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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구년(面壁九年)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달마가 중국 숭산산(嵩山山)의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벽을 보고 좌선하여 도를 깨달은 일을 이르는 말이다.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面 : 마주할 면(面/0)
壁 : 벽 벽(土/13)
九 : 아홉 구(乙/1)
年 : 해 년(干/3)
(유의어)
구년면벽(九年面壁)
마부위침(磨斧爲針)
면벽수도(面壁修道)
사석위호(射石爲虎)
산류천석(山溜穿石)
수적천석(水滴穿石)
우공이산(愚公移山)
중석몰촉(中石沒鏃)
면벽(面壁)은 ‘벽을 마주함’의 뜻이고, 구년(九年)은 ‘아홉 해’의 뜻이다. 이 말은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중국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벽을 대하고 앉아 수도하여 마침내 형태가 돌속으로 들어갔다는 뜻으로, 정성으로 다하면 돌이라도 뚫을 수 있을 가리키는 말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 신승전(神僧傳)등 여러 불경(佛經)에 보이는 달마대사(達磨大師)의 행적에서 나온 말이다. 달마(達磨)는 인도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포교(布敎)를 위해 중국에 들어와 중국 선(禪)의 개조(開祖)가 된 사람이다.
처음 남중국(南中國)에 들어와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를 만났을 때 무제가 물었다. “절대적인 진리의 궁극은 어떠한 것입니까(如何是聖諦第一義)?” 달마가 답했다. “텅 비어서 성스러움도 없습니다(廓然無聖).” 그러자 무제는 다시 물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對朕者誰)?” 달마가 말했다. “알지 못합니다(不識).”
대답한 달마는 무제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북중국(北中國)으로 갔다. 쓸데없는 의론과 형식을 따지는 무제에 실망했던 것이다. 위(魏)나라로 간 달마는 뤄양 근교의 숭산(嵩山)에 자리잡은 소림사(少林寺)에서 면벽구년(面壁九年)에 들어갔다. 이른바 마음이 본래 청정(淸淨)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관심을 행한 것이다.
그는 그후 도육(道育)과 혜가(慧可) 등 특출한 제자를 키웠는데, 면벽(面壁) 관심(觀心)에 관한 혜가(慧可)와의 다음과 같은 내용은 중국 선종(禪宗)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혜가가 물었다. “불도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합니까?” 달마가 말했다. “오직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行)을 다 거두어 들이는 것이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다시 혜가가 물었다. “어째서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行)을 거두어 들인다 하십니까?”
달마가 말했다. “마음이란 만법(萬法)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행(行)을 다 갖추는 것이다.” 면벽구년(面壁九年)이란 곧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그 근본을 찾으려는 것이다.
[참고]
달마(達磨)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開祖)로 일컬어지는 보리달마(菩提達磨)를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달마는 남인도 지방 출신의 승려로 6세기 초에 중국으로 건너와 각지에서 선(禪)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에 대한 전설은 무척 많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달마가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펼치자 당시 중국의 지배자 양무제(梁武帝)가 두려워한 나머지 달마를 처형했다.
그 무렵 양(梁)나라 사신이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고개를 넘다가 달마를 만났다. 사신은 놀라며 물었다. “대사(大師)는 어디로 가십니까?” 달마가 답하기를, “나는 이제 서천(西天; 서방극락)으로 가노라”고 했다. 그리고 작대기에 짚신 하나 메고 고개를 계속 넘는 것이었다. 사신은 양무제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양무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형해서 묻어 버린 달마가 다시 살아나다니! 그래서 무덤을 파보니 거기에는 작대기 하나와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
이 이야기를 두고 삶과 죽음이 본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여하튼 달마의 생애는 베일에 싸여 있는 부분이 많다. 유명한 전설로 그가 낙양(洛陽) 동쪽 숭산(崇山)의 소림사(少林寺)에서 벽을 보고 9년동안 좌선(坐禪)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면벽구년(面壁九年)의 전설인데, 그 동안에 달마의 손발이 썩어 버리기도 했다는 전설도 있다.
