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
박지니
칠석을 앞둔 금요일 오후 철문 앞에 섰다. 이사하기 전까지 살던 집에는 대문 대신 공사 중임을 알리는 철제문이 서 있었다. 정원이 넓은 집이었다. 네 살 때까지는 2층짜리 일본식 가옥에 살았는데, 마당에 새로 집을 지어 옮긴 후 어머니는 집을 허문 자리에 정원을 가꿨다. 기억이 흐릿한 이층집 현관 옆에는 향나무가 있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이사 왔을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전쟁 직후니까 칠십 년 이상을 그 자리에 있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 네 남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마저 사라진 지금도 나무는 그곳에 남았다.
문틈 사이로 여기저기 구멍 뚫린 흙터가 보이고 그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향나무에 눈길이 머물렀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새 보금자리를 찾았건만, 향나무는 맡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오래 산 만큼 키가 큰 나무를, 뿌리가 다치지 않게 파내서 새 터에 다시 심는 일도 어렵지만,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나무와 크고 작은 돌까지 모두 파내고 흙으로 대충 덮어놓은 땅에서는 푸른빛을 뽐내던 잔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대문과 현관 사이를 잇는 벽돌 길에서 자전거를 타곤 했다. 보조 바퀴를 떼어낼 때까지 울퉁불퉁한 길을 지치지 않고 오갔다. 동백과 목련이 지면 반대쪽에서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진달래와 철쭉이 차례로 정원을 물들여 집을 찾는 손님들마다 감탄하곤 했다. 벽돌길 옆 라일락과 쥐똥나무는 봄, 여름 동안 집 안을 꽃내음으로 채워주다가 여름이 짙어지면 건너편 장미에게 차례를 넘겨주었는데.
정원 안쪽으로 작은 원두막이 있었고 그 앞에는 아담한 크기의 단풍나무와 소나무가 나란히 있었다. 단풍을 기준 삼아 가상의 선을 긋고 오빠들이 공을 차고 놀면 동생과 나는 그 옆 소나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공을 주워오는 건 내 몫이었다. 추석에는 솔잎 따다 송편을 쪘고, 추수하여 말려놓은 은행을 겨울이 되기 전에 꺼내 어머니와 둘이 딱딱한 껍질을 까겠다고 씨름하기도 했다. 홍조 붉히며 겨울을 기다리던 단풍나무 자리가 허전했다. 여름마다 창문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울어대던 매미들도 올여름엔 조용한 것 같다.
아직 이층집에 살 때, 향나무 아래에서 작은오빠와 소꿉놀이를 한 적이 있다. 장난감 그릇들을 늘어놓았다가 하나씩 포개 정리해서 가방에 넣었다가 하며 혼자 놀곤 했는데, 그날은 어쩐 일로 오빠가 놀아주겠다고 했다. 역할 분담은 어땠고 장난감을 가지고 뭘 하며 놀았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빠를 불렀는데 마침 대문을 들어서시던 아버지가 “왜!”하고 대답하셨던 것만 생생하다. 오빠와 둘이 나무 아래에서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향나무에 대한 추억은 그것이 전부이다.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 중, 고를 거쳐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대학원을 다니고 직장을 다닐 때에도, 그만둔 후에도, 수없이 그 앞을 지나다녔지만, 향나무와 특별한 사연을 쌓지는 못했다.
발걸음을 돌리는데 덩그러니 홀로 뒤죽박죽인 집터를 지키고 있는 그 나무가 마음에 서렸다. 아까워서 어쩌니…. 한두 푼도 아니고, 나무를 빙 둘러 집을 지을 수도 없잖아요. 저대로 둔다 한들, 공사 시작하면 남아나겠어요? 이사 전에 향나무를 두고 나누는 어머니와 오빠의 대화에 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 때는 관심 밖에 있다가 사람이 떠날 때는 처치 곤란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더니,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에서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칠십 년 넘게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을 지켜봐 왔을 텐데. 입안이 까끌까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족에게 그런 존재인 것은 아닐까. 노처녀로 속을 썩이다가 마흔 넘기 전에 겨우 치워놨더니, 반년 만에 돌아와서 다시 가족의 걱정거리가 된 내가 향나무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사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노후를 대비해야 할 나이에 직장까지 그만두었으니.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겠다는 자신이 철부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위에서는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다시는 떠밀리듯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무서워서 사랑이 시작될지도 모를 기회까지 외면하고 만다.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자신 있게 대꾸하지도 못하면서.
대문 안쪽으로 지대가 낮음에도 우뚝 솟은 키는 건너편 빌라와 견줄 높이였다. 그래도 담 쪽의 나무들에 가려져 담 너머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사하기 전에 이별 인사를 할 요량으로 나무 아래에 섰다. 눈 덮인 정원 가운데 곧게 뻗어 고즈넉함을 더해주던 흑갈색 기둥. 늘씬하게만 보이던 나무는 의외로 두꺼워서 내 두 팔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나무들은 철마다 손이 갔던 것 같은데 향나무는 병치레한 적이 없었다. 눈에 띄는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삶의 일부였구나.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눈꽃 같은 면이 내게도 있다면….
늘 푸른 향나무는 긴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에 비해 나는 천덕구니조차 되지 못할까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향나무가 있는 그곳에 둥지를 지어 다시 이사할 예정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곳은 우리집이 될 것이다. 공사가 끝났을 때 향나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남보다 부지런하거나 착실하지는 못해도 진실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자는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곧게 뻗은 나무의 기둥을 보면 힘을 얻을 것 같은데. 이제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떠올리면 향나무도 함께 생각날 것 같다. 겨울날에 눈이 그치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에 모아놨던 눈을 흩뿌리던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향나무는 이미 내 마음 안에 향기를 새겨 놓았는지도.
한국산문, 202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