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부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아야 할것은, 이같은 성경의 율법이 없다고 할지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그 양심에서 지키게 되는 도덕적 윤리적 규범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같은 인간사회의 규범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재천명하셨겠는가. 아니지 않겠는가. 성경은 모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인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사를 들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비유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에게도 하체가 있다는 말인가? 반드시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에게 하체가 있다는 것은
상체도 있다는 말이 되고, 상체는 상수(上水)라면 하체는 하수(下水)가 된다.
즉 하나님에게는
빛(상체,상수)과 흑암(하체,하수)이 함께 있는 혼재의 하나님이 된다(창1:2).
빛과 흑암이 함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분이 지으신 우리세계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즉 모든 희노애락과 시시비비가 함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그 점을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씀해 주시기도 했던 것이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빛과 흑암의 양면성인데, 이 양면성의 세계는
저 태초부터 우리가 현재까지 처해 있는 사망의 세상으로서 처음 하늘 처음 땅이 된다.
사망이 왕노릇 하고 있는 처음 하늘 처음 땅은 결코 창조가 끝나버린 완성된
세상이 아니다. 처음 하늘 처음 땅은 생명이 왕노릇할 새하늘 새 땅을 향해 가고
있는 미완성의 세상이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완성을 향해 지금도 창조는 역동적으로 진행중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사야 45장 7절에서
"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라고 했을 때, 이것이 창조가 완성되면
" 나는 어두움은 퇴출시켜버리고 빛만을 지었다" 가 될것이다.
그리고
"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라고 했을 때, 이것이 창조가 완성되면
" 나는 환난은 추방시켜버리고 평안만을 지었다 " 가 될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태초에 하나님(빛과 흑암의 하나님)은 인간세상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창조의 소재인
빛과 흑암으로 지으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사망을 당하는 처음 하늘
처음 땅을 지으셨다. 하나님의 일위(여호와)와 이위(예수) 때까지가 그러하다.
왜냐하면 사망이 없는 영생의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히 깨달아야만 하는
것인데, 구약제단을 세우기 전의 세상은 아예 말씀조차 없는 때이므로
당연히 사망세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위 여호와의 구약제단은 말씀은 있었지만 모두 실상에 대한 모형이며
비유이므로 역시 사망세상일 수 밖에 없다. 다시 이위 예수님 때까지도, 실상이라곤
하지만 역시 말씀이 비유이므로 빛과 흑암이 함께 있는 사망세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늘의 삼위 재림주(새 이름)에 당도해서만 과거 일위와
이위 때의 감추어진 말씀을 명백히 드러낼 것이므로, 이것이 창조완성의 빛만의
세상이요, 이것이 창조완성의 평안만이 있는 세상이 된다.
즉 영생하는 생명의 세상이 된다.
이 모두는 창조를 진행시켜 간다는 데에 그 키워드가 있다.
간단히 상대적으로 말하면 흑암에서 빛으로의 창조가 진행되어 간다.
빛과 흑암에서 흑암을 퇴출시키고 빛으로만의 세계로 완성해 나아간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상대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세계는 반드시 창조가 진행되어 가고 있고 하나님은 일위, 이위, 삼위로
창조를 진행시켜 가시는 창조주이시다.
창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을 때, 천은 복수인데
복수의 천 둘은 초림 예수님과 재림 예수님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조를 하시되
예수님의 초림 때(이위)와 재림 때(3위)까지 창조를 진행시켜 가시겠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진행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구약제단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창조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다시 과거 예수님 제단인 기독인들은 오늘의 재림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창조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이렇게 점점 더 밝아져오는 창조의 빛을 가로막고 과거 흑암(하체)에 주저앉아 있는
앉은뱅이 신앙, 이것이 곧 하나님의 하체를 범하고 있는 범죄이다.
즉 나는 이미 구원의 선을 이루었기 때문에 더는 말씀의 빛이 필요없다고 거부하는
자들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곧 선악과 범죄이며 하체를 범하는 자들이 된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야만 다른 보혜사 삼위(새이름)가 오셔서 너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초림예수님은 비유로 말했으나 오늘의 재림주는 비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성교단 사람들은 사모하는 사도바울의 캠프에 진을 치고
의기양양해서 덤벼들 것이다. 위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짤라 먹고
바울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란다.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이렇게 바울은 예수님이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서 자기네들을 하늘로
끌어올려 데려갈 일만 남았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죄와 상관없다니!
이는 초림예수님으로부터 이미 구원을 받아놓은 상태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비유로 주신 예수님만 열심히 그 이름을 불러 믿으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되고, 비유이므로 말씀이 흑암이 되는데 흑암에 주저 않아 있겠다는
고집 불통들이다. 흑암이 뭣인가? 하나님의 하체인 것이다.
이처럼 기독인들은 사도들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하체를
마음껏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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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분 좋은 일 가득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활기차게 출발하는 즐거운 날 힘찬 하루 보내시어
굿 데이 해피 데이 되시고 매일 매일 외치는 소망도 바라는 데로 원 하는 데로 모두 이루어지는 하루
작은 소망이 기쁨으로 이루어지는 최고의 하루 만사형통 하기를 매일 매일 바라는 일이
성취 되는 하루 즐거웁게 맞아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