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29yHkLQT_D0
내가 하고즈븐 이야기는 차양막이 아니고, 오늘 이 차양막을 완공한 문제의 인간, ‘마기완’ 씨다. 전국 여기저기에 진행되는 토목공사 현장을 관리하는 회사 대표다. 주중에는 조선팔도 전국을 주유하다 주말쯤이면 '여우 같고 토끼 같은(관용 표현)' 처자식이 사는 이 동네에 얼굴을 비친다. 그래서 나랑도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됐다.
50대 초반? 전북 전주 출신. 떡대가 장난이 아니다. 상체 측면 두께가 내 정면 가슴 넓이 만 하다. 두 팔 부피가 내 허벅지보다 굵다. 내가 붙인 별호가 ‘광개토대왕’이다. 얼굴은 늦가을 잡초 속에서 주인도 모르게 영글대로 영근 누런둥이 왕호박만하며 현장공사 햇살에 검게 그을려 조폭 영화 큰 형님 포스 원판이다. 말씀은 다변이다. 유머와 해학이 드글드글한다. 그러나 씰 데 없는 형용사, 부사가 없다. 간단 명료. 나를 ‘형님, 형님’ 부르며 살갑게 대하지만 나는 늘 긴장한다. 어느 순간 내가 잘못 그의 심기를 건드려 외진 창고 뒤로 불려가 정사(正史)에 밝혀지지 않는 비사(秘史)를 당할까 해서이다.
오늘도 전남 함평 현장의 일을 마치고 부리나케 내 집 차양막 공사를 위해 달려 왔단다. 하루 몇 백 km 달리는 건 일상다반사란다. 저녁 6시에 읍내에서 약속된, 자기가 회장을 맡은 골프 클럽 모임에 참석할 시간을 대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차양막을 편다, 줄자로 잰다, 금을 긋는다, 자귀로 베란다 난간을 파낸다, 베란다 난간 양쪽으로 기둥을 세운다, 전동드릴로 나사못을 깊이 박는다, 집중해서 하나, 둘, 셋, 넷, 차양막을 수평으로 팽팽하게 당기기 위해 네 모퉁이 밧줄을 의자 위를 옮겨 다니며 끌어맨다, 베란다가 낡아서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고 ‘ㄱ’자형 금속을 덧대어 박는다, 섰다, 앉았다, 당겼다, 놓았다, 묶었다, 풀었다, 필요한 도구나 장비를 가지러 오르락내리락...... 무슨 이런 슈퍼맨이? 평소 인삼 녹용을 얼마나 장복하길래?
공사 끝. 물 한 잔 마시고 가라니 잠깐 앉은 자리에서도 연신 유쾌/상쾌/통쾌한 익살과 골계가 작렬한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사물을 다루는 순발력과 치밀함과 무궁한 그의 생명력에 내가 기함하여 제 2별호,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달인’이라 칭하니 자기는 역시 타고나기를 ‘문(文)'이 아니고 '무(武)' 쪽 이래나?
그를 보내고 나서, 생뚱맞게도 김남조 시인의 시 〈바람〉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바람 부네
바람 가는 데 세상 끝까지
바람 따라 나도 갈래
(중략)
바람이 좋아
바람끼리 훠이 훠이 가는 게 좋아
헤어져도 먼저 가 기다리는 게
제일 좋아
(중략)
바람 불어
바람 따라 나도 갈래
바람 가는 데 멀리멀리 가서
바람의 색시나 될래”
바람 같은 사내, 마기완,
어느 한 여인이 멀리멀리까지 따라가서 색시가 되고픈 매력 덩어리 사내,
다음 세상 내가 여자로 태어나면 한 사흘 같이 살아보고 싶은 남자, 마기완!
(하하하, 천하의 웅지와 도량을 지니신 마 대표님이시니 제 얕은 재롱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