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세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탄압과 투쟁의 공통적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들 내부의 이질성이나 이후 합류한 신진멤버들과의 괴리감은 종종 드러났다. [특별기획 : 굿바이 한겨레](2)-‘민주화’의 도래 그리고 시작된 변모 에서 지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 정계 복귀를 둘러싸고 드러나 입장 차가 대표적이었고 그 밖에 언론인들의 정치권 진출 등, 중요한 쟁점을 둘러싼 한겨레 내부의 갈등은 종종 외부로 표출되기도 했다.
박정희 군사 정권 이래로 지속적인 탄압과 고난을 당했던 친 DJ 인사들이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대거 정치권으로, 방송사로, 언론 단체들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한겨레 인력 풀이 주요한 지위를 점하며 새로운 ‘이너서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회, 방송사를 비롯한 언론 유관 단체로 전방위적으로 진출한 한겨레 출신 인사들에 의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한겨레의 끈끈한 연결고리는 새로운 ‘권언유착’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청와대로 간 언론인들, 막차로 합류한 한겨레 출신들
지난 16일 한겨레신문은 17주년을 맞아 제2창간을 선언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언론 출신 인사들이 정계나 권부의 핵심으로 진출한 사례는 적지 않다. 회유와 압박을 통한 징발 개념에 가까웠던 군사정부 시절의 사례도 적지 않다. 더욱이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변절’이라는 굴레에서 일정정도 자유로워진 탓인지 언론인 출신 인사들의 러쉬는 급격해졌다. 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김영삼 대세론을 펼쳤던 오인환 한국일보 주필, 주돈식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이후 각각 공보처 장관과 정무수석을 지냈고 급기야 ‘언론계 상도동 장학생’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3당합당이라는 굴레도 벗어던진 ‘국민의 정부’ 청와대의 면면은 더 화려하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 박준영 공보수석(현 전남지사), 역시 중앙일보 출신 고도원 연설담당비서관, 문화일보 출신 서형래 정무1비서관, 경향신문 출신 조은희 문화관광 비서관, 경향신문 청와대 출입기자에서 바로 청와대 정무기획 비서관이 된 김현섭, 한겨레 신문 출신 유종필 국정홍보처 분석국장등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초기에는 이해성 MBC 경제부장이 홍보수석으로 KBS 송경희 아나운서가 대변인으로 발탁됐고 한겨레 기자 출신인 박종문이 국정홍보 비서관에 역시 한겨레 기자 출신인 문학진이 정무1비서관에 임명됐다. 청와대에 진출한 언론계 인사 전체 가운데 한겨레 출신의 비율이 산술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과 창간 십년이 되기도 전부터 한겨레 출신 인사들의 진출이 시작됐다는 점, 상대적으로 젊은 기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겨레를 발판으로 국회로, 국회로
문민정부 당시 ‘김현철 저격수’로 이름을 높였고 한겨레 정치부에서 국회, 새정치국민회의를 출입하고 한겨레 21 정당팀장을 맡고 있던 김성호 기자는 새정치 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는 와중에 합류해 공천을 받았다. 2000년 총선에서 당선된 김성호 전의원의 경우 한겨레에서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한겨레에서 정치부차장,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등의 요직을 역임하다가 아태평화재단 김대중 이사장 비서실장으로 말을 갈아탄후 이제는 3선 의원이 된 정동채 문화부 장관은 이제는 어엿한 중견 정치인이다.
사회부, 정치부 기자를 지내며 평민당, 민자당, 국회를 출입하던 문학진 기자는 한겨레에 사표를 내자마자 새정치 국민회의 하남·광주 지구당 위원장 직을 맡았다. 낙선을 거듭하던 문학진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 정무 1비서관을 잠시 지내며 경력을 관리하다 결국 2004년 총선에서 금뱃지를 달았다.
한겨레 창간 멤버로 기자직을 수행했고 언노련 조사통계국장, 기자협회 편집국장을 지냈던 유종필 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의 이들에 비하면 어쩌면 불행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직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 고건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을 지내며 김대중 정권에서 승승장구 하던 유종필은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본부 대변인까지 지냈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합류하지 않았고 16대 총선에서도 낙선해 지금은 미니 정당 새천년 민주당의 대변인을 지내고 있다. 유종필의 지역구가 이해찬 총리의 지역구이기도 한 관악을 인 점은 특기할 만 하다.
김태홍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겨레 출신 정치권 인사의 맏형 격이다. 한겨레 초대 이사를 지낸 이후 판매국장, 광고 및 주식·기금 모금 담당 이사를 지낸 김태홍은 내홍 와중에 한겨레를 떠나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초대 민선 구청장에 선출됐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광주 광역시 정무 부시장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김태홍은 재선에 성공했다.
