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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당선작
봄날 / 문나원
아침 열시, 여자는 ‘주름’하고 입속으로 뇌까린다
블라인드로 스며든 몇 장 햇살이 일렁임조차 없이 마룻바닥에 고인다
여자의 삶은 곧 삶은 빨래처럼 표백되곤 한다
주름 팽팽하게 당겨 올라가 집게에 집힌 채 집게발을 들곤 한다
세 아이를 키우며 꼭두서니처럼 잘게 썰린 여자는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다
여자는 이제 너무 많이 읽힌 문장이어서 시들 수도 없다
청소기 안 먼지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실뱀처럼 엉긴다
부엌에서, 여자는 알약을 삼킨다
“이것 좀 봐!”
아이가 유리병을 흔든다
병속의 벌이 붕붕거린다
쓰레기통 옆 죽어가는 생쥐 위로
우울증 환자의 머리에 덧씌워진 비닐봉지 같은 햇살이 고인다
값싼 비닐처럼 추억은 야윈다
여자를 잘 따르던 비숑 프리제는 이유 없이 밥을 굶기 시작하더니 보름도 채 안되어 죽었다
남편의 사업은 말린 고사리처럼 불어나고 아이들은 옥수수처럼 자란다
비교적 순조로운 날들이다, 여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단단했던 어제의 눈망울들은 어디서 물기를 버렸는가
그러나 저 살찐 햇살은 그늘의 혈연이다, 햇살은 그늘을 살찌운다
여자는 다시금 뇌까린다, 그나마 다행스런 날들이지 않은가
병속의 벌처럼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만 빼면,
✍ 심사위원: 김명인, 박수연 시인
서울신문 당선작
그림자 숲과 검은호수 / 이원석
모든 것은 덤불 속에 감춰져 있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둡고 어렵고 어리고
나뭇가지에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마른 잎들이 견디기 힘든
날들이 따라붙었지 매달리고 매만지고 메말라
찬 공기는 조금씩 뒤섞였어
침상에서 내려 딛은 발은 문 앞까지 낡은 마루가 삐걱이는
소리를 누르고 길고 고른 숨소리들
사이로 천천히 밀어내는 호숫가의 배
젖은 흙 다섯 발가락들 사이로 닿는 촉각 촉각 누르는
건반과 긴바늘 입술 위의 손가락
우거진 뿔이 덤불 속에 갇혀
머리를 숙이고 있지 포기하지 못한 자랑들이 엉켜 있는
낮은 덤불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지 다물지 못하는 입으로
숨을 뱉으며 뒷걸음질 끝에 꿇은 무릎과 마른 잎 위의 몸뚱이
내가 들어 올리고 싶은 뿔은 덤불 속에 잠겨 있어
달리는 덤불을 보여 줄게
춤추는 작은 숲을
바닥을 움켜쥔 모든 뿌리와 함께
흰옷은 흙투성이
물은 차고 어두워 소스라치는 살갗
걸어들어오는 고요와 잠긴 청각이 듣는 물소리
물속을 만지면 물이 몸을 바꾸고 뒤집는 모양은
얼굴과 얼굴이 흐르고 잠기는 기억
길게 줄어드는 음이 끊기지 않는
몸에 선을 긋고 지나가지 손도 발도 없이
몸의 틈을 찾아 결대로 몸을 틀며 가라앉는 숨
접촉경계혼란
피아노의 가장 낮은 건반을 무한히 두드리는
바닥
놓지 마 놓지 마
춤을 추는 팔과 파란
뒤집힌 호수 바닥 위에 검은 숲
그림자 속 덤불과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젓는 우거진 뿔과 큰 눈망울
진저리치며 흩날리는 입과 잎과 입김
호수 위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검은 물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숲엔 부러진 뿔과 나뭇가지
몸뚱이 위로 끝없이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
→ 이원석: 1976년 서울 출생,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팀레이븐 주짓수 코치
✍ 심사위원: 나희덕, 안도현 시인
무등일보 당선작
나의 나침판 / 하미정
풀잎하고 부르면 화살표가 나옵니다 당신이라는 낭떠러지는
나를 늘 그런 곳으로 이끌어 세웁니다
잠시 방위를 빌려보기로 하자 방향에 굴하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가는 선택의 길에서 나는 늘 진로를 망설였고
우리의 목표는 정말 높고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목표라면 그 안을 보는 일에
