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전방GP 총기난사사건으로 숨진 희생자 8명의 시신이 안치된 양주병원 등 4개 국군병원은 19일 비보를 접한 유족들이 속속 도착해 시신을 확인하면서 울음바다로 변했다.
특히 일부 유족들은 “총을 쏜 김모 일병이 문제가 있었음에도 군이 사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시신안치 병원을 잘못 가르쳐주고 사고경위에 대해 ‘병사들끼리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군의 초기대응에 불만을 터뜨렸다.
군(軍)은 헬기를 이용, 폐에 파편이 박힌 이건욱 상병을 부상자 김유학.박준영 일병과 함께 이날 오전 5시12분께 양주병원으로 옮겼으나 이 상병은 도착후 숨졌다.
군은 현장감식 등을 거쳐 GP장 김종명 중위와 조정웅.이태련.전영철.김인창.박의원.차유철 상병 등 나머지 7명의 시신을 양주병원을 포함해 포천 일동병원과 고양 벽제병원, 성남 수도병원 등 4개 병원에 분산 안치했다.
▲ 유족 표정
이건욱.조정웅.이태련 상병의 시신이 안치된 양주병원을 찾은 유족들은 빈소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오열하며 군의 사고예방과 사후조치 미흡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태련 상병의 어머니 배옥자(51)씨는 “얼마전 편지를 보내 잘있다고 한 아들이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아들이 4월에 휴가를 나와 총기를 난사한 김 일병에 대해 ’정신병자 같다’고 말했는데 부대에서 그 일병을 감싸고 돌아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이건욱 상병의 형 건희(24)씨는 “총에 맞은 동생이 살려고 발버둥을 쳤을텐데 병원 후송이 늦어 숨진 것같다”며 “부대에서 신속히 조치를 취했으면 살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김인창.전영철 상병의 시신이 안치된 고양 벽제병원에도 유족 20여명이 영정을 붙잡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김 상병의 어머니 정석숙(47)씨와 전 상병의 이모 장씨 모두 오열하다 실신하기도 했다 성남 수도병원에 안치된 차유철 상병의 아버지 정준(52)씨는 “지난 4월 휴가나온 아들이 체력도 좋아지고 건강해 안심했었고 어버이날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대견스러웠다”며 아들의 사망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포천 일동병원에 안치된 김종명 중위의 형 종범씨는 “종명이한테 애인이 없어 얼마 전 휴가 나왔을 때 미팅까지 주선해줬다”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전역을 열흘 앞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흐느꼈다.
▲ 빈소
분향소가 차려진 양주병원의 유족들은 “4개 병원으로 나눠진 8명의 장병 시신을 함께 안치하고, 사건개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라”고 요구하며 윤광웅 국방부 장관 등 고위인사의 조문을 막았다.
윤 장관은 이에 따라 수도병원으로 장병들의 시신을 모두 옮기고 합동분향소를 차리는 것은 물론 유족 대표의 사건현장 방문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한뒤 간신히 조문을 마쳤다.
국방부는 수도병원의 시신안치 및 합동분향소 설치작업이 다소 늦어짐에 따라 양주와 일동, 벽제 등 3개 군병원에 분산 안치돼있는 6명의 시신을 20일 새벽 수도병원으로 모두 옮길 계획이다.
한편 군은 군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등 사건수습노력을 기울였으나 시신안치장소 등에 대한 통보가 미흡해 일부 유족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전영철 상병의 유족은 “군이 오전 6시50분께 수도병원으로 안치장소를 알려줘 가봤더니 병원에서 금시초문이라 했고 뒤늦게 벽제병원이라고 통보해 몇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했다”며 “영안실을 둘러보니 시설이 너무 안좋아 영철이를 두번 죽이는 것같다”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차유철 상병의 유족은 “아침에 뉴스를 보고 알았는데도 군에서는 ’병사들끼리 싸우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가 나중에 ’수류탄을 터뜨렸다’며 사건경위에 대해 2∼3차례 말을 바꾸었다”고 주장했다.
▲ 희생자들 면면
연천 전방GP 총기난사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은 모두 믿음직한 신세대 군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CP장 김종명 중위(학군 41기)는 완주 태생으로 2003년 전주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입대한 전도유망한 예비 경찰이었다.
김 중위는 융자받은 농어촌 학자금을 갚기 위해 장교로 입대했으며 최근 장교기숙사에서 나와 자취방을 얻고 경찰공무원 시험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중위의 형 종범씨는 “방학때면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혼자 벌어 썼고, 최근에는 내가 시간강사하며 왔다갔다 하기 힘들 것이라며 차도 한대 사줬다”고 말했다.
조정웅(충북대 1년) 상병은 2대 독자로 GP 위험수당을 모아 아버지에게 디지털카메라를 사드렸고, 외아들인 이태련(청주대 1년) 상병도 얼마되지 않은 월급을 모아 부모님께 커플반지를 ‘깜짝선물’한 효자였다.
또 차유철(부산외대 1년) 상병도 지난 4월 휴가를 나와 가족회식때 푼푼히 모은 월급으로 삼겹살과 음료수를 사오는 등 살가운 아들이었고 박의원 (충북대 1년) 상병은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희망대학을 낮춰 지방국립대로 진학한 속깊은 아들이었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김인창(순천대 1년) 상병의 어버지 김길남(53)씨는 “제대해서 아빠일을 돕겠다는 효자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지경”이라며 “용돈을 못줘 더 가슴이 아프다”고 슬퍼했다.
전영철(장안대 1년) 상병의 이모 장영숙(42)씨는 “언니가 지체장애여서 군에 있는 영철이가 엄마를 부탁한다고 전화를 자주 했는데 언니가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라며 오열했다.
이건욱(안산공과대 1년) 상병도 힘든 군생활 틈틈히 수시로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 안부를 묻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