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쇼크 15년 직격탄 안 맞았는데도 왜 일본경제 혼란했나 다카하시 요이치 해설 / 9/27(수) / 닛폰 방송
수량 정책학자 다카하시 요이치(高橋洋一)가 9월 27일, 닛폰 방송 「이다 코지의 OK! Cozy up!'에 출연. 2023년으로 15년이 지난 '리먼 쇼크'에 대해 해설했다.
◎ 리먼 쇼크 이후 15년
15년 전인 2008년 9월 리먼 쇼크가 일어났다. 당시 미국 금융 대기업 리먼브러더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로 인해 2008년 9월 15일 연방파산법 11조를 신청해 파산했다. 부채 총액은 약 6000억달러에 이르렀다.
이다)
그 당시 다카하시 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다카하시)
관공서를 퇴직한 지 얼마 안 됐네요. 공무원으로 25년간 근무하고, 그것을 그만두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다)
아소 정권 출범 직후쯤.
다카하시)
직후인가요?
◎ 미국에서의 일이라 '직격탄은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다)
만약 관공서에 있었다면 대응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다카하시)
잘 생각해 보니 일본이 아니기 때문에, 「직격탄은 맞지 않는다」라고 직감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이다)
당시에는 일본은행도 서브프라임 채권을 가지고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요.
다카하시)
'모기에 물린 것과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요.
◎ 직격탄을 맞지 않았음에도 사후 대응을 잘못하는 바람에 맹렬한 엔고가 되어버린 일본
다카하시)
사후 대응이 매우 서툴렀었습니다.
이이다)
사후 대응이 서툴렀다.
다카하시)
일본만이 금융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는 금융완화를 하거나 재정출동을 하는 것이 이론이지만, 금융완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맹렬한 엔고가 되어 버렸죠.
◎ 사후 대응을 잘못한 일본
다카하시)
직격탄을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GDP의 하락은 미국과 거의 비슷하거나 그에 버금갈 정도의 큰 하락이었습니다. 사후 대응을 잘못하면 비참하죠.
이이다)
미국 내에서 큰 파산이 있자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까?
다카하시)
돈을 빌리기 어려워져, 금융 수축이 있으면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실제 문제, 미국에서는 있었어요. 하지만 '떨어져 있는 일본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가 가장 큰 포인트입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확실히 시라카와 씨였지요.
이이다)
일본은행 총재는.
◎ 타국이 금융완화하고 있는데도 일본만 대응하지 않고 맹렬한 엔고로 1달러 = ~80엔대로
다카하시)
일본은행이 '별 것 아니다'면서 다른 나라들이 금융완화를 하고 있는데 일본만 하지 않았으니 맹렬한 엔고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실물 경제의 발목을 잡아 버려서 힘들었습니다.
이이다)
1달러=100엔을 끊기는커녕…….
다카하시)
80엔대였습니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죠.
◎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융완화를 하고 있으면 환율은 움직이지 않고, 엔고가 되지도 않았다~ 맹렬한 엔고가 되어 실업자도 늘어났다
다카하시)
그때 미국이 금융완화를 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도 유럽도 마찬가지로 움직였습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융 완화를 하고 있었다면 환율은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두 나라의 금융정책 차이로 결정되기 때문에 비슷한 금융정책 대응을 하고 있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이다)
비슷한 금융정책 대응을 하면.
타카하시)
같은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대로 움직여 버려, 엔고가 되어 버렸다. 엔화 약세가 되면 반대로 유리해지지만 환율이라는 것은 자국 통화 강세는 굉장히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업률도 늘고 힘들었습니다.
이이다)
특히 일본에서 만든 것을 수출하려고 할 때 엔화 강세라면 어려워집니다. 달러 기준으로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져 버린다.
◎ 통화 정책 실패의 가장 큰 것
다카하시)
당시 밖에서 보면 '정책 실패의 최고다'고 느꼈습니다. 무책으로 '전혀 모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이다)
그 엔고에 의해서, 일본 국내에서는 물건을 만들지 못하고…….
다카하시)
장기적으로 말하면, 국내에 기업을 두는 것이 아니라, 밖에 만들게 되어 버렸다. 그 후의 경제 구조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이다)
그래서 취직할 장소가 없어져 버리자, 당연히 실업률도 올라갑니다.
◎ 금융을 긴축하면 엔고가 되고 실업률이 올라간다
다카하시)
금융 긴축을 하면 그렇게 됩니다. 엔고가 되어 실업률이 오르는 것은 이론대로인 것입니다. 「왜 (다른 나라와)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이다)
아소 정권은 재정 출동은 했습니다만.
다카하시)
금융 정책의 문제입니다. 다른 나라는 재정 출동도 통화 정책도 하기 때문에 똑같이 대응할 뿐입니다. 독자적인 이론으로 「일본만은 괜찮다」 등이라고 말해, 일본은행의 시라카와 씨는 움직여 버렸지만, 큰 실수입니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비슷한 대책을 하고 있으면 우선 틀림없습니다.
