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면서 음악을 듣고 있다.
아침부터 고민을 했다.
늦게 일어난 덕에 밥을 먹고 지각을 할까, 아니면 밥 굶고 학교에 빨리 갈까?
그도 그럴 것이 월요일 대구에서 돌아와 밤 11시에 친구 생일이라 불려나
가 새벽 3시까지 술먹었고, 화요일 피곤해서 집에 쉬다가 저녁 9시에 이
란 파견교사를 다녀온 42살 먹은 동료 형님이 술먹자고 해서 옛 동지들
이 모여서 새벽까지 술먹고 수다떨고, 수요일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아이
들의 흔적들을 확인하고 저녁에 교사신문 편집회의 갔다가 술도 한잔하
고 집에 오니 몸이 파다 김치다...
결국 나는 밥을 먹고 지각을 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말이다.
역시 밥을 먹으니 아이들과 즐겁게 하루를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놈이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번주말 웅변대회가 있는데 4학
년 아이 한명이 나간다고 신청을 해서 내용을 적어오라고 했는데 이것
이...
자기가 쓴 내용이 짧다고 보충을 하라니까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얼마전
대회에서 최우수를 받았다고 대드는 것이다.
참 기가 막혀서. 우습지도 않아서 상대도 하지 않고 집에 갈 때까지 해오
라고 했는데 도망 갔다. 내일 보고 성질나면 대회 나가지 않아야 겠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라도 말이 안되는 일 아닌가? 사실 실력도 내가 봐
서는 형편없는 편인데...
그놈이외에는 아이들이 별 무리없이 하루를 잘 마무리 하는듯 했다. 그런
데....
퇴근시간이 되어 전화가 왔다. 우리반 찬규와 정우라는 아이가 담을 넘다
가 주인에게 잡혔다는 것이다. 다른 반 아이는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황당 그자체였다.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주인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번 하고 나서야 사태를 정리할 수 있었다.
흥분하지 않으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내일 반만 살려두리라 결심하고
생각을 접었다. 어이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인터폰이 왔다. 양호선생님이다.
"어디예요?"
"연구실에 있어요?"
"오늘 분회 모임 안해요?"
"아 일 때문에 깜빡했네요. 지금 내려갈께요."
내가 4시 20분에 전교조 분회모임을 하자고 해놓고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따라 분회원들이 여러명 조퇴를 하거나 출장을 가서 8명 가량만 모
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바쁘다고 몇번을 미루어서 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앞으로는
미루지 않도록 해야겠다.
퇴근후에 고3 제자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집근처에서 오래 기다린 모양이다. 우리 집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내라는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길래 만나러 갔다.
드디어 어제의 용사들이 모였다. 기집애 4명, 민지, 상미, 시내, 은팔이...
참 반가운 얼굴이었다.
초임때 아이들이었는데 모두가 가정이 어려운 아이들이다.
민지는 부모가 교사인데 이혼을 하고 아이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이모
가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며 고모와 함께 민지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
지 민지는 어릴 때 성격이 날까롭고 완벽주의적인 행동으로 답답함을 주
기도 하고 가출을 하기도 했다.
상미는 아주 잘 살았는데 사업에 실패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장녀역할을 하다보니 성격이
조금씩 모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 속에서 은타로 통했고 자신도 스스
로 담을 만들고 자신의 울타리 속에 들어가곤 했다.
시내는 부모가 떨어져 살고 다섯 명의 형제들이 있다보니 가정이 불안정
했던 아이였다. 그래서 민지와 정임이와 함께 가출을 했다. 중학교 이후
에는 경북 상주로 이사를 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너무 보고 싶은 아이
였는데..
은팔이는 가정사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까불거리던 여학생이
었다는 것 뿐. 그런데 고등학교때 자퇴를 하고 놀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
다.
이렇게 나의 기억속에 자리 잡은 친구들이 모였다.
은팔이는 무척 반가워 나에게 안기기 까지 했고 시내는 뒤에서 엎히기 까
지 했다. 역시 말썽을 많이 부렸던 아이들이 정이 많은 모양이다.
민지와 상미는 수능에서 평소보다 50여점이나 떨어졌다고 많이 우울해했
다. 상미는 너무 힘들어 며칠전에 메일까지 보내왔었는데 생각보다 더 힘
들어 하는 듯 했다.
우리들은 시내가 아르바이트 하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물론 미성연자였지만.... 고민 끝에 그 아이들이 맥주를 마시는 것을 허
락했다.
윤리적인 문제보다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들을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들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났다.
민지와 시내가 가출해서 강남경찰서에서 데려온 일,
5공주에 대항하며 은따였던 상미 이야기,
우리 집에서 양말이 들어간 라면을 먹은 일,
수학여행 갔다온 일,
은팔이와 그의 일당들,
겨울 졸업여행을 소백산으로 가서 영하 20도의 산위에서 민지가 탈진한 일,
겨울에 꽃동네 봉사활동 가서 희망의 집에서 시내가 운 일,
그리고 보너스로 나의 화려한 과거 전력(내가 동학년 부장님에게 화를 내며 교실에서 책상유리를 손으로 쳐서 깬일)
.
.
.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속에서 아이들은 힘든 일들을 조금씩 잊고 과거의 기억속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쉬움을 남기며 우리들은 맥주를 몇 병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의 고민을 많이 덜어주지는 못햇다. 그러나 힘들때 그들에게
이야기 상대로서 근처에 있다는 믿음은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 전에 상미가 집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상미에게 힘을 내라고 했다. 재수를 하던 반수를 하던 신중하게 생각해
서 후회를 줄이라고...
많이 힘들었던 아이들에게 행운이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들의 얼굴이 더 어두워지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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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
조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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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1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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