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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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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탄금☆]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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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백우선 시집 / 시와표현시인선 033 / 시와표현(2016.10.0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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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백우선
우륵은 중원에서 가야로 흐르는 마음을 가야금 가락에 실어 대명산 바람결에 띄워 보내곤 했다.
그 뒤로도 간도에서 남쪽으로, 사할린에서 코리아로, 중앙아시아에서 사할린을 거쳐 코리아로, 멕시코와 일본에서 코리아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흐르는 바람결에서는 가야금 가락이 끊임없이 울리고 울려 나왔다.
고드미* 모과
백우선
고드미마을 단재 선생 묘소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높고 곧게 서 있었다.
한겨울 주말, 떨어져 있는 모과는
꽁꽁 얼고 서리가 하얗게 서려서도 향기로웠다.
아직도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모과 한 알은
한낮에도 별로 빛나고 있었다.
* 고드미 : 곧음이. 곧은 선비의 은거와 관련됨.
타지마할
백우선
한 남자의 한 여자에게 눈먼 사랑이다.
백성에게 눈멀어야 할 왕은
백성도 대리석도 보석도 그녀에게 눈멀게 했다.
눈먼 아름다움에 온 세계는 눈이 먼다.
백범성좌
백우선
경교장 임시정부 주석실 유리창에는
하수인이 쏜 흉탄 중 두 발의 파열흔이
지금은 대낮에도 성좌로 빛난다
번개우레좌로 번쩍이며 쩌렁댄다
아직도 남북으로 분쟁 중이냐며
아직도 그 하수인들의 세상이냐며
아직도 아름다운 나라와 멀어지느냐며
새 청룡도
백우선
고분을 빠져나와
뱀의 몸을 얻은
벽화의 청룡은
교외 포장도로에서
달리는 차바퀴를 기다려
순간 압착
생체 그림이 된다.
사람들의 질주를
떠받치느라
한 점 남김없이
먼지로 흩날린다
윤동주 시인
백우선
윤동주문학관 재1전시장 자료실에서
제2전시장 후쿠오카 형무소 마당으로
철문을 통래 들어온 윤동주 시인이
일본 조팝나무를 바라보다가
강아지풀, 괭이밥을 어루만진다.
이가에도 애기코스모스꽃이 언뜻 핀다.
사방의 콘크리트 높은 벽을 벗어날
밧줄은 없는가?
흔적만 남은 벽사다리 꼭대기 창엔
잠긴 자물통이 여전하다.
알지도 못한 약물 주사를 또 맞은 뒤
제3전시장 콘크리트 육면체 옥방의
철문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서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숨을 거둔다,
역시 흔적뿐인 벽사다리 끝 창으로
시인의 영혼은 훨훨 날아올라
보든 안 보든, 보이든 안 보이든
날마다 빛나는 별이 되어
우리 땅, 우리 목숨들을 지켜본다.
운주사 돌부처
백우선
단칸집의 등을 댄 둘을 빼고는
다 집도 없다.
일어나 세상을 일으키려는
노부부는 여태껏 누운 채 마음뿐이고
어찌해 보자는 이도 없다.
가족도 누구도 없이 홀로 살거나
가족이든 남이든 함께 살아도
눈, 귀, 코, 입, 팔, 다리의
한둘이나 전부가 없고
아예 머리나 몸이 없다.
그래도 원형이든 사각형이든
항아리형이든 행복을 비는
자기 탑, 가족 탑, 모두의 탑일까?
여기저기 제각각으로
탑은 쌓아 놓고 산다.
닫힌 문
백우선
사람이 죽은 뒤 거의
백골로 발견되는 일이 이어졌다.
60대 여자는 5년,
50과 60대 남자 둘은 5개월 만이었다.
셋 다 홀로 살던 세입자였다.
옷을 껴입고서
이불 속에 모로 누워 웅크리고
부엌 바닥에 엎드리고
주검째 철거된 주택 폐기물 처리장에
해체돼 버려진 채였다.
사람의 장례에 벌레들뿐이었고
부고는 전혀 없었거나
늦게나마
문틈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
쓰레기로 흩어진 자기 몸이 전부였다.
명사
백우선
언제 어떻게
울 것인가를 아는
명사산 모래는
어디에나 있다.