한편 그의 이름, 그러니까 보리달마(菩提達磨)에서 보리(菩提)는 범어 보디(bodhi)를 음역(音譯)한 것이다. 미혹을 끊어버리고 얻은 지혜 또는 열반(涅槃)을 뜻하는 말이다. 한편 달마는 범어(梵語)의 달마(達磨 또는 dharma를 음역한 것인데, 보통 법이라는 말로 번역하곤 한다. 이 번역이 달마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번역인지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마는 인간의 행위를 보전한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행위규범, 사회적의무, 종교적의무, 사물의 도리, 진리(眞理), 속성(屬性), 사건(事件), 사태(事態) 등 무척 다양한 함축을 지니는 말이다. 그것을 모두 법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그러나 한역(韓譯) 불경에서는 달마가 예외 없이 법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불경 내용의 문맥에 따라서 무척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인 것이 분명하다.
여하튼, 다양한 전설과 함께 신비에 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탓에, 달마의 각별한 법력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일종의 기복 신앙마저 유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달마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어두면 운이 좋아진다는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운 믿음이 있다. 달마도(達磨圖)를 걸어 놓음으로써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아주 그럴 듯한 사례까지 그런 믿음을 거들고 나선다. 달마도가 일종의 부적(符籍) 역할을 하는 셈이고, 달마가 수호신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달마의 선(禪) 사상, 깨달음의 길을 열다
불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달마(達摩)는 선(禪) 불교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인물입니다. 그의 사상은 '직관적 깨달음'을 강조하며 당시 불교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달마의 핵심 사상인 선불교의 기본 개념과 의미 그리고 그의 사상에서 배울 수 있는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달마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달마(菩提達摩)는 인도 남부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세기 초 중국에 건너와 북위(北魏) 조정에서 활동했던 불교 승려였습니다. 그는 인도 불교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독창적인 선(禪) 사상을 펼쳤습니다. 당시 중국 불교계는 경전 중심의 교리적 해석에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달마는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본능을 활용한 '직관적 깨달음'을 강조하며 새로운 불교 실천법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핵심 사상은 '단박에 깨닫는 선(禪)'이었습니다.
달마는 "몸은 전신이나 마음은 무심(無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모든 현상은 무상하므로 고정된 자아나 실체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을 강조했습니다.
달마의 선(禪) 사상
1. 직관적 깨달음:
안심(安心) 달마가 주창한 선(禪) 사상의 핵심은 '직관적 깨달음'입니다. 그에 따르면 진리는 경전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실제로 다양한 사건과 공부를 수양하며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달마는 안심(安心) 수행을 강조했습니다.
안심이란 마음을 고요히 머물게 하여 본래의 청정한 본성을 발견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이나 분별에 휩싸이지 않고 무심(無心)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죠. 이런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 달마는 '본래 없는 것도 없고, 본래 있는 것도 없다'는 진리를 전했습니다. 즉, 모든 것이 비어 있고 무자성(無自性)하다는 불교 사상의 핵심을 전했습니다.
2. 상상을 초월한 가르침:
달마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상으로 면벽구년(面壁九年)이 있습니다. 이는 9년 동안 벽만 바라보며 수행한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벽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던 달마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본래의 심성을 관(照)'하는 수행법이었습니다. 세상 만물에 대한 관심을 끊어내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을 관조하는 수행인 것입니다. 이처럼 달마는 상상을 초월한 방식으로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기존 불교의 교리 중심주의를 타파하고 직관적 체험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3. 심(心)에 대한 새로운 해석
달마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은 심(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그는 마음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의 본래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달마는 무심(無心)을 주장했습니다. 무심이란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무분별의 상태로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마음의 본성, 즉 '견성(見性)'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달마는 마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기존 불교의 견해를 한층 심화시켰습니다. 이는 이후 선불교 사상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달마 사상의 현대적 의의
달마의 선(禪) 사상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첫째, 즉각적 깨달음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달마가 주창한 '단박에 깨닫는' 돈오점수의 수행은 현대인들에게 삶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체험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지식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나의 생생한 체험과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학업을 통해서만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려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사상은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마음의 본성 회복을 강조합니다. 달마는 무심(無心)을 통해 마음의 본래 모습을 찾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현대인들이 상실한 정신적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쳇바퀴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마음을 소진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달마가 주장한 '면벽구년'의 수행은 현대인들에게도 성찰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인터넷 등 기술의 발전으로 혼자 있어도 항상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달마의 면벽구년의 수행을 떠올리며 모든 세상의 관심과 집착을 끊어내보는 것이 어떨까요?
