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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안토니 프랑소와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와 기사 데 그뤼의 이야기>
대본 여러 사람(6명으로 추정)에 의해 대본화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자.
초연 1893년 2월 1일 토리노 레지오 극장
배경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아미앵(1막), 파리(2막), 르 아브르(3막), 미국 뉴올리언스 부근(4막)
<1980년 3월 29일 뉴욕 메트 / 132분 / 한글자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제임스 레바인 지휘 / 잔 카를로 메노티 연출
마농 레스코...............10대 후반의 아가씨.............레나타 스코토(소프라노)
레스코......................마농의 오빠. 친위대 중사.....파블로 엘비라(바리톤)
레나토 데 그뤼...........기사.................................플라시도 도밍고(테너)
제론테 드 라부아르.....재무대신. 나이 많은 부자.....레나토 카페키(베이스)
에드몬도...................학생.................................필립 크리크(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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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지아코모 푸치니 오페라 <마농 레스코>
오랜 기간(1965-87) 메트에서 가장 바쁜 베르디와 푸치니 소프라노였던 레나타 스코토의 농후한 마농 연기, 마농의 연인 데 그뤼의 플라시도 도밍고가 보이는 열정이 돋보이는 명작
작곡가, 대본작가, 연출자인 동시에 기획자인 잔 카를로 메노티의 사실적이고 세심한 연출, 전세계로 방영된 메트의 첫 TV방영 작품(1980)
BONUS : 스코토, 도밍고, 레바인, 메노티 와의 인터뷰 수록!
=== 내지 해설 === <Richard Evidon / 정준호 번역>
메트의 전설
<마농 레스코>의 스코토와 도밍고
1907년 작곡가가 자리한 가운데 있었던 메트의 초연 이래 푸치니의 이 획기적인 오페라는 이 극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다져왔다. 당시 마농은 리나 카발리에리였다. 푸치니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성격 묘사에 진정 감동했다. 특히 기쁘고 감정이 풍부한 부분에서 그랬다." 카루소는 데 그리외 역을 불렀다. 이어서 메트에서 마농을 부른 것은 알바네세, 스테버, 커스텐, 테발디 그리고 레온타인 프라이스였고, 그 상대역은 비외를링, 터커, 델 모나코 그리고 베르곤치였다. 이 쟁쟁한 음악가들이 레나타 스코토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업적을 훨씬 능가했을지 궁금할지 모른다. 이 두 사람은 여기 녹음된 공연이 있던 1980년 절정의 기량을 구가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1965~1987) 메트에서 가장 바쁜 베르디와 푸치니 소프라노였던 스코토는 나비부인 역으로 처음과 마지막 무대에 섰다. 그러나 그녀는 마농은 겨우 한 시즌만 불렀을 뿐이다. 니컬러스 캐년이 이 공연에 대해 '뉴요커'에 쓴 리뷰에서 보듯이 이 오페라는 "마농 레스코의 삶에 대한 불연속적인 네 개의 장면을 이은 것"이다. 그러나 스코토는 각각의 분위기를 모두 잘 연기했다. 특히 푸치니가 "기쁘고 감정이 풍부한 곳"이라고 말한 부분에서 탁월했다. 1막에서 그녀는 변덕스러운 소녀 역을 연기한다. 2막에서는 제론트의 부유하고 자기중심적인 정부(情婦)이다. 우아한 "오, 티르시,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이에요"와 그녀의 장점이 드러나는 "이 부드러운 레이스에 싸여 있어도"는 이 공연의 서정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 3막에서는 절망적인 부랑자이며, 4막에서는 섬뜩한 폐인이다. 이어서 카메라는 그녀의 눈에 비친 공포를 생생하게 잡고 있다(영상 감독인 커크 브라우닝의 세심한 뉘앙스 처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밍고는 1968년에 데 그리외를 처음 불렀고, 이후 이 역을 자신의 장기로 삼았다. 그러나 그 역시 메트에서는 단지 한 시즌만 이 역을 노래했다. 처음 두 막에서는 매 순간 젊고 의욕적인 젊은 기사를 볼 수 있고, 3막에서 부르는 "마음의 절규"는 압도적이다. 푸치니가 드라마틱 테너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기도 한 이 노래에서 그는 선장에게, 추방되는 마농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앤드루 포터가 지적했듯이 이 오페라가 성공하기 위해서 데 그리외는 - 그는 대부분의 넘버를 부른다 - 작품의 감정적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도밍고는 그렇게 할 수 있었고 해냈다.
이 DVD에 담긴 이 공연은 작곡가요, 대본작가이며, 연출자인 동시에 기획자인 잔 카를로 메노티가 당시 만든 새 무대의 네 번째 공연으로 메트가 전세계에 TV로 중계한 첫 작품이다. 영국에서 이를 시청한 저명한 오페라 사가이자 평론가인 피터 콘래드는 그 감동을 '뉴 스테이츠먼'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농 레스코>는 위대한 한 쌍의 성악가가 있을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메트는 레나타 스코토와 플라시도 도밍고를 데리고 이를 해냈다." 많은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이 두 사람은 - 파블로 엘비라가 강력한 레스코로 지지를 보내고 베테랑인 레나토 카페키가 나이든 나이든 제론트를 부른다 -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메트의 <마농 레스코>는 그들에게 그 이상을 선사했다.
메노티의 사실적이고 세심한 연출은 - 그는 이전에 마스네의 같은 소재 오페라를 감독한 바 있다 - 서사적인 활력을 부지런히 뿜어낸다. 데스먼드 힐리의 꼼꼼한 무대와 멋진 의상은 스펙터클을 갈망하는 것으로 유명한 메트 청중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끌어냈다. 1막에서 마농이 탄 마차를 끄는 말들이 아미엥 광장으로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2막에서 사랑의 듀엣을 부를 거대한 침대(대본에는 없는 것이다)가 있는 화려한 로코코풍 내실이 그것이다. 3막의 르 아브로 항과 길게 호명하는 모습 그리고 이 오페라의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앙상블로 마지막 막의 추상적인 황무지를 밝히는 무대도 볼 만하다.
몇몇 비평가들이 이 날 밤의 진정한 영웅으로 추켜세운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첫 장면의 희극적이고 변덕스러운 모습을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지막 장면의 비극적인 결말로 전환한다"(콘래드). 그는 드라마의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2막과 3막 사이의 간주곡을 끄집어 내 그것을 멋진 교향시로 둔갑시킨다. 마지막 막에서 황폐한 정원을 그려내는 그의 솜씨는 감각적인 목관의 도움을 받아 잊혀지지 않을 만큼 효과적이다. 주인공들만큼이나 레바인은 푸치니의 초기 걸작이 지닌 각기 다른 구성 요소를 묶어 강력한 음악 드라마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 줄거리 === <내지 해설 / 1984 Mosco Carner / 정준호 번역>
1막
아미앵 : 파리 대문 근처의 큰 광장
2. "아, 사랑스런 밤" (에드몬도, 합창)
밤이다. 학생과 처녀들이 대부분인 군중이 광장을 배회하며, 도박과 술에 절어 있다. 학생인 에드몬도가 사랑과 젊음에 대한 반쯤 진지하고 , 반쯤 조롱하는 듯한 노래를 부른다.