온 나라 모래가
또다시 운다.
방파제, 길, 아파트, 빌딩의
콘크리트 모래까지 운다.
작아도 너무 커도
못 듣는 소리,
모래는 바람으로
우레의 우레로도 운다.
송전탑
백우선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은
온갖 목숨들의 사리탑이다.
버텨 서고 늘어선 방방곡곡
자자손손의 사리탑이다.
총총한 목숨들을 태우다니
검은 줄로 흐르면서 전기는 울고
핵폭탄보다 어쨌든 더 끈질긴
핵발전 불의의 살의를
밤새 뜬눈의 마른 눈물로
거리거리 집집에서 기진해 운다.
입술
백우선
귤이 한 상자 왔으나
귤도 아니고 감자도 아니고
입술들이었다.
나무만이 아니고 땅만이 아니고
사람들만도 아닌
이들 모두를 귤껍질로 감싼
제주도 말씀들의 입술이었다.
손가락 끝에서도 입술,
입속에서도 입술,
입 속에서도 못 다한 말의
입술이었다.
입술과 입술의 만남,
입술 하나로도
그 깊은 어둠에 나는
그렁그렁 만수위였다.
압사라*
백우선
눈에 뜨이기 전애ㅔ도
전생의 나에게도 춤을 추었단다.
내가 그의 신이라면
그도 나의 신,
나도 그를 위해 춤을 추었다.
만유는 다 신이 아니랴?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이제는 나도 춤을 춘다.
춤만 춤이랴?
숨쉬고 바라보고 서고 걷고……
서로가 서로에게
언제나 어떻게나 춤을 춘다.
*힌두교와 불교 신화의 무희
물낌표
백우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관련
행사 프로그램에는 ‘?!-물낌표’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기억을 얽은 생각이
생몰년 사이의 ‘~’(물결표)인 우리 삶은
‘?+!’라는 것이었다.(~ = ?+!)
산다는 것은 묻고 감탄하는 것
감탄을 위해 묻고 또 묻는 것,
이 물낌표들의 연속이 바로 삶이라는 것이었다.
더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위하여
더 바른 물음표와 느낌표를 위하여
이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의 밥상을 차려서는
눈, 귀, 코, 입, 머리 ― 온몸으로
배부르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려 보자는 것이
출렁출렁 반짝이는 삶이라는 생각이었다.
영시
백우선
설악산 영시암永矢庵에 앉아서도 난다.
영원히 나는 화살 아닌 것은 없다.
과녁이라는 과녁은 없고
스스로가 과녁이며
낢이 과녁이다.
나무로도 날고 소로도 날고 흙으로도 날고 ……
태어나고 태어나며 난다.
한밤중에
백우선
기다리던 손이 먼저 나갔다.
가려움의 씨를 몰래 뿌리고
깊은 맨살을 진즉부터 기다렸다.
저쪽 등의 가려움이 내 손에서 싹터
신경을 타고 올라 뇌를 두드리고
다시 혀와 입술을 움직여
“자기, 등 좀 긁어 줘요”
말의 머리가 나오자마자
그 한참 전부터 나가고 있던
두 손이 팔뚝까지 달려 나갔다.
등을 어루만지듯 긁으며
가려움의 밭을 넓혀 가다가
몸을 감으며 살늪에 빠져들었다.
괜히
백우선
그냥 편히 살게 할 걸
괜히 시를 쓰게 했다며
세상을 앓게 했다며
여든이 다 되신 은사님*은
술김에 울먹이셨다.
아니 선생님 덕분에 행복합니다라고 했지만
나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너무 잘 쓰려고도 하지 말고
많이 발표하려고도 하지 말고
천 명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명이 천 번 읽는 시를 써.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되
오래 남을 시를 써.
그냥 편히 살게 할 걸 괜히…
댁으로 모시는 차에 오르면서도
그 말씀을 덧붙이셨다.
* 조재훈 교수, 시인
홍도 일출
백우선
일어서고도 싶은 바다
일어서서 절대 부동의
억겁 황도를 일관코자 하는
바위섬의 태양은 솟는다
빛 낳는 빛의
푸른 숨은 출렁인다
파도
백우선
일어서다 주저앉고 일어서다 주저앉고 일어서다 주저앉고 ……
평생을 절룩이면서
물과 뭍의 식구들을 안고 업고 기른다.
