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한시
즉사卽事 5
본대로 5
鳥雲散盡孤月橫(조운산진 고월횡)
-먹구름 흩어진 곳에 외로운 달 가로 질렀는데,
遠樹寒光歷歷生(원수한광 역력생)
-찬 빛에 먼 데 나무까지 역력하게 나타나네.
空山鶴去今無夢(공산학거 금무몽)
-빈 산에는 학도 날아가고 지금은 꿈도 꾸지 않는데
殘雪人歸夜有聲(잔설인귀 야유성)
-누군가 잔설 밟고 돌아가는 지 밤중에 소리나네.
紅梅開處禪初合(홍매개처 선초합)
-붉은 매화 피는 곳에 중은 삼매에 비로소 들어갔고,
白雨過時茶半淸(백우과시 다반청)
-소나기 지나간 뒤 차 맛이 한결 맑네.
虛設虎溪亦自笑(허설호계 역자소)
-헛되이 호계를 벗어나지 않겠다고 한 맹서
또한 스스로 우스우니,
停思還憶陶淵明(정사환억 도연명)
-생각 그치고 다시 도연명을 추억해 보네.
*1. 오운烏雲: 검은 구름. 북송 채양蔡襄의 〈꿈속에 낙양에 가서 놀다 10수夢遊洛中十首〉 중 첫 수: “나늘 끝 검은 구름 비를 머금고 무거운데, 누대 앞의 붉은 해는 산을 밝게 비추는 구나. 숭양거사 왕익공王益恭님은 지금 편안하신지? 다정한 눈빛으로 사람들 보살필 것 같다는 마음씨 만리 밖에서도 정답게 느끼겠네.天際烏雲含雨重, 樓前紅日照山明. 嵩陽居士今安否? 青眼㸔人萬里情”
*2. 백우白雨: 소낙비.두보(杜甫)의 〈배제귀공자장팔구휴기납량만제우우(陪諸貴公子丈八溝携妓納涼晩際遇雨)〉 시에 “조각구름이 머리 위에 검어라, 이는 응당 비가 시를 재촉함일세.〔片雲頭上黑, 應是雨催詩〕”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유장산인원(遊張山人園)〉 시에는 “세세히 보리에 날아드는 노란 꽃은 요란하고, 시를 재촉하는 소낙비는 우수수 쏟아지네.〔纖纖入麥黃花亂, 颯颯催詩白雨來〕”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3》 《蘇東坡詩集 卷16》- 한국고전 db 각주정보에서 인용,
*3. 호계虎溪: 중국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내인데, 이 시내를 넘어가면 범이 울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하였다. 진(晉)나라 고승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손님을 전송할 때에 이 시내를 넘지 않을 것을 스스로 규율로 삼았다. 뒷날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과 뜻이 맞아 자신도 모르게 넘어가자 범이 갑자기 우니, 세 사람이 놀라 크게 웃고는 헤어졌다고 한다. 《山堂肆考 卷24 虎號》-한국고전db 각주정보에서 인용.
*4. 정사停思: 도잠(陶潛)이 지은 〈정운(停雲)〉에 “어둑어둑 멈춘 구름, 부슬부슬 내리는 비.〔靄靄停雲 濛濛時雨〕”라는 구절이 있다. 그 자서(自序)에 “정운은 친우(親友)를 그리워하는 시이다停雲, 思親友也.”라고 하였다. 이후로는 문인들이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을 표현할 때에 이 ‘정운(停雲)’을 많이 사용하였다.-한국고전db 각주정보에서 인용.
[보충 해설]
이 시는 만해 스님이 쓴 “즉사”라는 제목을 가진 연작시 5수 중에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마지막 시의 앞 절반 부분을, 딴 자작시 몇 수와 같이 행서로 적어 선배인 박한영朴漢永 스님에게 보낸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로 보면 아마 만해 스님 자신이 이 시를 매우 사랑하였던 것 같다.
즉사라는 말은 “사물을 본 대로 즉시 적어 놓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감흥이 일어나는 대로 적어 놓는다”는 뜻을 지닌 “즉흥”이라는 말이나 비슷하니. 사실은 어떤 뚜렷한 제목을 정하여 놓지 않은 “제목이 없는 시[무제]” 시나 다를 바가 없다.
