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우체통
文 熙 鳳
나의 아침 일상은 정해져 있다. 5시에 일어나 양치질하고, 냉수 한 잔 마시고, 맨손체조하고, 엎드려 팔 굽혀 펴기 하고, 독서를 하다가 6시에 헬스장으로 향한다. 한 시간 헬스를 하고,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카페에 들어가 인사말 남기고, 메일 확인하고, 카톡으로 지인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인다.
오늘 카톡을 보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작은 메시지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받고 있다면 그건 그대를 누군가가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정, 사랑, 인연이란 산길과 같아서 매일 오고가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해진답니다.’라는. 아하, 내가 잘 하고 있구나.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보내는 문자는 분명 내가 그를 생각하고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그도 나에게 답을 보낸다.
서로 생각나는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하루를 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바람직한 삶이다. 적당히 걱정도 해주고, 간혹 궁금해 하기도 하며, 무슨 고민은 없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주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을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가 있는 그 곳에는 비가 오는지, 가장 힘들 때면 누가 많이 생각나는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안부 전하면서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월급날은 작은 결실의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비 오는 날은 비 내린다는 이유로,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분다는 이유로, 첫눈이 내리면 첫눈이 내린다는 이유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길을 가다가, 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익숙한 번호가 앞차 번호로 눈에 뜨일 때에도 갑자기 그리운 사람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정호승의 시 ‘상처가 사랑이다.’에 나오는 말이다. ‘친구는 하나면 족하고, 둘이면 많고, 셋은 불가능하다.’라는. 진정으로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받을 일인가.
내 몸이 아파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나는 갑자기 더욱더 사무치는 서글픔 때문에 생각나는 사람의 위로를, 위문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려 하다가도 ‘다음에 만나자.’는 말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만날 수가 없다. 전화를 하더라도 바로 만나는 날을 정해 놓아야 곧 만날 수 있다. 내가 먼저 다가설 때 소중한 사람과 만날 수 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확실한 비결이다.
스치는 세상사에 많은 인연으로 받아들임이 아니라, 신이 주신 필연적인 만남이라 믿으며 서로에게 문득 문득 생각 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겠는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태초부터 예정된 필연이며 섭리다. 내가 걸어온 길 하나만 삐끗 어긋났어도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초침보다 정밀한 신의 설계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겠는가? 고맙게 생각할 일이다.
그보다 더욱더 아름다운 것은 내가 누군가로부터 생각나는 사람으로 떠올려진다는 사실이겠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일방통행인 인연은 없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