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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생명과 재물의 영광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하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히1:3)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성(神性)에 인성(人性)을 입히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시기 위하여 이 지상(地上:악한세상)에 오셨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그분 자신을 낮추셨으며, 죽기까지 복종(服從:믿음의 순종)하사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시게 되셨다. 그분의 몸에 죄의 저주(咀呪:고통의 영원한 죽음)를 지심으로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미칠[직접 영향을 끼침] 수 있는 곳에, 행복과 불멸의 생명[영생과 영원한 안식]을 두셨다.(1SM 308.3)
우리의 구주께서 그분께 순종할 자들에게 주실 상급은 불멸의 영광과 영생이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셨으며,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 승리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한 모본(模本:본보기)을 주시고, 그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恩赦:죄 용서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1TT 349.2)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구원을 두셨다. 이 세상에서 그분은 존경을 받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놀라운 겸손[온유하고 부드러움]과 굴욕[屈辱:피조물에게 수치와 조롱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사람을 높이셔서 그분의 궁정(宮廷:창조주의 보좌가 있는 궁궐)에서 하늘의 명예와 불멸의 기쁨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오직 투쟁, 겸비(謙卑:겸손히 자신을 완전히 낮춤)와 고생을 통해서만 하늘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추락(墮落:영원멸망)한 인간이 불평(不平:못마땅)할 수 있겠는가?(1TT 407.3)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불멸의 영생을 줄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으셨다. 인성을 위해서 그분께서 친히 내놓으셨던 생명을 다시 취하셨으며 그 생명을 인간에게 주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죄인]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1SM 302.2)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이 세상에 주셨을 때, 그분께서는 불멸의 재산, 곧 세상이 창조된 이래 사람들이 축적해 온 부도 그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재산을 인류[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간직되어 온 사랑을 가지고[창조 전부터 준비하신 영광]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 서셨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의 연결을 통하여[구주와 연합하고 하나 되어] 받고, 나타내고, 나누어주어야 할 보화(寶貨:영생복락의 유업)이다.(YHH 251.1)
이와 같은 생애의 시련들은 우리의 품성에서 불순물과 결점과 거친 것들을 제거해 버리고, 영광 중에 있는 순결한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련들을 통과할 때, 고난의 불이 우리에게 붙을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불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유업, 불멸의 생명,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믿음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불은 우리를 태우지 못하고 다만 찌꺼기만 제거해 버리고, 우리는 일곱 번 연단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나오게 될 것이다.(1T 706.2)
예수님과, 그대들을 지키는 천사들은, 그대들의 농장과 가축과 세상 재물을 초월한 하늘나라와 불멸의 유업과 영광의 나라에 있는 영원한 사물들을 그대들에게 가리키고 있다. 천사는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2:15).(1T 168.4)
나는 그대가 하나님이 주신 빛에 유의하고, 개혁하기를 호소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의 사랑의 위대함과, 하늘의 주권자께서 멸망해가는 영혼들이 그분의 나라에서 구원받은 것을 보는 기쁨을 위하여 모욕과 조롱과 굴욕과 고통을 감수하신 사실을 우리에게 드러낸다. 그대가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미래의 불멸의 생명을 위하여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그대의 주요 연구가 되게 하라.
그들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불행한 기질들을 가지고서는 그들이 결코 하나님의 낙원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낮 동안에 일하고 세월을 아끼라. 그리고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을 얻어라.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정을 구원하라. 영혼의 구원이 귀중하기 때문이다.(4T 503.2) 사람의 가장 강력한 충동—성경은 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富饒:풍성한 재물)와 불멸[영생]의 보물들[면류관과 유업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사람의 가장 강력한 충동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追求:영원을 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 갈망을 인정하며, 참된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의 노력에 온 하늘이 그와 연합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조건이 드러나 있다. 그것에는 눈물이나 결핍이 없을 영원한 행복과 쾌활[유쾌한 안식]의 본향(本鄕:에덴동산)이 기술되어 있다.(2MCP 643.1) 사람은 고상한 목적들을 위해 지음 받음—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우월감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참된 마음의 향상이다. 올바른 정신의 계발은 사람을 본래의 모습으로 만들어 준다. 고상하게 하는 이 능력은 불멸의 생명을 위해 품성(品性:성품)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주어졌다.
