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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 삽비라의 헌금 문제
사도행전 5:1~1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초창기 은혜 시대 속에서서 발생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위선적인 헌금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선명하게 몇 가지 영적 교훈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사건은 지상 교회의 불완전성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초대 교회가 성령의 강림 직후에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과 120명의 성도들 외에 한번에 3천 명, 또 다시 5천 명의 성도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여러 기적과 표적이 뒤따르므로 성도들이 많이 믿게 되고 경외심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물건들을 통용하며 자기 재산을 제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없었으니 심지어 가난한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자기 논밭을 판 값을 사도들 앞에 내놓아 나눠주는 일조차 종종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 바나바라는 사람이 특별히 유명했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훈훈하고 성령 충만한 분위기 속에서 교회가 평안 중에 든든히 서가고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더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바로 이런 와중에도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와 같은 거짓 신자가 교회 안에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고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고 영적 은혜가 교회에 충만하고 온 성도가 사랑과 긍휼이 넘치며 온 성도가 하나 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긴 가짜 성도가 교회에 일어나 교회를 해치려 꾀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상의 교회들은 아무리 성령 충만하고 아무리 완전한 것 같을지라도 시험이 찾아오고 사탄이 틈을 타고 가짜 신자가 교묘하게 일어나게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오직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상 교회밖에 없습니다. 주님 재림 때에는 마귀와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악인들이 다 불못에 떨어져 있으니 시험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 때까지는 이 땅의 교회들, 모든 지상 교회는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점을 늘 기억합시다.
오늘날 세상의 교회들 가운데는 교회 안에서 분쟁이 있고 분열이 있고 교역자나 성도들의 실수와 허물과 죄가 발견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경우가 심각한 경우도 있고 사소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상 교회에는 지금도 사탄이 틈을 타서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분쟁과 분열을 가져오는 악한 영의 집요한 공격으로 교회가 만신창이가 된 교회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럴 경우를 소문으로 듣고 보게 되거든 우리는 그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그러한 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쓴 뿌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도 어느 정도의 부졲함이 있고 불완전함이 있음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인데, 그런 것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그러한 부족함을 탓하거나 비방하기보다는 교회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교회를 돕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둘째로,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거하시는 처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회의사당이나 위원회 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인상을 험하게 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상대방을 헐뜯고 욕설도 내뱉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국회의원으로서 품격이 없이 상대방 말을 잘라내고 끼어들고 육두문자도 날리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국회 안에서 국회의원들이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또 국민들의 대표들인데 그 인격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늘상 그러한 것이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교회라면 사안이 다릅니다. 교회 안에서 욕설을 퍼붓고 비방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무엇을 내던지며 일방적으로 문을 꽝 하고 나가고 싸움을 한다면 그 자리는 교회가 아니요 그 사람들은 성도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거룩합니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이시니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다투거나 소란을 피운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드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불시에 죽음을 당한 이유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속인 대가인 것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죽으라고 저줗하며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령의 시키시는 바대로 발설한 것뿐입니다. 그 두 사람 부부가 성령 하나님을 속였고 주의 영을 시험하였기에 사도가 성령의 발설케 하는 말을 하였을 뿐인데, 사도가 말을 하는 즉시 두 사람이 차례로 즉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시며 하나님의 영께서 다스리는 신성한 곳임을 확실히 보여준 사건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바로 교회를 주관하고 계시며 교회 자체를 바로 성령이 지키시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은 성령에 대하여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음도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비록 눈에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교회 안에 거하시며 그 자리에 함께하시며 친히 통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거짓말로 속일 수 있고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절대로 속일 수 없음을 우리가 잘 알고서 성령이 항상 임재하시는 교회 가운데에서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인 고린도전서 3:16,17 말씀을 우리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전도자인 솔로몬도 가르치기를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도서 5:1)
라고 한 바 있습니다. 교회가 곧 하나님의 영이 현재 거하시며 친히 다스리고 있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삼가 거룩함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하나님 백성은 진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사도에 의하여 책망을 듣고 성령의 주권적 심판으로 즉시로 죽게 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밭을 팔아 전체를 바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 바치지 않고 얼마만 바친 것 때문에 그들이 심판받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모든 계명은 개인의 소유권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소유인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나 가족에게 주신 개인적인 소유권을 부정하고 다 내놓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속임수로 남의 소유를 슬쩍 가져가면 그것을 하나님은 심각한 죄로 규정하고 심판하십니다. 신명기 27:17 말씀에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의 밭과의 경계를 알리는 지계표, 경계표를 밤에 슬쩍 옮겨서 내 논밭을 넓히고 상대방 논밭을 침범하여 가져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은 개인의 소유를 존중해주시기에 억지로 남의 개인 재산을 헌납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코 교회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사도들이 성도들에게 구제를 위하여 다들 헌금을 해야 한다면서 가진 재산 다 팔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난한 형제 자매들의 아픔을 더 이상 그냥 볼 수 없었던 순수한 주님의 사랑에 이끌려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자기의 논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논밭을 팔아 땅 값 일부라고 하면서 내놓았다고 한다면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도로부터 칭찬받고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땅을 판 돈 일부를 숨겨놓고서 사도들에게 밭값 중 일부를 가져와서 이것이 자기의 땅을 판 돈 전부라고 속여서 말함으로써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사도들 앞에 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서 똑같이 입을 맞추어 거짓말을 고의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그 두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렇게 고의적인 거짓말을 할지라도 사도와 성도들을 완전히 속일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누가 자기들의 은밀한 생각과 행동을 알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 당연히 백 퍼선트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시퍼렇게 살아 계시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다 꿰뚫어보시고 그 행실을 다 달아보고 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믿고 덤벼들었지만 전지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들춰내시고 그 두 사람을 즉결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며 하나님 백성 역시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본받아 거짓을 미워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5 말씀에서 이르기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골로새서 3:9,1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거짓말을 했을지 몰라도 이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된 마당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진실하고 일체의 거짓을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도 그 이름 자체가 ‘진리의 성령’입니다. 