3. "사랑이여! 사랑이여!" (데 그리외, 에드몬도, 합창)
4. "밤색, 금발 미인들 속에" (데 그리외, 에드몬도, 합창)
실연이라도 당한 것이냐는 조롱을 받은 젊은 귀족 데 그리외는 처녀들에게 세레나데를 부른다.
5. "브라보!" (에드몬도, 합창)
6. "내리는 사람들이야, 봐!" (합창, 에드몬도, 레스코, 여관 주인, 데 그리외, 제론트)
아라스에서 마차가 도착한다. 승객 중에는 마농 레스코와 그녀의 오빠, 재무대신 제론트가 있다. 그들이 내릴 때 마농을 본 데 그리외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7. "정숙한 아가씨" (데 그리외, 마농, 레스코)
8.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인" (데 그리외)
마농은 잠깐 혼자 남는다. 데 그리외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녀가 아버지의 명으로 수녀원에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다시 만나달라고 청하고, 그녀는 마지못해 응한다. 그녀가 떠난 뒤 그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쏟아 낸다.
9. "자네의 행운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네" (에드몬도, 합창, 제론트, 레스코, 여관 주인)
레스코가 학생들과 카드놀이에 몰두해 있는 동안 마농을 사랑하는 제론트는 여관 주인에게 마차와 말을 요청한다. 그는 마농을 납치해 파리로 데려갈 속셈이다.
10. "아마도 페르세포네에게" (에드몬도, 데 그리외)
11. "봤죠? 난 약속을 잘 지켜요" (마농, 데 그리외, 레스코)
12. "자, 들어봐요" (데 그리외, 마농, 레스코)
에드몬도가 엿듣고 데 그리외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마농이 돌아왔을 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얘기하고, 제론트가 주문한 마차로 자신과 파리에 가자고 그녀를 설득한다.
13. "지금이 저 아가씨를 유괴할 때야" (제론트, 여관 주인, 에드몬도, 레스코, 합창)
제론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안다. 격노한 그는 레스코에게 달려가 말하나, 늙은 여우의 의도를 안 그는 마농을 찾으려면 파리로 가보는 편이 쉽다는 학생들의 조롱 사이에 그를 안심시킨다.
2막
파리 : 제론트 집의 안락한 거실
14. "이 빨간 머리는 정말 불편해" (마농, 레스코)
15. "정말 멋지고 눈부시구나!" (레스코, 마농)
16. "이 부드러운 레이스에 싸여 있어도" (마농)
17. "네가 알고 싶어하는" (레스코, 마농)
(푸치니는 마농과 데 그리외가 잠시 작은 살림을 차렸다가 결국 그녀가 그를 떠나는 장면을 생략했다.) 이 막은 마농이 이미 제론트의 정부(情婦)가 되어 그의 호화로운 시내 집에 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용사가 그녀의 머리를 만지느라 분주하다. 레스코가 들어오고 마농은 자신이 이미 이 호사로운 삶이 따분하고 지겨우며 데 그리외와 살던 소박한 집이 그립다고 말한다.
18. "산꼭대기에서"[마드리갈] (독창, 마드리갈 합창단)
19. "돈을 줘 보내요!" (마농, 레스코)
20. "추실까요, 아가씨"[미뉴에트] (춤선생, 제론트, 마농, 합창)
21. "오, 티르시,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이에요" (마농, 제론트, 합창)
마농의 레슨이 시작된다. 음악가들이 와서 제론테가 작곡한 마드리갈을 연주하고, 이어 제론트와 춤선생이 들어온다. 명망 있는 제론트의 친구들이 마농의 춤 교습을 바라본다. 레슨은 그녀와 제론테가 추는 미뉴에트로 절정을 이루고, 이어 그녀는 가보트를 부른다.
22. "오 아름다운 여인! ... 당신, 당신, 사랑하는 당신?" (마농, 데 그리외)
마농의 마음을 정확히 읽은 레스코는 데 그리외를 불러온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뒤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고 불같은 사랑의 장면이 이어진다.
23. "귀여운 아가씨" (제론트, 데 그리외, 마농)
24. "아, 아! 자유다!" (마농, 데 그리외)
제론트가 갑자기 들어와 이를 발견하고, 둘을 위협하고 나간다.
25. "레스코!" - "왠일이에요?" (데 그리외, 마농, 레스코, 사관, 제론트)
레스코가 돌아와 연인들에게 당장 도망쳐야 한다고 재촉한다. 그러나 마농은 데 그리외의 당황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론트가 준 보석을 챙기느라 여념 없다. 제론트의 웃음소리와 함께 황제 근위병들이 들어와 마농을 부정한 여자요, 단순 절도로 체포한다.
26. 간주곡 : 투옥 - 르 아브르로의 여정
마농을 감옥에서 구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한 데 그리외는 르 아브르로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맹세한다. 필요하다면 땅끝까지라도.
3막
르 아브르 : 항구 근처의 광장
27. "끝없는 걱정, 불안" (데 그리외, 레스코, 마농)
28. "케이트는 왕께 대답했다" (점등부, 데 그리외, 마농)
29. "마농, 나는 절망적으로 바라고 있어!" (데 그리외, 마농)
마농은 다른 매춘부들과 함께 루이지애나의 감옥으로 호송될 예정이다. 새벽이다. 레스코는 데 그리외가 감옥의 창살을 통해 마농과 얘기할 수 있도록 간수를 매수한다. 점등부가 지나가며 불을 끄면서 노래한다.
30. "무장해! 무장해!" (합창, 레스코, 데 그리외, 마농, 사관, 선장)
31. "로제타!" - "아, 저길 좀 봐!" (사관, 합창, 레스코, 마농, 데 그리외)
레스코와 데 그리외, 친구들은 마농을 구출하려 하다 실패한다. 총성이 들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레스코는 그중 몇몇에게 마농의 불쌍한 처지를 얘기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열두 명의 매춘부가 차례로 호명되는 동안 저마다 떠들어댄다.
32. "빨리! 일렬로!" (사관, 데 그리외, 합창, 선장)
애정 어린 작별 뒤에 데 그리외는 마농을 영원히 보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 처음에는 그저 마농을 다시 보려고 하다가 이내 배의 선장에게 자신을 승선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에게 감동 받은 선장은 허락한다.
4막
미국 : 뉴올리언스의 끝없는 평원
33. "내게 더 기대" (데 그리외, 마농)
34. "이것 봐, 난 울고 있어" (데 그리외)
35. "당신 울어요?" (마농, 데 그리외)
(마농을 탐내는 프랑스 식민지 총독의 조카와 벌인 결투에서 데 그리외는 라이벌을 죽였다고 믿는다. 그와 마농은 도망친다.) 연인은 영국령의 요양소를 찾기 위해 메마른 평원을 걷는다. 지치고 열이 나는 마농은 쓰러지고 더 이상 갈 수 없다.
36. "홀로, 쓸쓸히, 버려진 채" (마농)
데 그리외가 물을 찾으러 간 사이에 잠시 홀로 남은 마농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37. "당신 품에, 내 사랑" (마농, 데 그리외)
데 그리외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마농은 그에게 마지막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작별을 고하고 죽는다. 슬픔을 못 이긴 데 그리외는 실성해 그녀 위에 쓰러진다.
