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법/륜/ 칼/럼
내가 부처리는 믿음 괴로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차법륜(길진)/ 〈뉴저지 후암정사 법사>
화산스님은 조선말 암울했던 시기에 선풍을 크게 일으키셨던 대덕 (大德)이시다.
법명을 보혜로 했던 스님은 을암경의의 법을 이은 분이시기도 하지만 일봉 인곡선사에 게 화엄경을 전수 받고 크게 깨친 바 있다는 선교(禪敎)를 두루 섭렵한 봉불인이기도 하다.
초의선사와 선을 논하던 봉우였던 회산당은 문집 1권을 저술로 남겼다. 그의 문집 가운데는 천지팔양신주경강화라는 저술이 발견 된다. 어쩐지 그의 선풍이며 불지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저술이다. 불설 천지팔양신주경이라 하면 그야말로 신통무비한 무소불위의 주술적 경전이다.
6백50자 내외의 이 경을 한 번만 암송하면 애 못나는 여인이 수태를 하고, 이 경을 두 번만 암송하면 전쟁에 나간 아들이 살아 돌아오고. 세 번만 암송하면 구천을 헤매는 망부 망모가 천상에 오른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굳이 불설(佛說)이란 접두어를 붙힌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석가모니 세존께서 생전에 설하신 법문은 아닌듯 싶다. 석가의 가르침은 스스로 자신이 깨쳐 세상과 인생의 이치를 바로 알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암송하는 경 가운데는 석존의 가르침과는 영 딴판인 것 같은 내용을 담은 경들이 많다. 따지기 좋아하는 후학들은 이들을 위경(僞經)이라고 분류해, 화엄경 법화경등 진경과 구별해 그 가치를 폄하(貶下)하기도 한다. 화엄의 높은 경지를 증득했고 무수한 공안을 깨친 회산 스님이 천지팔양신주경이 위경이라는 것을 몰랐을리는 없다.
그럼에도 스님이 이 신주경의 가치를 높이두고 자신의 문집 3분의 1를 차지하는 분량으로 그 토록 중요하게 다뤘던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민초들, 범부 중생들의 근기(根氣)다.
천지팔양신주경은 그 연원이 중국의 원말 명초 시대의 의정 삼장화상의 석교문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그 시대나 선말의 우리 상황이나 너무도 백성들에게는 힘들고 고달픈 시기였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노파들은 아들의 생사에 가슴을 줄여야 했고 당장 먹을 것 입을 것도 없는 판에 부모의 제사를 모실 수 없었다. 부패 왕권의 가혹한 가렴주구는 민초들을 도통 정신 못차리게 하는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세상은 무상한 것이니라, 마음을 닦아 선정에 들어야 하느니라. 생노병사가 오직 고통이거늘 빨리 무상도를 증득해야 하느니라, 하는 것은 씨나락까는 소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 뻔하다. 때문에 새벽부터 밤이슬 내릴 때까지 들에서 밭에서 허덕여야 하는 민초들에게 신주경은 그야 말로 신주단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굳이 머리를 싸매고 그 이치를 알아내려 하지 않아도 좋았다. 또 지친 몸을 이끌고 절에 올라 가 부처님께 꽁꽁 처매둔 쌈지돈을 바치지 않아도 좋았다. 들에서건 부엌에서건 생각날 때마다 이 경을 외우면 아들이 살아온다는 확신에 생기가 돌았고 부모님이 천상에 오른다는 믿음에 활력이 절로 났던 것이다.
회산스님도 이 믿음을 본 것이다. 남루한 옷에 구부러진 허리, 마디마디 불거진 흙투성이 손, 그러나 믿음이 있는 눈동자는 빛이 발했다. 믿음이 있는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생명이 아니다.
그 믿음이 자식을 살아 돌아오게 했고 그 믿음이 남편을 지극한 보살님으로 보이게 했기에 자연히 금술이 좋아져 옥동자 같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같은 믿음에 차있는 범부중생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는 강가의 모래알 만큼 많은 지옥의 중생이 모두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의 성불을 멈추고 그들을 돕겠다던 10대 발원의 부처님 모습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법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잊으라기 보다는 맞서 싸워나 가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가르침이 진정한 가르침인 것이다.
극복하는 방법은 믿음만 있다면 스스로에게서 솟아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부처님인 것이다. 회산 스님은 석가세존이 아닌 민초 부처님의 설법을 마음으로 증득 하셨던 모양이다.
미주현대불교 1992년 11월호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