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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별일이네요.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생각나요. 출판사 사장실에서였죠, 아마. 정장에 넥타이를 꼭 매고 얌전하게 앉아계셔서 전 속으로 ‘왠 범생인가?’, ‘무슨 한림원에서 나온 사람 같잖아?’, ‘이런 사람하고 같이 여행하려면 참 다압답하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춤을 추신단 말이죠? 그것도 요즘 한창 유행하는 살사를요?” 택시는 바다를 끼고 길게 난 해안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렸다. 바다에 비친 달이 우리를 따라왔다. “아니, 원래 보신 바대로 저는 그런 범생입니다. 한림원에서 나온 것 같다는 말도 맞고요. 한 고지식하잖아요. 그런데 춤을 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 안에 분신이 하도 많아 저도 사실 저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춤을 추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제 전공인 중남미문학 책을 읽는데, 아니! 듣고 있는 라틴음악의 리듬이 책 속의 문장에서 그대로 느껴지잖아요.” “귀로 듣는 음악이 눈으로 읽고 있는 문장에서 들렸다고요?” “문장 자체가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더라구요. 어쩌면 글쓴이도 음악을 들으면서 그 글을 썼을 지도 모르지요. 그쪽 사람들에게 음악과 춤은 일상이니까요. 그 뒤론, 아닌 게 아니라 모든 문장엔 리듬이 흐르고 있는 걸 느꼈어요. 운문은 운문대로, 산문은 산문대로. 우리의 대화에도 리듬이 흐르고 있어요. 우주는 리듬 자체이니까요.” “이야, 그래서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죠. 요즘 흔히 말하는 라틴음악을요.” “라틴음악에도 장르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야 물론 다양하지요. 일반적으로 포크송으로 알려진 트로바 즉 음유시에서부터, 쿠바에서 나온 살사, 브라질에서 나온 보싸노바, 아르헨티나에서 나온 탱고, 페루에서 나온 안데스 피리음악 등….” “그런데, 춤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보아, 정말로 궁금한 모양이었다.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저도 제 안에 리듬이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날 마침 보름달이 떴는데, 옥상에서 밤늦도록 괜히 흥얼거리며 왔다 갔다 했죠. 흥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어디 학원이라도 찾아갔어요?” “살사는 지금도 대부분 학원이 아니라 동호회나 카페에서 무료로 배운답니다. 물론 중상급으로 올라가면서 난이도가 높은 테크닉을 배우려면 비용이 좀 들겠지만 서도요. 기본은 간단하니까 누구라도 당장 배울 수 있어요.” “그러면 어디 동호회에서 배웠나요?” “제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때는 아직 한국에 살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입니다. 저는 친구들과 당시 유행하던 통신동호회 활동의 일환으로 ‘중남미연구회’, 일명 ‘사이버라틴’이란 모임을 만들었지요. 그 안에 문학, 영화, 음악, 경제사회 등 여러 분과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살사 분과도 생긴 겁니다. 세계적으로 살사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땐 멤버가 소수라 분과에 상관없이 모두가 분과모임에 겹치기로 나갔죠. 그때 살사분과모임을 ‘로코스(미친 사람들)’라 불렀는데, 그게 한국 최초의 살사 동호회였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동호회가 수백 개로 불어났죠.” “우와, 한국 살사의 태동기에 현장에 있으셨네요? 그게 언제쯤인데요?” “대략 94~5년쯤이었나….”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춤 경력도 꽤 된다는 말이네요.” “나야 뭐 그냥 리듬을 좀 타는 정도죠. 젊은 사람들은 화려하게 추길 원하지만, 저는 리듬을 느끼는 걸 선호합니다. 리듬을 느끼려면 기본에 충실하고, 무엇보다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하지요.” 어느새 택시는 해변가 모퉁이에 있는 클럽 앞에서 멈췄다. 네온사인에 [HAVANA CLUB]이라는 커다란 붉은 글씨와 그 위로 푸른 야자나무 그림이 빛나고 있었다. “아바나 클럽이라! 고향에 왔군!” 내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지선생이 또 끼어든다. “아니, 쓰기는 HAVANA인데, 읽기는 왜 ‘하바나’가 아니라 ‘아바나’에요?”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이고, 쿠바에선 스페인어를 쓰는데, 스페인어에선 H가 묵음으로 소리가 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바나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바나의 말레콘 해변이 그리웠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다. 