사람은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높고 거룩한 즐거움의 상태를 누리도록 창조함을 받았다. 그는 천사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높고 고상한 목적들을 추구하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2MCP 786.3) 불의한 모든 식욕에 대한 욕구를 극복하기 위해 정복자 예수의 이름으로 단호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투쟁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식욕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일상(日常)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것이므로 그들은 건강과 하나님의 은혜를 즐길 수 있고 불멸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Con 79.3)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그들의 감옥[잠자는 곳]에서 부르심을 받아 .... 영광스러운 불멸(不滅:영생)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므로 그대는 낙담(落膽:죄 속함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낙심] 가운데서도 .... 그분께서 평안을 주시고자 그대 곁에 계심을 알 수 있다.(Mar 281.3) 그리스도, 생명나무—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며, 불멸[영원]의 근원(根源:시작된 본 바탕)이시다. 그는 생명나무요, 그에게 오는 모든 이들에게 영적[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7BC 989.8)
땅이 흔들리고 번개가 번쩍번쩍하고 우레 소리 요란한 중에 하나님의 음성은 자는 성도들을 불러일으킨다. 주께서는 의인의 무덤을 보시고 그 손을 하늘로 드시고 “깨어라 깨어라, 깨어라 티끌 가운데 자는 자여 일어나라” 하신다. 온 땅 위의 죽은 자들이 이 음성을 들을 것인데 이 음성을 듣는 자들은 살 것이다. 이 때에 온 세상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부활한 큰 군대의 발자국 소리로 울린다. 그들은 사망의 감옥에서 불멸의 영광을 입고 나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한다. 그리하여 산 의인들과 부활한 성도들은 함께 소리를 합하여 오랫동안 승리의 즐거운 함성을 외칠 것이다.(Mar 299.3)
기도하는 자들 앞에는 그들의 영혼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구원 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이 있었다. 이 목적은 끊임없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는데, 끝까지 견디는 자들에게는 불멸의 생명이 약속 되었다. 그들의 소망은 얼마나 진지하고 열렬하였던가! 심판과 내세가 보였다. 그들의 눈은 믿음으로 빛나는 보좌에 고착되었는데, 그 앞에는 흰옷을 입은 자들이 서 있었다. 이것이 그들을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LDE 164.4)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이 세상에 주셨을 때, 그분께서는 불멸의 재산, 곧 세상이 창조된 이래 사람들이 축적해 온 부(富:풍족한 재물])도 그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재산을 인류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간직되어 온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 서셨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의 연결을 통하여 받고 나타내고, 나누어 주어야 할 보화이다.(MH 37.1)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밑에서 참회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화평의 첫째 교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가 능히 이해하리요!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무한히 자애롭고 희생적이다. 우리가 인간의 영혼의 가치를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산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영원 무궁토록 구속을 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가 될 공부를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달란트의 가치는 우리의 구속의 대가로 지불된 속죄물의 크기로써만 평가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애정과 우리의 봉사를 하나님께 바치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얼마나 큰 배은망덕인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 너무 과한 것인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불멸의 영광, 즉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시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고 하신 영광을 앞에 두고 세상과 벗이 되고자 선택할 수 있겠는가? (MYP 115.2)
예수님께서 오신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 중 의로운 자들을 일으키시고 살아 있는 성도들을 영광스런 불멸의 몸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모든 하늘 아래의 왕국들을 손에 넣으신다. 이 왕국에는 끝이 없다. 그 때에 그리스도를 꾸준히 기다려온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이다.(LHU 379.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여기에 기록된 말씀은 육신적인 생명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만 소유하고 계신 영원 불멸의 생명을 의미한 것이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갖고 계셨다.