=== 작품 해설 === <1998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실황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마농 레스코 Manon Lescaut
운명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어렸던 여자
우리나라에서 푸치니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이다. 짧은 국내 오페라 공연의 역사에서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은 항상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들이었으며, 2000년을 넘어서면서 <투란도트>가 그 대열에 합류하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푸치니의 또 하나의 중요한 명작인 <마농 레스코>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퍽 작은 편이다.
하지만 <마농 레스코>는 여러 가지 점에서 푸치니에게 중요한 작품이며, 오늘날의 인기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명성을 처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즉 <마농 레스코>는 그때까지 대중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던 이전의 두 개의 오페라 즉 <요정 빌리>(1884)와 <에드가>(1889) 정도의 작품만을 내놓았던 푸치니가 최초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며, 오페라 작곡가 -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탈리아 최초의 근대적인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푸치니란 이름을 확고하게 해준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1893년 토리노의 레지오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10여 년 만에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다투어 올려졌다. 또한, 1923년에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 30년 기념 공연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작곡가 자신의 눈앞에서 성대하게 올려진, 푸치니 자신으로서는 잊지 못할 첫사랑과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푸치니가 불과 35세 때 완성한 작품이지만, 사실 그의 나중의 성공작들 즉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에서 나타나는 푸치니 오페라의 매력의 비밀들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즉 첫째 반음계적인 화성을 구사하여 그때까지 이태리 오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근대적 화성의 칼라를 부여했으며, 둘째 바그너의 영향으로 다분히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타 풍의 장면을 많이 구사하였고, 셋째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더욱 커졌으며 동시에 오케스트라 작법도 세련되었다. 그리고 넷째로는 그러면서도 역시 베르디가 완성한 이태리 오페라의 전통도 계승하여, 무척 선율적이고 인상적인 아리아들도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농 레스코>를 유심히 감상해 보면, 이미 그의 다른 걸작들에서 우리가 즐기고 있는 푸치니 오페라의 재미를 다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인 것이다.
밀라노의 권위 있는 악보 출판사인 리코르타 사의 권유로 푸치니가 프레보의 연애 소설 <마농 레스코와 기사 데 그뤼의 이이갸>를 오페라로 쓰기로 하였을 때, 이미 이 유명한 소설은 프랑스의 작곡가들에 의해 몇 차례나 오페라화되어 있었다. 즉 이미 오베르가 쓴 <마농 레스코>(1856)는 당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베르가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 오페라 최대의 작곡가인 마스네는 <마농>(1884)이란 제목으로 오페라를 만들어 이미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푸치니가 원작을 한 번 더 오페라로 만들려고 계획하였을 때 마스네의 <마농>이 아직 이태리에서는 공연되지 않았던 시점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분명 놀라운 도전이었으며 성공을 열망하는 젊은이의 무모한 욕심으로 비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쟁을 좋아했던 푸치니는 이 작품에 집착하였으며, 자신이 마스네라는 대작곡가와 비교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도 계산하였던 것 같다. 어쨌든 푸치니가 마스네의 작품을 크게 의식하였음이 분명한 것은 <마농 레스코>를 의도적으로 <마농>과는 다르게 만들기 위해서 원작에서 마스네가 골랐던 대목과는 다른 대목을 가급적으로 골랐으며, 여주인공 역시 원작의 캐릭터보다는 푸치니가 좋아하던 자신의 이상적인 여성상(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많이 보이는)을 그려내고 말았다.
즉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여러 면에서 마스네의 <마농>과는 다르다. 첫째는 마농의 캐릭터이다. 프레보의 원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변덕 잘하고 믿을 수 없는 여성인 마농의 성격은 많이 완화되어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처럼 어리고 귀엽고 단순하며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보다 순정적인 여자로 그려 놓았다. 이것은 푸치니가 고의로 의도했다기보다는 작곡 과정에서 작곡가의 여성관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마농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변화이다. 늙은 부호이자 고관인 제론테는 원작에서는 권력과 욕심을 쥔 늙은 색마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푸치니의 오페라에서는 늙은 부자가 젊은 처녀에게 빠진 것 정도로만 표현된다. 레스코 역시 <마농>에서는 도박에 빠져 있는 믿을 수 없는 사촌 오빠이며 동생을 이용해 성공하려는 점이 뚜렷이 부각되는데 반하여, <마농 레스코>에서는 그녀의 친오빠로서 도박꾼도 아니고 그녀에 대해 다른 계략을 획책하지도 않는, 여동생을 생각하는 평범한 오빠로 그려지고 있다.
세번 째의 다른 점은 장면에 관한 것들이다. 푸치니는 의도적으로 마스네의 <마농>과 작별하기 위하여, 원작 중에서 <마농>에 나오지 않는 대목들을 주로 그리려고 하였다. 즉 <마농>에서 유명한 마농과 데 그뤼가 동거를 하는 장면이나, 제론테 등이 그들을 찾아내는 장면, 데 그뤼가 신학교에 있는 대목 그리고 도박으로 살아가는 대목 등은 극에서 중요한 대목임에도 마스네 오페라의 핵심이라는 이유로 모두 생략시켰다. 대신에 푸치니는 <마농>에는 없는 장면들, 즉 마농이 제론테의 집에서 상류 생활을 하는 대목을 자세히 묘사했으며, 마농이 프랑스를 떠나는 르 아브르 항구의 장면, 그리고 4막에서는 무대를 미국에까지 옮겨 사막에서의 장면으로 막 전체를 꾸몄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마농>과 차별화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드라마의 흐름에 억지스러운 면을 없애지 못하고 있으며 각 막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은 <마농 레스코>의 결정적인 단점들로서, 처음 이 오페라를 접할 때 드라마에 관객들이 쉽게 녹아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며, 또한 만일 마스네의 <마농>을 미리 본 사람이라면 이 오페라에 호감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농 레스코>가 명작으로 취급받는 것은 오직 푸치니의 뛰어난 음악, 바로 그것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마농 레스코>는 당시 젊은 푸치니의 음악 세계의 모든 것이 다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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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최진영 글>
마농 레스코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
푸치니는 약 3년에 걸쳐 〈마농 레스코〉를 작곡하여, 1893년 토리노 왕립 극장에서 이루어진 초연에서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작곡가’라는 평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푸치니는 이탈리아는 물론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였다.
푸치니를 성공적인 오페라 작곡가로 만든 작품
쥘 마스네(Jules Massenet)는 푸치니보다 약 10년 먼저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Antoine François Prévost)의 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의 원작을 소재로 하여 〈마농〉(1884)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이 작품은 파리 초연 이후로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같은 소재로 오페라에 도전한 푸치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고, 1890년부터 약 3년의 기간을 걸쳐 작곡하여, 1893년 토리노 왕립 극장에서 이루어진 초연에서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작곡가’라는 평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푸치니는 이탈리아는 물론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였다.