그는 늘 바깥 방향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한번은 밀어내고 한번은 끌어당긴다
자성 강한 잡념들도 나의 몸이 끌어당긴다
누군가를 밀어내면서 누군가의 어둠을 끌어안는다
어둠의 강한 자성에 내 방은 결국 자력을 잃었고
나는 그의 자기장에서 일 년을 붙어살았다
기울어진 힘점이 있다
나는 하루에 한번 넘어지며 균형을 잃는다
힘점에서 나를 빼냈다 공평함이 사라졌다
힘점에서 기울어진다는 건
누군가를 믿지 못한다는 증거
복잡한 머리를 용서하면
나의 좌표는 간결해 질 수 있다
여행은 마음의 풍경을 향해 가는 것
저녁의 산책이 걸음을 이해 할 때
나침판은 내 가슴에 와 박힌다
✍ 심사위원: 노철 전남대 교수
경인일보 당선작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 / 이유운
당신이 또 여름이 왔다고 말하는 것은
축축하게 땀으로 젖은 내 등을
바람으로 깎아놓은 거친 손으로 훑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손가락 끝이 유독 단단했던 당신의 손톱은 언제나 창백한 회청색이었다
손톱이 왜 파랗지요 하고 물으면
요 안에는 바람이 담겨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던
당신의 입술에는 뼈가 없었다
당신의 손이 습한 등을 훑으면 와사삭 소름이 돋아서
정말로 당신의 손톱에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바람으로 나를 만지며…
내 등뼈는 당신 덕에 조약돌처럼 둥글어졌다
그리하여 아주 먼 미래에
누군가 내 등을 만지면
나는 바람으로 깎여 둥글고 부드러운 짐승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의 부푼 무릎 위에 바람의 모양을 그렸다
이제 그 먼 미래가 되어서 바람으로 깎인 나는
이 즈음에는 꼭 당신을 생각한다
바람을 담고 있던 당신의 손톱과
바람의 모양대로 부푼 당신의 무릎
나는 여름이 오면 반드시 당신의 뼈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내가 만져보지 못한 당신의 뼈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하고
✍ 심사위원: 김윤배, 김명인 시인
경상일보 당선작
거름 / 이정희
늘그막의 아버지
벗어놓은 양말이며 옷가지에서
거름냄새가 났다
그건 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를 포기하는 냄새였을까
그 옛날 장화를 벗을 때나
땀에 전 수건을 받아들 때 나던
그 기세등등한 냄새에서
초록을 버린 풀들이 막 거름으로
이름을 바꿀 때의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앙상한 등짝으로 부려놓은 풀 더미에 가축 오줌과 똥을 잘 섞는다 각자의 냄새를 지켜내겠다고 서슬 퍼렇게 날뛰던 것들이 오래 지켜온 습성을 버리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냄새로 진동하던 것들이 고집을 버려 삭아지고 토해내며 거름으로 될 때의 냄새가 난다 검은 흙빛 미지근한 열감으로 모든 냄새들이 포기하여 뭉쳐진 거름
들녘을 키우며
아낌없이 주는 거름
깜빡 졸고 있는 그 틈에도
아버지의 밭은 성성했다
러닝셔츠 구멍 사이로
기력 다 빠져나간 아버지의 밭에
폭 삭은 거름 한 짐 뿌리고 싶은데
지금쯤 아버지는
어떤 냄새로 접어들었을까
→ 이정희: 1961년 경북 고령 출생, 효성여대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이수
✍ 심사위원: 박종해 시인
전북일보 당선작
골목의 번식 / 김은숙
발밑을 믿지 마세요 골목의 뒤통수는 백 년이 가도 썩지 않아요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한 태아도 봉지에 버려진 조약돌,
툭툭 발길에 채여요
어둠이 눈감아줬다면 당신은 그것을 바람 빠진 축구공쯤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나자마자 봉지 속으로 꼬깃꼬깃 숨겨진 첫울음,
도심에는 한 방향만 암기한 검은 사각형들이 살아요
정육면체 어둠이 검은 시냇물이 되어 흘러요
밤이면 먹물 같은 골목, 징검다리는 없어요
그 안에 더 이상 비밀을 숨기지 못할 때
종착지는 캄캄한 땅속이거나 고래 뱃속이었어요
뭔가를 산란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 지난밤 그 골목은 비좁았어요
집안 어디쯤에서 폐품이 되기 좋은 질긴 산책로를 발견했나요? 창문 밖 저 끝말이에요
봐! 저기! 저것 좀 봐! 소리친 게 당신이었나요?