한겨레 경제부 기자를 지냈던 강세준이 얼마 전의 430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영천을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탈락한 사실을 가쉽으로 취급한다면 한겨레 출신 정치인은 평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에 집중됐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일했던 언론사는 물론 언론계 전체에 대한 불신 증폭”
이 와중에 한겨레 내부에서도 이러한 경향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으나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거나 언론인의 양식에 맡겨야 한다는 공허한 지적 외에 이렇다 할 결론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러한 경향이 96년 당시 김종철 논설위원의 기명 칼럼 ‘민주대연합의 꿈인가’의 연장 선상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2004년 총선을 약 50여일 앞둔 2월 26일자 한겨레 사설 ‘정계진출과 언론인의 윤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동안 쌓은 (언론인과 방송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전문성을 살려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한다면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처신은 매우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일했던 언론사는 물론 언론계 전체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는 까닭에서다”
이어 한겨레 사설은 KBS에서 인물현대사를 진행하다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문성근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문성근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한국방송만 바보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한국방송의 윤리강령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뒤 6개월 이내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돼 있다. 이 윤리강령이 한국방송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인물현대사’가 시사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역사교양물 성격이어서 문씨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윤리강령의 정신’을 위배한 것만은 분명하다. 문씨로서는 방송사를 떠나면 그만이겠지만, 한국방송이 입게 된 깊은 상처와 후유증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현역 정치부장에서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민병두 문화일보 정치부장을 적시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고 비판하기도 한 한겨레의 이 사설은 “언론인으로서의 소명감과 윤리의식을 다시금 새롭게 되새길 때다”로 마무리 됐다.
한겨레 출신, 특히 정치부 기자들의 정치권 러쉬가 ‘민주대연합’에 복무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정치권 진출은 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절차적 민주화’가 일정 정도 진행되어 리스크 부담이 줄어들면서 집중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한겨레는 문성근의 열린우리당 입당을 두고 “문씨로서는 방송사를 떠나면 그만이겠지만, 한국방송이 입게 된 깊은 상처와 후유증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 개탄했다. 같은 질문 앞에 한겨레의 답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다. KBS, MBC, 연합뉴스까지...한겨레 전성시대의 개막
한겨레가 유지해온 언론지형상의 개혁성과 선도성 탓인지,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과 일치한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김대중, 노무현 양 정권의 곳곳에는 한겨레 출신들이 포진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로 진출한 인사들은 일정 정도 테크노크라트의 성격이 있고 주로 정치부 출신 중견 기자들이 국회로 향한 것에 반해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겨레 출신 고위 인사들은 정부가 실질적으로 임명권을 지니고 있는 방송사, 언론관련 단체의 ‘수장’자리를 대거 꿰차고 앉았다. 마치 상도동 장학생들에게 김영삼 정권이 정부 요직을 보상처럼 제공했던 것 처럼.
먼저 양대 공영방송인 MBC와 KBS 그리고 정부가 임면권을 가진 연합뉴스 사장 선임과정을 둘러싼 논란에서 한겨레는 유명세를 타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약속을 파기하며 정계 복귀해 여론의 질타를 받던 95년 김대중과 새정치국민회의에 힘을 싣는 기명 논설을 썼던 김종철, 김근은 연합뉴스 사장 자리를 바톤 터치했다. 먼저 김종철이 연합뉴스 사장직을 맡고 그 뒤는 김근이 이었다. 한겨레를 떠나 방송위원을 거쳐 김종철의 뒤를 이어 연합뉴스 사장을 지낸 김근의 이력도 주목할 만하다.
김종철의 뒤를 이은 것만 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해직언론인 출신의 개혁적 인사’를 자처한 김근 사장은 한겨레 출신 박종문을 연합뉴스 경영기획실 기획위원으로 낙하산 임명했다. 언론노조, 연합노조등에서는 정실인사라는 이유를 들어 당연히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당시 연합뉴스 경영진이 ‘박종문 위원은 사장과 진퇴를 함께 할 것이며 기사 제작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약속을 한 이후에야 파문은 가라 앉았다. 문제의 박종문은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에는 청와대로 입성했다.
이후 김근은 유임을 시도했으나 반발에 부딪혔고 지상파 티비와 라디오 방송 광고를 독점 공급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직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겨레 편집국장, 사장을 차례로 지낸 김중배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MBC 사장 자리를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KBS 사장 자리에 자신의 언론 특보 출신인 서동구를 앉히려다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출신의 논설위원 정연주를 그 자리에 앉혔다.
대체적으로 이들은 ‘개혁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각 방송사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존경 받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김중배 전 MBC 사장은 사장직을 맡으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 토론’ ‘미디어 비평’등 개혁 성향의 프로그램을 전폭 지원했으나 3년 임기 가운데 2년 정도를 남기고 중도하차했다.