여섯 명의 손을 거친 대본
1890년 푸치니는 이 작품의 오페라화를 위해서 리코르디 출판사의 사장과 의논을 하였는데, 사장은 대본 집필자로 당시 무명이었던 청년 레온카발로(그는 훗날 베리스모 오페라 〈팔리아치〉(1892)를 작곡한다.)를 추전 하였는데, 이들의 협력 작업은 도중에 결렬되었고, 푸치니는 당시 베리스모 작가로 좋은 평을 얻고 있던 마르코 프라가(Marco Praga, 1862~1929)에게 대본 집필을 부탁하였으며, 프라가는 친구 도메니코 올리바(Domenico Oliva)의 도움으로 대본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푸치니가 작곡에 착수한 뒤 계속해서 대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수정을 요청하다 이 둘과도 작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푸치니의 음악적 재능을 굳게 믿고 지속적으로 대본가들과의 싸움에서 조율을 계속했던 리코르디가 당시 이미 작가로서 독보적이었던 주세페 지아코사를 소개해 주었고, 지아코사와 함께 작업을 했던 루이지 일리카까지 이 두 문필가는 이후 푸치니가 써낼 대작들의 대본 작업을 하게 된다. 이후 수정 보완 작업에서 가곡 작가인 토스티의 도움도 있었기에, 대본은 총 여섯 명의 손을 거친 셈이 되었다. 리코르디는 이후 이 작품을 출판할 때 문제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대본가의 이름을 아예 기재하지 않았다.
푸치니풍의 마농
푸치니 오페라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은 원작과 매우 다른데, 특히 마농을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상과 유사하게 바꾸어 놓았다. 사실 프레보의 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데 그리외가 주인공으로, 그가 사랑과 쾌락 등을 경험하며 성장해가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푸치니의 오페라에서는 데 그리외를 망가뜨리는 여인, ‘마농’이 주인공이다. 게다가 사치와 향락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 인물을 관객이 동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바꾸어 놓았다. 소설에서 마농은 향락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쁜 짓을 하지만, 오페라에는 마치 철이 없어 저지른 ‘한 번의 실수’로 치부되는 모습이다. 푸치니는 등장인물의 성격만 바꾸었을 뿐 아니라 앞서 선공한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을 의식하여 같은 장면을 되도록 피하여 작곡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원작의 절반 이상이 다를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극적인 의미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푸치니풍의 새로운 마농
1막의 배경은 아미앵의 어느 여관 앞 광장이다. 마차가 도착하여 중사 레스코와 그의 여동생 마농이 내리고,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에 감탄하는 가운데 데 그리외는 그녀에게 반해버린다. 마차에서 그들과 만난 늙은 부호 제론트는 마농에게 환심을 사려하고 있다. 데 그리외와 마농은 서로 소개를 나누는데, 마농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녀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치와 허영이 심한 그녀를 걱정한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데 그리외는 당신 같은 여성이 수녀원에 가면 안 된다며 저녁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에드몬도를 비롯한 학생들은 사랑에 빠진 데 그리외를 놀린다.
하지만 곧 에드몬도는 제론트가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마농을 납치하기 위한 마차를 준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데 그리외와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납치를 막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그때 데 그리외와 약속을 한 마농이 2층의 객실에서 내려오고, 마농과 데 그리외는 제론트가 준비한 마차를 훔쳐 타고 파리로 달아난다. 제론트가 나타나 마농을 찾지만 에드몬도는 그녀가 떠났다고 말하고, 뒤쫓으려는 제론트를 말리며 레스코는 파리로 가서 천천히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들 뒤에 있는 학생들의 비웃음과 함께 막이 내린다.
2막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있는데, 데 그리외와 함께 파리로 왔던 마농이 곧 헤어지고 제론트의 애첩이 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가난을 참지 못한 마농이 데 그리외를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보러 온 레스코에게 마농은 자신이 사랑을 잃어버려 외롭다고 노래하고, 레스코는 마농에게 데 그리외의 소식을 전한다. 마농은 그리움에 젖어, 그를 버린 과거를 후회하지만, 이내 제론트의 비위를 맞춘다. 이에 제론트는 만족해하며 나간다. 혼자 있는 마농 앞에 나타난 데 그리외는 원망을 퍼붓고, 마농은 뉘우치며 데 그리외에게 매달려 애원을 하다가 결국 뜨겁게 포옹을 하고 침대 위에서 사랑을 불태운다.
그런데 제론트가 나타나 이 광경을 보게 되고, 마농은 ‘당신은 너무 늙었다’며 모독한다. 제론트는 분노한 채로 이별을 고하고 나가고, 마농은 자유의 몸이 된 것에 기뻐한다. 함께 떠나자고 권하는 데 그리외의 말에 마농은 조금 망설이지만 그의 호소에 둘은 달아나기로 결심한다. 그때 제론트의 신고로 온 경찰이 보석들을 챙기느라 출발하지 못한 마농을 체포해 간다.
3막은 마농이 압송된 르 아브르로, 데 그리외와 레스코도 마농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와있다. 하지만 구출은 실패하고, 마농을 비롯한 죄수들이 미국으로 이송되기 위해 배에 올라타는데, 데 그리외는 울부짖으며 선장에게 자신을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선장은 감화되어 자신의 조수로 두기 위해 배에 태우고, 배에서 재회한 연인은 매우 기뻐한다. 뉴올리언스 부근의 황야로 배경이 바뀌고 4막이 시작된다. 수용소에 문제가 생겨 이 둘은 그곳을 도망쳐 나왔고, 황량한 들판을 헤매던 중 마농은 지쳐 쓰러진다. 고열에 시달리며 물을 찾는 마농을 잠시 혼자두고 데 그리외는 쉴 곳과 물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떠난다. 혼자 남은 마농은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예감에 운명을 한탄한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데 그리외가 돌아오고, 죽어가는 마농을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데 그리외의 품에서 마농은 마지막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1막 데 그리외의 아리아,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인’(Donna Non Vidi Mai)
데 그리외가 1막에서 마농을 처음 마주친 후, 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부르는 아리아로, 마농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되새기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데, 이 부분의 선율은 유도동기이다. 선율은 서정적이나 점점 고조되는 감정에 휩싸인 가수는 클라이맥스에서 폭발적인 가창을 보여주는데, 이는 푸치니 특유의 아리아 스타일로 이후 푸치니 아리아의 남자주인공 아리아는 대개 이런 식이다.
2막 마농의 아리아,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In quelle trine morbide)
2막에서 마농을 보러 온 레스코에게 마농이 부르는 노래로, 지금 호화롭고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진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외롭기 그지없다는 내용이다. 데 그리외를 그리워하는 마농의 애절함이 서정적인 선율에 묻어난다.
3~4막 간주곡(인테르메초), ‘르 아브르로 가는 여정’(Intermezzo: Il viaggio a Le Havre)
마농의 체포로 막을 내리는 2막과 마농이 압송된 르 아브르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3막 사이에는 푸치니의 간주곡들 중 가장 유명한 간주곡이 등장한다. 체포되어 르 아브르로 이송되는 마농을 묘사한 간주곡으로, ‘르 아브르로 가는 여정’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현악기와 하프가 구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4막 마농의 아리아, ‘홀로 내버려져서’(Sola, perduta, abandonata)
4막, 뉴올리언스의 수용소를 탈출하여 황야를 헤매다 기진맥진한 상황에, 목마른 마농에게 물을 구해다 주기 위해 데 그리외가 떠난 사이 마농이 죽음의 공포에 떨며 부르는 비탄조의 아리아이다.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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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1월 2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푸치니, 마농 레스코
피사에서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을 처음 본 열일곱 살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감격해 잠을 설쳐가며, "내 갈 길은 오페라 작곡뿐"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가난과 싸워가며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한 뒤 오페라 [빌리](1884)와 [에드가](1888)를 초연했지만 젊은 푸치니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893년 토리노 레조(Regio) 극장에서 초연한 [마농 레스코]로 드디어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라는 극찬을 얻은 푸치니는 마침내 가난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대체 [마농 레스코]의 어떤 특징이 그처럼 관객을 매혹했을까요?