넷째, 비이성적 방법론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달마의 독특한 수행법은 이성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지나치게 이성에 편향된 경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달마의 선(禪)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직관적 깨달음, 마음의 본성 회복, 자기 성찰, 비이성적 방법론 등 그의 사상은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맺음말
달마는 선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기존 불교의 교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직관적 체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달마 대종사의 가르침으로 후대의 불교 교리 수행자들은 세속에 몸을 맡기며 선행을 실천하기도 하였습니다.
달마가 제시한 '안심', '면벽구년', '무심' 등의 독창적 사상은 당시 불교계는 물론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상실한 내적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달마의 선 사상은 동양 불교 전통을 대표하는 핵심 사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달마의 사상이 보여주는 지혜와 통찰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面(낯 면/밀가루 면)은 ❶상형문자로 麵(면)과 麪(면)의 간자(簡字)이고, 靣(면)은 속자(俗字)이다. 面(면)은 사람의 얼굴과 그 윤곽을 나타낸다. 나중에 물건의 거죽이나, 얼굴을 그 쪽으로 돌리다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面자는 사람의 ‘얼굴’이나 ‘평면’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面자는 사람의 머리둘레와 눈을 특징지어서 그린 것이다. 面자의 갑골문을 보면 길쭉한 타원형 안에 하나의 눈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面자가 단순히 ‘얼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표정’이나 ‘겉모습’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面(면)은 (1)겉으로 드러난 쪽의 바닥 (2)입체(立體)의 평면(平面), 또는 겉면 (3)검도(劍道)나 야구(野球)에서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제구(諸具) (4)향하고 있는 어떤 쪽 (5)신문 따위의 페이지 (6)낯이나 체면(體面) (7)인쇄한 책장이나 종이장의 한 쪽, 또는 이것을 세는 단위(불완전 명사). 쪽. 페이지 (8)몇 개의 이(里)로 구성된, 군(郡)의 관할에 딸린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 종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의 하나이었으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인 군의 단순한 행정 구역으로 되었음. 등의 뜻으로 ①낯, 얼굴 ②표정(表情), 얼굴빛 ③모양, 모습 ④겉, 표면 ⑤겉치레 ⑥탈, 가면(假面) ⑦앞, 면전 ⑧방면(方面), 쪽 ⑨평면 ⑩면(행정 구역 단위) ⑪면(물건의 세는 단위) ⑫밀가루 ⑬보릿가루 ⑭국수 ⑮만나다 ⑯대면하다 ⑰등지다, 외면하다 ⑱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면의 관할 구역 안을 면내(面內), 얼굴에 있는 잔털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면도(面刀), 대하여 보고 있는 앞을 면전(面前), 얼굴을 마주 대함을 면접(面接), 얼굴을 대하여 만나봄을 면회(面會), 면에 사는 주민을 면민(面民), 일정한 평면이나 구면의 크기를 면적(面積), 면담(面談)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눔을 얼굴을 서로 알고 있음을 면식(面識), 바로 그 사람앞에서 잘못을 책망함을 면책(面責), 얼굴을 마주하여 꾸짖거나 논박함을 면박(面駁), 물체의 상하나 전후 이외의 좌우의 면을 측면(側面), 물체의 뒤쪽에 있는 면을 이면(裏面), 어떠한 사실과 반대되거나 다른 방면을 반면(反面), 일이 되어 나가는 상태 또는 그 장면을 국면(局面), 밖으로 나타난 모양 또는 대면하기를 꺼려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림을 외면(外面), 어떤 범위의 전체를 전면(全面), 바깥 면이나 겉모양을 표면(表面), 어떤 지역이 있는 방향 또는 그 일대를 방면(方面), 얼굴을 씻음을 세면(洗面), 눈 코 입 등이 있는 머리의 앞쪽 또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것을 안면(顔面), 일이 바로 눈앞에 닥침을 당면(當面), 얼굴 생김새가 밉살스러움을 이르는 말을 면목가증(面目可憎), 서로 얼굴을 통 모른다는 말을 면목부지(面目不知), 얼굴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말을 면목일신(面目一新),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얼굴빛이 흙빛과 같다는 말을 면여토색(面如土色),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면종복배(面從腹背) 등에 쓰인다.
