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인 한식(절기)이 다가옵니다,
너무 청렴결백 했던 개자추를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
- 충신 개자추 -
주양왕 16년 중이가 진문공으로 등극하여
나라를 다시 찾게된 데 대하여 논공행상을 할때 였다,
모든 신하들을 궁으로 불렀다 ,
신하들의 공로를 1,2,3,등급으로 나누고 그 경중에 따라
상,하,로 구분하였다 ,
물론 19년동안 망명생활을 함께했던 신하들이 1등급으로 분류되었다 ,
이리하여 나라에서 땅을 받지못한 자에겐 땅을 하사하고
이미 땅을 가진자 에게도 또다른 땅을 봉했다 ,
그리고 진문공은 궁에다 조서를 걸게했다 ,
만일 공로 있는 자로서
이번에 상을 받지못한 자가 있거든 자진 신고하라 !
이때 논공행상에서 빠진 사람으론 개자추가 있었다 ,
그는 진문공과 함께 모든 나라를 돌아나니며 망명한 신하 중
청렴결백 하기로 유명한 한사람이다 ,
그는 논공행상을 받기위해 궁정에서 기다리는것 조차 부끄럽게 생각하여
병들었다 핑계하고
집안에 들어박혀 짚신을 삼으며
한분 뿐인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진문공이 모든 신하에게 논공행상을 하던 날에
총망중에 개자추가 불참한것을 모르고 잊고 지냈던 것이다,
이때 개자추의 이웃에 살고있던
해장 이라는 사람은
개자추가 아무른 상도 받지 못하자 분격 하고있던 중에
이번 논공행상에서 빠진자는
자진 신고하라는 글을 보게된 것이다,
해장은 이 사실을 개자추에게 알렸으나
개자추는 웃기만 할뿐
말이 없었다,
이때 늙은 어머니가 부엌에서 그말을 듣고 말한다 ,
한번 가 보아라 ,
너는 19년동안 이나 주공을 모시고 방랑 하였거니와
주공이 굶주리고 있을때
너의 넓적다리살 까지 도려내어
삶아 잡수게 한적도 있지않는냐 ?
개자추가 대답한다,
돌아가신 전 임금 아들 아홉 사람중에 우리 주공이 가장 어질었기에
하늘이 우리 주공에게 임금자리를 정해준것 뿐입니다 ,
그런데 신하들이 하늘의 뜻을 모르고 자신의 공이 크다하며 벼슬을 다투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서서
공을 내세우고 벼슬을 탐하는
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늙은 어머니가 말한다 ,
네뜻은 잘 알겠다 ,
비록 국록을 바랄건 없다만
네가 살을베어 잡숫게 한일을
잊지나 않게 하려무나 ,
개자추가 대답한다,
제가 임금께 바라거나 요구할게 없는데 무슨일로 궁에 가겠습니까 ?
너는 참으로 청렴결백한 선비다 !
네가 그럴 바에야
난들 어찌 청렴결백한 선비의
어미가 못되란 법이 있는냐 ,
우리 모자는 마땅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이 혼탁한 시정에서 더럽혀짐이 없게하자 ,
개자추는 기뻐하며 어머니를 모시고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평소 좋아하던 면산 속으로 사라졌다 ,
이에 이웃 해장이 글을지어 밤중에 조문위에 붙였다,
"용맹한 용이 집에서 쫓겨나 천하를 떠돌고 굶주릴때
한 뱀이 제 살을 베어 먹었도다,"
"그뒤 용은 못으로 돌아가고
뱀들은 자기 구멍을 찾았으나
한 뱀만이 들어갈 구멍이 없어
저 벌판에서 울부짓는 도다 ," ~~
진문공이 글을 읽고서 크게 놀란다 ,
이건 개자추가 과인을 원망하는 글이다 ,
지난시절 개자추는
나에게 자신의 살을 베어 먹이며
나를 살렸건만 ,
이번에 모든 공신들에게 상을 내렸는데
홀로 개자추가 빠졌으니
과인의 잘못을 어찌해야 할꼬 ?
진문공은 즉시 개자추를 찾아
사람을 보냈다 ,
그러나 개자추는
이미 산속으로 떠난 후였다 ,
개자추는 어디로 갔나뇨 ?
간 곳을 아는자 에게는 벼슬을 주리라 !
해장이 나서서 말한다 ,
그 글은 소인이 쓴 글입니다,
개자추는 상을 구하는것이 부끄럽다 하고 면산 깊숙이 숨었습니다,
소인은 개자추의 공이 세상에 알려지기 위하여 글을 쓴 것입니다,
진문공이 탄식한다,
만일 네가 그런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과인은 개자추의 공을 잊을뻔 했구나
진문공은
즉시 해장에게 하대부의 벼슬을 주고
친히 면산으로
개자추를 찾으러 갔으나
산이 깊어 도무지 찾을길이 없었다 ,
개자추는 어찌하여 이렇듯 과인을 원망하는가 !
만일 불을 놓아 숲을 태우면
효성이 지극한 개자추는
반드시 그 어머니를 업고 불을피해 나타나리라 ,
이윽고 군사들이 면산 좌우에서 불을 붙였다 ,
불길은 맹렬히 타오르고 바람은 강하게 불었다 ,
삼일후 불이 꺼진 후에야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안고 버드나무 아래에서 타 죽어 있었다 ,
군사들이 가져온 해골을 보고 진문공은 하염없이 울며 면산에다
그 뼈를 묻게하고
개자추의 사당을 짓게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했다 ,
그때 불을 지른 것이
음력 3월 초 닷세 일이며
절기로는 청명이었다 ,
그때부터 개자추를 사모하고
불에타 죽은것을 잊지않기 위해서
3월초 에 불을 피우지않고 찬 음식을 먹게되었다,
청명 하루전날 그날을 한식날로 전해지게 된것이다 ,
이로인해 진문공이 더욱 치밀하게 신하들을 보살피게 되었던 것이다 ,
그러나 논공행상을 거부한 개자추의 지나치게 청렴결백한 성품이
정치적으로 또는
노모에 대한
효도를 생각 해볼때
반드시 올바른 것인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임을 밝혀둔다 ~~
첫댓글 한식이 이런 사연이 있군요! 감사 합니다!
네 참고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6월 1일 기준으로 안짱병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