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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쓰기에서 한(恨)의 미학
# 詩 쓰기에서 한(恨)의 미학 사람은 감성과 욕구의 동물이기 이전에 의존성의 동물이다. 그 의존성은 모태에서 흘러나와 모태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모태의 벽을 깨고 나왔을 때 사람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같이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하여 하나의 믿음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유한하고 나약한 생명의 절대적인 의지처이며 방법이다. 하지만 생활에서 환경에서 그것은 깨어지기 쉽다. 이 의지처는 곧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신앙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깨져버린 빈 마음(외로움)에서 사람의 욕구는 고뇌가 되기 시작한다. 믿음은 곧 사랑에 대한 추구이며 환상이기도 하다. 누구는 현실에서 누구는 이상의 세계에서 간절히 그것을 원하지만 그리 쉽지가 않다. ┼ 그대 사랑은 보류하겠소자고 깨나면 피어나는 심연의 동혈을 아십니까 그곳에 허우적이는 아픔을 아십니까 먹장구름이 몰려오지요 비가 긋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바닥을 헤집는 홀로 된 해파리의 막막함으로 그대 나의 사랑이래도 건널 수는 없지요 우주공간을 가시려오? 걸어도 걸어도 떠나올 수 없는 유년의 쓸쓸함 속, 거울을 들추어 나를 봅니다 남는 건 없고 가슴엔 말라서 비틀어진 젖꼭지 하나 대올거리며 매달려 있소 내 어미의 젖꼭지 같기도 하오 내 누이의 젖꼭지 같기도 하오 어쩜 얼굴도 모르는 할미의 젖꼭지인지도 모르겠소 학교 울타리 철조망에 총총 꿰어 널은 호박 꼬지는 아닐까 나, 그만 떠나려 하오 그대 사랑은 보류하겠소 파란 유리가 달린 시골 우체국의 창틀 너머 일렁이는 수숫대 바람 꼬리에다 그리움을 달겠소 우푯값이 모자란대도 그대여, 걱정은 마오 흰 구름이 흘러내리는 집 뒤의 언덕바지에 고춧대를 걷어내고 오이 모종이라도 하리다 노란 꽃이 작게 패면 회신을 기다리고 열매가 패면 가슴 설레어 잠을 자지요 여름밤이 깊어 올라 반딧불이 날고 들면 모깃불에 삭정이라도 태우며 묵은 쑥을 던져넣겠소 의안을 끼고 허울이라 말하는 그대여굴뚝 아래 피어난 버섯이여 꿈결에 울고 나는 심연을 아십니까? 철철이 산 가슴에 모기장을 치고 깨어나면 허우적이는 슬픔을 아십니까 여름 한낮을 내리쬐는 따가움에 방아쇠 여섯 발을 당긴 그 사연을 아십니까 그대여저기,동구 밖 느티나무 곁으로 반가운 손님이 오는가 보오그것을 향한 마음이 진실이든 가식이든 그 속에 있는 바람은 순수로 핵을 이루고 있으며 적어도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는 껍질을 벗어던진다. 살아가는 동안의 생활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이것에 대한 욕구는 이리저리 얼굴을 달리하지만, 사실은 단 하나 구원에 대한 염원이며 향화(香火)이다. 이 절대적 욕구는 다른 욕구들로 포장되거나 감춰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그 스스로 얼굴을 내보일 때가 있다. 끝없는 방황과 깊이를 모르는 외로운 그것은 마음 저 밑바닥 깊숙이 들어 앉아 기저의 층을 이룬다. 이곳은 모든 사랑과 욕망과 애달픔과 눈물의 창고이다. 풀리지도 않고 풀릴 수도 없는 이 허무의 방에는 묘한 안개의 강이 흐른다. 목적지도 모르는 이 안개의 강에 피어오르는 독연(毒煙)은 그 본질이 한(恨)의 정화(精花)인 것이다. 이것은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파괴와 희망이 씨앗으로 세세(世世)로 흘러내려 인간이 갖는 가장 깊이가 있는 정서의 유전적 핵이 된다. 감성은 유전되고 유전은 감성의 핵을 피워올린다. 살면서 한두 번쯤 외롭지 않은 경우나 절망하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으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삶의 테두리에 갇혀 본질을 망각한 체 살아간다. 누가 인생에서... 죽음에서...