오늘이 마침 금요일 밤이라 한창 붐빌 시간이다. 더군다나 휴양지 해변 카페니까, 준비된 춤꾼들이 몰릴 건 뻔한 이치다. 하지만 라틴 클럽들에서 대개 주말 밤은 새므로,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12시가 넘어야 본격적으로 고수들이 출현할 것이다. 입구로 다가가니 티켓 창구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차림새나 머리색깔로 보아 토박이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온 것 같다. 우리 차례가 왔다. 입장료는 1인당 8유로. 한국과 비교해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티켓에 음료 한 잔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거의 같은 시스템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잠시 둘러보았다. 시내에 있는 클럽이 아니라 바닷가에 위치한 관계로 우선 공간이 꽤 넓었다. 창고 형의 큰 건물로 들어서니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속으로 ‘세계 공용어!’ 하며 피식 웃었다. 뒤에 따라 오는 지선생을 돌아봤더니, 거 묘한 표정이다. 반은 첨 대하는 낯선 분위기에 겁먹은 표정이며, 반은 호기심이 잔뜩 발동하여 상기된 표정이다. 처음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런 데 처음이에요?” “전 지금까지 이런 세곌 전혀 모르고 지냈어요. 학교하고 집 사이만 왔다 갔다 했으니까요.” “저도 그랬다니까요, 얼마 전까지. 다만 여행은 좀 많이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이미 고수잖아요?” 그런가? 나는 이미 이 세계에 친숙해져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니까. 그동안 여행 중에 주말 밤이면 어김없이 살사 바를 찾았다. 세계 구석구석 어지간한 도시에 지금은 살사 바가 없는 곳이 드물다. 노르웨이 베르겐이나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같은 중소도시에도 한두 개씩은 꼭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로지 살사를 즐길 목적으로 쿠바까지 다녀온 내가 아닌가. _ 살사바 마콘 (그림: 찐선) 창고 형 건물은 밖에서 보기 보단 매우 넓었다. 그런대도 이미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한쪽 조금 높은 곳에 뮤직 박스가 있고, 헤드폰을 낀 디제이가 리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헤쳐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음, 리미니 살사판이 그리 후지진 않군.” “예?” “살사는 유행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나라마다, 도시마다 실력 차이가 꽤 나는 편이지요. 이탈리아의 전체 수준이 아마 한국보다 못할 거고, 더군다나 여긴 지방도시니까 제 짐작대로 살사 수준이 중급 정도 되는군요. 아마 한두 시간 뒤 고수들이 본격적으로 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서도.” “아니 한국의 살사 수준이 이탈리아보다 높다구요? 여기 애들도 노는 거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족속들인데요, 얘들도 라틴족이잖아요?” “한국은 이미 세계 정상급입니다. 우리도 동양의 라틴족 아닙니까? 살사 추는 사람을 남자는 살세로, 여자는 살세라라 부르는데, 저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한국 살세로들의 수준은 이미 동양을 평정했고, 세계 최고 수준인 쿠바와 미국을 맹렬히 따라잡고 있는 형편이지요.” 지선생은 매우 놀란 표정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목이 아팠다. 한쪽을 보니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따라오라고 손짓하고 그쪽으로 갔다. 문을 나서니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다. 사람은 많아도 살사 실력은 별로더니, 시설만큼은 죽인다. 한국과는 게임이 안 된다. 유럽에선 완전히 사업 차원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그만큼 기본적인 춤 문화의 저변이 넓다는 얘기다. 건물밖엔 풀장이 있었다. 물 안에 불을 켜놓아 그 불빛만으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풀장 옆으로 테이블이 놓여있고, 마주 편 바다를 등지고 무대가 있는데 라이브 밴드가 한창 연주하고 있었다. 건물 안은 본격적으로 춤추는 공간이었고, 여기는 편안히 앉아서 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밴드 앞 풀장 가에선 서너 커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풀장 중간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웨이터가 오자, 티켓을 주고 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멕시코 산 코로나 맥주를, 그녀는 커피를 시킨다. 그녀는 자칭 커피 중독자다. “저 밴드는 어느 나라 사람들이에요?” “아따 이탈리아어도 유창한데, 직접 물어보세요.” 