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을 가리라 (눅 13:31-35)
지나온 나의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도 있고 잘 했다는 생각도 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오래된 팝송 중에 My Way(마이웨이) 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 겸 배우로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 히트한 노래이다. 마이 웨이(My Way)는 나의 길로 번역 할 수 있지만 그 노래는 나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면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의 노래이다. ‘이제 거의 다 왔군. 그래 마지막 커튼이 내 앞에 있어. 친구여 내 이건 분명히 말하지,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때로는 실패도 있었고 후회도 조금 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었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나름 최선이라고 선택하며 살지만 때로는 후회하는 길을 가기도 한다.
오늘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여기를 떠나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헤롯 왕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니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는 저 여우에게 전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하던 일을 하고 나는 내가 갈 길을 갈 것이다.’ 영어 성경에는 Nevertheless I must walk 그래도 내가 갈 길을 갈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이 이 땅의 남은 날이 며칠밖에 없을 때, 오늘과 내일은 내가 하던 일을 하다가 제 삼일에는 십자가에서 죽어 사명을 다하리라 하는 말씀이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말씀이 있다.
첫째, 나는 오늘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요한 웨슬리에 “당신이 만약 내일 밤 12시에 죽는다면 어떻게 살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웨슬리는 “예! 저는 그 남은 시간을 하던일을 하고 보내겠습니다.. 오늘밤과 내일 아침은 교회에서 설교하고, 오후에는 저쪽 마을에 가서 설교하며, 밤에는 회의를 진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10시에는 잠자리에 들 것이고, 12시에는 천국에서 영광 중에 깨어나게 될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해 봤다. 해리엇이라는 책이 있다.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얘들아. 만약 해리엇처럼 하루 뒤에 죽게 된다면 너희는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 하고 질문하고 모두 써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가족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할 거예요."
"온 힘을 다해 놀 거예요."
"마지막이 될 꿈을 꿀 거예요."
아이들이 쓴 글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가족'이었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는데 주로 산책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등과 같은 작고 평범한 것들이 많았다.
또한 아이들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 마지막 날을 떠올리며 느낀 감정이 다름 아닌 '고마움'이라는 사실이 기특하고 뭉클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도 오늘과 내일은 그동안 해 오던 사역을 계속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예수님은 예수님의 길을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둘째,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에는 결승점이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 결승점이라고 하셨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에 예수님이 도달하는 그 길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걸어가시겠다는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는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져야 하기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오직 그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그 길을 걸어왔고 남은 여정도 그 길로 걸어갈 것이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있다. 그 새는 태어나자마자 둥지를 떠나 가시나무를 찾아 해매고 마침내 그 나무를 찾으면 그중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자신의 몸을 날려 죽어간다.
죽어가며 내는 그 고통의 소리는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 한다. 고통을 초월한 마지막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에 온 세상은 침묵 속에 귀를 기울이고 천상의 하나님께서도 미소를 지으신다. 가장 훌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러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호주의 여류작가 콜린 매컬로의 소설 ‘가시나무 새(The Thorn Birds)’에 나오는 가시나무새의 이야기이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가시나무새의 길과 닮았다고 하겠다.
셋째,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나는 나의 길을 가리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들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헤어스타일이 있고 옷을 입는 방식이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상이나 이념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를 보는 관점도 다양하다.
미국을 보는 눈과 일본을 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그것은 그의 사상과 이념,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애굽을 요람이라고 비유했다. 그곳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큰 민족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려 먹었던 나라이다. 증오하는 것 같지는 않고 항상 조심하고 잊지 말아야겠다고 교육하고 있다. 독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과하라 배상하라 하지는 않고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 하고 교육하고 있다. 독일을 증오해서 얻을 것은 없다는 것이지.
예수님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인류의 사대 성인 중 하나로 성인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윤리 도덕의 교사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기존의 세계를 변혁하는 혁명가로 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가난과 억압에서 해방하는 해방자로 보기도 한다.
세상이나 역사를 보는 방식은 다양해도 되지만 예수님을 믿는 방식, 예수님을 따르는 방식은 하나밖에 없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신다.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길이 되신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나로 암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고통스럽지만, 힘들지만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교회 권사님이 어느 날 목사님에게 심방 갈 집이 있다 하여 갔다. 다른 교회 권사님 집이었는데, 돌아가실 듯 돌아가실 듯 하면서도 임종을 못 하고 계시므로 목사님이 오셔서 임종할 수 있게 기도를 한번 해 주십사하는 부탁이었다.
가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있었던지 돗자리 닫는 부분은 욕창으로 볼 수가 없도록 험했다. 며느리는 식당에 나가서 하루종일 돈을 벌어야 했고 아들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날마다 술만 마셔댔다.
아무도 음식을 제대로 챙기지를 못해서 뼈만 앙상한데 사리 분별은 다 하시고 말도 잘 알아듣고, 얼굴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천사처럼 빛이 났다고 한다.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하고 났더니 아들이 들어왔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옆방으로 아들을 데리고 가서 ‘어머니는 당신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데 그것이 한이 되어 못 돌아가고 계시는 것이니 오늘이라도 어머니께 예수믿고 교회 다니겠다고 하시라..했더니
그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머니께 ‘어머니 나도 이제 어머니가 믿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했더니 그 어머니 권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니 그렇게 총명하던 눈이 눈빛을 잃어갔다.
목사님이 이삼일 내로 돌아가실 것 같다. 장례 준비 잘 하라 하고 갔는데, 이틀 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한다. (손선영목사간증) 아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는 그 권사님.. 사명을 다하고는 하늘나라로 가셨던 것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가야 할 길이 있고 해야 할 사명이 있다. “나는 내 길을 가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결심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