육체적인 생명은 인간 각자가 받는 어떤 것이다. 육체적인 생명은 생명의 시여자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취하여 가시는 것이므로 영원하거나 불멸하는 생명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지배할 힘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은 딴 데서 빌리신 것이 아니다. 아무도 그에게서 생명을 취하여 갈 수 없다. 주님께서는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10:1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 있던 생명은 근본적인 것이었고 딴 데서 빌린 것이 아니었으며 딴 기원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이러한 생명을 타고나지 못하였다.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인간은 수고의 값을 치루고 그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다만 그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 구세주로 믿을 때에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바로 이것이 세상을 위하여 개방되어 있는 생명의 샘이다.(1SM 296.2)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딤후1:10)셨다. 아무도 주님을 떠나서는 독립적인 영적 생명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고 말씀하셨으므로 죄인은 불멸의 생명을 갖지 못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뜻은 분명하다. 이 죽음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맞는 죽음보다도 더욱 완전한 죽음이다. 이 죽음은 곧 둘째 사망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점에서 사람들은 반박하기를 “그러면 인간이 짐승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인가?” 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품위를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전에서 인간을 고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돈을 축적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인간이 자신에게 위탁된 재물을 남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흩으실 수 있으시다. 인간이 총명한 지능을 가질 수 있으며 천부(天賦:하늘이 주신 달란트)의 재능을 풍부히 타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부갓네살’[왕] 처럼 타락하여 들짐승의 수준에 이르게 될 때에 이성(理性)의 은사를 그에게서 떠나게 하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인간이 마치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얻은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1SM 297.3)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2:15). 그대의 신앙 고백이 하늘처럼 높다 하더라도 이기적이며 세상을 사랑한다면 성화된 자와, 순결하며 거룩한 자들과 함께 천국에 참여할 수 없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5:21; 눅12:34). 그대의 보물이 하늘에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대는 하늘과 영생과 불멸의 면류관에 관해 말할 것이다. 그대가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그대는 땅의 것을 말하며 손해와 이익을 우려할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6~37). (2T 59.2)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 이 세 마디가 그리스도인의 경구[경고의 구호]다. 탄원하노니 자신을 깨우라. 영속되는 것을 구하라. 이 땅의 것들은 곧 지나간다. 그대는 두 세상을 서로 바꿀 준비가 되었는가? 그대는 영생을 위한 품성을 형성하고 있는가? 결국 망하게 된다면 그대는 무엇이 그대를 패망시켰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돈에 대한 사랑이다. 그대는 쓰디쓴 고뇌 속에서 외칠 것이다. “오, 재리의 유혹이여! 나는 영혼을 잃었도다. 나는 영혼을 돈과 바꾸었다. 나는 나의 몸과 영혼을 돈 버는 것과 바꾸었다. 나는 천국을 얻기 위해 나의 돈을 희생하는 것이 겁나서 천국을 희생시켰다.”
주인으로부터 이런 말씀이 들릴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던지라.”(마 25:30). 우리는 그대의 운명이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대가 그대의 재물을 천국으로 옮겨오기를, 그대의 애정을 옮겨와서 하나님과 불멸의 재물에 굳게 고정시키기를 바란다.(2T 241.2) 탐욕스런 사람에게는 부의 위험이 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관대하기가 더 어렵다. 그의 부를 감소시키시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는 그의 세속적인 소유물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 위하여 불멸의 보상에 대한 매력으로부터 돌아선다.
