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권과 학생인권, 공존의 지혜 없나
중앙일보
2023.08.08 00:54
교육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교사와 학생은 각자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고, 또 다른 교육 주체로서 학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최근 일어난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의 비극적 사건은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근본적 문제를 일깨우면서 동시에 그동안 누적된 교육현장의 모순을 드러내는 촉매제가 됐다.
이번 사태는 학생인권조례를 포함한 관련 법과 제도 및 정책적 문제와 함께 과거와 달라진 교사와 학생 관계, 학생과 학부모의 세태 변화 등 사회문화적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발생한 병목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육계 누적된 모순 일거 폭발
학부모 민원 ‘가이드라인’ 필요
교육청 등 분쟁조정위 설치를
김지윤 기자
교권 추락의 근본적 원인은 학생과 학부모의 세태 변화에 있다. 학생은 과거보다 권리 의식이 높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커졌다. 더욱이 과도한 사교육 의존으로 학교수업 경시 풍조가 만연해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수용도가 예전 같지 않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의 고학력 부모는 교사의 지도에 대한 존중이 예전보다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더해 학생인권조례 및 아동학대 관련 법 규정이나 정책에 노정된 한계가 문제를 가중한 점도 크다. 학생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학생인권조례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헌법을 비롯해 여러 곳에 인권 관련 규범이 있는데도 별도의 학생 인권을 규정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그 내용에 대해서도 성숙한 고려와 형량이 필요해 보인다.
학생인권조례의 몇몇 불분명한 조항과 그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한 어떤 장치도 없다는 우려가 애초부터 있었다. 예컨대 조례에는 소지품 검사 및 압수 금지를 규정해 학생의 사생활 보호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정당한 생활지도와 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사의 제재권은 어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학생 인권이 강조된 상황에서 아동복지법의 아동학대 개념을 교사에게도 적용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정당한 학생지도를 한 교사조차 악성 민원에 시달리게 됐다. 아동학대로 여기는 ‘정신적 폭력’ 등에 대해 구체적 규정이 없어 학교 현장의 교사는 학생지도와 관련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육공무원법상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만 되더라도 학교가 직위 해제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이 “정신적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해도 교사는 직위해제 될 위험에 놓인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행위를 제지하지 못하면 학생 인권이 보호될 수 없다.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도 당연히 보호돼야 하지만, 모두가 자기 의무를 지킬 때 각자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지금 시급한 것은 학생인권조례를 포함한 관련 규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학생이 지켜야 할 책무와 도리를 규정하고 정당한 교육과 생활지도를 위해 필요한 교사의 제재권을 명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장의 학생 징계권을 규정한 법령과 배치되는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
인권 의식이 발달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교육을 위해 수업시간에 학생의 휴대전화기를 일괄 수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 낙제 처리하거나 심지어 학부모를 ‘방임’으로 고발할 수 있다. 아동학대 행위 관련 규정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을 불식시켜야 한다. 학부모가 제기할 수 있는 요구와 민원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교사 개인의 교육적 역량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교육 당사자들의 분쟁으로 인식하고 그 해결 창구 및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학교나 교육청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개별 교사가 쉽게 악성 민원과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 교육은 교사와 학생 및 학부모의 상호 신뢰와 존중을 통해 이뤄지는 일이다. 이제라도 누적된 교권 추락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학교 교육을 재건한다는 각오로 관련 법과 제도의 수립과 정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길 기대한다.
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