웨이터가 음료를 가져오자 지선생이 물어본다. “쿠바 사람들이래요. 밴드 이름은 ‘오로 솔리도’라 하구요. 리미니에 온지가 한 달 정도 되는데, 앞으로도 한 달 더 계약되어 있대요.” “쿠바엔 저런 밴드가 수도 없이 많지요. 나라가 사회주의 체제니까 국민들이 살기 어려워 이렇게 온 세계로 퍼져 생존에 나서고 있지요. 쿠바를 생각하면, 황홀하면서도 괜히 슬퍼집니다. 근데, ‘오로 솔리도’, 단단한 금이라, 거 이름 한 번 멋지네요. 어디 보자, 퍼커션이 팀발레스와 콩가로 둘이고, 바호(베이스)는 콘트라베이스이고, 브라스가 빵빵하네요. 섹스폰과 트럼본과 트럼펫! 거기에 리드 기타에 피아노 한대라, 아 보칼까지 모두 아홉 명이네요. 이쯤이면 중간 크기 정도 되네요. 제가 쿠바에 갔을 땐 25~6인조 밴드가 보통이었거든요. 그 정도면 객석을 압도하죠.”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이 곡이 뭐예요? 이게 살사인가요?” 나는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탁탁타악, 탁탁! 살사 리듬의 기본 8박자로 밴드에서는 막대기 두개인 클라베로 리드하는데, 보통 객석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손바닥을 칠 땐 이 리듬을 따라 한다. “이 곡 몰라요? 이 유명한 곡을? 이것 모르면 간첩인데….” “자기도 그 유명한 그림들을 하나도 모르면서….” 귀엽게 노려본다. 그래, 비록 살이 통통하게 쪘지만, 그런대로 귀염성이 남아 있는 얼굴이다. “혹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란 영화 봤어요? 독일 감독인 빔 밴더스가 만든 건데.” “그야,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감독 말이죠?” “그가 친구인 음악가 라이 쿠더를 따라 쿠바에 가서 그곳 음악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영화죠. 그 오프닝넘버로 이 음악이 나옵니다. ‘찬찬’이란 제목인데, 사람 이름을 뜻합니다.” “이제 기억나요. 전 영화는 못 봤지만, OST를 담은 디스크를 가끔 들었어요. 학교 앞의 자주 가는 카페에서 한동안 가기만 하면 이 음악이 나왔다지요. 사람 몸을 들썩이게 하는 힘이 있던데 그게 쿠바 음악의 힘인가요? 그거라면 저도 선생님이 말하는 ‘리듬’을 좀 이해하겠어요.” “저는 특히 ‘검은 리듬’이라 부르지요.” ‘찬찬’을 살사 리듬에 맞춰 좀 빠르게 연주하니 그것도 색다른 맛이다. 밴드 앞 풀장 가에는 아직도 서너 쌍이 춤을 추고 있는데, 그 중 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남녀가 까만 옷을 맞추어 입고나온 것으로 봐서 평소에도 자주 함께 추는 파트너 사이인가 보다. 춤사위가 깔끔하면서도 텐션이 잘 맞고 다양한 패턴을 구사하는 걸로 봐서 제법 고수인 것 같았다. 그때 지선생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아니 춤꾼이라면서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참아요? 어디 나가서 한 번 춰 봐요. 저 여자라면 잘 맞을 것 같은데.” 말은 쉽게 한다. “안 그래도 곡이 바뀌면 나갈 참입니다.” 이윽고 곡이 끝나자 나는 일어나 무대로 나갔다. 그 커플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있었다. 나는 먼저 남자에게 다가가 파트너와 춤을 춰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것도 국제적인 몸짓이 있어 다 통한다. 그는 여자를 불러 기꺼이 소개해주고 손을 건네준다. 외국에서 파트너를 구할 땐, 이 방법을 쓰면 백발백중이다. 퉁퉁 딱, 퉁퉁 딱! 마침 경쾌한 콩가 소리가 들려온다. 로스 아돌레센떼스의 「페르소나 이데알(이상형)」이다. 빠른 리듬이지만 슬픈 가사에 로맨틱한 분위기가 강한 스텐다드 살사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곡이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고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지중해 바닷가 달빛 아래서 라이브 밴드의 리듬에 맞춰 이탈리아 여인과 춤을 춘다. 내가 춤추면, 머리 위의 하늘도 따라 춤추고 파도도 따라 춤춘다. 움직일 때,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춤출 땐 그냥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좋다. 귓가엔 익숙한 멜로디가 맴돈다. “난 사랑에 빠졌네, 이상형과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떠나야 한다네 내 영혼과 심장을 찢는 이 고통 사랑의 추억만으로 어찌 살거나 우리는 공원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 했네 장미 꽃잎 위로 눈물이 떨어지네 그때 당신은 슬픈 어조로 말했지 ‘난 가야 해. 비록 함께 있진 못하지만 내 심장과 가슴과 영혼은 널 잊지 못할 거야 난 가야 해’” |
첫댓글 어쩌라고? 글이 길어서 못읽겠다 나중에 보면 낭독해줘
짜용아 만나거든 읽어죠^^
이기모야? 짜용아!
누군가의 살사얘기같은뎅.. 누구 얘기얌? 뒷야그도 있낭?
그럼 스트리밍 되는 노래가 찬찬?,,, 한국이 동양의 라틴이라,,,,,,격정적이고 노래와 음악과 춤을 좋아 하고,, (근데 차이점은 한국은 좀 밀실VS 라틴은 좀 광장,,,ㅋㅋ)
넘 길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