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나는 고향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느 날 시립미술관이 2주간 열리는 동시대 회화전을 마련했다. 추상화가는 한 명도 없이, 로사이, 마파이, 토메아, 그리고 형이상회화 시기를 벗어난 카라 같은 확고한 명성의 거장들이 그린 구상 작품들로 채워진, 현대 미술을 향한 조심스러운 접근이었다.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그 그림들 가운데 모란디가 한 점 있었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계시였고, 그야말로 현현 (epiphany)이었다.
나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꼬박 2주 동안 매일 오후 그 모란디를 다시 보러 갔다. 그 후로 내가 동시대 미술에 대해 품게 된 모든 호기심과 관심과 사랑은, 바로 그 말없는 매혹의 오후들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모란디와의 그 만남은 내게 그 이상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다름 아니라, 대문자 P로 쓰이는 '회화(Painting)' 곧 회화 그 자체의 발견이었다.
평생 같은 언어를, 더 나아가 같은 주제를 고수한 듯 보이는 모란디 같은 화가가, 어떻게 나를 동시대 미술로 이끈 입문의 안내자가 되었단 말인가? 모란디에게 무엇이 그토록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이란 말인가?
그 먼 옛날의 경험에 대해 지금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아마도 그 그림이 매일의 방문마다 내게 다르게 보였다는 사실이 안긴 놀라움과 매혹일 것이다. 빛의 미세한 변화나 시점의 작은 이동만으로 무언가가 달라지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는 어떤 미술 작품을 마주할 때든 우리가 받게 되는 인상이며, 우리는 때로 그것이 형상의 다양함, 원근법의 유희, 서로 다른 색채들의 폭, 주제의 복잡함, 그리고 동원된 기법들 덕분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모란디에게서 그 계시는, 새로움과 변주가 거의 단색에 가까운 현실 속에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곧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도록 깎아 낸 주제 위에서 전개되는, 한없이 미세한 뉘앙스의 음영 속에, 겉보기엔 아무런 서사도 없는 장면 속에, 그리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 말이다.
바로 그 정지된 시간이야말로, 유기적 자연의 부재가 다름 아닌 생명과 움직임이라는 효모를 통해 미동도 없는 사물들 사이에서 되살아나는 그토록 많은 작품에, 우리로 하여금 '정물(Still Life)'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한 것이다.
혁신과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변주다.
성탄(聖誕)이나 바다의 폭풍, 호수 위로 지는 노을이나 봄의 탄생이 아니라, 고물상에서 가져온 사물들의 무리를 그리면서, 어떻게 그토록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단 말인가? 세계를, 그리고 세계 안에 있는 것들을 -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해도 - 사랑해야 한다. 그것들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빛과 그림자를, 나아가 그것들을 숨막히게 뒤덮는 먼지마저도 모란디는 물질의 시인으로서 자신의 영성이 다다를 수 있는 정점에 이르렀다.
--- 풍월당 박종호포럼 자료 퍼옴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히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를 여행한다해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이고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 Giorgio Morandi (1890-1964)
"어긋난 존재들이 다시 모여서 살아야 되는 2차대전 후의 인간들의 관계 모색이 모란디 그림의 의의.
추상화가들이 찾고 싶었던 것은 유토피아였으나, 모란디의 '현실이 가장 추상적'이라는 말은 우리들의 관계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
--- 이진숙, ( [시대를 훔친 미술] 저자)
첫댓글
조르조 모란디 개인전
기간 : 2026.11.21(토) ~
2027.03.01(월)
장소 : ALT 더현대 서울현대백화점
다시 전시 소식이 있군요.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 작가!
오래전 조르지오 모란디의 정물화에 매료되었었지요.
다양한 정물화를 감상하면서
삶의 본질도 이러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단순하게
간결하게
소박하게...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5369
https://n.news.naver.com/article/024/0000090744?lfrom=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