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론' 잇는 '지팡이론'
고령층 빈부격차, 전 연령서 가장 커
나이 많아질수록 부의 양극화 심화
서울 마포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모(67)씨는 오전 7시부터 수레에 폐지를 주워 담는다.
폐지 가격은 kg당 40원이다.
5~6시간 DMC 일대를 돌면서 박스를 수레에 가득 담으면 2000원을 받는다.
이씨는 '기초수급자로 월 100만원 가량을 받지만 아픈 아내에게 들어가는 고정비용만 월 50만원'이라며
'폐지를 주워 하루 많이 벌어야 5000원이지만 그마저도 절실해 그만들 수가없다'고 말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대령으로 전역한 정모(84)씨는 인천의 한 실버타운에 살고 있다.
실버타운 주거비용으로만 월 200만원이 나가지만 정씨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다.
그는 서교동에 있는 건물에서 임대료만 월 1400만원을 받는다.
정씨는 '실버타운 내에서 수채화, 수필, 사진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며
'몇 년 전까지는 해외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령층의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대에서 가장 빈부 격차가 큰 건 이른바 '수저론'이 대두한 청년층이 아닌 고령층이었다.
'금지팡이'와 '흙지팡이'로 구분되는 셈이다.
28일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2년 60세 이상의 소득 5분위 배율은 11.7배다.
은퇴 전 일자리 차이, 고령층 소득 격차 더 키웠다
좋은 일자리 가졌던 사람, 기회 많아
저소득층은나이 들면 취업 어려워
상위 20% 소득, 하위의 11.7배
부동산값 상승에 자산 불평등 심화
소득 5분위(싱위 20%)와 1분위(하위 20%)의 소득 격차가 11.7배엗 ㄹ한다는 의미다.
60세 이상 중 소득 상위 20%는 가구 평균 연 1억6017만우너을 버는데 하위 20%는 1369만 원에그쳤다.
정부에서 받는 연금이나 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 결과다.
연령대별로 소득 5분위 배율을 따져보면 30세 미만이 8.6%로 가장 작았다.
30대(9.9배), 40대(10.7배), 50대(10.8배) 순으로 나타났다.
소득 5분위 배율은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60세 이상은 전 연령대 중 5분위 소득은 가장 많고, 1분위 소득은 가장 적었다.
소득 하위 20%는 상대적으로 빈곤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가장 가난하다는 의미다.
수당.연금 등 정부 지원이 주로 고령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인 결과다.
고령층에서 소득 격차가 유독 벌어지는 건 생애 일자리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승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를 가졌던 사람에겐 기회가 계속 있지만,
저소득층은 추가로 일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
거기에 몸까지 안 좋아진다고 가정하면 육체 근로를 통한 소득을 아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 격차도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고령으로 갈수록 임대.이자수입 등의 재산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마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고령층의 자산 불평등은 최근 들어 더 심각해졌다.
2019년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노인가구의 순자산 5분위 배율은 17.1배였는데 지난해엔135.9배로 증가했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상위 20% 노인 가구가 하위 20%보다 130배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영향도 있다.
구김연금 제도는 1988년 시작됐고, 전 국민이 가입할 수 있게된 건 불과 25년 전인 99년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 내에서도 출생연도에 따라 빈곤을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KDI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980년대 후반 194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인 빈곤율이 50%가 넘었다.
반면에 1950년대 전반생의 빈곤율은 27.8%, 1950년대 후반생은 18.7%에 그쳤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해외 선진국을 보면 고령층 소득원은 대부분 연금 등
이전소득이어서 고령층 내에서 소득 격차가 크지 않다'며
'반면에 한국은 근로소득이나 재산소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노인 세대내 불평등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30보다 60대 이상 유권자...'표 계산'에 기초연금 개편 지지부진
총선 앞두고 여야 앞다퉈 실버 공약
'저소득 고령층에 기초연금 집중을'
고령층 문제의 본질은 빈부 격차다.
소득.자산 상위 고령층은 청년이나 중년층보다 풍족하다.
반대로 하위 고령층은 근로 가능한 신체적 여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대상을 확실히 구분해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치권의 셈법은 문제 해결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고령틍 빈부 격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높은 수준이다.
28일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고령층(65세이상)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76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6번째로 컸다.
지니계수는 0에서 1 사이의 값으로 클수록 더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65세 이상의 OECD 평균 지니계수가 높은 건 코스타리카(0.5), 멕시코(0.451), 칠레(0.441), 미국(0.409), 튀르키예(0.402)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지니계수를 비교했을 때 18~65세에선 지니계수가 0.007 감소하면서 불평등이 완화됐지만.
66세 이상의 은퇴 연령층에선 되레 0.005 증가해 소득 불평등이 악화됐다.
유독 고령층만 비부 격차가 계속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발표한 공약엔 어르신을 타킷으로 한 이른바 '실버 공약'이 모두 포함된다.
60세 이상유권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정치 '파워'가 세져서다.
다음 달 치러지는 총선에서 역대 처음으로 60세 이상이 20~30대보다 더 많은 표를 행사하게 됐된다.
고령층을 신경 쓰다 보니 기초연금 개편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행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월 33만4810원(단독가구 기준)을 지급한다.
2014년 435만 명이었던 수급 대상은 올해 701만 명으로 늘었다.
단독가구를 기준으로 소득인정액 월 213만원까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소득인정액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137만원이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중상층 노인에게까지 혜택을 받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OECD는 한국 경제 보고서 등을 통해 '지원 대상을 보다 축소하면서도 소득 지원이 가장 필요한 저소득 고령층에게는 더 많은
기초연금을 제공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수차례 제안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이 가난하다는 전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빈부 격차가 문제인데 정책 초점이 노인 세대의 가난으로만 맞춰지고 있어서다. 세종=정진호 기자, 이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