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렵게 구해야 한다-현장법사의 일대기를 읽으며
서유기의 모델이 된 현장법사의 구도기를 보면, 법이란 참으로 어렵게 구해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온 것은 쉽게 나가는 법. 로또나 투기로 인한 일확천금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 서유기를 읽을 때 이상했던 것은, 어렵게 천축에 갔던 삼장법사 일행이 올 때는 너무나 쉽게 돌아오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쉽게 오는데 갈 때는 어찌 그리 어렵게 간단 말입니까. 특출한 손오공이 아니었으면 과연 삼장법사께서 천축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올 때는 그토록 간단히 돌아올 수 있었는지... 이런 의문이 어린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법을 쉽게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침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이야기가 경전에는 여러 곳에 나옵니다. 실지로 과거 구법자들은 목숨을 걸고 법을 구하러 갔습니다.
더 큰 가르침을 개인적으로 구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구도자들은 천축의 경전을 가져와 당신 이웃에 전하겠다는 그 일념으로 그 험한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 실지로 현장법사도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스님도 사막에서 죽은 당나라 구법승의 시체를 보고, 나도 저렇게 죽는 것은 아닌가 하고 두려움에 떨며 시(詩)를 지은 일도 있습니다. 그렇게 구법승들의 간절한 구도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동아시아 불교 문화의 융성입니다.
현장은 13세 때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출가 이유를 묻는 관리에게 <마음은 멀리로는 여래를따르고, 가까이로는 유법(遺法)을 빛내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조실부모하고 있을 데가 없어(?) 출가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장안(長安)에 머무르며 범어를 배운 것으로 볼 때, 천축에 가고자 하는 그의 구도심은 이미 어릴 때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천축행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당나라 황제가 현장을 아낀 나머지 출국을 불허했으며, 현장은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탈출하다시피 하며 천축을 향합니다.
629년 8월, 천축으로 떠나기 며칠 전 현장은 장안의 탑안에 들어가 여행 안정을 빌었는데, 그날 밤 꿈에 수미산이 나타납니다. 현장이 꿈속에서 대해를 건너려 하자 돌로 된 연꽃이 솟아나 그를 지탱해줍니다. 그러나 산은 너무 높아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거센 돌풍이 불어 산꼭대기에 올려줍니다. 산에 오르자 사방의 시야가 확 트였는데, 이때 현장이 본 끝없는 수평선이란 그가 앞으로 방문할 수많은 나라 상징한 것이라 합니다. 그는 황홀한 기쁨 속에 깨어납니다.
고난은 출발 때부터 찾아왔습니다. 현장의 재가제자를 자처하며 현장을 천축까지 안내해드리겠다며 나선 서역인 반타. 그는 사실 현장이 지닌 재물에 욕심을 내어 여행 첫날밤에 잠에 든 현장을 살해하려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을 바꿔먹고 현장을 내버려둔 채 혼자 가버립니다. 길도 모르는 곳에 홀로 내버려진 현장은 실수로 손에서 물주머니마저 떨어뜨려 순식간에 갖고 있던 물 전부를 모래 속에 잃습니다.
절망한 그는 중국으로 다시 되돌아가다, <천축에 이르지 못하면 동쪽으로 돌아가 사느니 차라리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고 죽겠다>던 자신의 맹세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4일 낮과 5일 밤을 야윈말과 함께 서쪽으로 달리다 마침내 탈진해서 사막 한 가운데 쓰러집니다. 탈진해 쓰러지면서 현장은 자비로운 관음보살에게 기도합니다.
그러자 이슬이 하늘에서 현장과 지친 말에 떨어지며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현장은 깊은 잠에 빠집니다. 꿈속에서 창과 기를 든 대신(大神)이 소리치는 꿈으로, <왜 열의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잠만 자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리에 잠을 깨 십리를 더 갔을 때 말이 본능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 거기엔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출발부터 쉽지 않았던 현장은 그 후에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겪습니다. 천산산맥을 넘을 때도 산적에 잡혀 죽을 뻔하고, 천축에 도착한 후에도 살해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현장을 환영한 일부 국왕들도 현장이 천축에 못가고 자기 나라에만 머물도록 유혹하기도 하고 협박도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기도 합니다.
현장은 떠나기 전에도 부처님께 자신을 잘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고 사막에서도 기도했으며, 신앙적 이유로 단식도 했다고 합니다. 또 위험에 처하면 간절히 관음보살을 염하고 반야심경의 주문을 외웠다고 하는데, 여러 해 전 현장이 어느 병자를 절에 데려와 먹을 것, 옷을 주자 그가 감사의 표시로 가르쳐준 경전이 반야심경이라고 합니다.
현장은 중국에 유통되는 과거의 경전에서 서로 모순되는 불경을 볼 때, 올바른 걸 구별해 내기 얼마나 어려운지 탄식했다고 합니다. 또 현장은 중국과 인도 불교 사이에, <경전 중 일부가 누락된 것 이상>의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갖은 고생 끝에 수많은 경전을 천축에서 가져온 현장은, 여생을(19년) 경전 번역에 바칩니다. 그리고 대반야경 6백권을 모두 번역한 뒤, 체력도 소진하여 얼마 뒤 열반에 듭니다. 열반에 이르러 반야심경과 비슷한 게송을 읊으며 사막에서 자비의 보살에게 기도했듯, 죽음의 순간에는 미륵에 의지하고 이렇게 주위 사람에게 외칩니다.
<나무 미륵여래 응공 정등각! 바라옵건대, 모든 중생과 함께 자비로운 얼굴을 하신 부처를 속히 받들고 싶사옵니다. 나무 미륵여래가 계신 곳에 거처하시는 대중들이시여!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을 버리고 나면 반드시 그곳에 태어나게 해주옵소서>.
664년 2월5일 밤중, 제자 <대승광>이 현장에게 묻습니다.
<화상께선 미륵의 궁전에 태어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으십니까?>
이에 현장은 <나는 반드시 거기에 태어나리라!>고 말한 후 열반에 듭니다.
법은 어렵게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정보가 넘치고 인터넷 클릭 하나면 법이 구해지는 시대. 그렇지만 불자님들이시어, 결코 법을 쉽게 구하려 하지 마옵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법을 구해야 합니다. 설산동자가 법을 구하려 귀신(?)에게 몸을 바치고, 혜가가 안심법문을 듣기 위해 팔을 자르듯 한 그런 간절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침을 얻어야 비로소 그 가르침이 내게 살아 드는 것입니다.
쉽게 질문하고 넘치는 법을 쉬운 마음으로 그냥 눈길로 스쳐지나가는 분들이 많은 이 풍요로운 시대. 그러나 법을 구하는 분들은 결코 쉬운 마음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구한 법, 그 법이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 법에, 그리고 그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 없이 그저 쉽게 법을 구하고 쉬운 마음으로 스승님을 대해서는 아무 공덕이 없음을 부디 아시기를...
*인용한 현장법사의 이야기는 <현장법사/샐리 하비 리긴스/신소연,김민구 역/민음사/2010>에서 발췌했습니다. _()_
첫댓글 그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부처님법을 공부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아! 법를 쉬게 구한다면 뼈속까지 와 닫지는 않겠죠. 부처님에 마음 공부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ㅡ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