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방금 전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윤상길 주필
[윤상길의 인사동한바퀴]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는 글과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태평계태평(太平繼太平): 태평성대로 기억된 18세기 서울>展(2025년 3월 9일까지)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감동을 안겨 준다,
그 시대의 풍경이나 풍속, 사건이 글과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다 해도 과거를 위해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중흥기로 기억되는 18세기 서울을 조명하고 있다. ‘탕평(蕩平)’을 이념으로 삼아 변혁을 일으키고 백성의 삶을 개선하려 했던 두 군주의 시대, ‘태평성대(太平聖代)’로 기억되는 18세기 서울의 도시 풍경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다.
‘한양 전경도(漢陽全景圖)’ | 작자 미상 | 19세기 초 | 국립중앙박물관.
1792년 어느 날, 정조(正祖)(재위 1776-1800)는 규장각 차비대령 화원들에게 한양의 도시 풍경을 담은 〈성시전도(城市全圖)〉를 그리게 하고, 초계문신과 신하 33명에게 이를 주제로 하여 시를 짓는 시험을 치게 했다.
이렇게 완성된 글과 그림은 18세기 서울의 모습을 담아냈을 뿐 아니라, ‘어진 임금이 다스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상과 바람이 담겨 있다.
〈성시전도〉는 18세기 서울의 도시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안타깝게도 그림 〈성시전도〉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이번특별전은 〈성시전도〉 관련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신광하 성시전도시 시권’ | 신광하(申光河) | 1792년 | 고령신씨 종친회 소장.
〈성시전도〉의 제작 과정을 담은 <내각일력>부터 순조(純祖)(재위 1800~1834)가 〈성시전도〉를 보고 남긴 감상평을 수록한 <순재고>, <성시전도시>가 수록된 박제가의 <정유고략>, 이덕무의 <아정유고> 등을 전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신광하 성시전도시 시권〉은 〈성시전도〉 응제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작품으로, 정조가 직접 쓴 어평이 남아 있다.
18세기 서울의 도시 풍경을 이해하는 또 다른 열쇠는 지도와 장소이다. 이번 전시는 ‘글과 그림’, ‘지도’, ‘장소’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18세기 서울을 탐구하고 있다.
1부 ‘탕평의 시대를 맞이하다’는 ‘글과 그림’을 통해 ‘탕평’과 ‘태평(太平)’의 시대로 기억된 18세기 조선을 살펴본다. 1742년 작 〈탕평비 탑본〉은 영조(英祖)(재위 1724-1776)가 당파 간의 싸움을 멈추기 위해 내세운 탕평책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어전준천제명첩(御前濬川題名帖) 중 ’수문상친림관역(水門上親臨觀役) | 1760년 | 부산박물관.
영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탕평’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직접 글을 쓰고, 비석을 만들게 했다. 1760년 작 <어전준천제 명첩>(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탕평책을 통해 영조가 이루고자 했던 정책을 보여준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탕평책을 계승하며 태평성대를 꿈꾸었다. 〈성시전도〉는 정조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담아낸 작품으로 18세기 한양의 모습을 담아낼 뿐 아니라,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2부 ‘지도로 읽는 18세기 서울’은 지도 속에 담긴 지리 정보를 통해 18세기 서울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수백 갈래로 뻗은 도로와 물길, 수많은 궁궐과 관청, 행정 구역 등을 자세히 그려낸 〈도성도(都城圖)〉는 역동적인 상업 도시로 변모한 18세기 서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지도이다.
18세기 서울의 모습을 그린 가장 거대하고 자세한 지도, 〈도성대지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도 전시되고 있다. 이 지도는 정선(鄭敾)(1676-1759)의 진경산수 화풍을 닮아 지도뿐 아니라, 뛰어난 회화 작품으로도 평가된다.
3부 ‘장소로 읽는 18세기 서울’은 ‘세책점(貰冊店)’과 ‘술집(酒家)’, ‘약방(藥房)’을 연출하여 도시문화가 꽃핀 18세기 서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세책점’은 돈을 받고 소설책을 빌려주던 조선 시대의 책방이다. <홍길동전>, <삼국지연의>, <구운몽>, <곽장양문록> 등 계층에 따라 선호했던 문학 작품을 비교 전시하여 여성과 서민, 사대부 계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랑받던 소설 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곽장양문록>은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宜嬪 成氏)가 정조의 여동생 등 6명이 함께 베껴 쓴 책으로, 궁가 여인들이 사랑했던 소설책이다.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 | 작자 미상 | 1753-1760년 | 서울역사박물관
4부 ‘태평성대로 기억된 18세기 서울’에서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 공간 속에 2,200명이 넘는 인물들의 생활 모습을 담아낸 〈태평성시도〉를 영상 작품(국립중앙박물관 제공)으로 전시한다.
〈태평성시도〉는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다양한 놀이 장면과 거리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어 현재 전하지 않는 그림 〈성시전도〉를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움직이는 그림으로 구현한 이번 작품은 태평성대의 풍경이 현실이 아닌 이상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공간에서 정조가 꿈꾼 태평성대의 도시 풍경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제작 주체인 그 당시의 작가가 본 무엇을 2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의 제3자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행위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추천에 부족함이 없는 전시회다.
관련기사
태그#칼럼#글과그림으로기록된시대의풍경#윤상길의인사동한바퀴#역사기록#18세기서울#서울역사발물관전시#태평계태평#태평성대로기억된18세기서울展#정조#성시전도#내각일력#순재고#정유고락#아정유고#신광하성시전도시시권#어평#미술여행#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