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렇게 구차하게 늘어놓아봤자. 어차피 몇시간 정도 나이 먹는 것을 늦추는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항상 그런 것 같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다, 혹은 어리다 라고 하는 것을 나누는 기준은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를 줄여갈 수 없는 바에야 이미 나는 '나이 먹은'사람이 된지 꽤 되었긴하다.
쓸쓸한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쓸쓸하다기 보다, 스물 일곱이란 나이에 벌써 부터 나이 먹기를 싫어하는 '나이먹은'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이 쓸쓸하다.
이것은 어쩌면 요즘의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는 '아줌마'가 아니었고 그 아줌마를 아내로 두고 있지 않은 이상 '아저씨'가 아니었다.
적어도 30대까지는 '청년'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원일기'-얼마전에 결국은 종영되었지만-의 일용이와 응삼이 수남아버지(이름은 까먹었다 어쨌든 유인촌)등의 무리는 다름아닌 '청년회'였다. 응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복길이와 수남이라는 아이를 둔 아저씨가 된다음으로도 한참을 '청년회'로 불리웠었다.
물론 전원일기의 양촌리는 그들이후 이렇다할 청년들이 없었고 사실 그것이 현재 농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또한 세상의 기준과 인식이란 항상 변하기 마련이기도 하지만.
70세를 평균수명으로 상정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20대에서 부터 나이먹기를 싫어하게 되는 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사회는 아닌것 같다.
그렇다고 얼마전부터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젊음 지상주의'와 '외양 중심주의'의 상업적 이용을 지적하고 싶은건 아니다.
다만 살날이 살아온 날 보다는 훨씬 많을 시점 부터 '상대적으로' 노인이 되어버리는 '사회적 압박에 의한 상대적 조로현상'-내가 방금 만든 개념이므로 말이 되고 안되고는 지적하지 마시라-이 나에게 인지된지 불과 10년정도 만에 사회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언제가부터 나도 그로 부터 얼마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 심히 못마땅하다.
그러한 현상을 조장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피해자는 확실하다. 아직 젊음에도 불구하고 젊음을 부인당하는 (내 나이또래의)사람들과 곧 당할(나 보다 어린)사람들이다.
답답한 일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23,4세에 불과한 대학4년생 여학생들이 사회의 3,4년차 직장인 여성과 그냥 봐서는 구분이 안된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현상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고 싫고, 혹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서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지금부터 10년전 그러니까 내가 17살이던 무렵 27살에 대한 환상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직장을 다니고 하는 그런 구체적인 것도 어느정도 있었겠지만 그것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젊의 정점... 뭐 그런거.
정보가 원래 정확한 것인지, 또 그것에 대한 내 기억은 정확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언하기 힘들지만 짐 모리슨이 죽은 나이가 27살이었다... 고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정확할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도, 제니스 조플린도 27살에 죽은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아마..도...
그래서 위대한 뮤지션은 27살에 죽는 것일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17살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웬지 커트 코베인도, 히데도 27살에 죽은 것처럼 생각된다. -사실은 그 즈음일 뿐 정확히 27살은 아니었을 거라고 기억하고 있지만 그래도 웬지 27살이었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제임스 딘도 27살에 죽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관계는 상관없다. 이건 기억이나 정보가 아니라 인식이다.
내게 있어 27살은 그런 의미를 가진 나이였다. 17살때부터.
태어난 날로부터 지구가 태양을 27바퀴를 돌았다는 의미 보다는 인생의, 젊음의 정점을 의미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정점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래서 이렇게 내 가슴에 항상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눈가에 주름이 보기 싫게 늘어나지도 배가 나오지도 머리 숱이 없어지지도 않은 채...
또 그 이전에 죽었다면 팽팽한 피부에 철부지 같은 얼굴을 하고 아무런 업적이나 기억도 만들지 못한 어린 녀석에 불과 할 뿐이어서 내가 기억할 이유따위는 없었을 것이고...
그런 것이었다 나에게 스물 일곱살이라고 하는 나이는.
그리고 결국 내가 여기에 도착을 했다. 아니 곧 도착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은 떠나기 직전, 연애는 고백하는 순간, 키스는 입술이 막 닿을락 말락 할 때, 훈련은 준비태세 발령 5분전, 죽음은 힘겹게 숨을 내쉬는 순간이 진짜다. -'천지창조'에서도 아담과 하느님의 손은 아직 닿지 않아 있다.
막상 떠나본 여행은 기대보다 시시하고, 일단 시작된 연애와 키스는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훈련은 복귀해보면 정비보다는 덜 빡세고, 일단 죽고 나면 이미 남은건 부패할 유기물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천지창조'그 이후의 내용은 또 얼마나 많은 비극의 연속인가.
그러므로.... 아마 나의 27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한해,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의 연속일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역시 10년전 쯤에 읽었던 '고등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 명확하진 않지만 대충 내용만은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 우리는 27살이었다.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 우리가 뭘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뭘 알 수 있었단 말인가....'
(아마 책을 뒤적여 보면 이것 하고는 많이 다른 문장이겠지만 아니 사실은 전혀 다른 문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10년전 읽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그때의 기억과 감상에 따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자자.. 천천히 걸어가자 청춘의 정점을 향해...
Ps. 누군가가 잔소리처럼 해준말 '청춘이란 청춘 그 자체외엔 사실 별 것 없다.'라는 이야기도 왠지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