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함 (외 2편)
이동호
오래된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속에 초등학교도 새로 들어섰다
아파트에 갓 입주한 엄마가 어린 아들의 주머니에
새 열쇠를 넣어주었다
바지 주머니에 열쇠가 박히자 아이가 덜커덩 열렸다
엄마가 아이 속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바닥으로 쏟아버렸다
아이는 금세 텅 비었다
엄마는 아이 속에 바뀐 호수며 집 전화번호 등을 새로 넣었다
아이는 다시 꽉 채워졌다
주머니 속에 꽂힌 새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이 등교를 했다
교실마다 사물함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총잡이
며칠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권총만 종일 만지작거린다
몸속에 총알이 가득 찰 때마다 몸이 근질거리는 것은
내가 타고난 총잡이이기 때문이다
난사亂射는 하수나 하는 짓이다
나는 화장실 변기통을 향해 권총을 정조준한다
총알에 맞은 물들이 튀어 올랐다가 축 늘어진다
죽은 물은 관을 타고 정화조에 가 묻힌다
정화조는 죽은 물들의 공동묘지이다
며칠째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속상했다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으면 좋겠다
나는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고 강도를 응원하며,
그가 영원히 잡히지 않기를 신에게 빌 것이다
나나 당신이나 시건장치를 풀 용기가 없는 자이다
사타구니에 총을 차고 수시로 은행 문을 드나들겠지만,
총을 한번 폼 나게 제대로 빼어든 적 있는가
텅 빈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총알이 박힌 듯 아프게 은행 문을 돌아서 나왔던
불쌍한 당신이나 나나,
축 늘어진 총구를 세워 달마다 여자 몸속의
둥근 표적을 향해 무수히 연습 사격을 한들,
총알 낭비 아니겠는가
소화되다
창 밖 해 위에 올려놓은 한여름이 끓고 있다
한여름 속에서 사람들은 땀방울을 토해내면서 푹 삶기고 있다
뼈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겠다
바람들이 사람들을 한 숟갈 떠도 좋겠다
나뭇가지가 사람들을 젓가락질해도 좋겠다
현관문들이 맛있게 익은 사람들을 한 공기 드신다
아 맛있어 두 공기 드신다
건물 앞 네거리에 밥공기 같은 자동차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내장까지 깊숙이 들어가
서서히 소화된다
사람들이 영양분이 되어 건물 속을 돌아다닌다
건물들이 하루 종일 서서 일해도 건강한 것은
사람들을 편식하지 않은 때문이겠다
저녁 무렵이면 현관문을 통해 사람들이 한꺼번에 바깥으로 배출된다
그러고 보면 어둠은 얼마나 고약한 냄새인가
곧 어둠을 맡은 잔별들이 윙윙거리며 가득 날아들 것이다
현관문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지하철로 서서히 내려가고,
똥 덩어리 같은 전동차들이 좁은 땅속을,
잘도 빠져 나간다
하늘에는 화장실에 들어와 앉은 엉덩이처럼 둥근 달이 떠 있다
사람을 닦고 버린 냄새 나는 구름들이 허공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화장실에서 아무리 시원하게 볼일을 봐도
뱃속에는 여전히 잔변감이 남는 법이다
세상 속에는 불 켜진 창들이 아직도
잔변처럼 제법 남아 있다
시집『총잡이』(2018. 6)
------------
이동호 / 1966년 경북 김천 출생. 2004년〈대구매일신문〉에 시, 2008년〈부산일보〉에 동시가 당선됨. 시집 『조용한 가족』『총잡이』. 현재 부산 신라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