노을을 뚫는 검은 새떼의 비행은 사실상 누군가 목을 비틀어서 유기한 비닐봉투였죠
은밀함을 목 졸라 죽일 때는 낯선 저녁 역광 뒤쪽이 최고예요
역광을 믿지 않았던 고래는, 죽은 봉투를 해파리로 읽었어요
그것들은 간혹 뱃속에서 심장을 갉아 먹다 고래의 사인이 되기도 하죠
검정을 죽이고 돌아와, 비닐봉투가 피살되었다는 뉴스특보를 보더라도 웃음 짓는 것이 중요해요 한잔의 블랙커피를 삽으로 파고서 떨리는 증거들을 감쪽같이 묻어버리세요
지난밤에는 어둠을 자백하라고 길고양이들이 나를 포위했어요 묻어버린 시간과 폐기한 말들을 뱉어내라고 난리에요 그렇지만 최후의 단서를 들키지는 않았어요
귀소본능이 없는 것은 발명가가 깨트린 새 소리예요
길게 누운 골목, 졸음의 이마 위로 갓 태어난 개똥을 조심하세요
골목 왼쪽, 삐쩍 마른 나뭇가지 꼭대기에 흙을 잔뜩 묻히고 입을 해-벌린
깃발처럼 펄럭이는 검은 농담들, 맞아요
어느 아르바이트생이 20원짜리 비닐봉투 도둑으로 몰린 사건 아시죠?
두께도 없고 입구도 없는 혐의는 아메바보다 지루해요
괜찮아요 밀봉된 태아의 캄캄한 몸과 비명도 따지고 보면 고무장갑과 같은 족속
붉어서 아무도 구별 못 해요
매일 밤 태어난 어둠은 막다른 모퉁이에 검은 무덤을 만들고, 아침이면
기지개 켜는 코스모스가 그것들을 화려하게 변호하죠
→ 김은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 송파문인협회 이사, 은행나무문학회, 송파수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 심사위원: 허영자, 문신 시인
강원일보 당선작
문자와의 사랑 / 박성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소양강 돌다리까지 달렸다
강변에 먼저 와 있던 문자는 조용히 앉아
막 피어난 안개로 손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물풀처럼 흔들리며
흐르는 물살이 입은 햇살이 부러웠다
강 건너 우두동의 저녁을 향해
문자는 어른처럼 익숙한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게 잠긴 목소리로
처음 ‘그대’라고 불러 보았다
저녁 강이 비치는 하늘은 깊은 분지를 향해 흘러갔다
나는 역 광장에서 서성이며 미군부대 헬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담 밖 꽃 진 나무들이 어떻게 바람소리를 내는지 궁금했지만
서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기적소리 길게 레일을 벗어날 때
검은 안개 본 적 있니? 미군부대 녹슨 철조망에 기대어
헝클어진 머리 문자는 짓궂게 웃기만 했다
심사위원: 이영춘, 이상국 시인
경남신문 당선작
고래 해체사 / 박위훈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호기심으로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혀지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 박위훈: 1964년 출생 김포문예대학 13-15기 수료,
✍ 심사위원: 배한봉, 김이듬 시인
문화일보 당선작
침투 / 차유오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을 잡게 된다
물결은 아이의 울음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흘러가면서
하얀 파동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나는 떠오르는 기포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간다
숨을 버리고 나면
가빠지는 호흡이 생겨난다
무거워진 공기는 온몸에 달라붙다가
흩어져버린다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 차유오:1997년 경기 남양주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재학 중
✍ 심사위원: 문정희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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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번식은 표절시비로 당선 취소 되었죠
그러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