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병산(北屛山 471.8m)은 북쪽으로 병풍을 친 듯하다고 불리는 이름이다.
이름을 지은 사람들은 남해바다를 오목하게 끼고 있는 망치리 사람들일 것.
말이 북쪽이지 엄밀히 따지면 망치리 서쪽에서 남북으로 뻗은 능선이다.
내려와서 올려다 보니 망치고개 좌측에 하나의 산이 더 있어 길다랗게 병풍을 형성하고 있다.
지형도를 확인하니 그 산도 북병산(451.2m)이다.
그러고보니 두 북병산이 남북으로 이어지며 망치마을의 병풍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원점회귀를 이루는 지점은 ‘망치몽돌해수욕장’이 있는 곳.
망치(望峙)라는 지명은 바다를 조망하는 산세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예전엔 망골, 망티라고도 불렀다.
망치고개는 망(望)을 보는 고개(峙)라는 말이다.
망치의 오른쪽 마을 망양(望洋)은 큰 바다(洋)를 바라본다(望)는 뜻이니 잦은 왜구의 출몰을 감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10여년 전 봉산재에서 국사봉과 북병산을 이어탄 뒤 망치마을로 하산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엔 남북으로 이어진 산줄기(약 47km)와, 동서로 이어진 산줄기(약 30km)가 있다.
이를 편의상 ‘거제남북지맥’과 ‘거제동서지맥’으로 나눠 부르는데, 북병산은 ‘거제남북지맥’에 있는 산이다.
이번엔 내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 정기총회를 겸하고 있어서 산행 후엔 남해바다 싱싱한 생선회로 뒷풀이가 예정되어 있다.
코스는 망치몽돌해수욕장(해변)~ 망치고개~ 북병산~ 다리골재~ 거제지맥갈림길~ 망양갈림길~ 망양마을로 원점회귀다.
산행궤적
약 8km에 3시간 30분쯤 걸렸다.
고도표.
<산길샘>
<국제신문>
거제도.
파일.
표지기.
망치몽돌해수욕장 안내판이 있는 곳에 버스를 댄다.
해수욕장 안내판 100여m 전방 우측 골목이 산길로 진입하는 곳.
돌아보는 우리 버스와 망치몽돌해수욕장 안내판.
곰바우노래연습장 우측 골목- 자주색 포장이 된 골목 -으로 들어가...
범상치 않은 바위가 불끈 솟아있는 산자락으로 접근한다.
바위를 당겨보며 지형도에서 확인하니 '해뜬바위'라고 한다.
망치마을회관과 보건진료실을 지나자...
얼마후에 포장도로는 끝이나고...
본격 산길로 접어든다. 도로가 생기기전에 우리네 민초들이 망치재를 넘나들던 고갯길이라서 그런가?산길은 옴팍하게 파여져 있다.
돌담은 우리네 민초들의 생존의 흔적인 듯. 전답이었던가, 집터였던가?
오목하게 꺼진 모습의 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넘나들었던 때문인 듯.
망치재 고갯마루에 올랐다.
커다란 돌비가 있어 확인을 하니 '황제의 길'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황제의길’ 유래는 망치재에서 망치 삼거리에 이르는 2km에 붙여진 명칭이다.1968년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이 길을 지나치다 풍광에 매료돼 극찬하면서 유래됐다.
북병산 안내판.
망치재는 거제지맥이 지나는 고개로서 반대편에는 학동고개 이정표.
'남파랑길 거제 22코스'도 지난다.
북병산은 좌측에서 도로턱을 넘어...
1.4km를 오르면 되고, 원점회귀를 이루는 망양은 4.4km.
망치(望峙) 표지기.
커다란 바위를 지나 서서히 오르노라니...
데크계단.
데크계단을 올라서자 전망이 트인다.
이어지는 전망대에선 '구조라해수욕장' 방향이 내내 시야에 들어온다.
당겨보니 구조라해수욕장과 작은 섬 '윤돌도'.
암봉에 올라서자...
다시금 열리는 조망. 멀리 고개를 든 노자산 라인.
구조라 해수욕장이 눈 아래다.
또다른 북병산(451.2)으로 뻗어나가는 지맥과 멀리 고개를 든 노자산.
다른 방향의 모습.
산정은 아직 더 올라야 해서...
데크계단과...
역광의 기암을 돌아도 보며...
밧줄구간도 넘는다.
그렇게 올라서면 또다시 도드라진 전망대.
서쪽으로 구천저수지.
더 높히 오르자 우리가 나아갈 능선이 뻗어나가고, 우리 버스가 머무는 망치마을과 구조라해수욕장이 보인다.