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으며 해탈을 얻겠는가. 우리의 원망(願望)과 외로움에 대한 자각은 존재성이며 이에 대한 아픔이나 사랑(정) 또, 믿음은 유한하고 쓸쓸한 인간의 생활 양식이고 방법이다. ① 욕구 소외 ② 정서 고립 ③ 관념적 고독(속박이나 분리)은 존재성의 총제적 분열이며 人間의 본질적 외로움이다. 우리는 분열 속에서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를 경험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파괴되거나 잊히는 것이 아니다. 극한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질없는 허상이라고 잠시 외면할 뿐이다. 주검의 여행은 이런 것을 상기시켜주는 마지막 존재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詩 쓰기에서 절절히 한(恨)의 미학(美學)이 된다. ┼ 주검의 이유 그 여행(旅行)에 대해 밤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 어릴 제 누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 주던가를.. 해서 해거름 석양夕陽을 보며 서 있었고 큰 산에 올라 불상佛像 속에 짓눌려 가위 치던 밤에는 무엇이 동무해 주던가를.. 해서 칠성각의 호랑이 늘상 나를 부르며 무섭게 놀자 더니 한 날엔 그마저 떠나고 대웅전 툇마루에 이름 모를 그리움 핑계 삼아 午後 한나절 내내 모로 눈물 떨구고 깨어진 山上의 기왓장 조각 아래 산딸기 기쁨으로 종일을 뛰어 달리며 울창한 松林! 그 껍질 송진 내음 핥으며 살아도 봤건만 아직도 저 끝의 깊이에 망울져 자주 눈물 고이게 하는 건 무언가눈물은 단련되어 지는 게 아니라 하늘의 빗물 걸러 가슴에 끼얹는 것을 뉘라 얘기나 해 주었던가 울어 맑아진다면 겨운 날들 날이면 울어야 하겠거늘 北斗七星 쫓겨 내리는 밤에도 솔가지 새론 흉칙한 음영陰影이 달빛을 쪼고 건넛산 장군바위 비수같이 찔러댄 혈 박힌 철침 자리에 한 아름 애련을 풀어 겨드랑 떨어진 아픔으로 전설처럼 신음呻吟으로 보채기만 하던 밤 누가 아파는 해 주던가 어루만져 주긴 하던가나 어릴 제 떠돌던 넋魄이나 혼 魂이랴만 청록 낀 이끼 밑에 촉촉하던 그 속삭임이 나를 지켜 주었더니 맑은 산소酸素와 잘게 이는 신전神箭으로 산 그림자 밑을 통과하여 축지술縮地術로 혼魂을 나르고 뒤쪽 응달진 된비알에 은밀히 흘러나는 옥玉 같은 수水의 미질味質로 나를 살리곤 했었다 초막에 관솔불 그을음도 함께 댕겨 용모도 모를 자매 한 쌍 자정이면 놀려대어, 혹여 그네들 天女인가 가슴 두근거림에 나의 육신 공양供養도 하며 넋魄을 위로도 하곤.. 이제 그네들 내 가슴에 깊숙이 자리하여 나를 부리고 나를 울리고 나를 놀려도 나 그네들 순수히 동경憧憬하여 생각건대 죽어 내 육신 나를 운구運柩 하나라도 있다면 나 광탕狂宕하게 밤길 걸으려니 나 지난 자리에 풀도 나지 말라고 허대질도 해가며## 길을 가다가 언젠가 우리의 본성(本性)을 만나면 그 본성(本性)은 아마도 우리에게 칼을 겨누고 있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2015. 9. 11_ 03시 40분 ///////////////////////////////////////////////////우리의 원망(願望)과 외로움에 대한 자각은 존재성이며 이에 대한 아픔이나 사랑(정) 또, 믿음은 유한하고 쓸쓸한 인간의 생활 양식이고 방법이다. ① 욕구 소외_ 피폐 ② 정서적 고립_ 불일치 ③ 관념적 고독_ 속박이나 고착 = [표류 → 확장 → 혼란 → 충돌 → 배제 → 고착 → 분리 ↔ 표류 → 확장 → 혼란 → 충돌 → 배제 → 고착 → 분리] 등은 존재성의 총제적 분열이며 人間의 본질적 외로움이다. 우리는 분열 속에서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를 경험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파괴되거나 잊히는 것이 아니다. 극한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질없는 허상이라고 잠시 외면할 뿐이다. 주검의 여행은 이런 것을 상기시켜주는 마지막 존재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詩 쓰기에서 절절히 한(恨)의 미학(美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