▶️ 壁(벽 벽)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막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辟(벽)으로 이루어졌다. 흙을 쌓아 올려 안과 밖을 구별하여 막다, 전(轉)하여 집의 벽을 가리킨다. ❷회의문자로 壁자는 ‘벽’이나 ‘낭떠러지’, ‘성의 외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壁자는 土(흙 토)자 辟(피할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辟자는 죄수나 하인을 그린 것으로 ‘피하다’나 ‘벗어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담벼락은 외부로 하여금 내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壁자에 쓰인 辟자는 그러한 의미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壁자는 흙을 쌓아 외부의 시선을 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壁자가 항상 흙으로 만들어진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담벼락처럼 큰 낭떠러지도 壁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적벽대전(赤壁大戰)으로 유명한 중국 허베이성의 적벽산(赤壁山)이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壁(벽)은 (1)바람벽 (2)벽성(壁星) 등의 뜻으로 ①벽, 담 ②진터 ③군루(軍壘) ④나성(羅城: 성의 외곽) ⑤별의 이름 ⑥낭떠러지 ⑦진지를 굳게 지키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기사를 적어 벽이나 게시판에 붙이는 종이를 벽보(壁報), 벽에 색칠을 하는 일을 벽채(壁彩), 벽에 바르는 흙을 벽토(壁土), 방안의 벽에다 아궁이를 내고 굴뚝에 벽 속으로 통하게 한 난로를 벽로(壁爐), 벽에 쓰거나 써 붙이는 글을 벽서(壁書), 바람벽을 뚫어 작은 문을 내고 그 안에 물건을 넣게 된 곳을 벽장(壁欌),건물이나 무덤 따위의 벽에 그린 그림을 벽화(壁畫), 벽에 바르는 종이를 벽지(壁紙), 담과 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장벽(墻壁), 칸막이로 가리어 막은 벽을 장벽(障壁), 벽과 같이 깎아지른 듯한 물가의 해안 절벽을 안벽(岸壁), 깎아지른 듯이 험하게 솟은 바위를 암벽(巖壁), 성의 담벼락을 성벽(城壁), 외부로부터 쳐들어오는 것을 막는 담벼락을 방벽(防壁), 가파르고 급한 낭떠러지를 절벽(絶壁), 벽면과 천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무덤을 일컫는 말을 벽화고분(壁畵古墳), 빈한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뜻으로 살림이 심히 구차함을 이르는 말을 가도벽립(家徒壁立), 뚫어진 창과 헐린 담벼락이라는 뜻으로 무너져 가는 가난한 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창파벽(風窓破壁),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름을 면벽구년(面壁九年), 벽을 깨고 날아갔다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출세함을 이르는 말을 파벽비거(破壁飛去), 하얗게 꾸민 벽과 깁으로 바른 창이라는 뜻으로 미인이 거처하는 곳을 이르는 말을 분벽사창(粉壁紗窓), 굳건한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안전한 곳에 들어앉아서 남의 침범으로부터 몸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견벽불출(堅壁不出) 등에 쓰인다.