김중배 사장의 사임 배경으로 ‘정부요직의 영전’, ‘방송개혁 독려를 위한 희생타’,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한 항의’등 안팎으로 억측이 분분했고 ‘개혁 세력의 뒷 힘 부족’이라는 비난성 지적도 줄을 이었다. 결국 김중배의 후임으로는 외부인사가 배제된 사원추천을 거쳐 자사 출신 이긍희가 사장 자리에 앉았다. 방송 유관 단체로 진출해서는 ‘방송 5적’이라는 별칭도 얻어
78년 당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의 연루자이자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였던 서동구 씨가 KBS 사장후보로 거론되자 각계의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성명서을 통해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언론정책 고문` 출신 서모 씨가 내정되었다는 내정설에 대해 KBS를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며 논공행상 차원에서 입맛에 맞는 인사를 정권 멋대로 임명해왔던 구태를 그대로 반복하려는 노 대통령과 그 측근에 대해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서동구 씨의 사장 선임을 반대했고 그 와중에 정연주 한겨레 논설위원은 별 반발 없이 오히려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KBS 사장에 임명됐다.
정연주 KBS사장은 취임 이후 문제의 ‘서동구’에게 단단히 보은했다. 2003년 KBS 사장에 선임됐다 11일만에 낙마하고 2004년에는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에 도전했다 표결에서 떨어진 서동구는 드디어 2005년에 한국위성방송 Sky Life 사장자리에 올랐다. KBS는 스카이라이프의 주식 10.7%를 소유 27,4%를 소유하고 있는 KT에 이어 두 번째 주요 주주이고 정연주 사장은 스카이라이프대표이사추천위원회의 주요 멤버다. 당시 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 추천위원회는 서동구를 만장일치로 사장직에 추천했다.
방송사 사장 자리는 아니지만 언론 유관단체에 진출한 한겨레 인사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을 거쳐 운영기획실장등을 지내다 90년대 후반에는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언련 이사장을 차례로 지낸 성유보는 현재 차관급으로 분류되는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그러데 언론개혁 시민연대, 민언련, 디지털 방송방식 재검토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등 언론개혁 분야의 간판이었던 성유보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최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현업단체로 구성된 ‘위성DMB 재송신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방송 5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방송위원회(방송위)가 지난 달 19일 SKT의 자회사인 TU미디어에게 지상파 재송신을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려 공공의 재산인 지상파방송을 통신재벌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그 가운데 매체정책담당 상임위원인 성유보 위원이 중심적 역할 을 했기 때문이다.
역시 한겨레에서 정치부장과 편집위원장을 거쳐 부사장을 지낸 성한표는 SBS 문화재단 이사를 지내다 올해 들어서는 SBS 사외이사직과 보도자문단장직을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겨레와 SBS는 컨소시움을 구성해 지상파 DMB사업에 뛰어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연임이 확실시 되는 김금수 노사정 위원회 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는 한겨레 출신 인사다. 노동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금수 위원장은 지난 88년부터 99년까지 한겨레 논설위원을 지냈다. 김대중 정권 출범이후인 97년부터 2003년 까지는 중노위 조정담당 공익위원을 지낸 김금수 위원장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KBS이사직을 맡았고 그 이후인 2003년 부터는 민주노총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노사정 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팔은 역시 안으로 굽는 것인가, 자사 출신 비판한 공영언론 노조 맹공한 한겨레
3월 26일자 한겨레 그림판
한겨레 신문
지난 3월 이승경 한겨레 기자는 ‘한국방송 '638억 적자' 경영책임 논란’에 대해 조중동 보수언론의 정연주 사장과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라는 제기가 억지주장이라며 반론을 펼치며 두둔하고 나섰다. 조중동 보수언론들이 제기하는 정연주 책임론은 말도 안되는 흑색선전이라는 주장이었다.
지난 2003년 한겨레 출신 김근 연합뉴스 사장의 연임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더 극적이다. 당시 최성민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은 기명 칼럼을 통해 김근 사장의 연임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최성민 부장은 2003년 3월 13일자 신문에 ‘공영 언론사 노조의 길’이라는 기명 칼럼을 실었다.
