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도 '철녀'의 우람한 팔뚝은 그대로였다. 거의 아들 뻘이 되는 남자 파트너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리는 여걸의 뒷모습은 세월이 그녀의 인생에 깊이를 더했음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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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테니스 여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47.미국)가 화려하게 복귀했다. 인도 출신의 레안더 파예스(30)와 짝을 이룬 나브라틸로바는 26일 호주오픈 혼합복식 결승에서 토드 우드브리지(호주)-엘레니 다니일리도(그리스)조를 2-0(6-4, 7-5)으로 꺾고 정상에 올라 우승상금 12만4천80호주달러(약 8천7백만원)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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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윔블던 혼합복식 우승 이후 8년 만에 챔피언에 복귀한 나브라틸로바는 이번 우승으로 남녀를 통틀어 역대 메이저대회 최고령 우승자가 됐다. 통산 메이저대회 우승 횟수도 57회(단.복식 포함)로 늘렸다. 호주의 여걸 마거릿 코트(62회 우승)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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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브라틸로바는 시상식에서 활짝 웃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재기를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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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인 나브라틸로바는 73년 프로에 데뷔했고, 2년 뒤 공산체제의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1m73㎝, 66㎏의 체격조건인 나브라틸로바는 82~87년 윔블던 6연패를 차지하는 등 70년대 후반에서 80년 중반까지 세계 여자테니스 최강의 선수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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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때는 무려 3백31주 연속으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슈테피 그라프(독일.3백78주)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세계 최장기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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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브라틸로바는 95년 은퇴했으나 2000년부터는 복식경기에 가끔씩 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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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테니스에 웨이트 트레이닝 개념을 도입한 나브라틸로바는 꾸준한 몸관리로 옛 명성에 걸맞은 기량을 유지해 왔다. 지난해 중반 혼합복식 파트너로 파예스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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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나브라틸로바는 99년 남자복식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오른손잡이 파예스와 절묘한 호흡을 이뤄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이번 호주오픈에서 예상 밖의 대어를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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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