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 잘 사는 것과 끝까지 살아내는 것 사이에서
어려서부터 수도자들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수도원에는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닐까?
800년 전, 성 프란치스코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유망한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사업가의 아들이었지만, 성인은 부와 안정 대신 가진 것을 내려놓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성인의 뜻에 공감하며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뜻으로 모였더라도 세대가 바뀌고 사람이 늘어날수록 갈등과 차이는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배반과 대립이 있었듯,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수도회 형제들의 오해와 반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상은 같아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수도 생활에 대한 이해가 달랐을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과 관점에 차이가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라면 피하기 어려운 현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도회가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과 권력, 소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 길을 이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도자라고 해서 처음부터 거룩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수도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성숙해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성숙은 직선처럼 꾸준히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퇴행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문제 앞에서 다시 흔들리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나아가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그러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알아 가고, 타인을 받아들이며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도자라도 때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어설프고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부족함 없는 모범적인 모습만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갈등, 시련 속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려는 모습에도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수도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분의 영과 정신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걸으신 길처럼, 수고와 수난 속에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 8,34)
https://youtu.be/pkJQW5Epw7o?si=bvATFdKo31fp2-f6
수도원은 완벽한 이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가난과 단순함, 사랑과 선, 평화와 겸손, 작음과 형제애’라는 가치를 품고, 완성을 향해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걸어가는 장소(聖所)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 가는 힘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도원의 진정한 힘은 거룩한 완벽함에 있지 않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고, 형제들과 함께 자신의 초심을 지켜내려는 신실(信實)한 발걸음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끝내 ‘버텨내고 살아남는 것’ 역시 고귀한 의미를 지닙니다.
세상에는 질서가 있지만 무질서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끝없는 노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수도 생활 역시 갈등과 혼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다시 질서를 찾으며 함께 걸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The Brothers Four의 노래 「Try to Remember」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마음에 남는 가사가 있습니다.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Without a heart, life would be hollow.”
“12월이 깊어져 갈 때, 추억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지요.
마음(아픔, 사랑)이 없다면 삶은 텅 비어 있을 테니까요.”
이 가사를 이렇게 풀어 옮겨보면 어떨까요?
사랑했기에 겪어야 했던 아픔도 우리 마음에 남아 삶의 귀한 일부가 됩니다. 소중했던 만큼 헤어짐이 아팠고,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아픔은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가장 확실한 흔적이기도 합니다.
수도 생활 역시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다리며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분은,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DEUS MEUS ET OMNIA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이시여!)
수도자와 성직자의 길은 누구나 쉽게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든 다른 문제에서든 중도에 그 길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루며 그 원인을 분석하는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부르심에 응답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 길에 인간적인 가치관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숭고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12)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2티모 4,7-8)
성 프란치스코 역시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성직자들을 존경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에 그들이 죄인들이라면 우리는 오직 그들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직책 때문에, 그리고 제대에서 축성하여 자신도 모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에 대한 봉사직 때문에 존경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2편 33)
완벽해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도 다시 일어서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는 것. 수도자의 삶이란,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노인 요양복지시설에서 근무했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기력 없이 드시고 주무시며 초점 없는 눈빛으로 TV를 바라보시는 어르신들을 뵈며 ‘저 삶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깨달은 것은, 그분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젠가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침묵 속에 증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수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 존재 자체로 신자들은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수도자라는 존재는 덧없는 길을 향해 분주히 달려가던 세상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어 세우고, 가던 길을 돌아보며 참된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완벽한 행위(Doing)가 아니라, 견뎌내는 존재(Being) 그 자체로 말입니다.
어쩌면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답을 가르치기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삶이 언제나 아름답고 평화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흔들리며, 갈등과 혼란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모습마저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의 가치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범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끌어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가려 애쓰는 모습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살아가는가?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으며,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내 삶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수도자들은 완벽한 답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생 답을 찾아가며 그 답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삶은 종교의 유무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을 건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무엇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가?
BGM:《Try to Remember》는 지나간 계절과 젊은 날의 추억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입니다. 원곡은 뮤지컬 《The Fantasticks》에서 탄생했고, 여러 가수가 불렀으며 미국 포크 그룹 브라더스 포(The Brothers Four)의 노래로도 사랑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