바닷가에서
백우선
밀려오고 밀려오는 것
마냥 다가오는 저걸 뭐라면 좋을 것인가
부서지면서도 달려오고 달려오는 것
끝없이 좇아오는 저걸 뭐라면 좋을 것인가
뻘을 핥고 바위를 타넘어 매달리려는 것
저렇듯 기어이 따르려는 저걸 뭐라면 좋을 것인가
하늘까지 끌고서 휘감아 오는 혼신의 몸부림
저처럼 한사코 목을 매는 저걸 뭐라면 과연 좋을 것인가
땅
백우선
땅뙈기라곤 없는 내게
땅이 날아온다.
실컷 들이마시는 황사―.
가슴속에나마
땅의 씨를 쌓는다.
모기
- 문紋
백우선
글 문 자가 이름에 들어있는 벌레는
너밖에 없으렷다
글벌레라
글도 벽자僻字로만 읊나니
앵앵嚶嚶 ― 서로 응하여 노래하고 격려하며 닦으라
앵앵口䁝 口䁝 ―방울을 달랑거리라, 경의검敬義劍과 함께 허리에 찬 남명 선생의 성성자惺惺子 방울 소리 들으며 늘 깨어 있으라
앵앵앵앵―개가 그러하듯 어둠을 짖으라
글을 얻어도 가고 넣어도 주는
이런 글벌레는 너밖에 없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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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
모두 길 위의 삶
티끌까지도 생과 생을 이어
함께 화락하기를
서로서로
자신이며 임이기를
바라건댄 이 말들이
침묵과 노래의 혈육이기를
2016년 가을
백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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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선 詩集 [※탄금※]
[ 해설 ] -
화락한 삶, 에둘러 말하는 침묵의 노래
이은봉(시인 광주대문창과 교수)
백우선의 이번 시집 『탄금』은 시로 쓴「자서」가 특히 주목이 된다. 시인 자신의 세계관 및 가치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이「자서」이다. 이「자서」에서 그가 일단 먼저 강조하는 것은 모든 삶이 ‘길 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모두 길 위의 삶/티끌까지도 생과 생을 이어” 등의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음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티끌까지도 생과 생을 이어/함께 화락하기를”바라는 마음이다. 이때의 ‘화락’은 ‘즐거운 화합’.‘화합하는 즐거움’등의 말로 풀어 쓸 수도 있다. 이 말에는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어지는 구절의 “서로서로//자신이며 임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 구절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즐거운 평화’ 혹은 ‘평화의 즐거움’을 깊이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평화’는 근대 이후 자유, 평등, 사랑과 함께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보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에 그가 깊이 경도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시인의 시정신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디이고 무엇인가를 잘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길 위의 삶
티끌까지도 생과 생을 이어
함께 화락하기를
서로서로
자신이며 임이기를
바라건댄 이 말들이
침묵과 노래의 혈육이기를
-「자서」전문
이「자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말들이//침묵과 노래의 혈육”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다. 이와 더불어 유의해야 할 것은 이 구절의 “말들이” 이 시집의 시들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로서는 이 시집의 시들이 “침묵과 노래의 혈육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침묵과 노래의 혈육이”라는 구절이 뜻하는 바는 물론 크게 어렵지 않다. 이에는 우선 그 자신의 시들이 다변의 떠버리가 아니라 응축과 압축의 침묵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시들이 이야기나 웅변이기보다는 노래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유되어 있다. 그의 시들이 보여주는 말들의 경우 실제로는 “침묵과 노래의 혈육”으로 자리하고 있어 두로 주목이 된다.
이렇듯 이 시집의 그의 시들은 네 가지의 가치, 곧 “길 위의 삶” “함께 화락” “서로서로 자신이며 임” “침묵과 노래의 혈육”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의 시들이 오롯이 이들 가치만을 평면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가치로부터 어긋나는 삶이나 현실에 대해서는 짐짓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기도 하는 것이 그의 시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그의 칼날에는 깊이 찔려도 별로 아프지 않을 듯싶다. 그의 시가 만드는 비판이 크게 모질거나 사납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그의 시에 담겨 있는 비판이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이지는 않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시의 자아가 따듯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시가 벼르는 칼날은 풍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보다는 아이러니의 모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는 현실의 모순에 대해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말하는 방식, 일종의 내숭떨기이다. 내숭떨기는 겉의 말뜻과 속의 말뜻이 다르다는 점에서 에둘러 말하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은 에둘러 말하기, 내숭떨기, 곧 아이러니가 맛깔나게 구사되어 있는 그의 시의 예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고분을 빠져나와
뱀의 몸을 얻은
벽화의 청룡은
교외 포장도로에서
달리는 차바퀴를 기다려
순간 압착
생체 그림이 된다.
