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내 사명을 되새겨 봅니다...
몇 년 전 고민하며 올린 글입니다.
저는 구약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구약 본문에 집중하고 구약의 배경사, 문학, 언어, 고대의 법률과 문헌을 공부합니다.
중간에 사역도 집중하고 선교사로도 10년을 보냈지만, 늘 구약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대원 이후 구약에 심취하며 공부하다보니 어느 순간 제가 뭘 안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군요.
다양한 신학자들의 연구물과 책들을 접하다보면, 확연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우리나라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서구와 다르지 않게 진보적인 학교에서는 구약의 분문 분해와 재구성 작업에 올인 합니다. 대체로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분들의 학풍을 따르는 학교들입니다.
아무래도 성서 비평의 최고 대가들은 성서학의 다윈이라할 수 있는 벨하우젠 이후 대부분 독일 출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학문 방법은 치열하고 깊고 논리가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하며 그 결과물은 어마어마하게 방대합니다. 성서 본문의 해체와 재구성 방법은 끝이 없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답도 없습니다.
제가 그려놓은 폰라드의 육경 형성사의 계통표는 하나의 샘플에 불과합니다. 또한 최대한 약식으로 줄여본 계통표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렇게 복잡해 보입니다.
폰라드의 책을 읽으며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얼기설기 정말 너무나 치밀하게 특정 본문들을 끌어내 서로 갖다 붙여 자료층으로 분류하며 왜 이게 여기에 들어와 있는지를 사실상 추론적으로 설명합니다.
"사실상 추론적으로 설명합니다". 이게 중요한 핵심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그런 확신이 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폰라드도 "틀림없이", "분명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추론적 확신입니다. 거기엔 아무런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폰라드의 거대한 저작은 제가 다 소화를 못했지만, 그의 핵심 논문을 다 읽은 뒤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그래서 이게 맞다는 것을 누가 확인하고 증명해준단 말인가?"
그럼에도 비평학에 치우신 구약 연구는 이 작업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깁니다.
제가 남아공 프레토리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처음 저의 지도교수는 레루(Le Roux)라는 오경 비평학의 거장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은퇴한 지 오래된 이 분은 남아공 구약학계에서 천재요 괴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Brill에서 책도 몇권 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요구를 제가 도저히 따를 수 없어 깊은 상담을 마치고 서로 양해하에 문학비평 전문가인 지도교수로 갈아타야 했었죠.
암튼 레루 교수는 저에게 <남아공 구약연구회>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때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의 에토스(ethos)는 구약 본문의 역사적 재구성이다"
그러면서 저에게 미스터 김이 히브리어는 잘하지만 고대 근동어는 두 어개쯤 해야하니까, 우가릿어와 탈굼을 읽기 위한 아람어 공부를 위해 1년간 남아공 최고 전문가인 교수를 1:1로 붙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공짜였습니다.
선교사 신분에 안식년에 그 동안 연구한 레위기 <속죄제 논쟁>을 종합해서 박사 논문을 쓰려는데, 저걸 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제가 여건이 되고 공부에 환장했으면 다 때려치고 하고 싶었지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교수와 결별하는 방법 외에는....
이와같이 그들에게는 평생 성서 연구의 목적이 본문 해체와 역사적 재구성입니다. 이런 학풍은 한국의 진보적인 신학교의 학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 책을 읽어보면 너무나도 깊고 치열한 학문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나옵니다. 제가 따라갈 수가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쏟아집니다.
그래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런 학풍의 학자들에게 크게 무시를 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구약 연구의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죠. 실제로 학문적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엄청난 전문용어와 분석력, 그리고 정교한 추리적 재구성의 논리를 도저히 따라갈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한국의 구약학계는(아마 신약학계도) 학회도 진보적 학풍의 구약학회와 보수적 학풍의 구약학회가 따로모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본문의 통전적 이해에는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것은 학문성이 없다고 치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실제로 레루(Le Roux) 교수는 구약의 최종 본문의 수사학적, 문학적 연구 방법을 독일 구약신학보다 20년이나 후진 유치한 연구라고 무시하더라구요. 레루 교수는 독일과 남아공을 오가며 연구활동을 한 사람이죠.
그분은 영미 학자들은 그저 독일에서 편집비평적으로 연구해서 분석해 놓은 걸 대충 갖다가 버무려서 실용적인 문학적 연구라는 이름으로 사용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와 결별했는데, 물론 학문성과 그 논리적 치열함 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지만, 저는 그게 연구방법론의 필연적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방법을 토대로 한 텍스트(본문) 분해 연구를 따르면, 최종 본문의 메시지가 사실상 해체됩니다. 그래서 그런 방법론으로는 최종 본문의 문학적 의도와 기교, 전달되는 분명한 메시지를 건져내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비평학계에서도 이미 1960년 후반 뮬렌버그를 필두로 이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편집비평의 방향이 최종 본문속에 들어온 자료들의 배치의 논리와 의도에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사학적 연구, 서사 비평과 같은 문예(문학) 비평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죠.
이런 분위기가 한국의 진보 신학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여전히 진보 신학계는 본문의 해체와 역사적 재구성에 몰두하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벨하우젠과 궁켈, 마틴 노트, 그리고 폰라드와 같은 비평학 거장들을 치열하게 공부하기에 그들의 이론에 해박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그들의 견해를 개론적인 것만 알지 각론은 잘 모릅니다. 공부를 전문적으로 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평학자들과 저같은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지식 수준과 이해도의 격차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진짜 그분들은 학자들 같고 저는 그냥 공부 좀 하는 목사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성경 연구방법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구약성경은 저와 같은 연구 방식으로도 모든 본문들이 설명이 가능했고, 저는 최대한 가능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해석을 해왔습니다.
상호 충돌되어 보이는 본문들, 이해불가하게 갑자기 끼어들어온 듯한 본문들, 등등. 이런 것들을 자료의 차이로 간주하고 그 결들을 찾아 뜯어낸 뒤, 다시 자리배치하는 작업이 저에겐 불필요했습니다. 연구를 해보면 다 이해가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 연구에서도 보수 꼴통입니다.
그렇다고 비평학자들의 연구 방법론과 그들의 업적을 전혀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책도 꾸준히 접하며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한 그분들도(가끔 의심스런 분들도 있지만ㅎㅎ) 같이 천국에서 만날 사람들이니까요.
학문의 세번째 방향의 고민은 구약연구의 현장성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렇게 연구하는게 그럼 어떤 실제적 도움을 준단 말인가? 그리고 연구해서 깨달은 것을 어떻게 현장속에 구현해 낸단 말인가?
한국처럼 치열하게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지고, 양극화가 심하고, 정치로 상대와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라가 찾기 힘든데, 교회의 할 일은 무엇이고 신학은 어떤 사명을 가져야하는지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학회를 자주 갑니다. 엄청난 학문적 성과가 발표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들이 교회 현장으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가? 이것이 늘 제가 품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과 고민을 안고 저는 오늘도 성경을 펼쳐 놓고 본문을 들여다 봅니다.
# 아래 도표는 과거 폰라드를 개인적으로 연구하면서 엄청나게 복잡하고 난해한 그의 주장과 논지를 나름 최대한 도표화해서 만들어 본 것입니다. 폰라드를 약간 아시는 분들에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