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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하루에 글 두개씩 안 쓰려고 했는데 1편에 관심을 많이 가져줘서 2편도 후딱 올리게 되었지비.
나도 이런 사실을 알게되면서 되게 짜증이 났던건.
헐... 뭐야 완전 이런얘기는 재밌는데 국사선생님은 이런얘기 대체 왜 안 해줌? 이었어.
여시들이 내 얘기를 보고 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난 그걸로 되게 기쁠 것 같다.
원래 엄마가 국사에 관심 많으면 나중에 아가낳고서도 우리나라에 대한걸 많이 알려줄 수 있으니까 자연스레 아가들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테니까염. 미래지향적인 생각... 이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기억이 날...까.....?!
여튼, 왕을 낳은 후궁들 2편의 이야기를 써 보겠습니다요.
이번편은 연우궁 정빈이씨, 선희궁 영빈이씨, 경우궁 수빈박씨, 덕안궁 순헌황귀비엄씨에 대한 2편이야.
그럼 출발~
4. 연우궁 정빈이씨 (추존왕 진종의 생모)
자... 우리는 여기서 또 '진종은 또 뉘긔?' 라는 의문을 품게 되지비. 진종은 영조와 정빈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효장세자의 추숭 된
왕호야. 근데 세자였는데 어떻게 왕으로 추숭이 되나요? 라고 물을 수 있지염.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숭이 된 이유는, 사도세자가
노론 벽파에 의해 뒤주속에서 8일만에 꼴까닥 굶어 죽고 말았지염. 근데 사도세자가 죽은건 폐서인 된 죄인의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
에 신하들은 죄인의 부인, 아들인 혜경궁과 정조까지도 연좌제(가족이 줄줄이 굴비처럼 얽혀 죄 받는것)를 적용해서 정조까지 왕위
계승에서 멀어지게 하려했지만 아들은 괘씸하나 손자는 우쭈쭈 하던 할아버지 영조는 '그럼 세손은 이제부터 효장세자의 아들이다'
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은 자신의 아들이지만 이제부터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정조를 보며 늘 눈물을 지어
야 했으니까. 그래서 정조가 왕위에 오른뒤에 '호적상의 아버지' 인 효장세자의 추숭이 결정된거야.
정빈이씨는 영조가 왕자인 연잉군 시절에 왕자의 첩으로 들어왔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던 달성부부인 서씨(= 영조의 1왕후였던 정
성왕후 서씨)를 제치고 아들인 효장세자를 낳았지만 28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죽게 돼. 하지만 아들이 추숭이라도 왕위에 오르고 결
국 칠궁에 위패까지 봉안이 되었지. 참, 정빈에게는 아들인 효장세자 말고도 화순옹주라는 딸이 한명 더 있었는데, 옹주가 하가 (= 공
주나 옹주가 시집가는 것을 하가라고 함) 를 했는데 남편이 죽은거야. 화순옹주는 남편을 따라가겠다며 음식, 물을 일절 끊고 굶어서
결국 14일만에 죽고 말았지. 아버지인 영조가 엄청 비통해 했다고 해.
5. 선희궁 영빈이씨 (추존왕 장조의 생모)
'헐... 근데 장조는 또 누구임?' 이라고 물을거에염. 장조는 바로바로 사도세자의 추숭된 왕호 이지염. 영빈이씨는 사도세자의 친모가
되시겠습니다. 그리고 영조의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아 가장 많은 아이들을 낳았던 후궁이기도 하고. 영빈은 궁녀로 입궁해서 영조의
승은을 입어 아들인 사도세자를 비롯해 화평옹주, 화협옹주, 화완옹주, 그리고 일찍죽은 옹주 둘까지 1남 5녀의 가장 많은 영조의 소
생들을 낳은 제일의 총애 후궁 이었기도 해. 게다가 세자의 어머니였고, 세손의 할머니였는데 그 위세는 자뭇 왕비와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듯. 하지만 영빈은 자신 스스로 정순왕후, 숙의문씨와 편을 함께 해,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정말 상
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말지. 자신이 낳은 아들이 뒤주에서 굶어죽어가는 걸 보는 영빈의 마음은, 글쎄... 아마 사도세자의 뒤
를 이어 세손이라도 보호하고자 했던 권력앞에 비정한 어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글쎄. 영빈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아. 부인인 혜경궁은 뒤에서 바라보던 방관자였기 때문에 이렇다 뭐라고 추궁하기
는 그렇지만 영빈의 경우에는 직접 왕 앞으로 나아가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벌을 주기를 간언했기 때문에 영조는 아들내미가 지를 낳
아준 에미한테까지 그러는걸 보면서 사도세자를 죽이길 결정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 면에선 사도세자가 참 부모복은 없는듯. 아무
리 왕권이 중요하고 정쟁또한 중요하다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부모를 보면서 사도세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국, 영빈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갇혀죽은지 2년만에 죽고말지. 하지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할머니가 용서가 안 되었었
는지 정조는 영빈을 되게 싫어했다고 하더라.