사람들의 질주를
떠받치느라
한 점 남김없이
먼지로 흩날린다
-「새 청룡도」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뱀의 몸을 얻은/벽화의 청룡”이 “달리는 차바퀴”에 “순간 압착”되었다가 “먼지로 흩날”려버리는 과정을 에둘러 그리고 있다. 시치미를 뚝 떼며, 곧 내숭을 떨며 아무렇지도 않게 뱀의 로드킬을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겉으로 드러난 풍경만으로 보면 “달리는 차바퀴”에 “순간 압착”되었다가 “먼지로 흩날”리는 뱀의 운명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포장도로 위에서” 그럴싸하게 채색된 “생체 그림”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으로 감추어진 풍경은 “포장도로 위에서” 로드킬을 당한 뱀이 “순간 압착”되었다가 “먼지로 흩날”려버리는 끔찍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이처럼 처참한 내용을 내숭을 떨며, 곧 시치미를 뚝 떼며 말하는 데 능란하다. 세련되게 아이러니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그의 이 시인 것이다.
물론 이 시는 지금 이곳의 생태현실이 안고 있는 모순을 드러내는 데 초점이 있다. 그로서는 산업화의 과정에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 포장도로가 지금 이곳의 생명을 어떻게 파괴시키고 있는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생태적 인식을 드러내는 그의 시는 이밖에도 많거니와, 이들 시를 통해 그가 정작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지금 이곳의 이런저런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다.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이러한 비판적 발언은 먼저 전통 혹은 역사와 연대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전통 혹은 역사에 대한 자각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의 또 하나의 자아라는 것이다. 전통 혹은 역사에 대한 자각은 시간에 대한 자각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 그는 우선 과거의 유적遺蹟 혹은 유물遺物과 관련시켜 형상화한다.
이러한 점에서 주목이 되는 것은 역사의 지역 혹은 인물과 함께 하며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시들이다.「고드미 모과」「탄금」「타지 마할」「타 프론 템플」등의 시가 그 예이다. 이들 시에는 기본적으로 지역과 인간, 유적과 유물 등이 이루는 인문 지리적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다음의 시는 “고드미 마을 단재 선생 묘소에”“높고 곧게 서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예이다.
고드마을 단재 선생 묘소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높고 곧게 서 있었다
한 겨울 주말 떨어져 있는 모과는
꽁꽁 얼고 서리가 하얗게 서려서도 향기로 있다
아직도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모과 한 알은
한 낮에도 별로 빛나고 있었다
※고드미:곧음이, 곧은 선비의 은거와 관련됨
-「고드미 모과」전문
시인이 보기에 “고드미마을”은 이름 자체가 단재 선생의 삶을 연상시키는 “곧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그럴까. “고드미마을 단재 선생 묘소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 조차도 아주 “높고 곧게 서 있”다. 그에게 “한겨울 주말, 떨어져 있는 모과는/꽁꽁 얼고 서리가 하얗게 서려서도 향기”롭다. “한낮에도 별로 빛나고 있”는 것이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모과 한 알”이다.
이 “모과 한 알”의 이미지를 통해 그가 정작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르고 곧은’ 가치, 곧 ‘정직’의 가치이다. ‘정직’의 가치를 모과 한 알에 비유해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그이다. 그가 생각하는 이러한 가치를 에둘러 말하는 것은「여의주」「도생」「진경」등의 시에서도 익히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따뜻한 남쪽에는
승경마다 당이고 정이고 헌이었다
서서 받치고 누워 받들고
서로 붙잡고 껴안고서 버티고 있는
주춧돌, 기둥, 마루판, 서까래, 대들보, 기왓장……
어느 하나에도
역시 양반은 없었다
연못의 돌과 나무
흘러들어 푸르러지는 물에도
양반은 없었다
양반은 풍치로만 남았으나
양반 아닌 이들은
몇 백 년을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진경」전문
이 시는 “어느 따뜻한 남쪽”이 대상이 되고 있다. 시인은 “승경마다 당이고 정이고 헌”인이 “어느 따뜻한 남쪽”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진경」이라는 이 시의 제목도 그것을 에둘러 비판하는 데 한 몫 한다.