이이다) 위기 관리의 대응으로서는.
https://news.yahoo.co.jp/articles/ebd6f9370bd546beee374da4a99ecd208e1c826a?page=1
リーマンショックから15年 直撃弾を受けなかったにも関わらず、なぜ日本経済は混乱したのか 高橋洋一が解説
9/27(水) 17:40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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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ッポン放送
数量政策学者の高橋洋一が9月27日、ニッポン放送「飯田浩司のOK! Cozy up!」に出演。2023年で15年を経た「リーマンショック」について解説した。
リーマンショックから15年
リーマン・ブラザーズ本社=2005年2月22日 写真提供:産経新聞社
15年前の2008年9月、「リーマンショック」が起きた。当時のアメリカの金融大手リーマン・ブラザーズが「サブプライム住宅ローン」の損失によって、2008年9月15日、連邦破産法11条を申請し破産した。負債総額は約6000億ドルにのぼった。
飯田)あの当時、高橋さんは何をされていましたか?
高橋)役所を退職してすぐくらいですね。役人を25年間務め、それを辞めてすぐの時期でした。
飯田)麻生政権の発足直後ぐらい。
高橋)直後ですかね。
アメリカでのことなので「直撃弾は受けない」と思っていた
飯田)もし役所にいたら、対応に大わらわでしたか?
高橋)よく考えたら日本ではないから、「直撃弾は受けない」と直感的に思いました。
飯田)当時は邦銀も、サブプライムの債権を持っているところはそんなに多くなかったから。
高橋)「蚊に刺されたようなものだ」と言った人もいましたね。
直撃弾を受けていないにも関わらず、事後対応を間違ったために猛烈な円高になってしまった日本
高橋)事後対応が非常にまずかったのです。
飯田)事後対応がまずかった。
高橋)日本だけが金融緩和をしませんでした。ああいう場合は金融緩和したり、財政出動するのがセオリーなのだけれど、金融緩和をしなかったので猛烈な円高になってしまった。
事後対応を間違えた日本
高橋)直撃弾を受けていないにも関わらず、GDPの落ち込みはアメリカとほぼ同じぐらいか、それに次ぐぐらいの大きな落ち込みでした。事後対応を間違うと悲惨ですよね。
飯田)アメリカ国内で大きな破産があると、お金が借りづらくなるような状況が起こったわけですか?
高橋)お金を借りづらくなってしまい、金融収縮があると、実物経済にも影響が出てしまうのです。実際問題、アメリカではありました。でも、「離れた日本でなぜそれが起こったのか」がいちばんのポイントです。日本ではほとんど影響が出ないはずだと思っていました。当時は確か白川さんでしたね。
飯田)日銀総裁は。
他国が金融緩和しているのに日本だけ対応せず猛烈な円高に ~1ドル=80円台に
高橋)日銀が「たいしたことはない」と言いつつ、他国が金融緩和をしているのに、日本だけがしなかったから猛烈な円高になってしまったわけです。それが結果的には実物経済の足を引っ張ってしまって、大変でしたね。
飯田)1ドル=100円を切るどころか……。
高橋)80円台でした。いまでは考えられないですよね。
他国と同じように金融緩和をしていれば為替は動かず、円高になることもなかった ~猛烈な円高になり、失業者も増えた
高橋)あのときアメリカが金融緩和するのは当たり前にしても、ヨーロッパも同じように動きました。他国と同じように金融緩和をやっていれば、為替は動かなかったのです。為替は基本的に2つの国の金融政策の差で決まるから、同じような金融政策の対応をしていれば動きません。
飯田)同じような金融政策の対応をすれば。
高橋)同じ対応をしなかったから、理論通りに動いてしまい、円高になってしまった。円安になれば逆に有利になるけれど、為替というのは、自国通貨高はものすごくマイナスになるので、結果的に失業率も増えて大変でしたね。
飯田)特に日本でつくったものを輸出しようとするとき、円高だと厳しくなります。ドル建てでコストがものすごく高くなってしまう。
金融政策失敗の最たるもの
高橋)当時、外から見ていて「政策失敗の最たるものだ」と感じました。無策で「全然わかっていないな」と思いました。
飯田)あの円高によって、日本国内ではものをつくれず……。
高橋)長期的に言うと、国内に企業を持つのではなく、外につくる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そのあとの経済構造も変えてしまいました。
飯田)それで就職する場所がなくなってしまうと、当然ながら失業率も上がります。
金融を引き締めれば円高になり、失業率が上がる
高橋)金融引き締めをすればそうなります。円高になり、失業率が上がるのは理論通りなのです。「なぜ(他国と)同じようなことをやらなかったのかな」と理解できませんでした。
飯田)麻生政権は、財政出動は行いましたが。
高橋)金融政策の問題なのです。他の国は財政出動も金融政策もやるから、同じように対応するだけです。独自の理論で「日本だけは大丈夫だ」などと言い、日銀の白川さんは動いてしまったけれど、大間違いです。ああいうときは目をつぶって同じような対策をしていれば、まず間違いありません。
飯田)危機管理の対応として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