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y New Dream-히말라야 안나푸르나트레킹/에델바이스
내 참 웃기는 짓을 한 적이 있었다.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내가 울산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내 한 짓이 얼마나 웃기는 짓이었느냐 하면, 내 생각에도 이런 바보가 없다싶을 정도였다.
내 양심에서 내 스스로 쪽까지 팔렸다.
그것도 재치 있게 웃겼으면 바보 취급을 받아도 쪽까지 팔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한 짓은 그게 아니었다.
멍청해서 웃기는 짓을 한 것이다.
그러니 쪽까지 팔리는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 그 사실을 여태 숨겨왔다.
쪽팔리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라면 안 숨겼을는지도 모른다.
비아냥거림까지 받을 것 같아서, 내 여태 주위 아무에게도 말 안 하고 숨겨온 것이다.
하기야 내 그동안 뭘 좀 안다고 나대지 않았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의 경우였다.
꼴불견이다 싶을 정도로 뭘 좀 안다고 나댔으니, 지난날 내 그 한 짓을 주위에서 알게 되면 비아냥거릴 것이 불문가지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태 입 꾹 닫고 있었던 것이다.
내 그 웃기는 짓은, 딱 영어단어 하나로 빚어진 짓이었다.
곧 이 단어였다.
‘intermission’
나 혼자 하루 외박을 나와서 어느 극장을 찾아 뮤지컬이라는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는데, 그 보던 중에 그 영어단어가 뜬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단어의 뜻을 몰랐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일반적으로 영화라고 하면, ‘끝’이라거나 ‘The End’라는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는 것인데, 내 그 뜻을 모르는 전혀 낯선 영어단어가 자막으로 뜨고 있으니, 나로서는 멍청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상영시간으로 봐서는 대충 끝날 시간이었지만, 뭔가 덜 끝난 것 같은 꺼림칙함도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처음부터 비어있는 자리가 꽤나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일부는 밖으로 나가고, 일부는 그냥 자리에 앉아있고는 했다.
언뜻 느낌에 그 사람들도 나처럼 헷갈리고 있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잠시 생각 끝에, 일어서 나가는 사람들을 뒤따랐다.
그래서 닫혀있는 영화관 문을 열고 일단 바깥으로 나왔는데, 그 바깥에는 나보다 앞서 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도 눈에 띄지를 않았다.
어찌된 영문일까 하고 요모조모 짚어봤다.
짚어본 결과, 앞서 나가기는 했지만, 나처럼 아예 바깥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영화관 안에서 화장실을 가거나 한 것 같았다.
이제는 다시 영화관으로 되돌아 들어갈 것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되돌아 들어갈까 말까 했다.
잠시만 그랬다.
결국은 영화관으로 되돌아 들어갈 생각은 접고 말았다.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가 문제였다.
방금 극장에서 나왔다고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것인데, 그때 영화관 관계자로부터 거짓말이라고 다그침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 되어서 쪽 팔릴 수도 있다는 것이 또 싫었다.
끝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영화는 전반부만 본 것으로 대충 만족하기로 했다.
내 그때 그렇게 반쪽만 본 영화, 바로 로버트 와이즈 감독에 줄리 앤드류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주연을 했던 1965년 미국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이라는 그 영화였다.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인 바로 오늘의 일이다.
새벽 다섯 시쯤에 잠을 깼다.
몸을 일으키기 전에 누운 채로 잠시 시간을 보낼 생각에서,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던 중이었다.
딱 내 시선을 붙들어 매는 채널이 있었다.
채널 100 CGV였다.
마침 방영되고 있는 영화가 내게 익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 그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반세기 전의 그 지난날에 있었던 내 그 웃기는 짓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였지만, 피식 쓴 웃음 한 번 지었다.
그 쓴 웃음은 곧 반전됐다.
푸근한 미소로의 반전이었다.
해군 명문 집안의 폰 트랩 대령이 그 자녀들인 일곱 남매와 그 남매들의 가정교사인 말괄량이 견습수녀 마리아 앞에서 스스로 치는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그 대목에서였다.
엄격한 기강의 평소 분위기와는 달리, 부드럽게 노래 부르는 폰 트랩 대령의 그 푸근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곧 ‘에델바이스’ 그 노래였다.
그 노래를 들으며, 내 하나 작정했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도 기타 하나 들고 가서, 히말라야 그 만년설 풍경을 배경으로 그 노래를 부르고야 말겠다는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