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왼쪽으로 돌려 손을 흔들어라. 미소를 보여라. 검지 손가락을 높이 치켜든다. 오른쪽으로 돌며 웃어라. 어깨는 꼿꼿하게.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어라.
"형제자매 여러분(피넝 카!). 농산물 가격이 너무 낮죠, 그렇죠? 여러분 힘드시죠, 그렇죠?"
확신에 차서, 열정적이고 공감을 갖고 바라보라.
"형제자매 여러분(피넝 카!).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여러분 표를 '기호1' 번에 찍으세요."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은 그 성격 상, 정책입안 벌레나 입담 좋은 토론가, 재치있는 농담가와 같이 태국 국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개성들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뛰어난 마케팅 전략의 선거운동을 통해, 매우 순조롭게 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거전략은 일군의 정치적 고문들이 기획한 것이다. 이들은 그녀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희석시키기 위해, 매번의 연설과 일거수 일투족 및 모든 메세지들까지 기획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녀의 최고의 조언은 먼저 오빠인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로부터 나왔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매주 화상회의를 통해 전략적 그림을 그렸다. 특히 자신의 새침떼기 같은 여동생에 대해, "예, 그녀는 이 나라를 이끌 수 있습니다"라는 확신을 불어넣고자 했다.
불과 2달 전만 하더라도, 잉락 친나왓은 '프어타이 당'(Pheu Thai Party)을 이끌 포부를 여전히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서야 마음을 바꾸긴 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개인적 야망 때문이라기보다는 가문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그녀의 선거운동 초기는 질질 늘어질 수 있는 핵심적인 정책적 논쟁의 발생을 피하고, 잉락이 정치 및 정부 경력이 일천한 점을 인정하여 그녀의 조종자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역풍 가능성과 같은 지뢰밭을 피할 수 있도록, 매우 신중하게 기획되었다.
메세지에 집중하라. 태국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공감과 단결을 강조하라. 농부, 지식인, 도시 빈민층, 투쟁중인 중산층 등 모든 핵심적인 이익집단들에게 전달되도록 기획된 잘 정리된 정책 패키지, 즉 당의 정강정책에 초점을 맞추라. 지난 2년 동안의 '민주당' 집권기간 중 발생한 물가인상의 고통과 외관상의 성과부족을 탄식하라.
카메라 뒤에서, 잉럭은 착실한 학생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보다 확대된 친화력과 선두주자로서의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그녀의 연설은 더욱 정제되고, 더욱 세련되어졌으며, 보다 감성적으로 변해갔다. 당내 관계자들은, 잉럭 후보가 지난 몇주 동안 한때 출마를 망설였던 상태에서 자기 확신에 찬 상태로 변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확신은 매일마다 발표되는 여론조사들의 지지도가 올라가면서 강화됐다. 잉럭의 지지율 상승은 '프어타이 당'의 공약사항이나 집권 '민주당'에 대한 염증, 그리고 그녀의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후광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지지도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말투의 이 비지니스 우먼에 대한 참다운 호감이 상승한 결과였다.
잉럭 후보는 원래 [출마를 권유한] 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녀가 대중적 눈 속에서 생활할 때 수반되는 강력한 검증과정이 달갑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올해 초 당 관계자에게 밝히기를, "비례대표 1번과 맞바꾸기엔 아직 내 인생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특히 내 아들의 행복에 대해 더욱 그러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오빠인 탁신과 당직자들의 강력한 구애가 이뤄진 후, 그녀는 공개적인 발표를 말 그대로 '불과 몇시간 앞둔' 시점에서 당의 간판을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잉럭 친나왓은 렛 친나왓(Lert Shinawatra) 및 유인디 친나왓(Yindee Shinawatra) 부부의 9남매 중 막내이다. 그녀는 '치앙마이 대학교'(Chiang Mai University)에서 정치학을 전공해서 1988년에 학부과정을 마쳤고, 2년 뒤에는 미국의 '켄터키 주립대학'(Kentucky State University)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그녀는 사실혼 관계의 남편 아누손 아몬찻(Anusorn Amornchat)과의 사이에서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아누손 씨는 '엠 링크 아시아'(M Link Asia)라는 휴대폰 판매회사 사장을 맡고 있는데, 잉럭의 언니인 야오와빠 웡사왓(Yaowapa Wongsawasdi: [역주] 솜차이 웡사왓(Somchai Wongsawat) 전 총리의 부인) 씨가 이 회사의 지분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오빠인 탁신이 첫번째 임기를 시작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지 2년 뒤인 지난 2002년, 잉럭 후보는 '어드밴스트 인포 서비스'(Advanced Info Service: AIS)의 대표이사가 됐다. AIS는 태국 최대 이동통신 회사로서, 친나왓 가문의 재산 중에서도 제일가는 알짜배기였다. 잉럭은 2006년까지 AIS 대표이사로서 재임했다. 그 시기는 바로 친나왓 가문이 '친 코퍼레이션'(Shin Corp.)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에 처분한 시점이었다. 그녀는 이후 가문의 사업체 중 별도로 분리 경영 중이던 부동산 개발회사인 'SC 에셋'(SC Asset)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잉럭 후보의 과거 동료들이나 부하 직원들은 그녀에 대해 "상냥하다", "밝다", "멋지다"고 묘사한다. 이는 그녀의 오빠인 탁신 전 총리가 보다 치열하고 꾀가 많으며, 단호한 성격을 가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AIS 사의 이사 한사람은, "그녀는 진짜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다. 주변 사람들을 자연스레 편안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일부 비평가들이 잉럭 친나왓의 자질에 대해 피상적으로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대중들이 보기엔, 그녀의 따사롭고 젊은 기질이 수십년간 태국 정치를 지배해온 근육질 대부들의 캐리커처 만평에 싫증난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대안을 제공했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장미 같은 자태, 아름다움, 여성성, 그리고 과오 없는 성장배경은, 만일 그녀가 선거유세 연단 위에서 승리를 얻게 될 경우, 여전히 숙고를 요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된다.