당과 정과 헌은 양반들의 거처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이 당과 정과 헌의 “주춧돌, 기둥, 마루판, 서까래, 대들보, 기왓장”의 어디에도 정작 “양반은 없”다. 양반이 없기는 “연못의 돌과 나무/흘러들어 푸르러지는 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양반은 풍치로만 남”아 있고, “양반 아닌 이들은/몇백년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이 그가 받아들이는 “어느 따뜻한 남쪽”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그가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가 이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지는 않는다. 옳고 바르지 않다고 에둘러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시적 대상에 대한 그의 이러한 태도는 역사적인 인물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정조의 술잔」「백범 성좌」「선종」「윤동주시인」등의 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가 생각하는 시의 어법이 목청을 높여 비판적 자아나 저항적 자아를 들이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은 다음의 시에서도 확인이 된다.
경교장 임시정부 주석실 유리창에는
하수인이 쏜 흉탄 중 두 발의 파열흔이
지금은 대낮에도 성좌로 빛난다
번개우레좌로 번쩍이며 쩌렁댄다
아직도 남북으로 분쟁 중이냐며
아직도 그 하수인들의 세상이냐며
아직도 아름다운 나라와 멀어지느냐며
-「백범 성좌」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대한민국이 “아직도 남북으로 분쟁 중”인 것을 “아직도 그 하수인들의 세상”인 것을, “아직도 아름다운 나라와 멀어지”고 있는 것을 자못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별로 직접적이지 않다. “경교장 임시정부 주석실 유리창에”“하수인이 쏜 흉탄 중 두 발의 파열흔이 ” “대낮에도 성좌로 빛”나고 있다고, “번개우레좌로 번쩍이며 쩌렁”대고 있다고 그저 우회적으로 드러내고만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절제된 표현방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시의 영역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꼭 할 말은 하고 마는 것이 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정시의 우위를 잘 지켜내면서도 나날의 삶에 대한 저 자신의 의견만큼은 반드시 피력하는 것이 그라는 것이다. 자신의 시가 떠버리의 다변이기보다는 현자의 침묵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그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처럼 그의 시는 나날의 현실과 바르고 옳게 소통하려는 자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시는 지금 이 곳에서 전개되는 사건들, 현실의 구체적인 국면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전개되고 있는 이런저런 사건에 대해서도 시의 눈을 크게 뜨고 찾아가는 것이 그라는 것이다. 그렇다. 세월호 사건, 밀양 송전탑 사건, 용산참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물론 이들 모순의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시의 눈에는 비판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이때의 그의 시의 눈이 맹목적으로 순응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따라서 그가 받아들이는 나날의 현실이 늘 부족하고 미완인 것은 당연하다. 그의 시에 수용되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깊이 소외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삶에 나날의 삶이 이루는 수직적 편차, 곧 계급이 존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자신의 시 「닫힌 문」을 통해 보여주는 나날의 삶이 제기하는 소외의 문제도 실제로는 이로부터 제기된다.