프레보의 성장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
먼저 [마농 레스코]의 토대가 된 프랑스 작가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Antoine François Prévost, 1697-1763)의 원작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L'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1731년)에 주목해볼까요? ‘성직자’라는 의미에서 흔히 ‘아베(Abbé) 프레보’로 불리는 이 작가는 군인으로 인생을 출발했다가 베네딕트회 수사(修士)가 되었지만, 20대에 수도원을 떠난 그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지를 떠돌며 자신의 체험을 기록해 8권에 이르는 대작 [어느 귀인(貴人)의 회상]을 펴냈습니다. 그 가운데 7권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죠. 오랜 모험과 편력을 마치고 귀향한 프레보는 다시 사제직으로 복귀해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제목의 순서에서 알 수 있듯, 프레보의 소설에서 더 비중이 큰 인물은 데 그리외라는 남자주인공입니다. 몇 년에 걸친 지독한 사랑과 쾌락을 경험한 좋은 집안 청년이 마침내 사회적 의무와 종교적 소명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인 셈이죠. 그러나 푸치니 오페라의 진정한 주인공은 데 그리외가 아니라 여주인공 마농입니다. 푸치니는 사치와 향락의 욕구를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이 부정적인 인물을 관객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래서 동정을 얻는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새롭게 창조했습니다. 소설 속에는 두 주인공이 자신들의 향락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삼는 온갖 범죄와 악덕이 가득하지만, 오페라 속에서는 순수하고 순진한 두 남녀가 마치 한 번의 실수로 불행에 빠지게 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반드시 관객의 공감과 감정이입이 가능한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푸치니는 완벽한 대본을 위해 마르코 프라가, 루이지 일리카, 주세페 자코사,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를 포함해 모두 여덟 사람을 대본작업에 참여시켰고, 자신도 동참했습니다. 자신보다 앞서 오페라 [마농](1884년 파리 초연)을 발표했던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를 의식해 푸치니는 1890년에 대본을 완성해놓고도 작곡이 끝난 92년까지 끊임없이 대본을 수정하며 공을 들였습니다. 결말부분에서 미국 유형 장면을 빼버린 것을 제외하면 당시 마스네의 [마농]은 ‘원작소설을 훼손하지 않고 훌륭하게 오페라화한 모범작’으로 꼽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푸치니와 함께 일한 일리카와 자코사는 이후 푸치니 최고의 걸작들인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의 리브레토도 썼답니다. 어떤 오페라가 걸작이 되는 데는 대본가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푸치니는 마농이라는 흥미로운 여주인공을 반드시 오페라 무대에 세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칭찬을 받으려면 마스네와 비슷한 대본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게 했다가는 또 모방이나 표절이라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어 고민이었죠. 결국 푸치니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습니다. 마농과 데 그리외가 만나는 필연적인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마스네가 오페라에서 다룬 모든 장면을 다 빼버렸던 것입니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는 파리 센 강변의 대로 풍경도 없고, 트랑실바니아 호텔의 도박장도 없습니다. 원작소설의 절반 이상을 과감히 잘라낸 푸치니는 2부로 나뉜 소설의 2부 후반부에 총력을 집중했습니다. 마스네가 다루지 않았던 르 아브르 항구의 극적인 반전이나 유형지 뉴올리언즈 사막의 죽음이 그것입니다.
바그너 화성의 모방, 그러나 가장 푸치니다운 선율
1막은 파리 근교 아미앵의 여관 앞 광장에서 시작됩니다. 대학생 레나토 데 그리외는 마차에서 내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빠 레스코와 함께 내린 마농을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마농에게 다가가 말을 건 데 그리외는 매혹적인 10대 소녀 마농이 부모의 강요로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말에 놀라죠. 사치와 허영, 허황된 꿈으로 가득한 마농이 장차 대체 뭐가 될지 우려한 부모의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워진 다음 다시 만나기로 마농과 약속한 그는 마농의 사랑스러운 말투를 되새기며 아리아 ‘한번도 본 적 없는 미인(Donna non vidi mai simile a questa!)'을 노래합니다. 이 아리아는 서정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폭발적 효과에 이르는 푸치니 특유의 아리아 스타일을 정립한 곡입니다. 푸치니는 [라 보엠]의 로돌포,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서부의 아가씨]의 존슨이 부르는 대표 아리아를 모두 이와 같은 스타일로 작곡했지요. 이 아리아 중에 데 그리외가 방금 들은 마농의 대답을 되새기는 ‘제 이름은 마농 레스코예요(Manon Lescaut mi chiamo)’라는 멜로디는 시도동기(Leitmotiv)로 계속 되풀이해 나타납니다.
마차를 함께 타고 온 나이든 부자 제론테(제롱트)가 마농을 납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데 그리외는 저녁에 다시 만난 마농을 마차에 태우고 파리로 도망갑니다. 도망간 두 사람이 파리에서 어떻게 살아갔는가 하는 내용은 보여 주지 않은 채 장면은 갑자기 바뀌죠. 2막은 파리에서 마농이 함께 살고 있는 제론테의 저택입니다. ‘가난을 참지 못하는’(1막 피날레에서 오빠 레스코의 대사) 마농이 데 그리외를 떠났음을 관객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농은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만 열정이 없는 이 생활에 다시금 싫증을 낸답니다. 데 그리외가 마농을 다시 찾기 위해 도박판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오빠에게 전해 들은 마농은 그리움에 잠긴 채 아리아 ‘이 부드러운 레이스에 감싸여 있어도(In quelle trine morbide)’를 노래합니다.
마농을 찾아온 데 그리외는 그녀의 배신을 맹렬히 비난하는데요, 이때 두 주인공이 노래하는 긴 이중창에는 1889년 바이로이트 극장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을 본 푸치니가 습득한 바그너 반음계 화성의 영향이 나타납니다. 제론테는 두 사람을 현장에서 적발하지만 마농에게 모욕을 당하고는 매춘죄로 그녀를 경찰에 신고합니다. 이들은 마농의 오빠와 함께 서둘러 도망치려 하지만, 마농이 욕심을 내며 보석을 챙기느라 지체하는 바람에 경찰과 제론테에게 붙잡힙니다. 2막과 3막 사이에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만큼이나 아름답고 처연한 간주곡이 연주됩니다. 현악기와 하프가 감미로움과 비장미를 동시에 담아내는 이 곡에는 ‘투옥 - 르 아브르로 가는 여정’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3막은 대서양을 끼고 있는 프랑스 북부의 르 아브르 항구. 죄수들을 미국으로 추방하는 호송선이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데 그리외는 유형지로 떠날 마농을 필사적으로 탈출시키려 했지만, 구출작전은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갑니다. 매춘여성들은 하나씩 호명되어 배에 오르는데, 데 그리외는 선장의 발 앞에 엎드려 ‘아뇨! 난 미쳤어요!(No! Pazzo son, guardate!..).’라는 아리아로 ‘제발 나도 배를 타고 마농을 따라가게 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의 간절함에 마음이 움직인 선장은 배의 일꾼으로 데 그리외를 데려갑니다. [마농 레스코]에서 가장 극적이고 감동이 넘치는 장면이죠.