그는 모으고 쌓는다. 그가 계명들을 지켰더라면, 그의 세속적인 소유는 그렇게 많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자아를 위해 계획하고 투쟁하면서 어떻게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웃을 그의 몸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가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위해 나눠주고 궁핍한 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그의 재물의 일정 분을 가지고 그의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였더라면, 그는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며, 훨씬 더 큰 하늘의 보화를 소유했을 것이고, 그의 애정을 두게 될 세상의 재물을 훨씬 더 적게 소유했을 것이다.(4T 50.1)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 나아 온 젊은이에게 만일 그가 그분의 요구에 순종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보화를 갖게 될 것임을 보증하셨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우 슬퍼하였다. 그는 하늘을 원하였으나, 그의 재물을 유지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는 돈과 권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불멸의 생명을 포기하였다. 오, 얼마나 불쌍한 거래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한다. 친애하는 형제여, 그대도 동일한 일을 행하는 위험 가운데 있으나, 깨닫지 못한다. 내가 이 문제를 그대 앞에 명백히 제시하였으므로 과오를 범하지 말라. 그대는 그분의 사랑을 얼마나 빈약하게 대접하였던가!(4T 50.2)
이 가련한 부자는 세상의 보화를 크게 소유하였지만 진정한 재물에는 가난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이유로 정죄를 받고 있다. 구원의 물줄기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우리에게로 쏟아진다.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지지만, 그것들이 인류를 복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이용되지는 않는다. 주님은 우리의 은혜로운 시혜자(施惠者:모든 은혜를 베푸시는 창조주)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과 불멸을 드러내셨다. 분명히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축복은 오게 된다. 아, 모든 혀가 크신 시여자를 시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음성이 분명하고 즐거운 노래로, 예수님을 통하여 미래의 생애, 불멸의 생애가 우리에게 열려져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이 큰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초청이 주어져 있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하라. 하늘의 모든 보화는 우리의 손이 미칠 수 있는 곳에 있으며, 우리의 요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련한 부자가 영원한 부, 불멸의 생명의 무한한 선물,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서 돌아서서 멸할 수밖에 없는 지상의 보화로 만족했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자라고 불리어졌다고 해서 우리가 놀랄 수 있겠는가?(5T 260.1) 그리스도께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꼭 같이 접촉하셨고, 동일한 위치를 취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과 같이, 성품의 미(美:온유하고 아름다움)에서 부요해지고,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수 있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실 수 있으셨다. 그분의 인성은 가난한 자들의 인성과 접촉될 수 있었고, 올바른 습관과 고상한 성품을 완성하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으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불멸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으셨다. 하늘 조정의 사령관이신 그분은 인간과 하나가 되셨고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에 동참하는 분이 되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성품을 제시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부자들에게 기쁨이 되셨다. 왜냐하면 오류의 흑암 속에서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저들의 세상 재물을 희생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WM 25.3)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시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쾌락을 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물이나 영향력을 미칠 재능들이 위탁된 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세상 표준을 따르고 있는가! 풍부한 돈이나 집이나 땅의 풍성한 축복을 받은 남녀들이 일반적으로 저희 자녀들에게 게으름과 이기적인 방종의 생애를 훈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이 세상에서 무용지물이 되며 장래의 불멸의 생명을 위하여 적합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인간을 만드는 것은 돈이라고 믿도록 교육을 받고 있다.(SD 236.2)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어떤 지위나 유한한 지혜가 아니며 인간적인 자격과 재능도 아니다. 인간의 지능과 이성과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과 당신의 영원한 왕국의 건설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천국의 안목에서 볼 때 가치가 있는 것은 신령하고 도덕적인 성품이며 그러한 성품은 끝없는 영원한 세대를 위해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불멸의 영광스러운 몸을 이루게 할 것이다. 인간이 그처럼 추앙하는 세상의 왕위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그가 들어간 무덤에서 다시 밖으로 나오게 하지 못할 것이다.