탁신 및 여타 고위 당 관계자들은 재빨리 그녀의 이미지가 정부청사(총리공관)에 적합한 형태로 축조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그려놓았다. 탁신 전 총리가 '팔랑탐 당'(Palang Dharma Party: PDP) 시절부터 함께 하며 신뢰하는 측근인 베테랑 정치인 수다랏 께유라판(Sudarat Keyuraphan)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다. 이 팀에 속한 각각의 전문가들은 잉럭 후보의 정치적 소양을 구축하기 위한 임무를 갖고 있다.
과거 '친 그룹'(Shin Group) 계열사로서 현재는 기능이 정지된 보도챈널인 'iTV'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니왓탐롱 분송빠이산(Niwatthamrong Boonsongpaisal)은 대-언론 관계 및 선거홍보를 총괄해달라고 부탁받았다.
전직 산업부 장관인 밍콴 생수완(Mingkwan Saengsuwan, มิ่งขวัญ แสงสุวรรณ) 및 전직 부총리인 올란 차이쁘라왓(Olarn Chaipravat)은 경제 정책 및 전략을 조정하는 일을 맡았다. 또한 이동통신사 사장 출신인 똠 크소폰(Tom Kruesophon)은 국제 언론홍보 및 해외 외교관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을 돕는다.
배우이자 정치인인 유라난 "삼" 파몬몬뜨리(Yuranan "Sam" Pamornmontri, ยุรนันท์ ภมรมนตรี)는 잉럭 후보가 기자들과 대면하거나 긍정적인 대중적 이미지 형성하는 법을 인도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몸동작(바디 랭귀지)조차도 재검토받고 교정했을 정도이다. 특히 그녀가 태국 전통적 인사법인 '와이'(wai)를 할 때도, 보다 친밀하고 열린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연단 위에서는 보다 덜 정중한 형태로 만들었다.
'프어타이 당'의 '빅포'(big four: 거물 4인방)인 수다랏 여사와 니왓탐롱, 밍콴, 올란 씨들은 매주 월요일이면 잉럭 후보와 함께 탁신 전 총리와의 화상회의를 가졌다. 탁신 본인은 선거전략가가 아니었지만, 선거운동의 진행상황을 상의하는 자리였다.
잉럭의 여러 연설들에서, 경제 현안과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 인상에 대한 널리 퍼진 우려는 그 중심적인 위치를 점했다. 언론과 인터뷰 할 때도, 정책의 세부적인 사항이나 오빠인 탁신을 귀국시키기 위한 사면 문제, 혹은 작년 5월 방콕에서 발생한 폭동들(riots)에 있어서 '레드셔츠'(UDD) 운동이 행한 역할은 무엇인가와 같은 민감한 질문들이 나오면, 잉럭 후보의 태도는 더욱 수줍은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내 전략가들은 아피싯 웨차치와(Abhisit Vejjajiva) 후보와의 어떠한 일대일 토론도 재빨리 거부했다. 그들은 아피싯 총리의 재치와 수사법이 어떠한 정책적 토론에서도 거의 분명하게 잉럭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잉럭 후보의 '마지막 선거유세'는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거대한 집회에서 막을 내렸다. 수만 명의 군중이 '라차몽콘 경기장'(Rajamangala stadium)에 운집했다. 머리는 빗물로 축축해졌고, 그녀의 목소리는 몇주간 계속된 연설로 갈라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자신을 흠모하는 군중들 앞에서 큰 실수 없이 자신의 노선을 전달했다. 이 연설은 다음 10년간 행해질 <2020 비전>(2020 Vision)이란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번 총선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프어타이 당'에게 승리는 곧 손 안에 있는 것이었다.
어제(7.3) 아침, 잉럭 후보는 아침 일찍 방콕 븡꿈(Bung Kum) 구, 나워민(Nawamin, นวมินทร์) 동에 위치한 '왓 끌롱 람치악 학교'(Wat Klong Lamchiag school)에서 투표한 후, 귀가하여 선거결과를 기다렸다. 오후 중으로 '프어타이 당'의 압승할 것이란 점이 분명해졌다.