▶️ 九(아홉 구, 모을 규)는 ❶지사문자로 玖(구)와 동자(同字)이다. 다섯 손가락을 위로 펴고 나머지 손의 네 손가락을 옆으로 편 모양을 나타내어 아홉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九자는 숫자 '아홉'을 뜻하는 글자이다. 九자는 乙(새 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九자의 갑골문을 보면 사람의 손과 팔뚝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고대에는 又(또 우)자처럼 사람의 손을 3개의 획으로만 표기했었지만 九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구부러진 팔뚝까지 그린 것이다. 九자는 구부린 사람의 팔뚝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도 '팔꿈치'였다. 그러나 후에 숫자 '아홉'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후에 肘(팔꿈치 주)자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九(구, 규)는 ①아홉 ②아홉 번 ③많은 수 ④남방(南方), 남쪽 ⑤양효(陽爻), 주역(周易)의 양수(陽數) ⑥오래된 것 ⑦많다 ⑧늙다 그리고 모을 규의 경우는 ⓐ모으다, 모이다(규) ⓑ합하다, 합치다(규)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아홉 겹으로 구중궁궐의 준말을 구중(九重), 많은 영토를 구유(九有), 아흔의 한자어를 구십(九十), 한 해 가운데 아홉째 달을 구월(九月), 나라의 영토를 구주(九州), 넓은 하늘을 구건(九乾), 아홉 마리의 소를 구우(九牛), 땅의 가장 낮은 곳을 구지(九地), 사방으로 곧게 십자로를 이루고 옆으로 여러 갈래로 된 도시의 큰 길을 구규(九逵), 맑게 갠 가을 하늘을 구민(九旻),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를 구미호(九尾狐), 아홉 층으로 된 탑을 구층탑(九層塔), 아득히 먼 거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만리(九萬里), 구멍이 아홉 뚫린 탄을 구공탄(九孔炭),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을 구절초(九節草), 아홉 마리의 봉황을 수놓은 베개를 구봉침(九鳳枕), 여러 가지 꽃무늬를 놓은 아름다운 장막을 구화장(九華帳), 아홉 마리 소에 털 한가닥이 빠진 정도라는 뜻으로 아주 큰 물건 속에 있는 아주 작은 물건을 이르는 말을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번 구부러진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굽이 굽이 사무친 마음속 또는 깊은 마음속을 이르는 말을 구곡간장(九曲肝腸),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을 구절양장(九折羊腸), 아홉번 죽을 뻔하다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을 이르는 말을 구사일생(九死一生) 등에 쓰인다.
▶️ 年(해 년/연, 아첨할 녕/영)은 ❶형성문자로 禾(화)는 벼, 음(音)을 나타내는 人(인) 또는 千(천)은 많음을 나타낸다. 年(연)은 가을에 많은 수확이 있음, 익다, 나중에 벼가 자라는 기간에서 연월(年月)의 해란 뜻으로 쓰고, 익다의 뜻은 稔(임)으로 쓴다. ❷형성문자로 年자는 '해'나 '나이', '새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年자는 干(방패 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年자는 禾(벼 화)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年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자 위로 禾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볏단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볏단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은 수확을 마쳤다는 뜻이다. 농부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는 당연히 추수가 끝나는 시점일 것이다. 그래서 年자는 한해가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에서 '해'나 '새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年(년, 녕)은 ①해 ②나이 ③때, 시대(時代) ④새해, 신년 ⑤연령(年齡) ⑥잘 익은 오곡(五穀) ⑦콧마루 ⑧사격의 하나 ⑨사람의 이름 ⑩익다 ⑪오곡(五穀)이 잘 익다 그리고 ⓐ아첨하다(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동안을 연간(年間), 한해의 마지막 때를 연말(年末), 새해의 첫머리를 연초(年初), 일년 단위로 정하여 지급하는 봉급을 연봉(年俸), 해의 첫머리를 연두(年頭), 십 년 단위로 햇수를 셀 때 쓰는 말을 연대(年代),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횟수로 나이의 높임말을 연세(年歲),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1년에 일정 기간씩 주는 유급 휴가를 연가(年暇),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를 연화(年華), 해마다 하게 되어 있는 관례를 연례(年例), 그 해의 안 또는 한 해 동안을 연중(年中),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모(年暮), 지난해를 작년(昨年),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열 살 안팎의 어린 나이를 충년(沖年), 매해나 하나하나의 모든 해를 매년(每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곡식이 잘 되고도 잘 여무는 일 또는 그런 해를 풍년(豐年),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사내 아이를 소년(少年), 평상시의 해를 예년(例年),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한 해 동안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연중무휴(年中無休),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 함을 이르는 말을 연풍민락(年豐民樂), 세월이 매우 오래다는 말을 연구월심(年久月深), 나이가 젊고 한창 성함을 일컫는 말을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많거니와 덕도 아울러 갖춤을 일컫는 말을 연덕구존(年德俱存),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뜻으로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함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권불십년(權不十年),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을 일컫는 말을 유취만년(遺臭萬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