6. 경우궁 수빈박씨 (23대왕 순조의 생모)
수빈박씨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엄마야. 드라마 이산에서 나온 성송연 있지? 의빈성씨. 정조가 정말 총애해 마지않던 후궁이고
세자였던 문효세자의 생모였는데 문효세자가 5세의 나이에 홍역으로 사망하고 당시 회임(=임신)하고 있었던 의빈성씨마저 산욕열
로 죽고나서 후사를 보아야 하니까 신하들의 주청으로 간택해 뽑은 후궁이 바로 수빈박씨야. 다행히도 수빈박씨는 아들을 정조에게
안겨주었고 후사에 대한 걱정은 많이 덜게됐지. 보통 세자의 생모가 되고 가장 높은 빈이 되었다면 콧대가 높아지거나 아들을 믿고
오만방자한 경우가 많은데 수빈박씨의 경우에는 시할머니인 정순왕후, 시어머니인 혜경궁, 큰댁인 효의왕후까지 잘 모시고 해서 궁
에서 좋은 말이 많았다고 해.
참, 수빈박씨가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과 친척관계가 된다는거. 그리고 조선 후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세도정치지? 수빈박씨의 집
안이었던 반남박씨 또한 안동김씨와 더불어 왕의 인척이었기 때문에 그 세도가 당당해서 세도정치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더라.
근데 그에비해 수빈박씨는 절약하고 아끼고 바르게 살았다는 정 반대의 후문이 있지.
7. 덕안궁 순헌황귀비엄씨 (추존왕 영왕, 영친왕의 생모)
영친왕, 영친왕은 대부분 많이들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 조선왕실 최초이자 마지막 국제결혼의 당사자. 우리나라로 돌아오기를 늘
희망했지만 늙고 병들어서야 우리나라 땅을 밟을 수 있었던 비운의 왕자. 마지막 황태자. 그 영친왕의 생모가 바로 순헌황귀비 엄씨
야. 순헌황귀비는 궁녀로 입궁해서 을미사변(=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 이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치는 아관
파천을 겪게되고 그 상황에서 황후가 없었던 빈 자리를 메꾼 여인이기도 하지. 그러면서 영친왕인 은(이름)이 태어났고, 고종이 순헌
황귀비를 아꼈던 만큼 영친왕도 예뻐했다고 해. 근데 우리나라에서 황귀비라는 품계의 후궁은 되게 생소하지? 고종황제가 조선을 황
제국인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나서 후궁들의 품계도 변동이 있게되지. 황귀비는 황제국이었던 중국에서 황후 다음가는 자리야.
근데 고종이 순헌황귀비를 총애했다면서 왜 황후로 봉하지 않았지? 라고 물을 수 있어.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고종이 명성황후를 죽을때까지 잊지 못했다고 해. 어려서 궁에 들어와 첫날밤에 소박을 맞고 아이들까지 잃어가면서 자신
의 곁에 있었던 명성황후, 특히 끝이 더 좋지 않았잖아. 그래서 아무리 순헌황귀비가 옆에 있었다고는 해도 명성황후의 빈 자리까지
는 침범하지 못했다고 하네. 고종이 차마 순헌황귀비로 황후의 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야.
두번째는 '후궁으로 왕비를 삼을 수 없다' 라는 멀고 먼~~ 숙종의 법 제정이 있었기 때문에 신하들이 많이 반대했다고 하더라. 게다
가 순헌황귀비는 궁녀 출신이고 명문가의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하들이 더욱 반대해서 고종황제가 어쩔 수 없이 황후의 자리는
주지 못했지만 그에 버금가는 황귀비의 자리를 주었다는 말이 있어.
