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어느새 만으로 열여덟 해가 흘렀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이토록 오랫동안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조금 하다가 문을 닫을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라곤 삼백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가진 것도 없고 예산도 없고 또 예산을 확보할 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정부 지원은 받지 않는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하지 않는다. 후원회라든가 하는 조직도 만들지 않는다. 부자들이 생색내면서 주는 것은 안 받는다고 다짐했습니다. 피터 모린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말씀하신 것처럼 이웃을 돕는 일은 개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문턱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다가 손님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국수 한 그릇 대접할 뿐이었지만 손님들은 국수 한 그릇에 고맙다고 합니다. 달걀프라이 하나에도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내일 먹을 쌀도 떨어질 때도 있었고, 내일 끓일 국거리로 콩나물조차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멀리서 쌀 한 포 어깨에 메고 오는 후원자가 그렇게나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동태머리를 얻어서 꽁꽁 언 동태머리 살을 발라서 국을 끓인 적도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식탁 하나에 간이의자 여섯 개가 전부인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에서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 꼴찌부터 대접했습니다. 꼴찌부터 대접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님들이 서로 배려하고 돌봤습니다. 금세 모두들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작은 것에도 고마워 어쩔 줄 모릅니다. 풋고추 하나, 삶은 계란 하나에도 기뻐합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행복해 합니다. 놀랍게도 고마워하면서 삶이 변했습니다. 월 십만 원짜리 작은 방 하나만 있어도 노숙에서 벗어나서 살아나는 기적을 봤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십니다. 우리 손님들께 좋은 것을 아낌없이 대접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보냈습니다.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은 민들레의 집, 출소자를 위한 겨자씨의 집, 민들레 꿈 공부방,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민들레 책들레 그리고 민들레희망센터, 민들레진료소, 민들레 옷가게,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으로 작게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는 필리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장학금을 나누는 조그만 일들을 시작하다가 2014년에는 마닐라 칼로오칸의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에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민들레희망센터를 새로 꾸미고, 민들레 꿈 공부방을 옮겼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서 이제는 제대로 운영할 수 있으려니 했습니다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6년은 민들레국수집이 절체절명의 해였습니다. 박모 신부의 터무니없는 음해로 민들레국수집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결국 2017년 1월에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주 조금만 있어도 살 수 있습니다. 겨우겨우 우리 손님들 대접을 하면서 필리핀에도 아주 작은 곳이지만 두 곳에다가 민들레국수집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2019년 3월에는 제 나이 만 65세가 되었습니다. 기초노령연금을 받게 되었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했더니 축하의 박수를 칩니다. 민들레국수집 살림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손님들에게 되도록이면 고기반찬을 좀 더 해드리자 마음먹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쳤습니다. 우리 손님을 대접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는 도시락을 드리면서 노숙 손님들의 버팀목이 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도시락꾸러미를 챙겨드리고 계절이 바뀌면 필요한 옷을 나눴습니다. 놀랍게도 지금껏 우리 손님들께 마스크도 매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데 도시락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포장마차를 생각해냈습니다. 손님들을 실내에 맞이하지 못하면 우리 손님들처럼 실외에서 대접을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도시락꾸러미를 나누고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는 어묵을 대접하고 뜨거운 국물로 추위를 녹였습니다. 컵밥까지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열여덟 해 동안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것처럼 말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따뜻한 밥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민들레의 나눔방식은 세상 어느곳에서도 따뜻함을 전해질거예요.
요즘처럼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때에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사님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와 처지가 다른 사람일지라도 먼저 그의 말을 듣고,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 노력할때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짐을 민들레 국수집에서 배우네요!
늘 깨어사는 기쁨의 전도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