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8일(일요일) 중국 연변 위성방송 [라디오 책방]에 시인들의 詩 소개
달과 단풍 / 박남권
하루는 붉은 입술 질펀하게 엮어진 길 소월 목월 달구어진 취기 물에 떠 다리를 건너 *둘이 두리 둥글게 엮어진 풍만한 인연 날마다 차오르는 오르가즘 지독하게 뻗쳐오르는 보름사리 오랜 사색은 필요하지 않아 처음이면 붉어지는 어색할수록 자극을 하는 달의 눈가림 달에 선홍의 무늬 살아오고 살아가는 시간의 의미 빛으로 선명하다 어제 물든 나뭇잎 영상 소월이 그리다 태백에게 준 달의 그림 달이 녹아 단풍이 된다. 흥건히 취한 달의 비가 된다.
박남권 약력: 월간 현대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감사, 한국문학예술 발행. 작품집 황진이. 섬을 끌고 가는 마차. 외 다수
선인장에 대한 명상 /이소연
아무도 모르리 갈증으로 허기진 사막의 마른 입술을 몸 속 푸른 잎사귀들이 절망을 견디기 위해 가시로 살아가는 까닭을 무수한 바늘을 꽂고 살아도 가시는 날이 선 희망의 언어라 상처가 꽃잎이 된다는 걸 안다 그대 마음 중심엔 무슨 꽃이 피었는가 눈물이 오아시스가 되기까지 온갖 바람이 푸른 시절을 지나갔으리라 꽃잎은 별빛에 닿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 별을 우러르다 잠들지 못했을까? 쓰디쓴 고통도 깊어져야만 향기를 내는지 가시 곁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에 꽃은 핀다 그곳이 비록 불타는 태양이 머물고 모래바람이 심술을 부리는 가시방석 위 일지라도
이소연 약력: 아호 瑞河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문학예술 주간, 시집 <불은 타오를 때만 꽃이 된다> <건반 위의 바다>외. 가곡 < 겨울 안부> < 한민족 서사시> <아리수 연가> 외 다수.
하늘 문빗장 / 이운룡(李雲龍)
바위나 산, 그 깊고 푸른 가슴을 열고 들어가서 한세상 깨끗이 숨쉬고 싶다. 그러나 바위나 산,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 저 단단한 고집불통이여 해머로 패고 정으로 찍어도 미동이 없다. 하늘이 문빗장을 질러놓은 것일까 아니, 묵언 수행 동안거에 든 것일까 천만 년 가슴을 조여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대와 나 이 세상 숨은 사랑을 손바닥에 모아 따뜻이 어루만지고 문지르면 비로소 가슴 문빗장 삐드득 열어 제치고 풀풀 향내를 풀어 주리니 목숨은 물을 짚고 바다를 헤엄칠 수 있지만 사랑은 우주를 다 검어 쥘 수 있으리. 사랑이여 손과 손의 부드러운 무간無間이여 또한 향내 나는 바위나 산 끝내는 하늘도 부끄럽지 않은 그대와 나의 무례함이여.
이운룡 약력: 1938년 전북 출생. <현대문학>지 시 추천으로 문단 데뷔. <월간문학> 문학평론 당선. 전라북도 문화상(1978), 표현문학상(1988) 수상. 시집 『가을의 어휘』『밀물』『이 가슴 북이 되어』가 있으며 논저 『지상에서의 마지막 고독』『한국 현대시 사상론』『존재인식과 역사의식의 시』『한국 현대시인론』종합문예지 <표현> 편집인, 원광대학교 국학연구소 연구원.
펌프 물을 추억하다 /손 순 자(孫順子)
아주 오래 전, 나 어렸을 적에 흙먼지 뒤집어 쓴 아버지 자전거 끌고 지쳐 돌아오시던 여름 아득한 땅 속 저 밑바닥에 있어 보이지 않더니 어머니가 떠 주시는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붓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작두질을 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한달음에 솟구치던 생명력! 아이들 힘겨운 작두질로 겨우 받아 낸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을 축이시고 고된 노동의 짜디짠 땀방울 씻어낼 때 덩달아 양동이에 넘쳐나던 아이들 웃음소리로 고된 하루를 살아내고, 깊은 수면으로 곤한 무게 내려놓으면 너무 오래 써서 닳아빠진 펌프도 비로소 몸을 쉬던 그 때 자꾸 목말라 마시고 허기져 마시다 보면 어느 새 마음까지도 의젓해지던 가난한 유년의 그 펌프 물로 일곱 남매 키 세우고 살찌우며 물 한 방울도 아껴야 잘 산다 하시던 어머니, 그 말씀이 진리였던 것.
孫順子 약력: 아호 白松. 1999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시 당선 문단 데뷔, 월간 『순수문학』 수필 당선. 시집 『소요산 戀歌』, 수필집 『행복한 女子』. 한국문인협회, 한국영상문인협회, 열린시문학회, 한국 편지가족 서울?경인지회 회원, 소요문학회 회장 역임. 시화전 시 1회(동두천 자유수호 평화박물관), 동두천 시민홍보 리포터. 한국공간시인협회 본상 및 순수문학 우수상
구름의 함정 /채 정(蔡貞)
저 하늘 숲을 걷고 싶어도 구름이 제 몸을 찢어서 지었다 허무는 함정 때문에 발 내딛지 못하여 겁먹은 채 내려다보면 저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람들이 히스타민 성性 불안에 중독되어 휘청거리지 어머니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놓아주지 않는 세상, 너와 나 세월을 붙들고 통사정해도 못들은 척 물엿처럼 찐득거리지 걸음마다 붉게 물든 어제 혹은 오늘이란 내용 모르는 소포꾸러미일 뿐 몸뚱이 하나 무게를 내려놓고 보면 나 아닌 나 너무나 가볍지.
蔡貞 약력: 2000년 『자유문학』 겨울호 신인상 시 당선, 200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 데뷔. 제20회 열린시문학상 금탑상 수상.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열린시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