 진출 붐을 이뤘을 때 상하이에 진출한 한 병원에서 나에게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상하이를 갔는데 병원 외관은 화려했지만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지혈 밴드가 하도 더러워 기겁을 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8,000병상 규모라는 중국 대형병원에서 분변 지게를 멘 직원이 병원 복도를 지나고 있었고 그 분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곳이 중국에서 가장 발전했다는 상하이였다. 그 장면을 보고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아무리 한국인이 병원을 세운다 해도 결국 중국 현지인의 위생 개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의료의 질은 담보할 수 없고 무엇보다 나에게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한국에서는 문제없이 고칠 수 있는 것을 그곳에서는 제대로 손쓰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돈도 좋지만 포기했다.
전 국민 무료의료라는 캐나다에서 가슴 X-ray를 찍으러 한번 간 적이 있다. 두 달 뒤에 오란다. 지금 바로 안 되냐고 하니 그러면 1,000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자마자 바로 찍고 판독까지 해주며 몇천 원이면 되는데....
이렇게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높은 질의 의료를 거의 공짜 수준으로 받을 수 있다. 미국이라는 부자 나라도 국민의 1/3은 보험료가 너무 비싸 의료보험에 가입조차 못 한다. 가입해도 실제 커버되는 항목은 적다.
버스와 지하철이 이렇게 깨끗하고 도착 시간과 경로를 알려주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는가? 미국이나 캐나다 지하철을 한 번만 타보면 안다. 버스에서 교통 카드 하나로 결제되는 시스템을 보고 일본인도 깜짝 놀란다. 밤늦게까지 안심하고 거리를 혼자 걸을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이나 되는가?
나는 어린 시절 우리나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자원도 없고 좁고 가난한 나라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큰 시장이 바로 옆에 있어 물류비가 덜 들고 땅이 좁으니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발달했고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디지털 인프라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되어 그것에 걸 맞는 반도체 산업등이 발달한 것이다.
자원이 없으니 결국 사람을 자원 삼아 키워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인재의 나라이자 사람이 자산인 나라가 되었다. 동네마다 공원이 있고 거리마다 쉼터가 있고 가로등이 켜져 있다. 좁은 국토에 골목길마다 안전망이 촘촘히 깔려 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라 앞으로도 이를 계속 누리기는 어려울테지요?
< 의사 박경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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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려( 張起呂, 1911.10.5 ~ 1995.12.25 )
부산복음병원(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설립자 겸 초대 원장, 1968년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창설했다. 1977년 의무의료보험이 출현하기 이전 임의가입의료보험의 체제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의료보험조합이며, 이는 이후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전국적인 의료보험조합 설립운동인 청십자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청빈과 봉사하는 삶을 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별명으로는 바보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작은 예수 등이 있다.
장기려 박사는 부산의 의료봉사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따뜻한 손길은 수많은 이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병원 앞 감천로 215~298(약 1km) 구간이 ‘장기려로’로 명명되었죠.
장기려 박사는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의 초대원장으로서, 사랑과 헌신의 의료를 실천하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분이셨습니다.
이 도로는 단순한 도로명이 아니라, 장기려 박사의 인간미와 의료 봉사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