사람이 죽은 뒤 거의
백골로 발견되는 일이 이어졌다
60대 여자는 5년
50과 60대 남자 둘은 5개월 만이었다
셋 다 홀로 살던 세입자였다
옷을 껴입고서
이불 속에 모로 누워 웅크리고
부엌 바닥에 엎드리고
주검째 철거된 주택 폐기물 처리장에
해체돼 버려진 채였다
사람의 장례에 벌레들뿐이었고
부고는 전혀 없었거나
늦게나마
문틈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
쓰레기로 흩어진 자기 몸이 전부였다
-「닫힌 문」전문
이 시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 “백골로 발견되는 일이” 그려져 있다. 그에 따르면 “60대 여자는 5년/50과 60대 남자 둘은 5개월 만”에 발견되는데, “셋 다 홀로 살던 세입자”이다. 이렇게까지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검의 실제는 매우 끔찍하다. 이 끔찍한 주검의 현장을 아주 차갑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이 시에서 주검은 “철저된 주택 폐기물 처리장에” “옷을 껴입”은 채 “이불 속에 모로 누워 웅크리고/부엌 바닥에 엎드”려 있다. 이들 주검을 시인은 심지어 “사람의 장례에 벌레들뿐이었고/부고는 전혀 없었거나/늦게나마/문틈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쓰레기로 흩어진 자기 몸이 전부”라고 묘사한다. 소리 내어 읽기조차 끔찍한 현실을 그가 이처럼 차분하게 그려내는 까닭은 단순하다. 그로서는 사람살이의 나날이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 시에는 너그럽고 넉넉한 인정과 사랑의 세계에 대한 그의 꿈도 짐짓 감추어져 있다. 온전한 생명이 온전하게 보장되는 삶에 대한 그의 의지는 “집과 일터로 이어지나 곧잘 끊어”지는 면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국수」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이들 세계에 대한 그의 꿈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이승을 버린 295명의 생명을 추모하고 있는 시「잠긴꽃」「철쭉」「명사」등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이들 가운데 「철쭉」에는 세월호 참사의 비밀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된다는 주장과 관련해 “창자가 끊기는” 아픔을 갖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들의 “불행을 우롱하는 자들의 폭약을 내장한 얼굴”이 광화문 광장에 모인 “하얀 꽃, 빨간 꽃”들로 표현되어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물론 시인은 “창자가 끊기는” 아픔을 갖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예의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울 것인가를 아는//명사산 모래”(「명사」)로 비유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의 시에서 이때의 “명사산 모래”가 세월호의 참사를 겪은 유가족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는 “명사산 모래”가 “온 나라 모래”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의 “온 나라 모래”는 세월호의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슬픔과 함께하는 이 땅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언제 어떻게
울 것인가를 아는
명사산 모래는
어디에나 있다
온 나라 모래가
또 다시 운다
방파제, 길, 아파트, 빌딩의
콘크리트 모래까지 운다
작아도 너무 커도
못 듣는 소리
모래는 바람으로
우레의 우레로도 운다
-「명사」전문
이 시에 드러나 있는 “온 나라 모래”가 우는 곳은 광화문광장만이 아니다. 이들 모래는 “방파제, 길, 아파트, 빌딩의 콘크리트” 속에서도 운다. 시인이 보기에 이들의 울음소리는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못 듣는 소리”이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이들이 “바람으로/우레의 우레로도 운다.” 이러한 울음에 대해 그가 기막힌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우레 소리로 우는 데도 못 듣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설움과 한을 떠올리는 시로는「고드름」도 기억해야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세월호 참사의 “온 가족이 흘리고 흘린 눈물”이 깊고 어두운 집집에 가득가득 차올라 “처마에서” 고드름으로 “뚝뚝 떨어”진다고 노래한다. 이 고드름은 끝내 “날로 더 흐리고 추워지자 얼어서 창이” 된다. 나아가 “눈물과 한숨에 길어지는 창의 끝은 그들의 머리를 향해 점점 내려”온다.
이 시는 이처럼 차고 시린 고드름의 이미지를 통해 매조지가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고드름의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이 시에서는 오늘의 현실이 이루고 있는 부정과 부패, 부조리에 대해 그가 얼마나 냉정한 시선을 갖고 있는가도 잘 알 수 있다. 당대의 현실에 대한 그의 심미적 관심은 또 다른 시「송전탑」「입술」「문상」등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당장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시에 받아들이다가 보면 자칫 목소리가 높아지기 쉽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에서 이러한 한계를 십분 자각하고 있다. 이는 밀양의 송전탑 사건으로부터 발상된 시「송전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을 “온갖 목숨들의 사리탑”으로, “버텨 서고 늘어선 방방곡곡/자자손손의 사리탑”으로 은유하고 있는 것이 그이다.