이 시의 첫 구절에 나오는 “가마귀 색깔과 같은 빛을 가진 검은 구름”이라는 뜻을 가진 “오운”이라는 말을 한국고전 db의 각주정보로 검색하여 보니, 위에서 각주에 소개한 내용과 연관하여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정보가 보인다.
+천제오운첩(天際烏雲帖)
소식(蘇軾)의 서(書)로서 즉 “天際烏雲含雨重 樓前紅日照山明”의 칠절(七絶) 1수를 쓴 첩을 말함.
미남궁의 묵적 구탁 진본의 뒤에 제하다[題米南宮墨跡舊拓眞本後] | 완당전집(阮堂全集) | 1988
+오운이라 …… 꿈
송 나라 채양(蔡襄)이 꿈속에서 “天際烏雲含雨重 樓前紅日照山明 崇陽居士今何在 靑眼看人萬里情”이라고 지은 시를 소식이 썼는데 그 진본을 옹방강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탁본하여 추사에게 보냈음.
옹성원의 소영에 제하다[題翁星原小影] | 완당전집(阮堂全集) | 1986
이 두 가지 각주를 합하고 또 추사 문집을 살펴보면, 원래 북송 때 채양이라는 분이 꿈속에 지었다는 이 “오운”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시구[처음의 두 구]를 보고서 당시에 유명한 시서화 삼절이었던 미불米芾(호는 南宮)이 채양의 글씨의 진본을 탁본하여둔 것을, 그의 친구인 소동파가 얻어 보고서, 이 탑본의 뒤에 또 몇 자 적어둔 것을, 뒷날 청나라 때 옹방강翁方綱(星原)이라는 학자가 지니고 있다가 그것을 다시 탁본하여 우리나라의 김추사 선생에게 보내주었는데, 그러한 유래 깊은 탁본을 보고서 추사선생이 지은 시가 4 수나 《완당전집》에 보인다.
이 만해 스님의 이 시의 앞의 2구도 나는 만해 스님이 꿈속에 얻은 구절로 생각한다. 비록 북송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오운이라는 전고를 다시 빌려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그래서 그 다음 연 안쪽 구(제3구)에 “[빈산에 학조차 날아가 버리고 나니]지금은 꿈이 없어졌다今無夢”고 이은 것이다.
이렇게 꿈속에서도 좋은 시구를 얻는 경우는 더러 보이는 이야기인데 다음에 조선후기의 명시인 신자하(緯) 선생의 시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보인다.
임하필기 제33권 / 화동옥삼편(華東玉糝編)
꿈에 얻은 시구로 시 한 수를 완성한 일
양연(養硏) 노인 신위(申緯)가 신묘년 여름에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신선의 집에서 놀면서 시를 짓기를, “푸른 그늘 물과 같으니 꾀꼬리 소리 미끄럽고, 꽃다운 풀 연기 머금으니 제비 그림자 사라진다.[綠陰如水鶯聲滑 芳草和煙燕影消]”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위의 시구에 연이어 지어서 시 한 수를 완성한 다음 나에게 적어 주었는데, 아직도 그 시가 상자 속에 있다. 그 시에 이르기를,
인생이 어느 곳인들 무료하지 않으리오마는 / 人生何處不無聊
꿈속의 요원한 일 가장 빙자하기 어렵다 / 最是難憑夢境遙
신선이 청옥장을 짚고 지나가면서 / 仙子過頭靑玉杖
나의 손 이끌고 채색 난간의 다리를 건너네 / 拉余携手畫欄橋
푸른 그늘 물과 같으니 꾀꼬리 소리 미끄럽고 / 綠陰如水鶯聲滑
꽃다운 풀 연기 머금으니 제비 그림자 사라진다 / 芳草和煙燕影消
짧은 시구 분명 아직도 기억에 있는데 / 短句分明猶在記
향기로운 차는 반쯤 끓고 비는 부슬부슬 내린다 / 香初茶半雨蕭蕭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주 (역) | 2000
얼마나 시를 좋아하면 꿈속에서까지 시를 짓고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위의 시를 인용한 것은 이 시 마지막 중에 나오는 “香初茶半”이라는 말도 보이기 때문이다. “茶半”이라는 말은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이 만해의 시 제6행에도 나오지만, 추사가 쓴 유명한 서예 작품 중에서 “茶半香初”라는 말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쓴 추사의 글씨를 보고서,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지금 조사를 하여 보니 “다반”은 “전다반숙煎茶半熟: 차를 달이는데 반쯤 익혔을 때”라는 말에서 중간에 2자만 따다 사용하는 말이고, “향초”라는 말은 “노향초범爐香初泛: 화로 위의 다관에서 끓기 시작하는 차의 향내가 처음으로 피어오르다”는 말에서 중간의 2자만 따다가 쓴 말이다. 앞의 말에 대한 뚜렸한 전고는 찾아내기 어려우나, 뒤의 말은 소동파의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대두사에서 달밤에 걸으면서臺頭寺步月〉