4막은 뉴올리언스의 사막입니다. 수용소 생활 중 마농을 탐내는 정착촌 촌장 조카 때문에 문제가 생기자, 마농과 데 그리외는 황야로 도망쳐 나옵니다. 그러나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그들은 기진맥진해지고, 목마른 마농에게 물을 구해다 주려고 데 그리외가 떠난 사이에 마농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회한에 찬 아리아 ‘홀로 내버려져서(Sola, perduta, abandonata)’를 노래합니다. 물을 구하지 못한 채 데 그리외가 돌아오자 마농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라고 외치며 데 그리외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마농-데 그리외-레스코 순)
[음반] 레나타 테발디, 마리오 델 모나코, 마리오 보리엘로 등,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프라델리 지휘,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4년 녹음. Decca
[음반] 미렐라 프레니, 루치아노 파바로티, 드웨인 크로프트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92년 녹음. Decca
[DVD] 레나타 스코토, 플라시도 도밍고, 파블로 엘비라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잔카를로 메노티 연출, 1980년 공연 실황(한글자막). DG
[DVD] 마리아 굴레기나, 호세 쿠라, 루치오 갈로 등, 리카르토 무티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릴리아나 카바니 연출, 1998년 공연 실황. TDK
[네이버 지식백과] 푸치니, 마농 레스코 [Puccini, Manon Lescaut]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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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3월 3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홀로, 외로이 버려져
푸치니 <마농 레스코>
푸찌니(푸치니, Giacomo Puccini)가 작곡한 세 번째 오페라이며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만든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곧 뒤이어 작곡한 3대 걸작에 비하면 작곡기술, 구성능력, 완성도 등이 훨씬 떨어지지만 특히 음악 속에 넘치는 정열과 멜로디 자체의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는 그 이상이라고 해도 된다. 이 오페라는 역시 같은 원작에 작곡한 마쓰네(마스네, Jules Emile Frédéric Massenet, 1842~1912)의 [마농]과 비교하여 여러 비평가로부터 원작에 충실하지 않다거나 음악이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는 의견을 듣는다. 그러나 원작은 원작일 뿐 작곡가가 자기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푸찌니에게는 그러한 비난은 전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함으로써 푸찌니가 보다 우수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편이 훨씬 고맙다고 할 것이다. 오페라 대본은 쁘레보(Abbé Prévost)의 소설을 올리비아(Domenico Oliva)와 일리카(Luigi Illica)가 만들었다. 전4막이다.
불행을 몰고 다니는 여인, 마농의 비극 이야기
타고난 미모와 바람기로 지금까지 숱한 남자를 불행하게 한 마농은 더 이상 희생자를 만들 수는 없다고 결심하고 사촌 오빠를 따라 수녀원을 향해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여관들이 많은 거리에서 학생 데 그뤼에게 열렬한 사랑의 호소를 듣고 그가 유혹하는 대로 사촌 오빠 몰래 빠리로 도망가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찬 생활을 즐기게 된다. 그러던 중, 사치스런 생활이 몸에 익은 마농은 분명 사랑은 충만되어 있다 해도 그저 그것뿐인 생활로는 참을 수 없고 또 사촌 오빠까지 돈에 매수되어 돈 많은 부자 노인인 제론트의 여자가 되었다. 마농을 쫓아 데 그뤼는 온 빠리를 찾아다닌 끝에 다시 그녀 앞에 모습을 나타나, 자기와 같이 가서 이전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생활을 보내자고 애원한다. 마침 사치는 하고 있지만 사랑이 조금도 없는 생활에 진력이 나 있던 마농은 다시 도망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냥 도망가면 되었을 것을 욕심을 내서 노인의 보석류를 죄다 싹 쓸어가려다 그만 들키고 만다. 바로 두 사람이 떠나려는 순간 제론트가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마농은 미국이라는, 살아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땅으로 유배형(流配刑)을 받는다. 출발하는 날, 배를 탈 죄수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던 중 마농의 이름이 나오자 절망에 빠진 데 그뤼는 그녀를 구하려고 관리들에게 덤벼들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그는 지휘관에게 청소부건 뭐건 상관없으니까 제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울면서 부탁하니까, 그 깊은 애정에 감동된 지휘관은 승낙한다. 황량(荒凉)한 낯선 땅에 정처 없이 헤매는 마농과 데 그뤼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데 그뤼의 깊은 사랑으로 감싸인 채 죽음과 필사적으로 싸우는 마농이었으나 이미 다가온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마농은 사랑하는 사람의 팔에 안겨 잠든 듯이 숨을 거둔다.
'홀로, 외로이 버려져'
홀로, 외로이 버려져
황야 속에!
두렵다!
내 둘레는
하늘이 캄캄해지고, 아, 나는 혼자다.
이 황무지 안에서 나는 죽는다.
고통스러운 괴로움이여!
아! 홀로 버려져서,
얼마나 불행한 여인인가!
아!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그럼 모든 것이 끝이야.
이곳은 평화가 있는 땅으로 보였는데!
아! 내가 예쁜 것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차례로 일어나
나를 그에게서 갈라서게 하려 했다.
내 과거의 모든 것이 지금,
몸서리치도록 되살아나,
생생하게 내 바로 눈 앞에 있다.
아! 뜨거운 피 때문에 소문이 나빠졌다.
아! 모든 것이 끝이다!
무덤만이
평화를 주는 장소가 되어 주리라.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아!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이여, 도와 주세요!
유배지에 닿은 후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고 이 아리아 속에 대강 이야기 되고 있다. 피로와 굶주림으로 꼼짝 못하는 마농을 그대로 두고 데 그뤼가 물을 찾아 떠난 뒤 그녀는 자기의 비참한 꼴을 눈여겨 본다. 지난날 문득 깨달았던 후회는 두려운 절망감이 되지만, 이 아리아가 끝난 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온 데 그뤼를 나무라지 않고 끝까지 살아 달라고 부탁하고 마농은 오보에와 훌루트(플루트, flute)의 반주 속에 숨을 거둔다. 이 미련(未練)뿐인 죽음에는 조금도 고귀함이나 위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마농 레스코 공연]의 에피소드 : 그리고 무대에는 지휘자와 주역 둘만 남았다
웰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1978년도 브라이톤 축제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농 레스꼬]공연이 순조롭게 공연되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지휘자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합창단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모두 없어지고 무대에는 주역인 마농과 데 그뤼만 달랑 남아 있었다. 덕분에 지휘자는 텅 빈 오케스트라 박스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아마 다른 곳의 정기 연주회(定期演奏會)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속 과로한 끝에 이번 브라이톤의 연주로 단원 전원이 지쳐 뻗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연일 출연으로 피로한 단원들이 오페라가 끝나가니 자기 몫이 끝난 단원은 가도 좋다고 누군가가 낸 헛소문에 속았던가.
추천 음반 및 DVD
[CD] 세라휜(세라핀, Serafin) 지휘,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7) 칼라스(S) EMI
모노랄 녹음이지만 잊을 수 없는 연주이다. 칼라스의 마농은 날카롭고 선명하며 상대역인 디 스테화노(디 스테파노, di Stefano)도 더할 나위 없는 명역이다. 세라휜의 이 드라마의 본질을 확고히 파악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 내는 드라마틱한 음악의 향연은 듣는 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CD] 시노폴리 지휘, 휠하모니아 관현악단/합창단(1983) 후레니(프레니, Mirella Freni, S) DG
이 오페라는 전반(前半) 1,2막이 화려하고 후반(後半) 3,4막은 암전(暗轉)된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장점과 단점을 드러낸다. 즉 마농의 실재감(實在感)이 온전하게 노래에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후반이 진지한 비극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후레니는 그 점에서 여자의 본성을 완벽하게 노래하고 있다.
