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춤꾼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댄서 중의 댄서’ 팝핀현준(본명 남현준)이 최근 정규앨범 1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팝핀’은 팝콘을 튀기듯 온몸의 근육을 박자에 맞춰 튕기면서 추는 고난도의 춤. 이름 앞에 ‘팝핀’이 붙을 정도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워낙 유연하고 정교한 특유의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그는 정식 데뷔 전부터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를 여러 차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인사다. 많은 댄서 지망생들이 제2의 팝핀현준을 꿈꾸고 있고, 인터넷에는 그의 춤을 담은 동영상이 수없이 떠돌아다닌다.
“춤을 추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예요. 그동안 JTL, 블랙비트, 슈퍼주니어 등 유명 가수들의 안무를 맡아 춤을 가르치면서 ‘춤선생’으로 살았죠. MBC 수목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는 불춤을 췄고, 〈캔유〉 휴대전화 광고와 조PD의 〈친구여〉 뮤직비디오에서도 제 춤을 선보였습니다.”
카렌스, yepp, 캔유, 하이트 맥주 등 수많은 CF와 영화 〈플라이 대디〉,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 출연하는 등 화려한 춤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그에게 가수는 낯선 영역이 아니다. 지난 1998년 ‘영턱스클럽’ 4집 멤버로 참여한 적도 있으니 굳이 말하자면 중고신인쯤 될까.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사람이 바로 ‘영턱스클럽’의 제작자인 이주노 형이에요. 우연히 주노 형을 만나면서 ‘고릴라’라는 댄스 팀을 만들어 본격적인 댄서의 길을 걸었고, 춤에 미쳐 밤새도록 춤 연습을 했어요. 진즉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갔을 거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요.”
팝핀현준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한참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부모님은 행방이 묘연했고, 형은 군대에 가 집은커녕 잘 곳조차 없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주노가 마련한 연습실에서 생활하며 연습생 시절을 보냈다. 늘 배를 곯은 채 노숙자에 가까우리만치 힘겹게 숙식을 해결했지만 춤이 있었기에 참고 견뎌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오로지 춤에만 매달리면서 ‘고릴라’에서 활동하던 그는 차츰 언더그라운드에서 알아주는 댄서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비보이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 되어 버렸다.
이준기와 함께 출연한 영화〈플라이 대디〉촬영 중. |
“미 8군 클럽에서 동양인은 춤 실력이 떨어진다고 기도 못 펼 때 외국인들과 춤 대결을 하면 어김없이 제가 이겼어요. 그러다가 제가 했던 형태의 댄스 배틀이 자연스레 비보이 경연대회가 된 거예요.”
이쯤 되면 재능을 타고난 춤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손 사래를 친다. 어떤 일이든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프로 마인드’를 가지는 게 중요하고,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끝없이 노력했는데 안 되는 건 없더라는 얘기다.
재능은 끈질긴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그래피티 기법으로 직접 제작한 팝핀현준의 문장(紋章). |
“저는 재능조차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선생님들께 미대 가고 싶다고 말하면 그 누구도 수긍한 적이 없어요. 그림을 정말 못 그렸으니까요. 그런데 일본에서 그래피티(graffiti,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리는 힙합 스타일의 거대한 벽화)를 배우고 돌아와 꾸준히 연습했더니 지금은 사람들이 저에게 느낌 있는 그림을 그린다고 칭찬해 줘요.”
처음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춤을 추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춤을 ‘가능성 없다’며 비웃었을 때 팝핀현준의 춤에 박수를 쳐준 건 그의 피나는 노력을 읽은 이주노뿐이었다.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준 사람 역시 이주노였다. “진짜가 진짜를 보여 줘야 한다”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춤만 추는 그에게 노래 연습을 시키고 작곡을 가르쳤다니 둘의 각별한 인연을 가늠할 만하다.
워낙 춤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그의 노래 실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물음표지만 굳은 강단과 오기가 있는 그이기에 “맘먹었으니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이라는 말에 왠지 믿음이 간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으니 넘어지지 않고 뛰어갈 일만 남았단다.
“제가 춤을 잘 춘다고 ‘노래도 잘할 수 있을까?’우려하시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그러한 선입견을 털어내기 위해서 방송을 계속 라이브로만 강행하고 있어요.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 있겠죠. 이제 시작에 불과한 걸요.”
여가시간이라는 게 딱히 없고 친구도 없다는 그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늘 무언가 배우고 만지작거린다. 댄서 시절 자신이 춤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600여 개의 영상편집을 직접 했고,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즐겨 본인의 홈페이지에 생각과 느낌을 수시로 꺼내 놓곤 한다. 춤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뭐가 있을지를 자다가도 궁리하는 등 생각이 많아 살도 붙지 않는다고. 요즘은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에 피아노를 기초부터 배우고 있다.
“6월 말 출간될 자전적 에세이의 책표지도 제가 디자인한 거예요. 교육용 댄스 DVD도 곧 판매될 예정이고요. 춤출 때 나오는 곡 중 3분짜리 짧은 것은 직접 만들었어요.”
음반 출시와 발맞춰 기획된 팝핀현준의 자전적 에세이와 방콕에서 공들여 찍어 온 교육용 댄스 DVD의 타이틀은 앨범명과 동일한 ‘One and Only’. 열정과 의지, 자존심뿐 아니라 그만의 ‘진짜 삶’이 깃들어 있는 결과물들이다. 이제 그는 ‘댄스지존’에서 가수, 광고, 영화, 드라마, 댄스 DVD, 도서 출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10년 넘게 다져 온 실력을 뿜어내며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을 무색하지 않게 하고 있다.
“일하는 게 너무 좋아서 앞으로 공백기 없이 계속 활동할 예정이에요. 노래와 연기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고요, 평생 춤추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미래를 위해 저축도 좀 하고 싶고. 무엇보다 이젠 고생만 하고 혼자 남으신 어머니(아버지는 2005년 작고)께 효도해야죠.”
사진 : 이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