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 1일 월삭예배
○ 고린도전서 12장 22-25절 서로 같이 돌보라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고 말하거나 행동함으로 인해 예상치 못헸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문제는 좋은 일들은 별로 안일어나고 안좋은 일들은 많이 일어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니는 공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날 사장님이 매장에 들어가서 엄지를 척 세우면서 이 매장 직원들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그 칭찬이 너무나 좋아서 그 매장 직원 하나가 공장에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서 사장님이 오셔서 우리 회사에서 최고로 잘했다고 칭찬하고 가셨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은 “야! 잘됐네” 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일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 회사 동료들은 그 매장과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매장에서는 항상 최근 것만을 가지고 갔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 포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다 팔아야 하는데 항상 최근 것만 가져가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자신들이 5월달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 자신들에게는 지나가면서도 그냥 인사정도만 하시는 사장님이 매장에 가서는 그렇게 칭찬했다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사장님이 볼 때 매장 직원들 밖에는 안 보이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장님은 매장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뒤에서 팔 수 있도록 물품을 뒤에서 계속해서 포장해서 만들어 대주었는데 그래서 여기저기 아프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인데도 전혀 칭찬조차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밖에 드러나는 것은 눈에 쉽게 띄기 마련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숨겨진 헌신자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드러난 사람만 칭찬하기 마련입니다.
예전에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새신자가 전도를 받아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 새신자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아들을 잃고 상실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가 그 교회의 집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곤고한 마음을 가진 성도님의 마음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위로하셨습니다. 그로인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진 이 성도님은 마음에 불이 붙어서 열심히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로인해 그 해 년말에 그 성도님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여러 명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기뻐서 년초에 전혀 계획하지도 않았던 전도상을 만들어 그 집사님에게 그 해의 전도왕으로 텔레비전을 한 대 선물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교회 성도들이 그 다음 해에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교회가 숫적으로 많이 부흥이 되었습니다.
년말이 되자 이번에는 누가 전도상을 타게 될지에 성도들은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해에 아무에게도 전도상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실망한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모이면 목사님의 그 행동이 무척이나 서원하여 “목사님은 그 성도님만 사랑하시나봐”하는 말들을 오르내렸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성도님은 텔레비전을 타기 위해서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예수님이 자신을 만나주신 것이 너무나 좋고 감사해서 전도상을 주신 것입니다. 이 성도님의 전도 동기는 순수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해 전도한 많은 성도들은 한 영혼보다 텔레비전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상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하지만 숨은 봉사자와 헌신자들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 최고의 설교자로 불리는 사람은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그를 설교의 황태자라고 부르겠습니까? 이런 스펄전 목사님의 교회는 그 당시에 크게 부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나 기자들이 이 교회의 부흥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주일날에 찾아와 이 교회의 부흥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은 이 기자를 교회 지하실에 있는 기도실들이 있는 방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말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비결은 바로 이 기도의 용광로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도와 헌신을 너무나 잘 알았던 목사님이었습니다. 대부분 그 정도면 부흥의 원인을 자기 설교에 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설교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아무런 열매나 역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기도와 헌신을 통해 밖으로 들어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숨어있는 하늘나라의 인재들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부자들이 아닌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시면서 숨겨진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저는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느낍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회사가 주는 비전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잘되면 좋아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하면 진급도 하고 승진도 합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은 진급도 없고 승진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라도 더 받으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급을 팍팍 올려주지도 않습니다.
꿈이 명확한 사람은 돈을 적게 받아도 기쁨으로 일합니다. 미래의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꿈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으면 그 순간에는 좋아하지만 조금 지나면 또 불만을 느낍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이 없습니다. 사실 회사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급하는 당시에는 좋고 승진하여 월급도 오르면 좋지만 그럴지라도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주십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몸인 공동체가 함께 누리도록 하십니다. 교회는 경쟁체가 아니라 협력체입니다. 협력체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에 서로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사도 바울은 분열과 경쟁심에 사로 잡힌 고린도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22-25절에는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겉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얼굴이나 몸매, 키 등 외적인 것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합니다. 미스코리아나 유니버스를 뽑으면서 간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콩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위장은 얼마나 깨끗한지를 보는 심사위원은 없습니다. 오장육부는 심사대상이 아닙니다. 다 하나같이 겉모습만을 보고 평가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장육부가 열심히 수고하여 사람을 외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합니다. 공장의 수고는 모든 직원들과 사원들의 아름다운 하모니와 같고 교회의 모든 아름다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연합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몸을 더 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를 더 요긴하게 하셨습니다.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셨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몸의 부분으로 하여금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히려 다른 성도의 부족함을 자신이 채워야할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런 교회가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서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로인하여 주는 자나 받는 자가 함께 기뻐하게 하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도의 아궁이에 계속해서 불을 지피는 성도들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았습니다. 또한 새신자에게 전도상을 준 교회는 새신자가 가졌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았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에게 잘 보이고 또 목사님에게 칭찬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은 성도님들이 그것을 알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비전이 없을 때 교회는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하나님 나라 비전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고개를 돌리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담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설사 작어보이고 보잘것없은 것처럼 보여도, 그리고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개의치 않고 오직 예수님 만을 바라보며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워낙 크셔서 후에 그를 사랑하심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의지하시면서 살고 계십니까? 교회에 하찮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성도를 매우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그 성도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각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당신에게 보내신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쓸모있는 사람, 자기들에게 드러나보이는 사람을 칭찬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다 살펴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묵묵히 충성하시는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언제나 영화롭게 하는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세상이 보게 되는 귀한 복이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찬송가 597장을 부르겠습니다. “이 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로 시작하는 찬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