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2월29일
풋 각시
휴일이다. 금요일에 사랑니를 빼서 사골 국물로 죽을 만들었다. 고구마를 삶아서 믹서기로 갈아 우유랑 섞어서 마시고 있다. 너무 과하게 조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성격이 그렇다. 어떤 일이든 정성을 다해서 임한다. 조금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는 더 좋은 것을 안다. 이 정도로 죽을 먹을 수 있음도 감사할 뿐이다.
오후에 어머님을 뵈러 요양원에 갔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귤을 한 박스 샀다. 언제나 어머님을 뵈러 가는 마음은 짠하다. 거동을 전혀 못 하시니까 우리가 병실에 들어가서 뵈었다. 어머니는 당신 막내아들은 여전히 그렇게 바쁘냐고 큰아들에게 물어보신다. 막내아들이 무척 보고 싶은 모양이다. 막내아들이 조금 힘든 것을 어머님이 본능적으로 느끼시는지 계속 막내아들 이야기를 하신다. 힘든 시간이 지나가면 어머님을 뵈러 올 것이다.
시골집에 어머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무엇이 자꾸 없어진다고 하신다. 어떤 것이 없냐고 여쭈니, 어머님 손목시계랑 전자계산기를 말씀하신다. 화장대 서랍에 잘 있다고 하니까 저번에 가서 보니 없다고 하신다. 어머님의 언니가 주신 시계라면서 풋 각시 때 손목시계를 차고 있으면 다들 예쁘다고 했다고 풋 각시처럼 웃었다. 어머님은 지금 풋 각시 시간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얼마나 고우셨을까? 풋 각시 때는.
어머님을 뵙고 시내 백화점을 갔다. 은사님이 선물로 주신 작은 가방이 이제는 헤져서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보다 못해서 인제 그만 버리라고 한다. 선생님이 생일에 사 주신 선물이라 버리기에는 너무 아픈 물건이다. 마음을 다져 먹고 오늘 가방을 사러 백화점에 가는 길이다.
예쁘고 좋은 가방은 몇 개 있다. 흔히 말하는 명품 가방도 세 개 정도 있다. 하나는 친구가 쓰던 것인데 잠시 쓰고 나에게 준 <구찌> 가방이다. 또 하나는 친구가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갖고 있으라면서 <프라다> 가방을 사 주었다. 은사님이 일본에, 학회에 다녀오면서 일본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가방을 사다 주셨는데 유행도 타지 않는 검은색 가방이 있다. 가방에 대해서 그다지 욕심이 없어서 잘 쓰고 있다.
가까운 곳에 나갈 때 들고 다니던 가방이 정말 닳고 닳아서 이제는 새것으로 하나 사야 한다. 그동안 마음을 먹지 않다가 아무래도 하나 사야 할 것 같아서 섭섭하지만, 마음을 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백화점에 들어서면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가방이 있었다. 스위스 제품인데 요즘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은 가방이다. 남자 가방으로 나온 것인데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빈티지 느낌도 있고 가방 크기도 적당하고 색상도 좋았다.
그 와중에 엄마는 어쩔 수 없나보다. 작은아들 생각이 났다. 큰아들은 저번에 집에 올 때 보니까 세련된 가방을 들고 왔다. 작은아들은 아직 학생이니까 형처럼 좋은 가방은 살 수 없지만, 이 가방도 세일해서 사면 나름 품위 유지는 된다. 아들 가방은 짙은 회색인데 여행할 때나 외출할 때 들고 다니면 나름 멋있을 것 같아서 괜히 즐거웠다.
아들과 아내의 가방을 사주는 남편이 멋져 보였다. 남편에게 가방을 선물로 받기는 처음이다. 이 마트에서 사 온 소고기로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술 한잔하면서 휴일을 마무리한다. 무안에서 일어난 비행기 사고로 인해서 마음이 무겁다. 안타깝고 애달프고 마음이 참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