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오파트라 7세 ('민족의 영광'의 뜻, 재위 BC52-BC30) |
![]()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하는 클레오파트라> |
![]() 안토니우스는 삼두정치의 반대파를 도운 그녀를 문책할 생각으로 호출하였으나,그녀는 그를 사로잡으려는 계산으로 응하지 않았다. 몇 번의 독촉을 받고 난 그녀는 금빛 찬란한 장식, 아름다운 보랏빛 돛, 감미로운 음악의 선율, 은으로 만든 노를 젓는 노예, 사랑의 신 큐피드로 분장한 미소년들이 타조 깃털로 부채질하고, 요정의 님프 같은 여인들이 시중드는 속에 29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그녀가 금빛 천막 안에 비스듬히 누워 있어 마치 천상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황홀하기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배를 타고 그에게 접근하였다. 저녁식사에 초대된 안토니우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는 말할 것도 없고 식탁에는 금 접시, 금 술잔에 바닥은 온통 꽃이 깔려 있어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넋이 나간 그는 그녀에게 '이런 파티는 막대한 비용이 들겠군요.'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이 정도는 적은 비용이지요. 정말 사치스런 파티를 원하신다면 1만 세스텔치아(약2억 4천 만원)가 드는 파티를 열어드리지요.'라고 말하였다.안토니우스는 어떻게 그런 큰돈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녀는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였고 안토니우스는 좋다고 승낙하여 부하 중에 한 사람을 심판관으로 정하였다. 그녀는 식초 잔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녀에 몸에는 6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는데 두 귀걸이가 돋보였다.그녀는 한 쪽의 귀걸이를 떼어내어 잔에 넣고 마셔버리고 다른 한쪽의 것을 떼어내자 심판관이 제지하면서 '승부는 끝났습니다. 여왕님의 승리입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박물지 기록에 의하면 남은 한쪽의 진주는 로마로 보내져 비너스 상의 귀걸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려한 함대를 '클레오파트라의 함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훗날 러시아의 예카데리나 2세는 흑해에서 크림반도를 횡단 항해하여 '클레오파트라의 함대'라고 불린 호화스러운 행사를 하였다.[ 예카데리나 2세 참조 ] BC36년 안토니우스는 그녀에게 이집트, 키프로스, 리비아, 시리아의 독립왕국 군주로 대우하였고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것을 '알렉산드리아의 증여'라 한다. 이 사건은 로마제국의 영토를 축나게 하였고, 그녀의 하수인으로 놀아나는 안토니우스를 두고 볼 수 없어 BC 31년에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악티움 해전이다. 그녀는 목적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으며 2명의 권력자를 잡았으나 잘못 선택하였다. 돌이켜보면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셈이었다. 그녀의 야망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그녀는 헤롯(헤로데)이 그러했듯이 로마 속왕으로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욕심을 부려 모든 것을 망쳤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실패 덕분에 10년 동안의 안토니우스와 그녀의 사랑은 더욱 유명해졌다. 옥타바누스는 그녀가 시저와 안토니우스 사이에 낳은 자녀들을 후한을 없앤다는 명목하에 모두 처형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