나날의 현실이 이루는 구체적인 현실의 국면을 다루면서도 심미적 성취를 잃지 않는 그의 시로는「입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시 「입술」은 제주도 4.3사건을 다룬 다큐 영화「지슬」로부터 유추된 듯싶다. ‘지슬’이 감자를 가리키는 제주도의 사투리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도 제주도의 현실과 관련해 불필요하게 큰 목소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적절하게 감추고 숨기는 가운데 그것을 잘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귤이 한 상자 왔으나
귤도 아니고 감자도 아니고
입술들이었다
나무만이 아니고 땅만이 아니고
사람들만도 아닌
이들 모두를 귤껍질로 감싼
제주도 말씀들의 입술이었다
손가락 끝에서도 입술
입술에서도 입술
입 속에서도 못다 한 말의
입술이었다
입술과 입술의 만남
입술 하나로도
그 깊은 어둠에 나는
그렁그렁 만수위였다
-「입술」전문
이 시에서도 시인은 자신이 체험한 사실을 에둘러 드러내고 있다. 엉뚱하게도 제주도에서 “귤이 한 상자 왔”다는 것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그이다. 이어 그는 그것이 “귤도 아니고 감자도 아니고/입술들이”라고 말한다. 귤 한 상자와 더불어 나무와 땅과 사람들을 “귤껍질로 감싼/제주도 말씀들의 입술이”왔다는 뜻이리라. “제주도 말씀들의 입술”이라니! 이때의 입술을 해군기지의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도 강정마을 사람들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나라의 근현대사에서 제주도처럼 “못다 한 말의/입술”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은 없으리라.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부차원의 사과가 있었기는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4․3사건 이후 지금짜지 무수한 침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그곳 사람들에게는 “손가락 끝에서도 입술/입술에서도 입술”이 “그렁그렁 만수위”인 것이 당연하다.
이처럼 그의 시는 역사의 어두운 국면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의식지향은 용산참사의 현장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칼자국」에서도 익히 확인이 된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권이 출발과 더불어 재개발 및 철거에 따른 바른 보상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시민들을 경찰특공대가 과잉진합하면서 발생한 엄청난 사건이다. 이 사건의 과정에 농성하는 시민들 5명 및 경찰특공대 1명이 불에 타 숨진다.
이 시에서도 그는 용산참사 이후 “주차장이 된 빈터에/하얀 국화들이 둥그렇게 놓여 있”는 것을 차분하게 묘사한다. 이렇게 한 뒤 그는 “잎도 꽃도 다 시”든 “검은 리본을 단 국화다발”에 주목한다. 그 외의 여러 장면에 대해서도 주목하지만 그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권력의 칼날은 여전히 번득인다”는 것이 다름 아닌 그 말이다.
이 시에서 그가 이 말을 하는 까닭은 권언이 멋대로 유착되어 있는 시대에는 시라도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권력과 언론이 깊이 뒤엉켜 있는 이 시대에 시마저 부정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을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날의 부정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조명은 그의 시「문상」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오늘의 현실이 갖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모습, 엉뚱하고 낯선 점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것이 이 시이다.
물론 그의 시들이 나날의 정치적 현실이나 사회적 현실과 관련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면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들 중에는 구체적인 일상에서 획득하는 지혜를 담고 있는 예도 적잖이 발견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행사 프로그램”으로부터 발상한「물낌표」도 그러한 시 중의 하나이다. 이 시「물낌표」에서 그는 “생몰년 사이의‘~’(물결표)인 우리 삶은/‘?+!’라”고 말한다. 삶을 기호화 하면 “(~=?+!)”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그는 “산다는 것은 묻고 감탄하는 것/감탄을 위해 묻고 또 묻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물낌표들의 연속이 다름 아닌 삶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날의 삶에서 지혜를 찾는 일은 깨달음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선불교식으로 말하면 이는 삶의 한 소식을 찾는 일이되기도 한다. 이때의 한 소식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은 삶이라는 것이 ‘길 위의 도정’, 곧 ‘여정’이라는 것이다. 이 글의 모두에서 그도 말하고 있듯이 삶이라는 것은 본래 ‘길 위’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온갖 나를 만나러
내 씨앗 하나를 만나러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며 세계 곳곳
내 몸 구석구석
내 마음 구석구석을
걷고 걸었던
나는 지금도 걷는다
-「혜초」전문
이 시에서 화자인 ‘나’는 혜초이면서도 시인 자신이다. ‘혜초’에 기대어 ‘나’를 노래하기도 하고 ‘나’에 기대어 ‘혜초’를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 이 시이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을 동시에 노래하며 그가 정작 의도하는 것은 삶이라는 것이 “나를 만나러/내 씨앗 하나를 만나러” 걷고 또 걷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고/사막을 지나며 세계 곳곳//내 몸 구석구석/내 마음 구석구석을/걷고”걷는 것이 이 시에서의 ‘나’ 곧 시인이다.
