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진당 조정육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경 중에서-
어느 지점에서였을까.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남들이 가기에 엉겁결에 따라갔는데 가다보니 어디로 가는지 어리둥절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에 무조건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지만 그 사람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 길로 가니까 그냥 따라 가다 보면 어딘가가 나오겠죠. 틀림없이 이 길이 맞을 거예요. 안 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겠어요?
그러나 무리를 따라 걷는 동안 의구심이 계속 고개를 쳐들었다. 정말 맞을까. 이 길로 가면 내가 찾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복숭아꽃이 피어 있고 송사리가 헤엄치고 대문은 사람 허리만큼 낮은 그런 동네로 갈 수 있는 걸까. 거대한 대중의 물결을 믿어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끌려가듯 뒤를 따라갔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사흘 낮 사흘 밤을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갈수록 짙어지는 불안 때문에 가던 걸음을 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무리에서 빠져 나와 보니, 혼자라는 두려움과 고독함이 엄습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저녁 어스름이 되자 후회가 찾아들었다. 그 편한 길을 놔두고 내가 왜 이 험한 길을 선택했을까. 나의 길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몇 시간 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결코 이 고독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아, 나는 어떡해야 하나.
혼자 길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외롭고 쓸쓸할 때는 뒤로 돌아 뛰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내친 길이었다. 이젠 똑바로 앞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걸어 간 사람으로 도연명(陶淵明:365-427)과 이태백(李太白:701-762)을 들 수 있다.
『도화원기(桃畵源記)』를 써서 많은 후세 사람들을 환상 속으로 빠져 들게 했던 도연명은 오로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벼슬길에 나아간 사람이다. 그러나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보고 관직생활에 염증을 느껴 벼슬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생활고 때문에 다시 출사한다. 관직을 버리자니 가족들이 눈에 밟혔고, 가족 뜻을 따르자니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10여년이 지났다. 결국 그는 결행한다. 난세에 속세를 버리고 향리에 돌아가 자연의 섭리대로 살겠노라고. 그리고 가차 없이 고향집을 향해 떠났다.
평소 걸림 없이 살기를 원했던 장승업(張承業:1843-1897)이 도연명의 드라마틱한 귀향 장면을 놓칠 리 없다. 그는, 지긋지긋한 관직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막 나루에 도착한 도연명의 모습을 그려 <귀거래도(歸去來圖)>라는 제목을 붙여 환영해주었다. 소식을 들은 집안의 시동이 두 손을 맞잡고 서서 나룻배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한 도연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한 고목들도 가지를 흔들며 주인의 귀향을 반긴다. 얼마나 그리던 고향인가.
장승업, 귀거래도, 비단에 채색, 32.5×136.7cm, 간송미술관
작가가 어떤 그림을 그릴 때는 그 주제가 마음에 와 닿아야 붓을 들 수 있다. 고향도 없이 유년을 보냈던 장승업에게 고향의 의미는 각별했을 것이다. 평생을 떠돌이처럼 살았던 장승업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었던 도연명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도연명은 고향에 돌아가 국화를 기르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
이태백의 귀향역정도 도연명과 비슷하다. 다만,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이태백이 벼슬길에 나아간 것이 경제적 빈곤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시적인 감성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살벌한 정치판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났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술 한 동이를 마시면서 시 백 편을 썼다는 이태백.
이런 이태백의 탈속한 모습을 기막히게 표현한 작가가 바로 양해(梁楷)이다. 중국 남송의 궁정 화원이었던 그는 워낙 그림을 잘 그려 금대(金帶:금띠)를 하사받았지만 그걸 자랑하기는커녕 화원들이 근무하는 방 벽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몸은 비록 궁정화원으로 매여 있지만 세속적인 부귀영화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의 반영이었다.
양해, 이백행음도, 종이에 수묵, 80.8×30.4cm, 도쿄국립박물관
술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양해가 이태백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가 그린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는 이태백이 걸으면서 시를 읊조리고 있는 모습이다. 군더더기없이 간략한 선 몇 개로 대상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가는 감필화(減筆畵)의 매력이 충분히 살아 있는 작품이다. 술에 취해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강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이태백. 그의 풍류와 낭만이, 평소 선비, 선승들과 교류하기를 즐겼던 풍류도인 양해의 붓끝에서 매우 실감나게 되살아난다.
장승업과 양해의 분신 같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장승업이 도연명이고 양해가 이태백 같다. 작가가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붓질을 할 때 작가와 대상은 곧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연명 못지 않게 드라마틱한 생애를 산 장승업. 이태백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던 양해. 그들은 남들이 간다고 해서 무턱대고 남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홀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서 간 것이다. ‘바람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용감하게 걸어갔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살 수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이전 생활을 아무런 미련 없이 정리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그건 뒷사람들이 평가하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어찌 그들의 선택이 쉬웠겠는가. 짐작컨데 그들 또한 여러 날을 불면으로 지새우며 들썩거리는 미래를 다독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기를 원하지만 누구나 그 길을 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무모하리만치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도연명과 이태백은, 마음은 있으나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면서 수없이 많은 시와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확신을 갖고 앞장서서 걷는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멈추고 싶어했다는 것을. 다만 지금까지 너무 세게 질주를 해 오던 탓에 쉽게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혼자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전폭적인 자유가 죽음처럼 두려웠노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 새로운 길 앞에 선 그대여. 용기를 낼 지어다. 선택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을. 무엇이 두려워 뒤돌아보는가. 겁내지 말고 자신을 믿고, 성큼 성큼 힘차게 걸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008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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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새로운 길 앞에 선 그대여. 용기를 낼 지어다. 선택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을. 무엇이 두려워 뒤돌아보는가. 겁내지 말고 자신을 믿고, 성큼 성큼 힘차게 걸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명심,다짐,주문을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