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1전 = 1문
구리 1000전 = 1관
그러나 "단맥관행"이 있는데, 100문의 환산비율이 각곳마다 달랐다. 즉 관청에 동전 77개를 묶어서 갖고 가면 100매에 상당하게 쳐주는 것이다. 생각보다 구리 화폐 가치가 높아짐을 뜻한다. 이것을 단맥관행이라 한다.
동경몽화록 출처 단맥관행:
관청 77문, 시중 75문 , 생선고기야채 파는 식료품점 72문,
귀금속점 74문, 하녀 고용 혹은 동물 고용할 때 68문, 책방에서는 56문.
벽지나 시골일수록 구리 화폐 가치가 높아졌다고 한다.
<이건 화폐시스템의 세계사에서 발췌>
송나라 도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강 한 잔 마시는 값 20전
물고기 600g 100전
개봉부 최고급 주점 우선정점 은병주 1병 72문
양고주 1병 81문
마필 대여료 100문
20명 가족 한 달 쌀값 6관 소모.
부식비 더하면 30명이 한 달 동안 15관 (최저)
<<그 중 9관은 쌀값, 6관이 반찬>>
왕안석 현령 당시 월급 30관 (수당 다 포함)
최하급 사대부의 한 달 경비 100관
휘주의 비단 상인 1년 세금 납부액 70만 관
첫댓글 저렇게 자리잡은 시스템을
금나라 몽골이 다 쓸어버렸다는건가...
와 현령월급이 30인데 위에 언급처럼 부양가족 식비만 반이 나가네요
뭐 아버지에 형제까지 벼슬하면 더 수입은 늘었겠지만 ㄷㄷ 근데 그만큼 또 식솔들은 늘었을거고
저러니까 구리가 모자라서 지폐를 쓰지 ㄷㄷ
사주와 도주가 좀처럼 억제 불가능 한 이유가 단편적으로 보이는 기록이네요.
금은동 같은 귀금속 화폐는 경제 규모에 비해 언제나 통화량과 발행량이 부족하다보니 ㄷㄷㄷ
여기에 더해 발행자가 함량 장난의 유혹에 빠지긴 너무 쉬웠지요.
사실 원나라가 꺼내든 "교초"가 근본적 해결책인데, 화폐 발행을 마구 하는 유혹을 정부가 뿌리치지 못하긴 했죠. ;;
@마법의활 그건 오늘날 조차 그렇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