[DVD] 시노폴리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3) 테 카나와(S) 후리드리히 연출
테 카나와(Kiri Te Kanawa), 도밍고 절정기(絶頂期)의 로이열(로열) 오페라단 공연 실황을 녹화한 것이다. 이 오페라를 어떤 이는 “청춘의 아픈 상처”라고 했지만 그 상처를 연출가 후리드리히(프리드리히, Götz Friedrich)는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의 치밀한 음악과 함께 음영(陰影) 깊게 그려나간다. 화려한 무대 모습의 테 카나와가 인상 깊은 연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홀로, 외로이 버려져 - 푸치니, [마농 레스코]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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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9월 30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오페라의 '타락남녀'
소설 『마농 레스코』와 푸치니와 마스네의 오페라
재즈의 발생지를 찾아서 미시시피 강의 하류로 내려가면 도착하는 최종 기착지가 뉴올리언스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뉴올리언스는 대대로 면화와 곡물을 수출했던 항구 도시였다. 아프리카에서 노예 무역으로 끌려온 흑인들이 첫발을 내딛는 신대륙이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아일랜드와 독일 등 유럽 전역의 이민자들이 뒤섞이는 도시였다. 뉴올리언스는 탄생부터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였다. 재즈는 이 용광로의 열기로 빚어낸 음악이었다.
1718년 뉴올리언스를 개척한 프랑스는 당시 루이 15세의 섭정공이었던 오를레앙 공(公) 필립 2세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오를레앙(누벨 오를레앙)’이라고 명명했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영국에 맞서 아메리카 식민지의 편에 섰던 프랑스가 탄약과 군수품을 지원했던 통로였다. 1803년 나폴레옹은 뉴올리언스가 포함된 루이지애나주의 소유권을 당시 1,500만 달러의 가격에 미국에 팔아넘겼다. 하지만 신대륙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의 후손인 크레올은 이후에도 프랑스어권 인구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이민을 장려했다. 결과적으로 더욱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뉴올리언스로 유입됐다. 20세기 초까지도 4명 가운데 1명이 프랑스어를 사용했던 ‘미국 속의 프랑스’가 뉴올리언스였다.
1731년 프랑스 작가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 1697~1763)가 발표한 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마농 레스코』)의 마지막 배경이 뉴올리언스다. 도박과 사기, 감금과 살인 등의 죄명을 쓰고 추방된 마농과 연인 데 그리외의 눈에 비친 뉴올리언스는 황량한 유배지와도 같았다.
고립무원의 땅, 뉴올리언스
“두 달간의 항해가 끝나고 우리들은 기다리던 해안에 도착했다. 첫눈에 이 땅은 우리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황폐하고 인적이 드문 들판에는 바람으로 벌거숭이가 된 나무 몇 그루와 갈대뿐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선장의 명령으로 대포를 몇 발 발사하자 누벨 오를레앙 주민들이 환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으러 나왔다.”
프레보, 『마농 레스코』
낡은 관습이나 신분 질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신대륙에서 이들 연인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18세기 초 뉴올리언스에 몰려든 이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이곳은 ‘기회의 땅’이었던 것이다. 데 그리외는 마농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의 참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벨 오를레앙에 와야만 하오. 여기서만 질투나 배신 없이 서로 사랑할 수 있소. 금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우리가 더욱 값진 보물을 찾은 건 누구도 모를 거요.”
프레보, 『마농 레스코』
하지만 데 그리외는 마농에게 눈독을 들이는 지역 촌장의 조카와 결투를 벌인 끝에 사막으로 달아나고 급기야 마농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숨을 거둔다.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공간인 동시에, 퇴로마저 막힌 고립무원의 상징이었다. 더 이상은 갈 곳이 없다는 의미에서 『마농 레스코』는 말 그대로 ‘막장극(劇)’이기도 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지독한 사랑
『마농 레스코』는 사랑의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연인들이 저지르는 탈주와 탈선의 서사시다. 두 번의 납치와 네댓 차례의 절도, 두 번의 살인과 한차례의 화재, 네 번의 투옥과 한 번의 감금, 한차례의 추방과 한 번의 탈출 등 범죄 일람표와도 같은 이 소설은 순전히 자의로 신세를 망치는 이야기다.
주인공 데 그리외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행복을 거부하고 스스로 최후의 불행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라는 것을. “가장 빛나는 미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운명이나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어둡고 방랑하는 삶을 선택했다”라는 것을. “불행을 겪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피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대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처럼 신분제의 낡은 질서가 흔들릴 때, 청춘 남녀들 사이에서 번지는 열병이 자유연애다. 하지만 봉건적 사슬에서 막 풀려난 젊은 남녀를 다시 옥죄는 밧줄이 경제적 능력이다. ‘유지하다’는 뜻의 프랑스어인 ‘앙트르트니르(entretenir)’에 ‘첩(妾)을 두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고로 홀로 설 수 없는 자는 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자유연애의 기본 전제는 이제나저제나 경제적 자립인 것이다.
지조 없는 여인 마농은 가난한 학생 데 그리외의 순수한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향락과 쾌락에 몸을 내맡긴다. 데 그리외가 곤궁한 처지에 빠질 때마다 마농은 “세상에 진실로 사랑하는 건 당신뿐이지만, 파산할 지경이라면 정조란 어리석은 미덕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편지만을 남긴 채 어김없이 떠난다. 소설은 세무관리인 B의 정부(情婦)가 된 마농을 “B의 보살핌을 받는다”라고 표현한다. 경제적 지원이 결부된 육체적 관계를 흡사 ‘스폰서’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소설에서 마농은 그를 세 번이나 버리고 달아났다. 데 그리외에게도 마농을 잊을 기회는 세 번이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가 순순히 체념했다면, 이처럼 지독한 사랑 이야기도 애당초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데 그리외를 “선악이 뒤섞여 있고, 양식(良識)과 나쁜 행동이 영원히 대조를 이루는 모호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남녀의 어리석은 사랑을 치정(癡情)이라고 부르는 건, 그 사랑이 육욕으로 얼룩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파멸로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질긴 악연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던 마농은 처음 만난 데 그리외의 유혹에 흔들려 파리로 달아난다. 데 그리외에게도 성직자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제 발로 수도원을 박차고 나온다. 데 그리외는 자신이 곤란한 지경에 빠질 때마다 사심 없이 발 벗고 도와줬던 수도사 친구 티베르주 앞에서 육욕과 쾌락을 찬양하고, 종교를 모독하는 불경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비록 사랑은 종종 사람을 속이지만 최소한 만족과 기쁨을 약속한다네. 반면 종교는 사람들이 슬픈 고행만 겪도록 바라지 않은가.” 프레보, 『마농 레스코』
작가의 삶이 담긴, 미친 사랑의 노래
이 ‘미친 사랑의 노래’에는 젊은 날 성속(聖俗)을 넘나들며 방황했던 작가 프레보(Abbé Prévost)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유년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아버지의 손에 자랐던 프레보는 프랑스 북부 에스댕의 예수회 기숙학교에서 신학과 수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그가 진학하고자 했던 북프랑스의 유서 깊은 두에 대학이 반(反) 프랑스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그는 ‘신학’ 대신 ‘군대’를 택했다. 작가가 불과 16세 때의 일이었다. 그 뒤로도 수사(修士)와 군인 생활, 탈영과 사면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자신이 빚어낸 주인공 데 그리외보다도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다.