순헌황귀비는 하나뿐인 금쪽같던 아들 영친왕을 당시 통감이던 이토히로부미에게 빼앗기게 돼. '유학'을 명목상으로 영친왕을 볼모
로 잡아 일본으로 끌고 가 버렸지. 시름에 잠겨있던 순헌황귀비는 결국 장티푸스에 걸리게 되고 1911년 사망. 어머니의 사망으로 급
히 경성으로 돌아왔던 영친왕은 어머니인 순헌황귀비가 전염병인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해서 그 시신조차 볼 수 없었어. 그래서 그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고 하지.
참, 순헌황귀비는 우리나라 인재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해. 그래서 양정고등학교, 진명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이 학
교들은 모두 순헌황귀비가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특히 여성들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든. 며느리 되는 이방자 여
사도 장애우나 여성들 교육에 많이 관심을 가졌던것도 시어머니인 순헌황귀비의 이런 행보를 따라가기 위함 이었다고 해.
자, 칠궁에 대한 설명은 모두 끝.
근데 아마 궁금한 여시들 있을꺼야.
어라? 혜경궁홍씨도 왕인 정조의 엄마인데 왜 없음?
없을 수 밖에. 혜경궁 홍씨는 후궁이 아닌 세자빈으로 입궁을 했고, 남편인 장조가 왕으로 추숭되면서 헌경황후의 칭호를 받았거든.
하지만 아들인 정조도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숭할 수는 없었어. 당시까지도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노론 벽파들의
힘이 너무 컸거든. 사도세자가 왕, 황제로 추숭된 건, 후손인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태조부터 자신의 5대조
까지 황제로 추숭했는데 그때 사도세자도 황제로 추숭된거야. 그 부인이었던 혜경궁 또한 황후의 예로 추숭이 된 거고.
혹시 더 궁금하거나 알고싶은 왕실 이야기 있으면 찔러줘. 사실 내가 이래저래 왕실이나 황실에 관심이 많아서 알려주고 싶은 얘기
들은 많은데 여시들이 어떤걸 궁금해하는지 잘 몰라서 나혼자 글 쓰려니 좀 뻘쭘하기도 하거든 흐흐.
궁금하거나 알고싶은 왕, 왕비, 후궁, 왕자, 왕녀 등이 있으면 댓글이나 쪽지로 찔러주길 바라.
재미 없을수도 있는 글 재밌다고 읽어주니 그저 감사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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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사도세자에 대해서 조만간 혜경궁과 함께 탈탈 털어주겠어영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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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오~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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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고려 접수 ㅋㅋㅋ
꺆 언니 진짜 사랑한다!!!!!!! 또또또 맨날올려줘!!!!!!!!!! 나도 위에 언니처럼 고려시대도 알고싶어!! 여튼 언니짱재밋당!!!!
응응 고려도 털어줄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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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정말 '기본' 에만 충실하다보니까... 아무래도 그런듯? ㅠㅠ
우왕 언니 너무 재밌다ㅠ 정조는 부인복은 있었던거 같네; 이산보면서 한참 이산앓이했을때가 생각나는구만.. 궁금한거있어요! 조선시대 공주들의 생활이나 공주이야기같은거 알고싶다ㅠ 공주에 대한 기록은 너무없어ㅠ 그리고 공주들이 다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하던데ㅠ 궁금궁금~ 아 글고 시간되면 조선시대 내명부와 외명부에 대해서도 좀 알려줄수있사? 캭 국사 넘 재밌당
응. 정조는 부모복은 없었지만 부인복은 생각보다 많았던 사람이야. 공주나 옹주? 내가 조선공주실록이라고 본 책이 있는데 조만간 그거 기초로 털어주겠엉!
기다렸어!!! 재밌게 읽었어 고마워 ^^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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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또 자주자주 털어줄께
우와 쩔어 몰랐던걸 다시 알고나니까 우리나라 국사에 더 관심이 생겨졌어 언니 진짜 국사쌤 ㅇㅇ
ㅋㅋㅋㅋ 국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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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은 내가 짧게 털어서 그런데 조만간 사도세자와 함께 털어주겠샤
와!!!!!!!!!!! 진짜 재미있게봤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근두근 괜히 다 설레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사를 남자로 접근하는것보단 여자로 접근하는게 더 재밌는데 말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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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게 사도세자도 너무 불쌍한데 에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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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