“이제 공영 언론사 노조는 상대의 개혁을 부르짖는 일과 함께 자신도 돌아볼 대목이 없는지 점검해 보기를 권한” 이 칼럼은 “방법의 정당성 확보와 실질적 언론개혁을 위한 정확한 목표 설정”을 우선 순위로 제시했다. 그런데 “1990년 한국방송의 ‘방송 민주화 투쟁’에 안팎의 지원이 절실히 요청될 때 현장 격려에 나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연합뉴스 사장으로 가 있다”고 이어지는 이 칼럼은 김근 사장을 한껏 치켜세우며 연임에 반대하는 노조를 공격한 이후 칼날을 MBC 노조에 들이댄다. “<문화방송> 노조는 어떤가. 최근 사장 선임과정에서 ‘개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한겨레 정연주 논설주간에게 노조위원장이 전화를 걸어 오지 말라고 했다”
“군사 쿠데타의 하수인과, 그 반대편에서 목잘리고 길거리에 내팽개쳐졌던 ‘내공’과 신념을 안고 온 ‘사람의 질’을 최소한 구분은 하면서 제도 개선을 외쳐야 한다”며 공영언론사 노조의 제도개선 요구를 질타한 최성민 부장은 “사실 오늘날 공영 언론의 언론자유는 선진국에 견주어 손색 없는 수준이다. 이는 국민감시 아래 ‘사람의 다름’이 가져온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사 출신 인사를 노골적으로 편든 한겨레의 이 칼럼에 대해 언론노조는 “한겨례신문 최성민 부장에게 경고한다 ”는 성명을 제출해 졍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최성민 부장의 칼럼 이전 몇 번의 보도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문제 삼는 것은 최근 몇 번에 걸쳐 보도한 글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 '노동조합 헐뜯기'라는 의도성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밝힌 언론노조는 최성민 부장에 대해 “한마디로 주제넘는 참견이고 의식의 빈약과 편협함”이라 지적했다.
이어 “정연주 논설주간에 대해서는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전화하기 이전에 정 논설주간 스스로가 먼저 고사의 의사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부터 확인해 보기 바란다”고 사실관계를 지적한 언론노조는 “혹시 최성민 부장은 박권상, 김근, 정연주라는 한 개인 혹은 최근 KBS사장으로 거론되는 서동구라는 개인을 두둔하고 비호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노동조합에 악의를 드러낸 것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결국 논란 끝에 연임에 실패한 김근 사장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직에 도전했고 당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김근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최근 예로는 KBS노조에 대한 사측의 불법 도청 사건 이후 한겨레 그림판에 나온 만평이 최성민 당시 여론매체부장의 칼럼에 비근할 정도로 ‘편들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개혁의 완수인가 출세의 발판인가 아니면 정권의 장식품인가
한겨레 출신 최고위직 인사중 하나인 김금수 노사정위 위원장
노사정위 홈페이지
김대중정권 출범 이후 한겨레 출신 인사들이 각계로 진출할 때마다 그들은 ‘개혁인사’ ‘해직 언론인 출신’등의 수식어와 함께 ‘개혁 진영’ 때로는 노동자 민중들의 기대까지도 업고 기득권 척결과 개혁완수를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한겨레 출신 인사들의 정관계 진출이 십여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지위를 점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 우리가 매기는 성적표는 그리 후하지 않다.
김중배 전 MBC 사장 정도가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고 ‘개혁 작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어찌된 탓인지 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고 자진사퇴하고 다시 야인의 길을 걸었다. 그 밖에는 방송 5적, 노조 회의 도청, 낙하산 인사 등 온갖 구설수에 오르기 일쑤 였고 오히려 수구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개혁 인사도 높은 자리 앉혀놓았더니 별 수 없더라’는 역공의 빌미를 준 경우가 많았다.
또한 지난 3월 23일 KBS에서는 사측 노무팀 직원이 노동조합 중앙위원의 회의를 불법 도청한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노동조합은 즉각 정연주 사장의 퇴임을 주장하며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지만 오히려 정연주 사장이 아예 퇴근을 하지 않고 사장실에서 지내 출근과 관련한 마찰이 벌어지도 했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언론’들은 사건 발생 초기 KBS 사측의 해명서 전문을 게재하고 심지어 한나라당과 KBS노조 연관성등을 제기하며 정연주 사장을 두둔하고 나선다. 결국 이 사건은 사장과 노조 위원장의 합의로 마무리됐고 오히려 KBS노조가 ‘반개혁적’이라는 십자포화를 맞았다.
노동 운동의 대부를 자임하다 노사정 위원장 자리에 앉은 사람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표명이 한겨레 창간호의 기념특집 좌담 참석자 3명 가운데 한 명인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난타를 당할 때도 입을 꾹 다물었다. 과연 노동 운동의 입장을 어떻게 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전임 한겨레 논설위원은 노사정 위원장직을 얼마전부터 연임하고 있다.
한겨레 출신의 현직 국무위원이자 3선 중진의원인 정동채 문화부 장관은 저작권법 개악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해 네티즌들의 일반적 행위 마저도 불법으로 규정시키면서 오히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는 각 언론사 기사들을 무단 전재하는 저작권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다른 그 어떤 집단 보다 한겨레 인력 풀이 권부와 언론 유관 단체의 핵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과연 공언대로 ‘개혁’을 완수하고 있는지 아니면 한겨레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아 커나가고 있는지 아니면 정권의 개혁성을 상징하는 장식품에 불과한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양 정권이 펼쳐나가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행보에 그들의 책임이 적지는 않고 이는 분명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