대적 마귀의 목적을 섬긴 인간의 재물과 명예와 지혜는 앞으로 올 세상에서 저들에게 아무런 유업이나 명예나 책임 있는 지위를 가져다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후사가 되게 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는 자들만이 구세주의 형상을 지니고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다.(1SM 258.5)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딤후1:10) 셨다. 아무도 주님을 떠나서는 독립적인 영적 생명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4) 고 말씀하셨으므로 죄인은 불멸의 생명을 갖지 못하였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자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에 불성실할 것이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16:11). 우리가 하나님이 지상에서 빌려 주신 것을 관리할 때 성실하지 못함이 판명되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불멸의 유업을 결코 주지 않으실 것이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16:1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구속의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구속은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을 받을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증거받기 위한 시험 기간으로 이 지상에 산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을 우리에게 위탁하심으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것을 거리낌 없이 나누어 주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성실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불멸의 유업을 우리에게 맡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마6:24).“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1T 198.2)
부자청년은[부자관원] 재산이 많았으며, 그의 마음은 거기 있었다. 그는 재물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고아와 과부를 축복함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함으로 그의 보물을 하늘로 옮겨 가는 일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청년의 세상재물에 대한 욕심은 동료인간과 불멸의 기업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했다. 그의 선택은 이루어졌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안은 거절되었다. 이는 그가 조건들에 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보물을 사랑하는 힘이 승리하였고 하늘은 그 모든 매력적인 영광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보물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 그 청년은 몹시 슬퍼하였다. 이는 그가 두 세상을 다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세상 것을 위해 하늘 것을 버렸다.(2T 680.1)
그대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앞에서 그대의 마음을 낮추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6,37).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그대의 위험에 대해 눈을 감지 말라. 영혼의 고차원적인 이익에 대해서, 더욱 나은 생애의 축복스럽고, 영광스러운 전망에 대해서 눈먼 자가 되지 말라.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근심의 짐을 진이들은 눈먼 자요, 정신 이상이 된 자이다. 그들은 불멸의 썩지 아니할 보화로부터 이 세상으로 돌아선다. 이 세상의 빤짝이는 금속 조각이 그들의 감각을 사로잡아 영원한 사물을 평가할 수 없다.....
순종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충성을 다하는 이들의 이름은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질 것이다. 그분의 입으로부터 그들은 토해 냄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분의 입술에 올려 져서 아버지 앞에서 저들을 위하여 그분은 특별히 간청하실 것이다. 이기적이고 교만한 이들이 잊혀 질 때에 저들은 기억될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불멸할 것이다. 행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재물 우리의 재능, 우리의 애정을 감사함으로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 이 땅에서는 행복을, 이후로는 불멸의 영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3T 250.1)
하나님께서는 자선행위를 통해서 탐심을 정복할 수 있도록 길들을 열어 놓으셨다. 그대의 생애를 통해서 그대는 세상의 보화를 불멸의 재물보다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대는 “안녕 하늘이여, 안녕 불멸의 삶이여, 나는 이 세상을 선택하였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대는 현세적 이익과 큰 가치를 지닌 진주를 맞바꾸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권고하시는 동안에 그분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러하셨듯이 이미 그대를 흑암의 속에 그대의 발을 들여놓게 하신 동안에, 그대는 감히 돈을 사랑하는 성벽을 계발하겠는가?
그대는 허송세월한 인생의 맨 마지막 행위로서 지나치게 나아가 다른 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챙기려고 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형제에게 공의를 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변론할 수 있겠는가? 저 위의 기록에 그대를 거슬러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도[마지막 경계선의 한도]를 넘어, 또 다른 행위를 기록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의 보응(報應:인과응보-원인의결과-알파와 오메가)의 심판의 철창이 그대 위에 떨어져 경고도 없이 흑암의 물속으로 그대가 빠져들지는 않게 될 것인가? (3T 545.1)
나는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고자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훌륭한 소망을 갖고 있다. 그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간다. 그것은 고통당할 때 위로해 주며, 고민할 때 기쁨을 주며, 우리 주위에서 우울한 것을 쫓아내 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불멸과 영생에 이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세상의 재물은 우리를 유혹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소망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순간적인 세상의 재물보다 탁월한 불멸의 유업, 곧 영원하고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재물을 붙잡게 해 주기 때문이다....(Mar 3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