미래는 이제 잉럭 후보에게 열려 있다. 태국의 28번째 총리인 동시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다는 사실 말이다.
첫댓글 이 보도는 아마도 대단히 <방콕포스트>적인 특성이 잘 살아난 기사라고 할 수 있죠..
논조 자체가 아주 불순한 성격이 강해서, 검토를 좀 하고서 이제야 공개를 합니다..
아마도 물타기, 양비론..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태국의 네이션이나 방콕포스트에다 대면
한 2수쯤 아래라고 보시면 될듯 합니다..
조선일보 같은 데는 논조가 이상하면,
보통사람들도 이상한 걸로 판단이 될 정도인데..
태국의 주요 언론들이 물타기를 하면
왠만한 사람들도 그 논조를 따라가게 될 정도니까 말이죠..
지금 이 글이 얼핏보면 잉럭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고
국민 다수의 정서를 잘 반영한듯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국민들 다수가 지지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문제가 좀 있지 않니?> 하는 논조로 쓴거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기사를 공개하면서도
이렇게 댓글을 통해 또 사설을 풀 수밖에 없이 만드는 기사입니다..
가만 보면 쓸데 없는 말이 많습니다..
우선 탁신 문제부터 보죠...
<탁신 본인은 선거전략가가 아니지만> 해서..
마치 껴서는 안될 사람이 낀 것처럼 슬쩍 분위기도 띄우고...
<탁신의 귀국 문제> 운운하면서,
집권 민주당이 선거기간 내내 쟁점만들기에 써먹었던 이슈를 다시 끌고 나옵니다..
게다가 <방콕 폭동들에서의 레드셔츠의 역할>...
이것도 집권 민주당하고 군부가 떠들어대던 소리죠...
여기서는 "소요"라든지, "시위"란 말 대신 아예 "폭동"이란 말 쓰는데...
여기서는 방콕포스트 편집장에게 제가 한마디 해주겠습니다..
<야, 이런 쓰발놈아..
작년 5월에 너는 눈시깔 빼먹고 돌아다녀서
지금와서 이따위 소리 하는겨??>
라고 말이죠...
그리고 전반적으로 잉럭은 끊임없이 무슨 조정만 당하는 인형처럼 묘사되고
탁신은 태국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될 악당처럼 그려지는데요...
가디언, BBC, AFP, 로이터, 이코노믹스 같은 서방언론들의 기사만 읽은 분들은
탁신이란 인물을 보다 선한 인물로 이해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방콕포스트나 네이션 같은 태국 신문들을 통해
탁신을 이해하는 분들은, 탁신을 보다 악한 인물로 이해하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 카페의 경우, 양쪽 기사들을 다 다루고 있어서
비교를 할 눈을 약간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1대1 토론만 해도 그렇죠...
그래도 잉럭이 AIS 대표이사를 지냈으므로..
한국으로 따지면 SK 회장을 지낸거랑 거의 동급입니다..
그러니 나이든 유능한 임원들과 경영에 대한 토론 등등.,..
1대1 토론을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죠...
한마디로 태국에서 "왕실"을 언급하지 못한 채 1대1 토론 해봐야...
잉럭이 한손 잡아 묶고 아피싯이랑 권투를 해야하는거랑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또 결론도 안나는 얘기, 퀘퀘묵은 얘기들 갖고 "아님 말고" 식 논란만 일어날테니
뭐 그런걸 다 고려한거란 말이죠
어지되었든, 이 기사는 우리가 반드시 공부해야 되는 기사입니다..
왜냐하면, 태국의 언론들이 가진 속성을 대단히 잘 보여준
"최우수작"에 속한 글이란겁니다...
따라서 뭐 잉럭에 대해 공부한다기보다는...
그냥 태국 언론들의 행태를 분석하고 살펴본다는 언론학적 관점에서
가치를 지니는 글이죠.
잉럭의 마지막 유세 장면도 본문 중에 링크되어 있습니다만
거기에 동영상 보시면, <큰 실수 없이> 연설을 무난히 한게 아니라
"원고 안보고" 감동적으로 했습니다.
방콕포스트는 지들이 만든 동영상에서도
잉럭의 야당 집회는 대충 동영상으로 편집해서 보여줬지만..
집권 민주당 행사는 뭔가 구린 데가 있어서
결국 스냅 사진들(정사진)을 이어 붙인 동영상을 보여준 거 아니냔 말이죠..
하여간 태국 공부하다보면..
공부를 하긴... 해야겠는데,,,
같잖은 꼴을 좀 봐야 하는 게 스트레스라고나 할까요????
역시 노마드님의 풀어선 댓글을 읽고 나서야 글의 논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참 글이란 묘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논조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니 말입니다.
재밌는 글이네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크세의 겸둥이 보아즈 올림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