북병산 정상은 거대한 성벽 위에 솟은 봉우리.
앞서간 일행들도 산정에 머물고 있다. 북병산을 전세라도 낸 듯.
망치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은 깎아지른 단애로 마을 사람들은 '달뜬바위'로 부르고 있다.
오래전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마치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는 양 야간산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상의 북병산 안내판.
나아갈 능선.
구조라해수욕장과 우리가 내려갈 망치마을.
멀리 지형지물이 분명한 산을...
당겨보니 계룡산.
식사를 한 뒤 내려서자 얼마안가 삼각점을 만나고...
심원사갈림길을 만난다.
펑퍼짐한 능선길을 무심코 내려서다...
길을 놓치고 만다. 지형도를 확인하니 우측으로 거의 90도 꺾어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이리저리 길을 찾다 만난 갈림길에서 돌아보는 모습.
이제 능선이라고 할 수 없는 펑퍼짐한 생김새이지만 숱한 발자국으로 길은 빤질빤질.
이통안테나가 보이며 산길은 좌로 꺾어지지만...
계획된 등로는 직진으로...
이정표에 망양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게 오른 꼭대기는 378.6m봉.
편백 조림지를 지나...
거제지맥 갈림길 '3-8'안내판이 있다. 거제지맥에서 벗어나...
말뚝이 이정표 '23-20' 안내판을 지나면...
곧 이정표가 망양을 가리키는 갈림길을 만난다.
크게 보는 이정표.
갈림길엔 말뚝이 이정표 '23-21'도 있다.
제법 가파르게 내혀가는 등로에...
좌측으로 돌담이 있고, 또 쪽문도 달려있다. 사유지인가?
돌담은 한동안 이어지고...
무슨 용도일까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커다란 소나무가 배알하는 무덤에 닿는다. 무덤의 주인은 알 수 없으나 소나무가 자란 연륜만큼 오래 됐으리라.
이제 포장 임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 현대식 펜션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옆 이정표엔 북병산 가는 또다른 가까운 길을 안내하고 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소원맷돌바위'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그 지점에 있는 수도꼭지와 물확. 구시인가?
내려오면서 확인하니 펜션은 '카이룰라'.
민재 씨가 전화를 거니 풀장이 딸려있는 펜션으로서 어린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란다.
2차선 아스팔트에 내려와...
돌아보는 모습.
도로를 건너 초록색 주차장으로 난 골목을 내려선다.
금세 내려선 아스팔트도로. 우리 버스가 지나온 길이다.
내려온 골목은 '망양웃담가는길' 또는 '바다풍경보는길' 안내판이 가리킨다.
'망치몽돌해수욕장'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두 북병산을 바라본다. 중앙의 잘록한 고개는 망치재.
'망치몽돌해수욕장' 원점회귀를 이루었다.
인근 남해바다가 조망되는 횟집에서 벌어진 총회 뒷풀이.
우리 산악회의 정규회원은 씻고벗고 스무나믄 명.
요즘 습관처럼 흥얼거리는 곡조가 있다.
'세상이 왜 이래'가 아니고 '내가 왜 이래'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아 전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모두들 검란이라고들 한다.
평검사들마저 커밍아웃하여 실명으로 자기 의사를 밝힌다.
자기에게 가해질 인사권자의 칼날을 애써 감추면서 말이다.
오래전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스팔타카스의 난’이란 영화가 있었다.
기원전 71년 노예 반란을 주도한 로마의 검투사 스팔타카스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노예들은 로마 군대를 두 번이나 격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크라수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정예군에게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장면을 상기해 보자.
크라수스 장군은 스팔타카스 반란군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지금까지 노예였다. 앞으로도 노예가 될 것이다. 로마군대는 자비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벌은 면하게 해 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스팔타카스인지를 밝혀야 한다.”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 뒤 스팔타카스가 일어나 말한다.
“아이 엠 스팔타카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사나이가 벌떡 일어나 “아이 엠 스팔타카스”라고 외친다.
그 다음 사람이 똑같이 말한다.
순식간에 수천 명의 모든 반란군이 일어나 “아이 엠 스팔타카스!”라고 함성을 지른다.
이 장면은 깊은 신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그들은 일어섰을 때 그것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팔타카스에 대한 충성심,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에 죽음의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이들의 가슴 속에 가득 찬 것은 자유에 대한 비전이었다.
이처럼 조직원들이 공유 비전을 가지면 조직의 힘은 막강해진다.
그 힘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에너지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