浥浥爐香初泛夜 읍읍노향 초범야
촉촉한 화로 위에서 끓기 시작하는 차의 향내가
처음으로 피어오르는 밤에,
離離花影欲摇春 이이화영 욕요춘
척척 늘어진 꽃 그림자
봄을 흔들어 놓으려고 하네.
라고 하는 이름난 대구에서 따온 것이다.
이시의 마지막 연에는 역시 앞의 주석에서 이미 밝힌 것과 같은 도연명과 관련된 고사가 또 등장한다. 정신불멸론을 주장하여 중국불교사에도 이름을 남긴 고승 혜원慧遠스님은 여산의 동림사에 들어가서 수도하면서, 다시는 그 앞에 흐르는 시내를 건너서 속세로 나오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고 하는데, 그 때 이 절을 중심으로 당시에 지조 높은 명사들 30여 명과 서로 어울리어 “연사蓮社”라는 써클을 만들고 서로 교유하기도 하였다고도 한다.
이 때 도연명도 여산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동림사의 혜원스님과는 더러 어울리었던 같으나, 그가 꼭 이 연사에 가입을 하였는지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고, 또 그는 초기 노장 사상이나, 한나라의 왕충王充같은 사람의 소박한 유물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사람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아가다가 역시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죽어 갈 뿐이지, 죽은 뒤에도 영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거나, 죽은 뒤에 환생을 한다는 혜원의 정신불멸론에는 그렇게 동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호계를 건너서자 호랑이가 세 번이나 어르렁 거리고 비웃었다虎溪三笑”는 이야기는, 어떻든 간에 당시에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도연명과 혜원 스님의 명망을 아울러 엮어주는 매우 아름다운 전설로 전하고 있다. 스님의 법력이 얼마나 높으면 호랑이까지 스님의 마음씨를 헤아려 “아니되옵니다”하고 경고를 보낼 수 있었겠으며, 그러한 스님과 비록 추구하는 방향은 좀 달랐다 하더라도, 그래도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었던 도연명은 또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었던가?
(육수정도 역시 지조가 높은 선비였으나, 나중에서 남조의 송나라 황제의 부름을 받고나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다가 일생을 마감 하였기 때문에 좀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고 한다.)
이러한 고사가 숨겨져 있는 이 시의 마지막 연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공연히 호계를 벗어나지 않겠다고 마음에 다짐한 내 마음이 정말 저절로 가소로우니, 머물고 있는 저 무심한 구름과 같은 친구를 생각하면서 다시 도면명과 같이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간 그를 기억하게 되는 구나.”라고 다시 풀어본다. 스님이지만, 꼭 계율에 억매이지는 않겠다는 말로 보인다.
이 한 수의 시를 좀 알뜰하게 이해하자면, 불교의 참선은 말할 것도 없고, 도연명, 소동파, 신자하, 김추사에 이르는 중국, 한국의 인문전통, 시문전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시의 맛을 제대로 이해할 듯하다. 그의 한시로 지금 남아있는 것이 130여 수 되는 것 같은데, 전자 기계로 검색하여 보면 이미 호사가들이 몇 차례나 번역 같은 것을 하여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서 번역을 하였는지 자못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茶半香初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어
뜻깊은 마음입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