비극으로 끝난 작품의 주인공들과 달리, 작가의 말년은 대체로 평화로웠다. 1734년 베네딕트 수도원의 사제로 돌아온 그는 파리 인근 샹티이의 수도원에 머물면서 저술 작업에 매달렸고 평생 130여 편의 소설과 기행문을 남겼다. 해외를 떠돌던 시절에 작가는 자신을 ‘추방된 프레보(프레보 데그질)’라고 불렀지만, 프랑스로 귀국한 뒤에는 ‘신부 프레보(아베 프레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가 그의 본명이지만, 지금도 아베 프레보로 더욱 친숙하다.
인기를 누린 금서
『마농 레스코』는 일찍이 프랑스 문학사에서 볼 수 없었던 부도덕한 여인의 탄생이었다. 타락한 여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공주와도 같은 마농의 이율배반적 매력은 어떤 작품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소설에서 각각 17세와 15세로 설정된 이들 ‘철부지 남녀’는 흡사 타락한 『로미오와 줄리엣』과도 같았다.
프랑스에서 이 소설은 1731년 출간과 동시에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다. 하지만 네덜란드 등 주변국에서 들여온 해적판이 은밀하게 유통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1753년 작가 스스로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의 표현 수위를 누그러뜨리고 도덕적 교훈을 덧붙인 개정판을 낸 뒤에야 정식 출판 허가를 받았다. 『마농 레스코』는 연애지상주의 시대의 ‘교과서’인 동시에, 사랑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 묻는 ‘시험지’였다.
당대 지식인 사회에서도 이 작품에 매료된 독자는 적지 않았다. 사드 백작은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보다도 『마농 레스코』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 매력적인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는가!”라고 감탄했다. 삼권 분립을 설파한 프랑스 계몽 철학자 몽테스키외도 “데 그리외의 행동이 아무리 저열해도, 그의 모든 행동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고상한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옹호했다. 독일의 괴테는 청년 시절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에 실패한 뒤 이 소설을 읽었던 경험을 훗날 자서전에 기록했다. “실연과 같은 고통을 자극하는 데 프레보의 소설만큼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라는 독일 문호의 고백에서 그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떠오른다.
마스네의 마농
소설 출간 이후 데 그리외와 마농은 오페라와 발레, 영화까지 예술 장르의 남녀 주인공 자리를 독식하기에 이르렀다. 시기상으로는 1830년 작곡가 알레비의 발레 [마농 레스코]와 1856년 다니엘 오베르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가 앞선다. 하지만 최초의 세계적 히트작은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가 1884년 발표한 오페라 [마농]이었다.
마스네가 당초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의뢰를 받았던 작품은 『마농 레스코』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포이베』였다. 이 작품의 진척이 여의치 않자 마스네는 위촉을 사양하기 위해 대본 작가 앙리 메이약을 찾아갔다. 하지만 메이약의 서재에서 소설 『마농 레스코』를 발견한 마스네는 그 자리에서 오페라 대본 집필을 의뢰했다. 이틀 뒤에 첫 두 막의 대본을 써온 메이약은 마스네와의 식사 자리에서 대본을 식탁보 밑에 슬그머니 놓아뒀다. 대본을 받은 마스네는 1882년 작가 프레보가 『마농 레스코』를 집필했던 네덜란드 헤이그의 집에 머물면서 작곡에 매달렸다. 마침내 이 오페라는 1884년 초연 이후 35년간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1,000회 공연될 만큼 인기를 누렸다.
야심찬 푸치니의 출세작
마스네의 여주인공이었던 마농 레스코에 도전장을 던진 이탈리아의 후배 작곡가가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였다. 그는 당시 오페라 [빌리]와 [에드가] 등 두 작품을 발표한 ‘신인급 작곡가’였다. 하지만 푸치니는 동료 출판업자가 만류했지만 “왜 마농에 대한 두 편의 오페라가 존재하면 안 되는가? 마농 같은 여인은 하나 이상의 연인을 가질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프랑스인인 마스네가 분칠과 미뉴에트로 작품을 느낀다면, 이탈리아인인 나는 거침없는 열정으로 작품을 바라보겠다”라는 푸치니의 말에는 오페라 본고장 출신이라는 자존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작곡가는 앞선 두 오페라의 반응이 미지근한 데 그치자 [마농 레스코]를 완성하기 위해 모두 5명의 대본 작가를 동원할 만큼 노심초사를 거듭했다. 결국 1893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초연된 [마농 레스코]는 [라 보엠]과 [토스카], [나비부인]을 예고하는 작곡가의 출세작이 됐다.
마스네는 마농의 노래에서 음정과 기교, 색채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여주인공의 변덕스러운 성격이나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당대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다. 반면 푸치니의 오페라는 파멸로 치닫는 청춘 남녀의 운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충실했다. 마스네는 마농이 르아브르로 호송되던 도중에 숨지도록 각색했다. 반면 푸치니는 원작 설정을 그대로 살려 뉴올리언스의 사막에서 숨지도록 해서 처절함을 한층 부각했다. 마스네의 오페라는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속삭이는 파리를 2막의 배경으로 삼은 반면, 푸치니의 오페라 2막에서 마농은 이미 데 그리외와 헤어지고 부호의 애첩이 되어 있다. 이처럼 푸치니는 선배 마스네의 [마농]과 적극적으로 차별화하기 위해 때로 의도적인 비약을 택했다.
하지만 두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숱한 차이점이 하나의 공통점보다 클 수는 없었다. 푸치니의 말처럼 마농은 충분히 두 작품의 주인공이 될 만큼 치명적 매력을 지닌 ‘팜 파탈’이라는 점이었다.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것이 고전의 운명이라면, 이 작품보다 그 운명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었다. 초연 이듬해 영국 런던에서 오페라 [마농 레스코]를 관람한 버나드 쇼는 “그 어떤 라이벌들보다 푸치니는 베르디의 후계자에 가까워 보인다”라고 평했다. 쇼의 이 말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를 정확하게 꿰뚫어본 예언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페라의 ‘타락 남녀’ - 소설 『마농 레스코』와 푸치니와 마스네의 오페라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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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80년 공연, 그러니까 40년이 다 되어가는 필름입니다...화질과 음질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불멸의 오페라 3 / 박종호> ★★★
최정상의 오페라 가수였던 레나타 스코토를 볼 수 있는 좋은 영상이다. 그녀는 혼신을 다해 열창을 하지만, 이미 전성기의 목소리도 아니고 10대의 마농 역을 부르기에는 외모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극중에 몰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 그것은 플라시도 도밍고(데 그리외 역)의 열정과 지휘자 제임스 러바인의 실력이 받쳐주기 때문일 것이다. 파블로 엘비라(레스코 역)와 레나토 카페키(제론트 역)도 뛰어난 호연으로 주역들을 도와준다. 잔 카를로 메노티의 연출도 흥미롭지만, 특별히 독특한 점은 발견하기 어려운 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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