이 시에서의 걷고 또 걷는 ‘나’는 그의 다른 시「영시」(51면)에서의 날고 나는 화살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뜻에서의 삶의 지혜는 그의 다른 시「구슬밥」에 이르러 “육신의 밥을 덜어/영혼의 밥을 짓는”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금은 “자꾸 야위어만 가는 영혼”을 위해 “꽃구슬 밥상을 차려 받”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나와 한 여인 다 살아 죽어/얽힌 둘의혼 돌아가는 길”(「황금가지 노랑사리」)를 깨닫기도 한다.
그의 시와 함께 하고 있는 삶의 지혜는 기발한 발상의 새로운 인식을 체험하게도 한다. 봄이 되면 “들이마시는 황사”를 두고 “땅뙈기라곤 없는 내게/땅이 날아온다”(「땅」)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이다. 이러한 표현의 끝에 그가 “가슴속에나마/땅의 씨를 쌓는다”고 노래하는 것은 짐짓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더 읽을 수 있는 그의 시로는 「다슬기」「홍어」「그 양반의 노을」등이 더 있다.
시를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닫는 일에도 주체의 자아는 작동되기 쉽다. 주체의 자아가 작동되면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나날의 일상이 이루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사물이든 자연이든 두두물물頭頭物物을 객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정작 주체는 해방될는지도 모른다. 드높은 정신차원을 추구하는 그의 시의 자아도 궁극적으로는 타자에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랭보의 말처럼 나는 타자이고, 석가모니의 말처럼 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남의 궁극적인 관계를 탐구해온 그가 너와 그로부터 나를 깨닫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홍도일출」「소금」「벚꽃축제」등의 시가 그러한 시이다. 이들 시에서 그는 객관적인 자연, 곧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한다.
「벚꽃 축제」가 이러한 정신차원으로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이다. 이 시에서 그는 “요양원 노인들이 머리를 감는” 모습, “비누거품이 보글보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햇살에 꽃들도 끓어 넘”치는 모습으로, “어둡던 세상”의 “꽃구름 천지”로 발상한다. 이어 그는 “봄바람에 꽃잎들 하르르 흩날”리는데, “노인들은 허리 펴고 두리번번/아니 벌써 저쪽의 극락인가?”하며 시를 매조지한다. “봄바람에 꽃잎들 하르르 흩날”리는 날 “요양원 노인들이 머리를 감”는 모습에서 극락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그이다. 이것이 바로 평생을 정진해온 시인 백우선이 도달한 정신차원이다. 어찌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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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백우선의 이번 시집『탄금』은 시로 쓴「자서」가 특히 주목이 된다. 시인 자신의 세계관 및 가치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이「자서」이다. 이「자서」에서 그가 일단 먼저 강조하는 것은 모든 삶이 ‘길 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모두 길 위의 삶/티끌까지도 생과 생을 이어” 등의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음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티끌까지도 생과 생을 이어/함께 화락하기를”바라는 마음이다. 이때의 ‘화락’은 ‘즐거운 화합’.‘화합하는 즐거움’등의 말로 풀어 쓸 수도 있다. 이 말에는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어지는 구절의 “서로서로//자신이며 임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 구절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즐거운 평화’ 혹은 ‘평화의 즐거움’을 깊이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평화’는 근대 이후 자유, 평등, 사랑과 함께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보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에 그가 깊이 경도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시인의 시정신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디이고 무엇인가를 잘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해설 중에서. 이은봉(시인. 광주대학교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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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우선 시인∥
∙ 1953년 전남 광양 출생
∙ 1981년『현대시학』등단
∙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 시집『우리는 하루를 해처럼은 넘을 수가 없나』『춤추는 시』『길에 핀 꽃』『봄비는 옆으로 내린다』『미술관에서 사랑하기』『봄의 프로펠러』
∙ 동시집『느낌표 내 몸』『지하철의 나비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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