즉 성령께서는 그 성품 자체가 진실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8:44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일러주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 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비록 그들이 세례를 받았을지 몰라도 예배 참석도 많이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고의적으로 천연덕스럽게 두려움없이 사도들 앞에서 거짓말을 해댄 것은 그들이 거듭나지 않은 자요 성령 없는 자요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은 마귀의 자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8,9 말씀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착해야 합니다. 의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참되어야 합니다. 거짓과 술수는 진심으로 싫어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참된 증거입니다. 한평생 어떤 경우에도 진실함을 지켜가는 주의 백성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넷째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받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그처럼 땅 판 돈 일부는 숨겨놓고 일부만 사도 앞에 내놓으면서 땅 값 전부라고 말하여 사도를 속이고자 한 마음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앞에 기록된 바나바의 순수한 구제 헌금과 그에 따라 사도들과 백성들이 존경과 사랑이 바나바에게 부어진 것을 보고 부러웠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들도 교회에서 바나바처럼 존경받고 사랑받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에 오르기를 갈망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마음에 자기들의 생활을 위하여 돈 얼마를 숨겨놓고 또한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인정받고자 교회에 와서 사도들에게 땅 값 전부라고 속이면서 바친 것입니다. 한마디로 명예욕 때문에,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사람들로부터 상을 받고 싶어서, 교회 직분에 대하여 욕심이 나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칭찬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아름다운 직분을 사모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속임수를 써서 재물을 뇌물처럼 드리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교회 직분을 사려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행위인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의 선행을 감추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없이 섬기는 자입니다. 주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힘써 수고하고서도 이르기를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했을 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를 충성된 종으로 여기고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람들 앞에서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상을 받는 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주님께서 친히 일러주신 교훈인 마태복음 6장에서 보면, 세 가지 신앙의 아름다운 덕행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기도, 구제, 금식 이 세 가지 덕행에는 상이 있는데, 그 세 가지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면 그 상을 이미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1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1~4)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선행 곧 구제나 기도나 금식이나 봉사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야만 합니다. 만약 사람만을 바라보면서 선행을 행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상이 주어질 것이므로, 하늘의 상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상의 상과 칭찬이 하늘에서 우리 주님의 상과 칭찬을 보여주는 예표로 주어질 수 있기에 지상의 상과 칭찬이 전부 지상의 상으로 끝나고 아버지 앞에서 장차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 보면 로마서 14:18 말씀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진실히 섬기며 선한 일을 힘써 행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상을 주시지만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성령 충만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본문 말씀의 아나니아 삽비라는 사람만 의식하고 사람에게서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고 사람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려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무서운 책망과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갑시다. 우리의 모든 마음의 생각과 우리의 언행과 삶이 우리의 양심과 하나님의 계명들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에게 과연 인정받는 일인가, 칭찬받는 일인가 여부를 먼저 살피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사람 앞에서 높임받으려고 구하지 말고 도리어 겸손함으로 섬기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면서 지적하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누가복음 16:15 말씀에,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앞에서 높임을 받는 것은 그 만큼 더 책임이 중하게 져야 하는 것이기에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선생 되기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겠으며, 세월이 갈수록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5,6 말씀에 이르기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행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며 칭찬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줄로 압시다. 혹시 사람이 몰라줘도 그것 때문에 섭섭해하지 말고 생색내지 맙시다. 주님은 다 알아주시고 기억하시니, 이 땅에서 상과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아쉬워 맙시다. 반드시 하늘에서 주님께서 영원하고 아름다운 상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과 교회와 맡겨진 사명의 자리에서 말없이 진실하게 끝까지 충성하여 주님께서 반드시 높이시고 채워주시고 아름다운 상으로, 기쁨으로 갚아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은 성령 충만한 시대, 은혜 시대에 일어난 충격적인 일입니다. 사도 베드로에게는 충만한 성령의 은사, 영 분별의 은사가 있었기에 아나니아 삽비라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가 나타나서 거룩한 두려움으로 교회가 도리어 더욱 순결하게 지켜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초대 교회 때에도 교회를 흔들어보며 시험하였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게 교회를 틈타려고 시도하며 많은 교회들 가운데 악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어서 때로 교회들이 흔들리고 분쟁과 시험 속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초대 교회 때처럼 성령께서 그 주권적인 능력으로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즉결 심판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망하고 악한 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담대하게 악을 행합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서 그렇게 기독교 역사 속에 하나의 본보기로 제시된 사건이지, 매번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그런 일을 행하지 아니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모든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계시며 지금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비록 선한 주의 백성들에게 상을 주심이 더디고 악인들에게 내리는 징벌도 심히 더딘 것 같지만, 분명한 것은 분명 지금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자기의 교회를 지키고 자기의 친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악인들의 악에 대하여 반드시 때가 되면 보응하신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연자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악인들을 완전히 갈아 가루로 만든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악의 보응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악인들의 행한 일에 대하여 반드시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항상 기억합시다. 그 앞에 진실합시다. 그 앞에 겸손합시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심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모든 언행과 태도를 주 앞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자 힘씁시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섭섭해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아시면 족하다는 마음으로 교회와 가정과 삶의 사명의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합시다. 성령께서 다 보시고 아시기에 반드시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이 땅에서도 갚아주시고 저 하늘에서 반드시 상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