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선생님은 생시에 땅과 집을 마련하여 문학관을 지어놓고 떠나셨다. 산자락 아래 아늑한 곳에 넓은 밭과 문학관, 그리고 곁에는 조상, 어머니, 아내와 함께 묻힌 묘소가 있다. 우리 일행은 먼저 묘소에 들러 오세영 회장님의 대표 헌화가 있고 잠시 묵념으로 님의 명복을 빌었다. 유난히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셨던 님은 묘소 입구에도 문학관 뜨락에도 모자상을 세워 놓았다. 〔어머니〕란 시를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문학관은 1층과 2층으로 유년시절부터 모아오신 사진, 글, 외국여행시 그려온 그림과 글, 유품 등이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다. 금년 5월부터 10월까지는 유럽기행에 관계되는 유품과 글을 전시해 두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로 유품을 바꿔서 전시한다는 것이다. 역시 조병화 선생님의 아들이 안내해 주었다. 관리하며 이곳에서 사는 것 같다. 사후에 문학관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힘드는 것으로 아는데 조병화 선생님은 치밀한 계획으로 미리미리 문학관을 세워놓고 떠나심에 더욱 존경스럽다. 나오는 입구에는 '조병화 생가지' 라는 문구를 붙여놓은 2층 집이 있다. 지금은 딴 사람이 집을 고쳐서 짓고 사는데 어린 시절 사시던 집이란다. 세월은 사람을 이 땅에서 데려간다. 꼭 어느 곳엔가 살아 계실 것 같은데 영영 다시는 뵙지 못하는 님들이다. 오늘 한국시협 봄 문학기행은 뜻깊은 행사다. 두 분의 문학관에서 시혼의 봄꽃을 보았고 어떻게 시인의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큰 도움을 얻었다. 작은 유품 하나도 떨구지 말아야겠다는 것과 훌륭한 시를 생산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도 후일에 문학관을 세울 수 있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