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그 날자 개인요양기록에 나는 이렇게 써넣었다. '손, 발 저림은 여전.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 펭귄걸음.
엄지손톱도 들뜨는 현상을 보인다. 왼쪽 손톱 2, 오른쪽 손톱 2. 발톱 2개 빠져 있다.' 일어설 때 펭귄걸음이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뒤뚱거린다는 뜻이었다. 한동안 걸어가야 허리가 펴졌고 걸음걸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데 왼쪽 손톱 2, 오른쪽 손톱 2란 무슨 뜻일까? 아마 왼쪽 손톱 2개, 오른쪽 손톱 2개가
들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내 손톱은 가로로 줄이 죽죽 가 있었고 거의 중간까지 들떠 있었다. 줄은 항암제의 횟수를
나타냈고 들뜬다는 것은 항암제의 고통을 의미했다. 항암제는 손톱과 손톱밑 살을 갈기갈기 갈라놓았고 발톱은
보랏빛으로 멍들었다가 빠져 나갔다. 두번째 발톱이 빠진 것은 2주전 교육을 받을 당시였다. 그 때 방을 함께 썼던
교육생들은 내 발톱을 보고 가슴 아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하늘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프랑스 빠리 근교 노장 쉬르 마른느에 살 때 샀던 그 스키잠바는 15년이나 지나
팔목부분이 늘어나 있었다. 하늘색 잠바에 모자 두개를 겹쳐쓰고 흰색 목도리를 둘렀다. 그 목도리는 꽃마을에 있을
동안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두르고 다녔다. 빨래해 말릴 때 이외에는. 양말은 늘 두켤레를 겹쳐 신었다. 그래야
덜 아팠으니까. 신발은 항상 운동화 아니면 등산화를 신었는데 나중에는 아예 등산화만 신었다. 등산화가 바닥이
좀 더 두꺼웠고 그래서 발바닥이 덜 아팠던 것이다.
간호사실은 ㄱ자 모양의 미카엘관 중간에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녀, 다니엘라 자연 치유팀 팀장은 56세였고
다소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한결같았다. "안녕하세요. 이XX입니다. 남편이랑 함께 왔어요."
그녀의 방에는 또 다른 간호사가 있었다. 오르간 반주와 치과팀을 맡고 있는 박XX간호사로 안경을 끼고 팀장보다는
마른 몸매였다. 팀장은 벽에 걸린 칠판을 바라보았다. 칠판에는 날자가 적혀 있었고 각 날자마다 올 사람 이름이
적혀있었으며 각 방에 묵고 있는 사람 이름이 씌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그 방에 자주 드나들면서 알게 된
일이다. 당시에는 오로지 그녀의 말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앞으로 한달 동안 있을 곳,
이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속한 곳, 자연치유 팀에서는. 하긴 당시는 장기요양이라는
단어만 알았지 자연치유라는 단어마저도 몰랐다.
'자연 치유' 그처럼 중요한 단어가 또 있을까. '자연 치유'는 의술에 대비되는 단어였다. 자연에 맡긴다는 그 뜻은
인체의 치유력에 기댄다는 뜻이다. 의술은 인공적인 것이다. 증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치료책을
찾는다. 수술로 암 부위를 도려내고 항암제로 암세포를 죽이고 방사선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암세포를 죽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극히 간단하다. 한데 암덩어리를 도려내고 약제로 죽였는데 왜 암은 전이하고 재발하는 것일까?
전이든 재발이든 그것은 어딘가 암의 원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즉 수술하고 약제로 죽였지만 모두 다 죽이지는
못했다는 뜻인 것이다. 수술과 약, 그리고 방사선, 의술은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수술로 암 부위를 도려내면 모든 암세포를 다 도려낼 수 있을까? 암세포는 극히 작고 어디까지 가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의사들은 사진상에 드러난 암부위보다 훨씬 더 많이 도려낸다. 내 암덩어리는 2.7센티라고 했으나 정작
의사는 오른쪽 젖가슴 전체를 도려냈고 림프절 전이는 일곱개라고 했으나 막상 도려낸 림프절은 서른 두개였다.
그리고 방사선은 오른쪽 가슴 전체에 쬐었던 것이다. 그처럼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다음 항암제라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항암제는 독약이다. 도세탁셀의 주성분인 탁솔은 주목에서 채취한 것으로 그 열매를 잘못 먹거나
잎사귀를 먹게 되면 죽거나 눈이 멀게 된다. 또 다른 항암제 사이톡산과 아드리아마이신 역시 독약이다.
이들 항암제의 역사는 원래 독가스에서 출발한다. 1,2차 세계 대전 중 독가스로 사용하던 물질이 악성종양세포의
분열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항암제로 쓰이게 된 것인데. 아드리아마이신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중 하나는
'염산독소루비신' 이다. 이름만도 독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한데 그 독약을 인체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 독약들이
암세포에만 작용한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그 항암제들은 정상세포에도 작용해 해를 끼친다.
탈모, 골수 기능장애, 식욕부진, 손발톱이 빠지는 현상은 항암제가 정상세포에 해를 끼친 탓이다. 혈관에도 손상을
주므로 손발이 저리거나 무릎 혹은 고관절이 아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방사선은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죽인다는 의미에서 쬐는 것인데 열은 열이기 때문에 피부는 새까맣게
탈 뿐 아니라 간혹 폐에 손상을 끼친다. 이처럼 독하디 독한 약을 쏟아부었으니 암세포가 모두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유감스럽게 암세포는 끈질기다. 약에 잘 듣는, 약발이 잘 받아 죽는 암세포를 순한 암세포라 하고
약발이 안 받는 암세포를 악성 혹은 독종 암세포라고 한다. 이들 암세포는 상황이 안 좋을때는 침잠한다.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껍질은 방어막이다. 그래서 껍질을 둘러쓰고 있어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 항암제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활동을 개시한다. 자연치유는 이와같은 인위적 치료가 잘 듣지 않는 이유를 찾은 결과로 나온
치료법이다. 아니 그 전부터 있어온 치료법일수 있다.
암이 나타난 것이 어디 최근의 일일까. 암에 걸렸던 걸린 사람이 어디 한두명일까. 살아 남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사용했다. 식이요법일수도 있고 운동요법일수도 있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결과일수도 있다.
그 어느 것 하나가 암을 치유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마음가짐,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쉼, 운동, 음식, 절제, 그 모든
것이 합쳐서 작용한 결과인데. 이러한 것들이 인체의 치유력을 끌어올렸다고 본다. 이런 것들이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켰고 그 결과 치유력이 향상되어 암세포를 없앴다고 보는 것이다. 인체의 치유력, 면역세포는 정상세포를
공격하지 않는다. 면역세포는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며 따라서 암세포가 소멸하기에 이르른 것인데. 쓰고보면
이처럼 간단한 일이 왜 그리 어려울까?
첫댓글 그처럼 독하디 독한 약을 쏟아부어도 살아 남는 암세포가 있군요. 독한 그 녀석들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에구...
아, 그건 인체가 그만큼 오묘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거예요. 암은 습관병이고 마음병이고 몸의 병이거든요. 동일한 약을 넣어도 어떤 사람은 암덩어리가 줄어들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성하고 어떤 사람은 끄떡도 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 반응이 다르다는 뜻이죠.
암에 관한 전문가의 강의를 듣든 기분입니다. ^**^
ㅎㅎ 암에 걸리면 누구나 다 암에 관한 전문가가 된답니다.^^
마눌 방광암 오는 바람에 저희 가족 모두 방광암에 대하여는 전문가가 되었죠. 면역세포의 신비가 정말 신비합니다. 어서 나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